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로 살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 가운데 하나가 살생에 관한 문제입니다. 작물을 갉아먹거나 병들게 해 농사를 망치게 하는 많은 종류의 벌레와 세균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고민이지요. 병해충들은 땅속에 살거나 기어 다니고, 날아다닙니다. 세균은 육안으로 볼 수 없어 작물이 병해를 입고 난 뒤에야 알 수가 있습니다.
귀촌 초기에는 핀셋이나 나무젓가락으로 벌레를 잡아 다른 곳에 옮겨 놓기도 했지만 곧 포기했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은행열매 주워 삶는 등의 직접 친환경 농약을 만들어 사용해보았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부득이 친환경 살충제나 살균제 등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친환경 농약은 비싸기도 하지만 효과도 그때뿐입니다. 잘 키워 탐스럽게 자란 고추들이 담배나방 애벌레에 의해 구멍이 난 채로 누렇게 골아 떨어져 나뒹굴 땐 속이 많이 상하지요. 이런저런 조처를 취해보다가 부득이하게 독한 살충(균)제를 찾는 지경에 이르기 십상입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몇 년 지나니 이 또한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감자 농사에는 토양살충제를, 콩 농사에는 노린재 등을 퇴출시킬 살충제를 반드시 써야 합니다. 가능한 친환경 농약을 사용하고, 트랩도 설치해보지만 언제까지 이를 고수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불가의 제일덕목인 불살생계를 지키면서 농부로 살아가기는 이처럼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밭을 놀릴 수도 없으니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농사지으며 빚어지는 불가피한 살생행위는 개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불살생 공덕을 짓는 것과는 배치되는 결정을 내린 것이지요. 선업 지으며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불가에서는 의도적인 행위를 깜마(Kamma), 즉 업이라고 부릅니다. 선한 행위(선업)는 선한 과보를 맺고 악한 행위(악업)은 악한 과보를 맺습니다. 행위는 몸과 입과 생각[身口意]의 세 가지 범주에서 일어납니다. 몸과 입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마음에 의지해 움직입니다. 신업과 구업은 마음의 작용인 것이지요. 그런데 마음도 따지고 보면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이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과 접촉할 때 발현하는 것이니, 단지 감각 대상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긴 하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업에 대해 아주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마음(心)과 마음부수(心所, 쩨따시카 cetacika)에게 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의도(cetanā)입니다. 이 의도가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업은 엄밀하게 말해 의도입니다. 미혹, 탐욕, 성냄의 원인을 갖고 있는 의도는 해롭습니다. 반면 관용, 선의, 통찰지와 함께 하는 의도는 유익합니다.
의도와 그것과 함께 하는 것(마음부수들)은 각각의 목적을 수행한 후 소멸하지만, 그전에 마음의 흐름에 업의 속성을 남깁니다. 이 업의 속성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과보를 일으키는 업의 잠재력이고, 업의 과보는 그 행위자 자신에게 떨어지게 됩니다. 엄격한 자연법칙처럼 업과 과보의 상관관계는 두려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무수한 전생을 거치며 쌓은 업, 방금 전까지 축적된 업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업은 새로운 생을 얻거나 그 인연이 성숙했을 때 정신의 흐름 속에 잠재해 있다가 나타나게 됩니다. 햇살을 받은 모든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모든 업에는 적절한 과보가 따릅니다. 업은 원인이고 과보는 결과인 셈입니다. 불가에서는 이것을 인과(因果)라고 부릅니다.
업은 기능에 따라 4가지로 분류됩니다. 생산하는 업, 지원하는 업, 방해하는 업, 파괴하는 업이 그것입니다. 앞의 두 업은 선업, 뒤의 두 업은 악업입니다. 두 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악업을 삼가고 그 반대의 업을 지으면 선업이 됩니다. 예컨대, 살생은 악업이지만 불살생은 선업입니다. 대승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방생을 말합니다.
공덕의 원인은 당연히 선업입니다. 선업에는 대표적으로 10가지[十善業]이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10가지 공덕을 짓는 행위입니다. 십선업은 살생을 비롯해 도둑질, 삿된 음행, 거짓말, 중상모략, 욕설, 잡담을 삼가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견해를 벗어나는 세 가지를 더한 것입니다.  
유익한 행위를 하기 전후에 유익한 마음을 계발할 수 있다면, 그 행위를 하는 동안에 유익한 의도가 좋은 의도에 의해 에워싸이게 되고, 그 잠재력이 향상됩니다. 이것이 선업을 증장시키는 원리입니다. 선업을 증장시키려면 유익한 행위에 대해 미리 생각해야 하고(의도), 유익한 행위를 하는 기회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익한 행위를 한 후에는 그 행위의 좋은 과보를 생각하면서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유익한 업은 증장시켜야 하고 해로운 업은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팔정도(八正道) 가운데 ‘바른 정진[正精進]’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초전법륜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바른 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하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노력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부처님께서 <망갈라숫따>에서 제시하신 행복해지는 길 다섯 번째는 ‘공덕 짓는 일에 솔선하라’는 것입니다. 원전을 직역하면 ‘지난 과거에 쌓은 선업이 있는 것’인데, 얼핏 생각하면 ‘과거에 선업을 쌓아두지 않았다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 가르침은 지금 이 순간 언제나 선업을 짓고 또 증장시키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늘 과거를 살아갑니다. 관념적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가 구분되어 있으나 엄밀히 따져보면 과거만 있을 뿐입니다. 지나간 과거는 지나갔으니 과거이고, 현재는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과거가 됩니다. 늘 깨어 있음은 한 찰나 전의 기억을 놓치지 않고 또렷하게 알아차리는 것[正念]입니다. 결국 부처님께서 <망갈라숫따> 즉 <행복경>에서 말씀해 주신 ‘지난 과거에 쌓은 선업이 있는 것’이란 지금 이 순간 늘 선업을 쌓으며 공덕을 지으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습니다. 찰나, 찰나 악업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고 선한 업을 지으라는 가르침, 이것은 달리 말한다면 늘 깨어 팔정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들기 직전 비구들에게 마지막 유훈으로 ‘한 찰나도 사띠(sati)를 놓치지 않고 정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사실 이 유훈은 부처님께서 평상시에도 늘 강조하셨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한역으로는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不放逸精進)’로 번역되어 마치 부지런히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지만, 이 유훈의 참 의미는 ‘한 찰나도 사띠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매우 절박한 당부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맛지마니까야> 2권 ‘삶의 수용에 대한 큰 경’에서 네 가지 종류의 삶의 수용을 언급하셨습니다. ‘△현재도 괴롭지만 미래에도 괴로운,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현재에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현재에도 즐겁지만 미래에도 즐거운’ 결과를 초래하는 삶의 수용이 그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각각의 경우마다 10가지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하십니다. 각각의 10가지는 어떤 마음(태도)으로 십선업 또는 십악업을 행했는가에 대한 경우의 수에 해당합니다.

