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스님을 위로하는 산짐승들2

                        -혜암스님의 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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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부터는 헌식을 올려놓는 헌식바위에 길고양이도 살금살금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젊은 스님들에게 길고양이는 반갑지 않은 산짐승이었습니다. 길고양이가 나타난 날부터 혜암 스님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정진하자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끼를 먹은 지 보름이 지났다. 그러니 이제 한 끼만 먹어도 몸이 이겨낼  것이다. 먹는 밥의 양을 세 끼에서 두 끼, 다시 한 끼로 줄이는 것이니 몸도 적응하지 않았겠느냐. 그러니 한 끼만으로 정진해 보자.”

 “큰스님,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내 공부 방식은 밥을 적게 먹는 것이다. 밥을 적게 먹으면 이익이 많지. 첫째는 잠이 덜 와서 머리가 맑아 좋고, 둘째는 배가 고프니 잡스런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다.”

 “큰스님, 저희들은 참선공부하러 왔지, 굶으려고 암자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면 여기서 내려가면 되지 않겠느냐. 세 끼 주는 절이 많으니 그곳으로 가거라. 이 세상에는 배고파 우는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 명색이 수행자라고 하는 우리가 한 끼쯤 못 먹는다고 불평해서야 되겠느냐!”

 다섯 명의 젊은 스님들은 또다시 울며 겨자 먹듯 혜암 스님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한 끼만 먹고 하루를 견딘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배속에서 하루 종일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습니다. 혜암 스님이 길고양이에게 주먹밥 주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까지 했습니다. 불평을 자주 하던 젊은 스님이 하루는 혜암 스님에게 대들었습니다.

 “큰스님, 제가 고양이보다 못한 사람입니까?”

 “화를 내는 너를 보니 고양이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고양이는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거든.”

 “고양이를 저희들보다 더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양이나 사람이나 목숨의 값은 같지.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오래됐어. 내가 스님 되려고 집을 떠날 때 고양이가 나를 한참을 따라오더라.”

 “고양이하고 무슨 인연이 있었는데요?”

 “동네 청소할 때 내가 밥을 준 길고양이였어. 짐승도 자기를 위해준 사람을 알더라. 나를 따라오면서 야옹야옹 하고 울더라.”

 혜암 스님의 말에 또다시 젊은 스님들은 기가 죽었습니다. 은혜를 아는 고양이라면 혜암 스님이 주는 주먹밥을 먹을 자격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고양이나 사람의 목숨이 같다고 하니 할 말이 더더욱 없었습니다.

 젊은 스님들은 고양이를 부러워하는 대신 꾀를 냈습니다. 하루는 가장 나이 어린 스님이 공양주 즉 식사당번을 할 때였습니다. 젊은 스님들이 나이 어린 그 스님에게 밥을 평소보다 많이 해두었다가 산으로 가져가서 혜암 스님 몰래 먹자고 모의했습니다.

 “하루 한 끼만 먹다 보니 배고파 죽겠네. 힘이 없으니 앉아 있을 수가 없다니까.”

 “그럼, 공양주가 밥을 많이 해두었다가 산으로 가져가 먹으면 어쩔까?”

 “큰스님께서 곡식 창고를 보면 금세 탄로가 날 텐데.”

 “아이고, 큰스님께서 쩨쩨하게 곡식 창고까지 검사하겠어? 모르실 거야.”

 나이 어린 스님은 선배 스님들의 권유대로 곡식창고에서 쌀을 평소보다 많이 꺼내 밥을 지었습니다. 그런 뒤 바구니에 주먹밥을 담아 암자 뒤 산속으로 빼돌렸습니다. 그런 뒤 아침 겸 점심으로 한 끼를 한 뒤 큰 방에 들어 참선정진을 했습니다. 젊은 스님들은 모두 몸을 푸는 포행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절에서는 휴식시간을 포행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윽고 포행시간이 되어 너도나도 밥을 숨겨둔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구니에는 주먹밥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습니다. 젊은 스님들은 한 개씩 입에 물었습니다. 얼어붙은 찬밥이었지만 입안에 들어가서는 꿀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길고양이가 야옹야옹 다가와 울었습니다. 길고양이가 주먹밥은 자기 것이라는 듯 날카롭게 울어댔습니다.

 길고양이 울음소리에 혜암 스님이 달려왔습니다. 길고양이가 큰 산짐승에게 위협을 느끼는 줄 알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젊은 스님들이 주먹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혜암 스님은 말없이 돌아서 암자로 가버렸습니다.

 젊은 스님들도 혜암 스님을 뒤쫓아 갔습니다. 나이 어린 스님이 먼저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큰스님을 속이고 밥을 더 지었습니다.”

 “너희들은 공부하러 왔다가 거짓말을 익히고 있구나!”

 “창고 열쇠를 내게 다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주지. 나하고 약속을 하나 하면 용서해 주지.”

 혜암 스님의 입에서 용서란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가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혜암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창고 열쇠는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라.”

 “큰스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부터는 너희들이나 나나 단식을 하잔 말이다.”

 다섯 명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스님이 억울해하면서 말했습니다.

 “한 끼도 먹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수행자가 거짓말한 죄가 얼마나 큰 지 모르느냐! 너희들은 한 끼 먹을 자격도 없어.”

 나이 많은 스님은 순간 혜암 스님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행하러 왔다가 굶어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였습니다. 실제로 상무주암 마당 끝은 천 길 벼랑이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한 젊은 스님이 볼멘소리로 물었습니다.

 “큰스님, 단식하는 기간은요?”

 “1달 할까, 20일 할까.”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하나같이 대답했습니다.

 “20일이요!”

 “1달이든 20일이든 참선공부하다 죽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어.”

 혜암 스님은 곧잘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제자들에게 말했는데, 그 말의 속뜻은 ‘참선공부하다 죽는 사람 아직 보지 못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조금 전부터 억울해하던 스님이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놈의 길고양이 때문에 단식을 하게 됐네.’

 그러자 혜암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한 마디 했습니다.

 “고양이를 탓하지 마라. 고양이 때문에 너희들은 용맹정진을 하게 됐다. 그러니 고양이에게 고마워해라.”

 용맹정진이란 평소보다 더욱 강도를 높여서 하는 정진을 뜻했습니다. 단식은 물론 잠도 자지 않는 것이 용맹정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용맹정진을 하고 난 스님들의 모습은 달라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눈이 가을의 논물처럼 맑아지고 얼굴에서는 법당의 향로처럼 빛이 났습니다. 수행자로서 당당한 기품이 생겨났습니다. 

 젊은 스님 다섯 명은 그해 겨울을 그렇게 났습니다. 세 끼 15일, 두 끼 15일, 한 끼 15일, 단식 20일 순으로 한 단계씩 강도를 높여가면서 혜암 스님과 함께 그해 겨울을 정진했던 것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