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의 허수아비를 먹어치운 소1

                          -경봉스님의 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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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해였습니다. 오십 대 중반의 경봉 스님은 여러 절과 암자를 돌아다니다가 한겨울 정월에 통도사 극락암으로 와서 머물렀습니다. 경봉 스님이 극락암에 살게 되자, 제자인 법인 스님도 스승을 모시려고 찾아왔습니다. 통도사에서 머리를 깎은 어린 스님도 두어 명 극락암에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극락암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그동안에는 일본 형사의 눈을 피해 극락암을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경봉 스님은 스님들이 살기 원하는 대로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법인 스님은 걱정이 컸습니다. 신도들의 보시가 미미한 암자에서 여러 스님들이 살 만큼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쌀독은 이미 바닥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보리나 붉은 수수, 고구마, 감자가 잡곡 창고에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스님 가르침을 받으려고 수행자들이 오겠다고 줄을 섰습니다.”

 “절이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니 다 받아들여야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쌀이 간당간당해서 탈입니다.”

 “우리가 수행자답게 살면 하늘이 도와주고 땅이 도와줄 거네.”

 “어떻게 하늘과 땅이 도와준단 말씀입니까?”

 경봉 스님이 손가락으로 극락암 앞의 산자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늘과 땅은 땀을 흘리는 사람만 도와준다네. 그러니 저 산자락을 개간해서 콩밭으로 만들어보게. 가을에 수확해서 콩을 쌀로 바꾸면 되지 않는가.”

 법인 스님은 어린 스님들을 데리고 나가 억새와 도토리나무를 뽑고 난 뒤 괭이질을 했습니다. 날마다 한 뙈기씩 밭이 늘어갔습니다. 며칠 후 산자락을 따라 길쭉한 콩밭이 다 일궈지자, 경봉 스님이 법인 스님에게 외출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나하고 어디 좀 다녀오세.”

 “내원암에 가시렵니까?”

 천성산 산자락에 있는 내원암은 경봉 스님이 법문을 하러 다니는 여승들이 사는 비구니 스님 암자였습니다. 

 “아니네. 양산장에 가세.”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제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나서 데리고 와야 하네.”

 “무엇을 데리고 온단 말입니까?”

 “소 한 마리를 구하려고 하네.”

 “스님, 암자에서 소를 키운단 말입니까?”

 “밭을 더 많이 일구려면 소가 필요해.”

 법인 스님은 더 묻지 못한 채 경봉 스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통도사에서 양산장까지는 한 나절 거리였습니다. 경봉 스님은 길을 걸으면서도 법인 스님에게 법문을 했습니다. 경봉 스님보다 9살 아래인 법인 스님은 스승의 법문을 공손하게 들었습니다. 경봉 스님의 가르침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법인은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는 어떻게 짓는가?”

 마지란 법당 부처님께 올리는 밥을 뜻했습니다.

 “살림살이가 나아질 때까지는 쌀에 보리를 섞을 생각입니다.”

 “그래?”

 “제가 틀렸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법인이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것은 좋지만, 하늘과 땅의 스승이신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는 정성을 다해야 하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까?”

 “부처님 마지에는 보리를 넣지 말게. 우리가 보리밥을 먹으면 되지 않겠는가.”

 “보리도 사람이 먹는 곡식입니다. 그런데 왜 부처님에게 올리지 못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보리도 사람이 먹는 곡식이지. 그런데 보리는 사람 똥을 주어서 자라게 하거든.”

 “아, 그래서 옛날부터 스님들이 마지에 보리를 넣지 않았군요. 이제야 알겠습니다.”

 양산장 한쪽에는 소를 팔고 사는 우시장이 서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우시장으로 들어서자 소장수들이 웃으며 다가왔습니다.

 “스님, 절에서도 소를 키우십니까?”

 “이 암소 어떻습니까? 반반한 등짝을 보십시오. 조금만 더 크면 일을 아주 잘할 겁니다. 송아지도 낳을 것이니 절대로 손해 보지 않습니다.”

송아지를 보게 되면 본전을 뽑을 거라는 소장수의 말이었습니다. 그때, 저만치서 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경봉스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경봉스님이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울고 있느냐?”

 “이 소는 제가 풀을 먹였어요. 근데 노름빚을 진 우리 아버지가 소장수 아저씨에게 팔았어요.”

 아이가 울먹거리며 경봉스님에게 바짝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소장수가 파리 쫓듯 손을 휘휘 저으며 아이에게 소리쳤습니다.

 “이놈아, 이 소는 이제 내 것이다. 니 애비가 나에게 팔았어.”

 “아버지는 팔았어도 저는 팔지 않았어요. 이 소는 내 친구에요.”

 “어허! 이놈이 버릇없이 생떼를 쓰는구나.”

 팔린 암소가 아이를 보더니 음매음매 하고 구슬픈 소리를 냈습니다. 소의 큰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소의 눈물을 본 아이가 소에게 달려가 목을 껴안았습니다. 경봉 스님이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이야, 이 소를 내가 살 테니 보고 싶으면 우리 절에 네가 오면 되지 않겠느냐.”

 “대자대비하신 큰스님, 그러면 저도 좋고 아이도 좋겠습니다.”

 소장수는 소를 얼른 팔 욕심으로 아이를 위하는 척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국 경봉 스님은 튼튼한 황소를 고를 생각을 포기한 채 그 작은 암소를 사고 말았습니다. 그래야 아이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였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