 

선업을 지어야 선한 결과를 얻습니다. 공덕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왕에 선업을 지으려면 선업이 덩어리가 지어지도록 제대로 짓는 것이 좋습니다. 어쩌다 생각이 나면 좋은 행위를 하는 느슨한 선업보다는 제대로 마음을 잡아서 단단한 공덕을 짓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금강경에서 공덕취(功德聚)를 언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공덕이 덩어리질 정도가 되어야 주변 여건이나 환경(緣)이 다소 여의치 않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자(因)가 튼실하면 재배환경이 다소 열악하더라도 열매(果)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선업의 공덕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느슨한 선업에 공덕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선업을 짓는 동안에는 악업을 짓지 않을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매우 소중한 인(因)을 심는 것이니까요.

 

인류사에서 복덕이 가장 수승한 분 한 분만 고른다면 누굴까요? 당연히 부처님이십니다. 이미 복혜를 구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은 공덕 짓는 데 가장 앞장섰습니다. 잠을 자지 않는 수행으로 육안(肉眼)을 잃은 아니룻다 존자가 해진 가사를 깁기 위해 바늘귀에 실을 꿰려 애쓸 때 부처님께서 가장 먼저 나섰다는 일화는 공덕을 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은 이 고귀한 가르침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이 길이 행복으로 가는 가장 바르고 확실한 길이니, 인생의 체크리스트처럼 수시로 챙기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