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이야기를 실타래가 풀어지듯 술술 했습니다. 몇 해 전의 일이었습니다. 봉정암에는 어디서 온지 모르는 아무런 행동이나 거침없이 하는 스님이 살았다고 합니다. 술도 먹고 여자도 보고 법당에 예불도 하지 않는 속인이나 다름없는 스님이었습니다. 스님이 되지 못한 노인보다 못한 스님이었습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 마을로 탁발을 와서 곡물이 거둬지면 저 윗집에 혼자 사는 과부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스님과 과부가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 마을에 심마니가 살았지요. 마침 그 심마니는 봉정암에 산신기도를 하려고 올라갔습니다.”
 실제로 심마니는 봉정암에서 산삼을 캐게 해달라고 산신에게 며칠 동안 기도를 하고 있었지요. 그때 봉정암 스님이 오랜만에 올라왔습니다. 심마니와 스님은 오랜만에 만나 밤늦도록 이야기하다가 한 방을 둘로 나눈 아랫방 윗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아랫방에서 자던 스님이 일어나 ‘에이 재수 없어’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심마니가 놀라 깨어나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투덜거렸습니다.
 ‘한참 맛있게 잠을 자는데 어떤 영감이 나타나 야단을 치지 뭐요.’
 스님의 얘기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염이 허연 영감이 꿈속에 나타나 ‘네가 그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내 식구를 보내어 너를 혼내주겠다’고 야단을 치고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심마니는 다시 잠을 청하면서 그 노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심마니도 스님의 못된 행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심마니는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누웠습니다.
 “참회는 못할망정 고약한지고.”
 그런데 또 얼마 지나자 아랫방 문이 뜯겨지는 소리가 와장창 들렸습니다. 심마니는 또 놀라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랫방에서 자던 스님은 보이지 않고 호랑이 울음소리가 으르렁 으르렁 산골짜기를 울리고 있었습니다. 무서워 바로 나가지 못하고 주위가 잠잠해졌을 때에야 나가보니 스님은 온 데 간 데 없고 봉정암 마당에는 사람의 피가 흩뿌려져 있었습니다.
 날이 밝은 후에야 심마니는 서둘러 오세암으로 내려갔습니다. 오세암에 다 와서 숨을 고르는데, 심마니는 또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스님의 찢겨진 시신이 큰 바위 밑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님만 화를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과부도 베틀에 앉아 삼을 잣다가 문을 뜯고 내민 호랑이 앞발에 머리를 한 움큼 뽑히어 대머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문이 꼭 잠기어 몸이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아 목숨만은 건졌던 것입니다.
 “스님들께서 수행을 잘 하시는 것 같아 봉정암이 보통 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 제가 이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봉정암을 지키는 호랑이군요.”
 “그렇습니다. 스님들께서는 부디 나라를 구하신 서산, 사명 같은 큰스님이 되십시오.”
 이야기를 마친 노인은 침놓은 값을 받지 않고 마을을 먼저 내려갔다고 합니다. 겨울이 지나 청담 스님과 유수 스님은 다시 봉정암으로 올라가 참혹하게 죽은 스님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주고 그해 여름은 봉정암에서 나지 않고 묘향산 선령대로 갔다고 합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