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보전 바로 곁에 세워진 나한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집입니다. 한옥에서 “칸(間)”은 기둥 사이의 간격을 말하기도하고 넓이를 헤아리는 단위로도 쓰이는데, 나한전은 여섯 칸 넓이지만 기둥 간격이 짧은 탓에 이름만 여섯 칸인 작은 법당입니다. 작은 건물을 크게 돋보이려 했는지 겹처마(원통보전은 홑처마)에 다포식 삼익공으로 가구를 짜서 규모는 작지만 화려한 모습을 지녔습니다. 깎인 익공의 형태는 초익공은 하늘을 우러르는 앙서, 이익공은 아래를 향해 베푸는 수서, 삼익공은 천하를 다스리는 봉황새의 부리 모양으로 깎아서 천하의 안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익공은 건물을 아름답게 할뿐 아니라 건물을 높게 하는 때문에 외부로는 웅장함을 주고, 내부는 천장이 높아져 답답함을 덜 느끼게 합니다. 특히나 흔하지 않은 삼익공은 이익공 집보다 장여 하나가 추가되는 바람에 그만큼 높아지고 또 화려해져서 건물의 위엄이 커지게 됩니다.
나한전을 이렇게나 장엄한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하신 후부터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불법 수호와 중생을 제도해주심이 고맙고, 좁은 법당에 무려 열여섯 분을 함께 봉안함이 송구스러워 조금이나마 더 나은 환경을 갖춰드리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나한전에는 탱화 세 점이 걸렸습니다. 중앙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연화대좌에 주존불로 좌정하시고 좌우에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시립한 아미타삼존탱화가 걸렸고, 그 좌우에는 열여섯 분의 나한을 그린 나한도가 각각 걸렸습니다.
 

목각상과 탱화에 표현된 나한은 ‘나한이 이 세상에 중생과 같이 살아가면서 제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모두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상단에는 목각으로 조성한 열여섯 나한상을 봉안하였는데, 모두 바위에 앉아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물이나 동물을 들고 있습니다. 그 중 한 나한이 금강경의 “법회인유분”을 내보이는데, ‘부처님의 가르침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 있잖아’ 하는 표정입니다. 
 

또 다른 나한은 아미타경의 “동찬권신분”을 펴서 손가락으로 집어 가리키는데,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큰 가피력을 말씀하시는 인자한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나한전에는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은 나한의 위치를 알려주는 주련이 걸렸습니다.

 

청연좌상월여생 삼천계주석가존 자감궁중성약열 십육대아라한중
靑蓮座上月如生 三千界主釋迦尊 紫紺宮中星若列 十六大阿羅漢衆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푸른 연꽃대좌에 큰 달처럼 앉아계시는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
하늘나라 궁전에 별들이 늘어서있는 듯
높은 깨달음 얻은 열여섯 아라한과 함께 계시네.

 

 

나한전 옆 마당에는 해수관음보살 입상이 있습니다. 선지식을 찾아 구법여행을 다니는 선재동자가 관세음보살을 뵌 곳은 근처에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보타락가산입니다. 이를 따라서 우리나라 관음성지라 불리는 낙산사, 보리암, 보문사는 바닷가에 위치하면서 해수관음보살을 봉안하였는데, 각각의 보살상은 동해와 남해 그리고 서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모셨습니다.

 

정방사가 관음성지 세 곳과 다르게 내륙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도 해수관음보살을 모신 연유는 소재한 곳이 아름다운 금수산이고, 금수산 앞에 펼쳐진 청풍호가 바다같이 넓어 “내륙의 바다”라 칭해지는 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수미산 같이 높은 봉우리에서 떨어지는 중생을 허공에 머무르게 하시고, 큰 폭풍으로 배가 뒤집혔을 때 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난을 벗어나게 하는 신통력을 지니셨습니다. 주지스님께서는 이런 연유로 관세음보살님께 “유구필응”의 믿음으로 기도하고, 가피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해수관음보살상을 모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아침의 햇살은 붉은색으로 힘차서 회백색 화강암으로 빚어낸 해수관음상을 금빛 해수관음상으로 개금불사를 이뤄냈는데, 보살의 눈매와 미소 띤 입술이 보여주는 자비로움은 이 세상 어느 것도 비교가 안 될 듯싶습니다.      
갑자기 ‘푸두둥푸두둥’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젖히니, 이름 모르는 큰새가 원통보전 뒤편 절벽위로 날아가는 소리였습니다. 물에 사는 “곤”이라는 큰 고기가 새로 변하여 “붕”이 되었는데, 한번 날개 짓에 구만리를 간다는 글을 보셨을 겁니다. 그 글이 허무맹랑한 글로만 알고 있었는데, 청풍호에 살던 큰 고기가 붕새가 되어 신선이 살아가는 금수산에서 유유자적 하는가 봅니다. 이천여 년 전에 나타났던 붕새를 금수산에서 본 것입니다.

