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가르침(담마)을 존중하라

크게보기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향로 (국보 제287호 높이61.8cm, 무게 11.8kg)

불교에서 귀의의 대상은 삼보(三寶)입니다. 삼보는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佛),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法), 그리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승해가는 상가(僧)를 말합니다. 삼보는 말 그대로 세 가지의 고귀한 보배이기에 절대적 예경의 대상입니다. 삼보 가운데 불보를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오늘날에도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반열반에 드셨지만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과 유골을 모신 사리탑 등이 부처님을 대신하여 예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상가에 대한 존경심도 여러 이유로 많이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가사를 걸친 출가자들에게 예경 올리는 재가자들의 모습은 여전히 지극해 보입니다.
다만 가장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부처님의 가르침(法), 즉 담마(Dhamma)를 대하는 대다수 불자들의 자세입니다. 한 마디로 가르침을 존중하는 자세에 아쉬움이 있는 것이지요.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요? 아마도 담마가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주시기 위해서 ‘부처님 당신이 깨달으신 지혜(반야)의 소식을 중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중생이 쓰는 언어로 담아낸 진리의 소식’이라는 것을 가벼이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많이 흐릿해졌지만, 담마를 담고 있는 경전은 부처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여겨져 왔습니다. 때문에 경전은 탑처럼 소중한 곳에 모시거나 집안에서도 가능한 높은 곳에 소장했습니다. 경전을 보고자 할 때에는 일정한 예경 의식을 올리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 뒤에야 펼쳐보는 전통도 있습니다. 경전을 바닥에 놓거나 겨드랑이에 끼우는 등의 행위로 불경을 범하지 않도록 각별하게 유의했던 것이지요. 진리의 가르침인 담마를 불자들은 마치 부처님 모시듯 공경의 마음으로 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담마는 세 귀의처 가운데 하나이며,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들기 직전 비구들에게 내린 마지막 유훈에서 의지처로 제시한 것이기에 마땅히 소중하게 대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삼보예찬 가운데 담마를 예찬하는 의식은, 가르침을 대하는 불자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테라와다 불교의범>의 ‘담마 예찬(담마 빗투띠, Dhammābhitthuti)’의 내용을 살펴볼까요. 담마를 예찬하는 의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인도자 : “이제 우리 모두 담마에 으뜸가는 찬탄의 게송을 올립시다.”
전체대중 : “그분, 존귀하신 분에 의해 잘 설해진 위없는 담마, 즉시 확인할 수 있고, 결과 바로 나타나니, 와서 보라 초청하여, 닙바나로 인도되는 진리, 지혜로운 이 스스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뛰어난 담마에 예경 올리며, 그 뛰어난 담마에 머리 숙여 예배드립니다.” - 사단법인 한국테라와다불교 <테라와다 불교의범> 인용

<테라와다 불교의범>에는 담마 회상(담마 눗사띠, Dhammānusati) 의식도 들어있습니다. 인도자가 “이제 우리 모두 담마의 의미를 회상하는 방법에 대해 독송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전체 대중이 “존귀하신 분에 의해 잘 설해진 위없는 담마, 즉시 확인할 수 있고, 결과 바로 나타나니, 와서 보라 초청하여, 닙바나로 인도되는 진리, 지혜로운 이 스스로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라고 합송합니다.
이어지는 ‘담마 찬탄송(담마 비기따, Dhammābhigīta)’에는 담마의 고귀함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도자가 “이제 우리 모두 담마를 진실로 찬탄하는 게송을 독송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전체 대중이 다음과 같이 합송합니다.

