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스님을 위로하는 산짐승들1
                        -혜암스님의 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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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정윤경

 1978년 초겨울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젊은 스님들이 지리산 산자락에 있는 상무주암을 찾아갔습니다. 상무주암은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이 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한 암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십 대 후반쯤 되는 키가 작달막하고 마른 체구의 혜암 스님이 정진하고 계셨습니다. 혜암 스님은 참선공부하겠다고 상무주암으로 올라온 다섯 명의 젊은 스님들을 맞아들였습니다. 두 명은 혜암 스님의 제자였고, 나머지 세 명은 혜암 스님을 흠모하고 존경해서 찾아온 젊은 스님들이었습니다. 혜암 스님의 제자는 19살의 정견 스님, 31살의 여연 스님이었습니다.
 혜암 스님이 참선공부하는 스님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남이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정진을 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에 한 끼만 드시고, 밤에는 앉아서 잠깐 졸 뿐 방바닥에 등을 대는 일이 없었습니다. 해인사에서 스님이 된 이후 단 하루도 어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젊은 스님들이 혜암 스님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모여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혜암 스님과 함께 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이 하루에 한 끼만 드시고, 한밤이 되어 잠자는 시간에도 방바닥에 눕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다섯 명의 젊은 스님들은 용기를 내어 상무주암에서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혜암 스님은 다섯 명의 젊은 스님들에게 하루에 세 끼씩 먹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곡식이 든 창고 열쇠도 제자에게 주었습니다. 끼니때마다 알아서 곡식을 내어와 밥을 지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젊은 스님이 말했습니다.
 “산 밑에서 듣기로는 상무주암을 가면 하루 한 끼밖에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와서 보니 들었던 소문과 다르네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 사실은 겁을 좀 먹었어요. 아이고, 이제 안심하고 정진해도 되겠네요.”
 다른 젊은 스님들도 안도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사실 젊은 스님들이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배고픔과 잠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스님들의 기대는 보름 만에 무너졌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는 날이었습니다. 소나무 가지마다 눈꽃이 하얗게 핀 새벽이었습니다. 혜암 스님께서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면서 방에 들어와 다섯 명의 젊은 스님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젊은 스님이 물었습니다.
 “큰스님, 어디 갔다가 오셨습니까?”
 “내가 이 암자를 벗어난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됐다.”
 젊은 스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큰스님께서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계셔서 물었습니다.”
 “나는 밤새 자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자지 않고 있으면 뭐하겠느냐? 눈이 오는 날에는 눈이라도 쓸어야 밥값을 하지.”
 상무주암 오르는 산길에 쌓인 눈을 밤새 쓸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젊은 스님들이 단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혜암 스님은 싸리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던 것입니다. 싸리빗자루는 혜암 스님이 지난 가을에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엮어 만든 것인데, 빗자루 크기 역시 혜암 스님 키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저희들이 쓸겠습니다.”
 “미안해할 것 없다. 너희들은 참선공부나 잘해라. 그저 눈만 뜨면 화두 들고 공부하란 말이다. 빗자루는 내 친구나 다름없다. 내가 스님이 되기 전에도 우리 마을에 눈이 쌓이면 아랫마을, 윗마을 가리지 않고 내가 나서서 다 쓸곤 했다. 멀리 소문이 날 정도였어. 어찌나 빨리 쓰는지 혜암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어. 하하하.”
 “그런데 큰스님, 저희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까? 새벽에 모이라고 한 것은 처음입니다.”
 “잘못을 해서 부른 것이 아니다. 오늘부터는 하루에 두 끼만 먹도록 해라. 곡식이 아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 끼 공양하는 시간에 참선공부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
 젊은 스님들은 아무도 대꾸를 못했습니다. 공양하는 시간에 참선공부하라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상무주암에 올라온 것은 참선공부를 하러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끼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오전공양과 점심공양을 한 번에 하고 저녁공양을 하는 것이니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산새나 다람쥐들에게 주는 헌식도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산짐승과 나눠 먹는 헌식은 젊은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몫의 먹거리에서 떼어 주기로 했습니다.
 “헌식은 돌아가면서 합시다.”
 “선배님,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후배님, 헌식은 선배가 먼저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선배스님이 후배스님을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쨌든 딱새나 다람쥐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의심이 없는 어린 딱새는 젊은 스님의 손바닥에 날아와 앉기도 했고, 다람쥐는 한 바퀴 공중제비를 하면서 개인기를 보여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떤 날은 혜암 스님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내 은사스님은 인곡 스님이지. 어찌나 자비로우신지 은사스님께서 산길을 지나갈 때는 까치나 까마귀가 은사스님의 어깨에 앉곤 했어. 조석으로 헌식하시는 은사스님을 날짐승들도 기억하고 있었던 게지.”
 젊은 스님들은 혜암 스님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도 믿었습니다. 헌식할 때마다 암자로 찾아오는 다람쥐나 산새를 보면 틀림없을 것 같았습니다. 특히 어린 딱새나 다람쥐는 젊은 스님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의심이 많은 개똥지바퀴나 청설모 등은 좀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깨에 까치나 까마귀가 앉았다는 인곡 스님은 자비로운 분임이 틀림없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