 

 

정방사에 생김새가 아주 특이한 법당이 있는데, 바로 지장전입니다. 지장전이 세워진 곳은 암벽과 마주친 오솔길 끄트머리로 바로 앞이 낭떠러지여서 법당 터로 좁고, 건물을 짓기도 아주 곤란한 곳입니다. 때문에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셔야겠다는 원력을 가진 주지스님(언제의 주지스님인가는 모르지만)께서 찾아낸 묘안으로 지어진 법당이라는 생각입니다. 정면 세 칸에 측면이 한 칸인 세 칸짜리 맞배지붕 집인데, 측면에도 출입문을 두었습니다. 

 

 

 

처음에 보이는 두 칸은 네 개의 기둥을 세워 지어졌지만, 나머지 한 칸은 기둥이 없이 암벽이 벽체입니다. 집이 암벽에 박혔다고 말해야 될지, 암벽에서 집이 튀어나왔다고 말해야 될지 모르는 희한한 집이 지어진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성불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지장보살은 ‘고통 받는 중생을 맹세코 제도하고, 이들이 성불한 뒤에 성불하겠다’하시고, 그 큰 서원을 지켜내는 보살입니다. 보살의 이런 이타행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우리 중생들은 “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大願本尊地藏菩薩摩訶薩)”칭호로 예경을 합니다.

 

 

 

지장전에는 두 분의 지장보살이 계신데, 앞의 지장보살은 훌륭한 개금장인의 솜씨로 석조인지 목조인지 알 수 없는 입상이고, 다른 지장보살은 입상의 뒤편 암벽을 선(線)으로 얕게 파낸 다음 금칠을 입힌 마애지장보살입상입니다. 마애지장보살은 앞에 선 지장보살의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데, 후불탱화를 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장보살의 봉안시기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마애지장보살이 앞에 선 지장보살보다 오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장전을 동향으로 지었다면 지장보살께서 정면 창호로 드나드시며 중생들에게 다가서실 수 있는데, 측면에는 창호를 내지 않는 집(맞배지붕 집은 측면에 풍판을 늘이기 때문에 창호가 없습니다)을 짓고 굳이 돌아선 상태로 밖을 내다보시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는 마애지장보살을 동향(東向)으로 새겼는데, 마애지장보살과 지장보살입상을 모신 자리를 상단으로 하고 그 앞에서 예불을 할 수 있는 동향의 법당은 짓기가 어려운 때문입니다. 낮은 한옥에서 지붕(용마루에서 처마까지)을 상단과 예불장소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길게 내릴 수 없어서, 측면을 깊게 할 수 있는 남향의 맞배지붕 집을 지었을 겁니다. 생각건대 지장보살을 모신 집이 서향이면 어떻고, 북향이면 어떻습니까?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까지도 다니시며 중생을 구제하시는 지장보살이 ‘서쪽과 북쪽을 가리시고, 또 샛문과 쪽문을 가리시겠는가?’하는 넓고 고마운 마음을 되새깁니다.

 

지장전의 또 다른 특징은 한 채로 된 건물임에도 앞쪽 두 칸과 세 번째 칸의 지붕을 달리하여, 두 개 층으로 지었습니다. 지장보살입상과 암벽의 마애지장보살을 봉안한 세 번째 칸 지붕을 높이지 않았다면 마애불이 있는 암벽과 지붕(천장)이 근접하여 법당 내부공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붕의 높이를 달리 한 것은 습기에 취약한 목재의 부식을 방지함은 물론 보살을 뵙는 불자들이 느끼는 답답함도 걷어내기 위한 좋은 방편이라 생각합니다.

 

지옥문을 깨뜨리는 육환장과 어두운 지옥을 밝히는 구슬이 지장보살의 지물입니다. 지장보살입상과 마애지장보살 모두 육환장과 구슬을 지녔는데, 지니고 계신 손이 서로 다릅니다. 옛 지장보살탱화를 보면 지물을 지니고 계신 손이 그림마다 다름을 볼 수 있는데, 주석으로 만든 무거운 육환장을 들고 다니시려면 이손 저손 바꿔가면서 들어야 할 것이라는 우스운 생각이 났습니다.

 

〈다음 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