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토박이인데도 아내는 흙(땅)을 좋아합니다. 밭농사를 지어보니 흙은 사람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3년째 농사를 지어보니 그 마음을 알겠습니다. 힘들고 벅차도 새봄이 오면 설렘을 안고 밭으로 나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흙은 노력을 기울인 만큼 보답을 해줍니다. 정성을 들이면 거기에 걸 맞는 수확을 되돌려주는 것이지요. 정직하며 신뢰가 가는 대상이 흙, 눈 깜짝할 새 코 베어가는 이 삭막한 세상에 믿음직한 흙이 좋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시골 인심도 흙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올 무 농사가 기대보다 잘 되어, 여분 몇 개를 건넛집 할머니에게 전해주고 돌아온 아내의 손에 초코파이와 땅콩샌드 각 1개, 광동쌍화탕 한 병이 들려 있었지요. 무 농사가 잘 안 돼 고민하던 할머니께서 고마운 마음에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굳이 건네주셨다는 겁니다. 아마도 매일 다녀오시는 시내 데이캐어센터에서 나눠준 것을 아껴서 가져온 간식꺼리일 것입니다. 이것을 기꺼이 내어주시는 그 따뜻한 마음이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작은 마음을 건넨 것이 큰마음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이런 소소한 마음 씀씀이를 베풂이라 말하기는 좀 멋쩍지만 ‘베풂은 남을 통해 자기에게 주는 것’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실감합니다.
사랑도 다르지 않습니다. 준만큼, 어쩌면 더 크게 되돌아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심지어 동물조차도 사랑을 주는 사람을 따릅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결실을 내어주는 흙처럼 정성을 드린 만큼 되돌아오는 것, 이것이 베풂의 진리입니다.

 

베푸는 것을 불가에서는 보시(Dāna)라고 합니다. 보시는 시혜를 주는 것으로 인덕(人德)의 바탕이 됩니다. 또한 사람 됨됨이의 근본이자 자기한계를 뛰어넘는 길이기도 합니다. 베풀고자 하는 의도를 일으키는 동기는 연민과 존경, 감사의 마음이고, 이런 마음에 근거해 일어나는 것이 탐욕의 줄임, 관대함, 불편함의 해소, 편안한 마음입니다.
베풂은 베풀기 전 마음과 베푸는 마음, 베푼 후의 마음이 모두 순수해야 합니다. 무주상(無住相), 즉 머무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기왕에 베풀려면 지혜롭게 베푸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베풂을 실천하면서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업의 원칙에 따라, 베푸는 이 물건이나 받는 이가 무상하다고 알면서,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더욱 다잡기 위해 공덕을 짓는다는 마음을 가질 때 지혜로운 베풂이 이루어집니다.
불교에서 보시가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차제설법(근기에 맞춘 설법)에서 보시에 대한 설법은 시작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보시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부처님의 설법은 보시에 대한 설법, 지계에 대한 설법, 수행에 대한 설법이라는 세 가지 정형적인 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사섭법(四攝法)의 처음도 보시이고, 10바라밀(十波羅蜜)의 처음도 보시 바라밀입니다.
보시는 관대함(Generosity)이며, 선지식(善知識)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필수적인 자질입니다. 보시가 계정혜 삼학(三學)과 만나면 윤회의 종지부를 찍는 큰일을 해냅니다.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쏟는 노력을 북돋우기 위한 불쏘시개가 보시인 것입니다.

 

