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수행을 한 스님들도 징그럽게 생긴 뱀을 싫어하기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암자 마당으로 뱀이 넘어오면 작대기 같은 것으로 담 밖으로 쫓거나 보내지요. 그런데 불교의 최고 경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지요. 스멀스멀 기어가는 뱀도 사실은 한 생명에서 나온 한 형제지요.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경허스님이 공부하는 방은 낮에도 어두컴컴한 동굴처럼 생긴 암자 뒷방이었습니다. 만공은 방에 들어갈 때마다 등불을 켜곤 했습니다. 만공은 등불을 켜고 스승을 불렀습니다.
 “스님, 스님....”
 경허스님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만공은 등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경허스님은 누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공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경허스님의 배와 어깨에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뱀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그러나 경허스님의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실컷 놀다 가게 가만히 내버려 두게나.”
 한참 후에야 뱀은 스르르 번들거리는 몸을 움직여 방 밖으로 나갔습니다.
 “스님, 무섭지 않습니까?”
 “온 생명이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무엇이 무섭고 징그럽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경허스님은 이 한 가지 일화만 보더라도 깨달은 부처임이 분명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뱀과 친구가 되어 놀아주는 수행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불교에서는 무엇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하지 않고 무엇과 한 몸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자비로운 마음속에서 산다는 의미이고, 비로소 부처가 된다는 뜻이지요. 

 경허스님은 사람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신분이 귀한 사람이건 천한 사람이건 다 귀한 손님으로 생각하고 맞아들였습니다. 경허 스님이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실 때였습니다. 나병에 걸린 미친 여자가 해인사를 찾아와 하룻밤 재워달라고 했습니다. 스님들이 미친 여자를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미친 여자는 잘 곳이 없어 밤중에 해인사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절 밖의 어느 마을에서도 미친 여자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병이 걸린 데다 미친 여자는 세상이 버린 셈이었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진 미친 여자를 본 경허 스님은 조실채로 불러들여 재웠습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경허 스님을 시봉하는 만공이 조실채 방문 앞에서 인기척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 일어나셨습니까?”
 “......”
 만공은 걱정이 되어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스님은 윗목에서, 미친 여자는 아랫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조실 스님이 파계를 하다니, 만공은 큰일 났다고 생각하면서 쩔쩔맸습니다. 그때 경허 스님이 말했습니다.
 “무얼 그리 놀라신가?”
 “스님, 여자와 한 방에서 자는 것은 파계가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부처인데 어찌 파계란 말인가. 내 눈에는 이 여자도 부처일 뿐이네.”
 자세히 보니 여자의 문드러진 코에서는 누런 고름이 나와 있고 손가락은 여러 마디가 떨어져 없었습니다. 너무도 흉해서 한순간도 보기가 어려운데, 부처라고 하니 만공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경허스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아침상에 이 여자 공양(식사)도 올리게.”
 “스님 방에 재워준 것도 모자라 공양까지 함께 하기겠다는 말씀입니까?”
 “부처를 모시려면 침식까지 함께 해야지.”
 만공은 조실채를 나와 혀를 내둘렀습니다. 제자로서 스승의 모든 행동을 닮고 싶었지만 이 일만은 따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