“담마의 우수한 가치는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졌고, 그것은 도(道)와 과(果)로 드러내 놓은, 배움의 길과 해탈의 성취로 분류되어 있어, 진리 따라 나아가는 자, 악의 세계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니, 저는 무명을 제거하는 뛰어난 그 담마에 머리 숙여 예경합니다. 담마는 중생들의 으뜸가는 의지처요, 가장 안전한 곳이니, 이와 같이 회상하며, 두 번째로 저의 머리 숙여 예경합니다. 저는 담마의 시봉자요, 담마는 저의 위대하신 인도자이니, 담마는 괴로움의 해방자이며, 제 행복의 제공자입니다. 담마에 저의 몸과 생명 다 바쳐 헌신하나니, 저는 담마에 의한 진실한 깨달음을 존경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저에게는 다른 의지처가 없습니다. 담마는 진실한 저의 의지처, 이와 같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깨달음의 길에 이르길 바랍니다. 제가 담마를 이같이 예경하는 공덕으로, 어떤 위험도 저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합송합니다. 계속해서 오체투지를 한 자세로 “몸에 의해서나, 말에 의해서나, 마음으로 인해서, 담마에 어긋나게 제가 지은 크고 작은 나쁜 행위들, 담마에 의지하여 그 모든 허물의 용서를 빕니다. 이후로는 담마를 본받아 조심스레 행하겠습니다.” 

불교 공부를 올바르게 해온 분들이면 잘 아시겠지만, 담마의 가치는 무한합니다. 감히 담마의 가치와 비교될 수 있는 세속적인 보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는 것을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고 표현한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담마는 이처럼 무한한 가치가 있는 보물인데도, 누구나 소유할 수 있다는 특징을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도록 허락된 이 보물을, 많은 사람들이 갖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거부하거나 애써 가지려 하지 않는 것도 현실이니 그저 딱할 뿐입니다. 
담마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의 바다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가장 안전한 섬(피난처)이 담마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둑카(Dukkha, 괴로움)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재앙으로만 여긴다면 마음 안에 담마를 신뢰할만한 여지가 사라집니다. 둑카를 재앙이나 비극이 아니라 통찰의 지혜를 얻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깨닫고 담담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고통에서 벗어나는 출구로서, 담마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증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담마를 공부하다 보면 이해하지 못한 담마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단단한 믿음이 확립되어 있다면 불충분한 이해 때문에 담마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흔들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담마를 공경하는 마음이며 머지않아 비교할 데 없이 고귀한 경계를 발견하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행복, 즉 열반이라는 축복을 받는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 행복해지는 스물두 번째 실천지침으로 ‘가르침(담마)을 존중하라(가아라워 짜Gâravo ca)’를 제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남겨주신 담마의 특징은 ‘바로 지금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열쇠는 전적으로 사람들 각각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애심에 의해 설해진 담마는 바르고 명쾌하며 고귀하지만, ​각자가 내면의 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Now and Here)’를 강조하는 이유는 각자가 매 순간 담마를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단하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망상)이나 그 생각들을 합리화시키려는 본능적 욕구들에 휘말리면 담마를 볼 수 없습니다.

 크게보기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향로 (국보 제287호 높이61.8cm, 무게 11.8kg)

담마에 접근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법문을 통해 붓다의 가르침에 다가가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경전을 읽거나 설법을 들어 가르침을 배우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깊은 사유를 통해서 담마에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말과 글이라는 단서를 통해 가르침이 지닌 현의(玄義)를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세 번째 방법은 수행을 통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부처님께서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언제나 권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 즉 반야를 성취하는 과정은 담마에 대한 존중과 실천이 따를 때 완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 담마에 접근하는 데에도 거쳐야 할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단계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덕적 행위와 공덕이 되는 행위, 즉 선업을 짓는 것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토대가 없다면, 수행의 전제 조건이기도 한 몸과 마음의 평정이 충분히 갖춰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믿음의 힘[信力], 정진의 힘[精進力], 사띠의 힘[念力], 삼매의 힘[定力], 통찰지의 힘[慧力]을 차례로 갖춰가야 하는 것입니다.
담마는 완전하게 새로워진 삶[革凡成聖]에 대한 목표를 지니게 합니다. 차원이 다른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위대한 진리, 담마를 만나고도 존중할 줄 모르고 방치하거나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음 가운데 가장 큰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