보시 공덕의 크기는 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일반 중생보다는 수행자에게 보시하는 공덕이 크다고 합니다. 수행자 중에도 수다원과 이상의 성자(ariya)에게 하는 보시가 더 수승하고, 수행자의 모임인 상가에 하는 보시의 공덕이 더 크다는 것이지요. 보시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물질을 나누는 재(財)보시,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無畏施), 법(法, 담마)을 베푸는 보시가 그것입니다. 모든 보시에 다 공덕이 있지만 특히 법을 베푸는 보시는 금생에도 이롭고 내생에서도 이로우며 궁극의 해탈로 이끌어줄 체계적 지침으로 가장 큰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베풂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태 전 미얀마 한 수행센터에서 짧게 비구생활을 했을 때 경험했던 탁발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가사를 갖춰 입고 발우와 부채를 든 채 맨발로 저자거리로 나아가 밥(주로 따뜻한 밥)을 빌었던 기억입니다. 비구가 되어 보시를 받을 때의 느낌은 감동과 부담의 교차, 그 자체였습니다. 미얀마 불자들의 한없이 선한 눈길과 공덕을 짓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생생하게, 감동 그 자체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 분들의 저 간절한 마음과 정성 깃든 공양을 받았으니 결코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이 거센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한 주걱, 한 주걱 탁발공양을 받을 때마다 저는 그분들에게 ‘아유 완노 슈캄 발람(Ayu Vano Sukkham Balam)!’이라는 축원을 해 주었습니다. ‘장수하고,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는 빨리어 축원문입니다. 베풂의 공덕은 이렇게 보시물을 주고받는 순간에도 이루어집니다. ‘공양 올리고 축원 받고, 공양 받고 축원 해주는’ 인과가 순간순간 성립되는 것이지요. 베풂의 공덕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쌍윳따니까야> ‘무엇을 베풂의 경’에서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십니다. 

 

 

베풂에 있어서 그것을 행하는 자의 태도 또한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공손해야 하며, 지극한 마음이어야 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베풀어 보면 보시자 자신이 더 기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이가 보시하는 것에 함께 기뻐해주고 찬탄해주면 보시자의 공덕과 비슷한 공덕을 지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위에 베푸는 이가 있다면 함께 기뻐하고, 아낌없이 칭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보시의 대상물도 버리기에 알맞은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특히 보시물을 전달할 때 쌀쌀한 태도는 반드시 삼가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난 순수무잡(純粹無雜)한 마음으로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의 경우 막상 보시를 행하려고 할 때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머뭇거리거나 공연한 염려가 밀려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베푸는 데 익숙하지 못했던 과거의 습관, 또는 베푸는 물건이 혹여 상대를 흡족하게 하지 못할 것에 대한 걱정, 이렇게 귀중한 것을 줘도 될까 하는 아쉬움, 혹여 베풀다가 내가 어려워지는 것을 아닐까 하는 두려움 등입니다. 그러나 베푸는 것은 마치 샘물과 같아서 퍼 나눠줄수록 새로운 물이 펑펑 솟아나는 것과 같다고 성현들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진정한 베풂이란 사물이 내 손을 떠남과 동시에 잊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범부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렇더라도 그런 마음을 갖고자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분들이 보시를 하고 싶어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못한다고 하소연합니다. 저 역시 이런 부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런 하소연은 나름 설득력이 있습니다. 난다 여인의 공양에서 보듯 가난한 사람의 보시공덕을 찬탄하는 가르침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난함이 베푸는 마음을 내는 데 장애로 작용하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으니까요. 이런 분들을 위해 부처님께서는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할 수 있는 보시 일곱 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화안시(花顔施)를 비롯하여 언시(言施), 심시(心施), 안시(眼施), 신시(身施), 좌시(坐施), 찰시(察施) 등이 그것입니다.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 착하고 어진 마음, 부드럽고 온화한 눈빛, 몸으로 돕는 행위, 노인이나 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 등입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에는 어떻게든 모든 사람들이 보시의 공덕을 짓게 하려는 부처님의 단심이 담겨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물질이든 마음이든 보시를 하지 못할지언정 인색하여 보시를 방해하는 악업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면 의외로 이런 악업을 짓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에서 보면 안쓰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쌍윳따니까야> ‘인색함의 경’에 이런 사람들을 꾸짖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베풂을 방해하는 것은 곧 불행해지는 길이라는 덕목은 상식에 해당합니다. 인과의 법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베푸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다가오고 인색한 사람에게 어려움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인색한 사람에게 행운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좋은 일은 언제나 베푸는 사람에게 생기게 마련입니다. 종종 부도덕한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가 오랜 전생에 지어놓은 복을 까먹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불전(佛典)에 따르면 보시를 행하는 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며, 어떤 모임에 가던 두려움이 없고, 어떤 경우에든 당당하며, 칭찬받는 일이 늘어나는 네 가지 이익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이익들은 매우 즉각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후에 찾아오는 것이지만 베풂의 공덕에는 죽은 후에 인간계나 천상계, 즉 선처에 태어나는 이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도 주목할 일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