할머니 

다음날 아침 정안 스님이 눈을 떴을 때는 환하게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습니다. 정안 스님은 얼른 뛰어나갔습니다.  

“할머니?”

정안 스님이 부엌문을 열었습니다.

“일어났어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햇빛 아래의 할머니는 정말 귀신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칼, 온전한 데라곤 한 군데도 없는 얼굴의 주름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 이마에 붙은 커다란 검버섯, 약간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는 앞니가 망가진 입을 벌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몰랐는데 마당은 정말로 엉망이었습니다. 멋대로 키 높이 자란 풀들의 주검이 곳곳에서 일렁이고, 바람에 날린 낙엽들이 마루까지 올라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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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먹어야지요?”

정안 스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부엌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는 땅바닥에 피우다 만 꽁초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차게 빨았습니다.

어젯밤과 달리 반찬은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정안 스님의 입에 맞는 것들이었습니다. 양념이라곤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백김치, 씀바귀 무침, 역시 박 속처럼 하얀 동치미, 그리고 콩장과 고추장...... 할머니는 자꾸 자꾸 정안스님의 밥숫깔 위에 반찬들을 올려놓았습니다.

 “정말 맛있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정안 스님을 또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많이 먹어요.”

그러나 정작 할머니는 가만히 밥숫깔을 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도 드세요. 제가 밥 먹고 마당 다 치워 드릴께요.”

 할머니가 손을 흔들었습니다.

“왜 내가 마당 치우기 싫어서 저 잡초들을 그냥 둔 것 같아요?”

할머니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지나갔습니다.

“......?”

“그냥 놔둔 거에요. 겨울엔 내가 아무리 쓸어야 산에서 내려오는 칼바람을 당할 수가 없어요. 마당에 가득한 잡초들은 일부러 뽑지를 않았지요. 심심한데 저것들 소리라도 들어야지. 아마 올해는 한 길이 넘을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흉할지 모르지만 난 아니에요. 저것들이 얼마나 보기 좋아요. 가만 놔두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얼마나 많은 꽃들이 피었다가 진다구요. 지난번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정말 장관이었어요.”

 할머니는 노스님과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마당을 내려다보는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눈부시도록 햇빛이 맑은데도 바람은 그치지 않습니다. 

“더 먹지 그래요?”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제 보니까 스님도 흰머리가 있어요?”

“네.”

“스님이 안됐으면 아이들한테 할배라고 놀림당할뻔했어요.”

 할머니는 웃었습니다. 그러나 금방 할머니는 인상을 찡그렸습니다.

“할머니 어디가 아파요?”  

“아니요.”

 그러나 할머니의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약은?”

“난 그런 거 안 먹어요.”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정안 스님은 얼른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정안 스님이 빠르게 설거지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마당으로 내리퍼붓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봄 날씨였습니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바람의 냄새 속에 알싸한 봄의 열기가 맡아졌습니다. 정안 스님은 조심스럽게 부엌문을 닫고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올망졸망 붙어 앉은 마을의 집들이 긴 겨울의 잠 속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루나무가 많다는 곳, 실개천 위로 돌다리가 무려 네 개나 있다던 마을, 마을 동산 무성한 소나무 위로 하얗게 내려앉아 있던 그 많았다던 학들...... 그러나 학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더 이상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봄이 올까? 다시 싹이 돋고, 저 죽은 듯 서 있는 가지 위에도 꽃이 필까? 정안 스님은 겨울이면 항상 하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봄은 정안 스님의 의심과는 달리 언제나 제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도 정안 스님은 아직 꽃 피는 봄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정안 스님이 그런 생각을 하며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덜컥 방문이 열렸습니다.

“왜 그러고 있어요?”

정안스님은 물끄러미 할머니를 쳐다봤습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 저 위에 절이 있어요?”

할머니가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그건 왜요?"

"있긴 있는데......"

“할머니, 그 절에 가볼까요?”

“......?”

할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렬한 햇빛 때문인지도 몰랐습니다. 거의 감긴 눈 옆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면서, 정안 스님은 노스님을 생각했습니다. 노스님은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거긴 왜요?"

"그곳에 우리......"

정안 스님이 말끝을 흐렸습니다.

할머니도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그시 정안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난 힘이 없어서 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저 혼자 다녀올게요." 

“그러세요. 그곳에 가시면 스님이 한 분 있어요...... 그러면......”

그러나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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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스님은 합장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할머니의 집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은학산 웃쪽으로 향했습니다. 기침소리가 들렸습니다. 노스님처럼 한 번 시작하면 열 번 이상 계속 해대는 끝말랑이 할머니의 기침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