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산에

캄캄한 밤.
정안 스님은 키 작은 졸참나무 밑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람에 포리암 풍경이 자꾸 울었습니다. 정안 스님은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늘엔 별이 또록또록 박혀있었습니다. 정안 스님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희진이 이모가 자신을 쳐다보던 그 매서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찬바람이 정안 스님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정안 스님은 꼼짝도 않고 아랫녘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점점이 떠 있는 불빛들.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가 쇳소리를 냈습니다. 정안 스님은 졸참나무의 여린 가지의 끝을 잡았습니다.
꼭 죽은 나무 같았습니다. 정안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그 가지를 꺾었습니다. 아무 힘없이 가지가 부러졌습니다. 정안 스님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얼른 합장을 했습니다. 정안 스님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절로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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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산에
뻐꾸기
들에 들에
하얀 눈
하늘에 하늘에
울 엄마

정안 스님은 불암사 스님들에게 배운 노래를 속으로 불렀습니다. 혼자 있을 때마다 수도 없이 불렀던 노래였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도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불러보지 못한 노래였습니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죽을 때까지 한쪽 눈으로 살아야 될까?
덧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바람은 점점 차가워졌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추운 줄도 몰랐습니다.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는 고속도로의 자동차처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멀리 희진이 집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희진이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야, 친구 할 애가 없어서 저런 애하고 돌아다녀.’ 희진이 이모의 그 말만 자꾸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눈은 또 왜 저래?' 정안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정안 스님이 절 마당에 들어섰을 때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마 들어가시면 매 맞으실 거에요.”
 정안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로 그때 방 안에서 노스님의 호령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안이 들어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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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 스님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노스님께서 회초리를 들고 계셨습니다.
“종아리 걷어!”
정안 스님은 말없이 종아리를 걷었습니다.
“할머니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지? 오늘은 김장날이다. 그런데 전화 한 통 없이 이제야 들어와. 여기가 어딘지 알지?”
“......”
“이놈, 여기가 어디냐?”
“......”
“대답 안 해!”
“부처님 집.”
그 순간 노스님의 회초리가 허공을 가르고 정안 스님의 종아리를 내리쳤습니다.
“여긴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해야 하는 부처님 도량이다. 가정집이 아니야!”
 노스님은 정안 스님의 종아리를 5번 때렸습니다.
그렇지만 정안 스님은 울지 않았습니다.
방 밖으로는 포리암을 날려버릴 듯한 바닷바람이 몰아닥쳤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