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음날은 정안 스님이 약국에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늦겨울 햇볕이 창호지 문살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 때쯤 정안 스님은 눈을 떴습니다. 이렇게 늦잠을 잔 것은 포리암에 오고 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스님께서 가부좌를 하시고 앉아 계셨습니다. 어젯밤과는 다르게 얼굴이 환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기뻤습니다.

“노스님?"

노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정안 스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방학이 며칠 남았지?”

“7일 남았어요.”

“그럼 다녀오도록 해라.”

“은학리?”

 노스님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안 스님은 가슴이 무너져 내려앉았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노스님이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들이나 사형 스님들의 말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이유가 닿지 않아도 그대로 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노스님은 다른 스님들과 달랐습니다. 분명히 무슨 까닭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깨우지 않았다.”

“오늘 아침 예불은......”

“나도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잘못했습니다.”

정안 스님이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나쁜 것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거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네.”

정안 스님은 모깃소리보다 작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준비하거라.”

그러나 정안 스님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겁나냐?”

  정안 스님이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안 스님의 눈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습니다.

“저 혼자는......”

노스님은 정안 스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좋은 공부가 될 게다. 학교에서도 방학 때 여행을 다녀오라고 숙제를 내지 않았느냐? 문경 읍내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한 20분만 가면 은학리다. 유치원생도 찾아갈 수 있어. 모르면 무조건 사람들에게 물어라. 그것이 공부야.“

 노스님은 또다시 빙긋 웃었습니다.

“노스님은요?”

 “난 갈 필요가 없지.”

“거긴 노스님 고향이잖아요?”

“아니 인석이?”

  노스님이 눈을 부릅떴습니다.  

“은학리 제일 끝말랑이 집을 찾아가거라.”

  정안 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쌓였는데도 멀리 바닷가에서 봄 냄새가 몰려왔습니다.

“좋을 게다.”

노스님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난 그곳을 떠난 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곳에 가면 적멸암이라는 조그만 절이 하나 있다. 그곳에 네 아버지가 있다.” 

 노스님의 음성은 떨렸습니다. 

“네?”

정안 스님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수시로 그려보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꿈속에서조차 그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네 엄마는 어디 있는지 몰라...... 아버지를 만나면 나무를 보듯 돌을 보듯

그냥 보고 오는 거다. 이제 난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없다.”

정안 스님은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그냥 다녀오면 된다. 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가면 문경 가는 버스가 있다. 알겠지?“

정안 스님은 봄이 오는 졸참나무숲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종일을 앉아 있습니다. 하나도 춥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습니다. 정안 스님은 노스님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새겨보았습니다. 혹시나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나 생각했던 것입니다. 분명히 아버지가 있는데...... 정안 스님은 노스님도 원망스러웠고, 아버지도 원망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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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안 스님은 철로변이 보이는 졸참나무숲가에 앉아 있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습니다. 거센 바람에 포리암 풍경이 울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언덕 아래쪽을 올라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노란 빵모자를 쓴 희진이입니다. 정안 스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희진이 이모와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정안 스님은 희진이가 무슨 말을 붙여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방학식 때도 인사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희진이도 그걸 알고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명구야!”

희진이가 정안 스님이 앉아 있는 졸참나무숲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물끄러미 쳐다볼 뿐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온 희진이는 멋쩍어하는 정안 스님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늦었는데......”

정안 스님은 억지로 말을 하였습니다.

“우와 이제 말을 하네.”

희진이가 손뼉을 쳤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텐데.” 

“그러면 자고 가면 되지.”

희진이가 정안 스님 옆에 앉습니다.

“미안해. 이 말 하려고 왔어.”

희진이의 눈엔 눈물이 매달려 있습니다.

 정안 스님은 발바닥으로 땅을 차고 있습니다.

“우리 이모는 원래 그래.”

정안 스님은 그냥 귀찮았습니다. 빨리 희진이가 내려가 주었으면 하였습니다.

“나 니네 절 구경하러 왔는데.”

“안돼. 우리 노스님도 아프고......”

희진이는 금방 울상이 되었습니다.

“그럼, 나 그냥 갈까?”

“응.”

정안 스님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희진이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친구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와도 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정안 스님은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놀림감이 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희진이 이모를 만난 이후로 정안 스님은 희진이 와도 눈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숨고 싶었습니다.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니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정안 스님은 항상 그 생각만 하였습니다.

“버스 정거장까지 바래다줄까?”

“아니.”

“그럼 잘 가.”

“잘 있어.”

정안 스님은 힘없이 내려가는 희진이의 뒷모습도 보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불쑥 노스님께 말했습니다.

“노스님, 저 은학리 갔다가 올게요.”

 노스님은 정안 스님의 머리를 쓸어주었습니다.   

그날 밤 노스님도 잠들지 못했고, 정안 스님도 이리저리 뒤척였습니다.   

은학리

 정안 스님은 바랑을 졌습니다.

공양주 할머니께서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괜찮겠어요?”

“다녀오겠습니다.”

할머니께 돈 5만 원을 받은 정안 스님은 천천히 길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큰돈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돈을 넣은 주머니에 몇 번이나 손을 넣었습니다.   

“전화하세요.”

할머니가 절 마당에 나와서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뒤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의 눈과 마주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밤사이 언제 눈이 왔느냐 싶게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했습니다. 회색 빵 모자에 완전 겨울 차림새를 한 정안 스님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정안 스님은 안산으로 가는 36번 국도로 나와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안산역에서 다시 안산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절을 떠난 지 한 시간 반쯤이 되어서 정안 스님은 문경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는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있었습니다. 

“문경요.”

표를 파는 누나가 힐끔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또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 장요?”

“네.”

“스님 혼자?”

“네.”

누나의 얼굴엔 걱정이 묻어 있었습니다.

“10시 반 버스예요. 꼭 3번 승강장에서 타야 해요. 시간 늦으면 절대로 안 돼요.”

정안 스님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표를 끊은 정안 스님은 꼼짝도 하지 않고 대합실에만 앉아 있었습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문경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환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눈부신 햇살이 차창 가에 부서졌습니다. 정안 스님은 모자를 벗었습니다.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미 봄이 와 있었습니다.

은학리.

 정안 스님은 그곳을 생각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버스가 문경까지 오는 동안 잠깐이라도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점심은 무얼 먹고, 어디서 자야 할까? 정안 스님은 손가락을 물어뜯었습니다. 불암사에 있을 때 담임선생님에게 혼이 났던 습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뜯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오직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 은학리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무려 3시간, 정안 스님은 정확하게 2시 10분에 문경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스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표 끊는 곳으로 갔습니다. 

“은학리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400원입니다.”

여러 개의 승강장 앞에 푯말이 서 있었습니다. 산양, 용궁, 송지, 산내, 상촌, 중촌...... 그리고 은학리.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정안 스님은 배가 고픈 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은학리 가는 버스에 올랐을 때 다행히도 정안 스님 또래의 아이들도 몇 있었습니다. 버스는 그렇게 붐비지 않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은학리 좀 가르쳐주세요?”

 할머니가 웃으며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이구 어린 스님이 외지에서 오는 갑다. 종점 바로 전 정거장에서 내리면 되니까.... 기사 양반 이 애기 스님 은학리에 내려주이소.” 

 할머니가 큰소리로 말하자 운전수 아저씨가 큰 앞면 거울로 정안 스님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할머니.”      

사람들이 모두 정안 스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또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아이구 스님, 똘똘 맞게 생기셨다. 스님, 적멸암 가요?”

 할머니가 다시 정안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아니오.”

“그럼?”

할머니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은학리 끝말랑이집.”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거긴...... 빈집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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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스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노스님께서 무조건 그 집을 찾아가라고 하셨는데...... 버스는 잘 정돈된 시골길을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정거장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버스 안에는 몇 사람밖에 없습니다.

“스님, 난 산양에서 내리우. 여기서 세 정거장 뒤에 내리면 돼요.”

 할머니가 내리면서 정안 스님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단 세 명을 태운 버스는 꼬불꼬불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물 색깔이 파란 저수지를 두 개나 지나고, 낮은 고개를 몇 개나 지난 다음, 오른쪽으로 조그만 마을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여기가 은학리에요.”

 운전수 아저씨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운전수 아저씨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내렸습니다. 

‘살기 좋은 은학리' 라는 글씨가 커다란 돌 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큰스님 말씀대로 은학리는 낮은 산 밑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햇볕은 이미 힘을 잃고 가물거렸습니다. 정안 스님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