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스님은 조선시대가 끝나갈 무렵에 태어난 분입니다. 그때는 우리나라 불교도 스러져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스님들이 떠난 깊은 산속의 절들은 하나 둘 허물어져 잡초와 칡덩굴에 덮여 사라지던 때였지요.
 바로 이때 경허스님은 우리나라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분입니다. 스님은 무엇을 하건 간에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철저했던 분이었지요. 스님의 제자 만공은 훗날 스승 경허스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선은 부처를 넘어서고 악은 호랑이를 넘어선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성인 중에 한 분이고, 호랑이는 이 세상의 동물 중에 가장 용맹스러운 짐승 중에 하나이지요. 만공이 ‘선은 부처를 넘어서고 악은 호랑이를 넘어선다.’고 경허스님을 평한 것은 무엇을 하건 남이 따를 수 없을 만큼 철저했다는 표현입니다.
 공부만 자나 깨나 하는 아이를 공부벌레라고 하듯 경허스님은 한마디로 ‘수행벌레’였습니다. 그리하여 경허스님은 수행자들이 깨달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까지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그 경지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요. 김치 맛을 보려면 직접 먹어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지 설명만 듣고서 어떻게 김치의 참 맛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바로 그런 이치지요.
 무엇을 하건 스님은 깊이깊이 들어갔습니다. 다른 수행자들이 한 달을 공부하면 스님은 밤낮으로 1년을 공부했고, 남에게 베풀 때는 자신의 것을 남김없이 다 꺼내주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배고픈 거지가 찾아오면 그날 절 식구들이 먹을 식량까지 다 주어 보냈던 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만공스님이 들려준 한 토막입니다. 만공이 경허스님을 천장암에서 모시고 살 때였다고 합니다. 천장암은 충청도 서산의 연암산에 있는 제비집처럼 작은 암자입니다. 만공은 경허스님이 입던 옷을 빨래하고 암자의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동네로 나가 식량을 탁발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그것도 수행자들이 거쳐야 하는 공부였습니다. 빨래하는 것은 욕심으로 얼룩진 마음을 씻는 공부이고, 불을 지피는 것은 온갖 잡념을 태워버리는 공부이고, 먹을거리를 탁발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고마움을 알고 겸손을 익히는 공부였습니다.
 경허스님의 누더기는 소매가 헐리고 무릎이 뚫어져 팔과 다리가 훤히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더기에는 빈대와 벼룩이 들끓었습니다. 스님은 도무지 빈대와 누더기를 잡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스님, 빨래를 해드릴 테니 벗으십시오.”
 “만공, 자네는 아직도 내 누더기가 더럽게 보이는가?”
 “스님, 입으신 지 한 철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건 내 옷이 아니라 빈대와 벼룩이 사는 궁전이라네. 나는 미물들의 궁전을 허물 생각이 없다네.”
 만공은 더 이상 말을 못 했습니다. 스승 경허스님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빈대와 벼룩이 야속할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만공은 뼈만 앙상한 경허스님의 몸을 본 적이 있는데 빈대와 벼룩이 물어뜯은 온몸은 마치 황토 물을 발라놓은 것처럼 붉으죽죽했던 것입니다. 스님은 가렵지도 않은지 옷 속에 손을 넣어 긁는 일도 없었습니다. 만공은 어느 날 참지 못하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스님, 가렵지도 않습니까?”
 “허허허.”
 경허스님은 웃기만 하더니 나직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만공, 왜 가렵지 않겠나. 나는 가려움을 참고 있다네. 빈대와 벼룩이 내 몸의 피를 마음대로 빨아먹을 수 있도록 참고 있는 것이라네. 그것도 이 세상에 내 몸을 기꺼이 내어주는 공부가 아니겠는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수행자라네. 수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네.”
 만공은 그때부터 경허스님의 누더기가 누더기로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법당에 앉아 있는 부처님처럼 금빛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신도들은 경허스님을 볼 때마다 코를 틀어쥐었습니다. 역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만공은 꾀를 하나 내었습니다. 새 옷을 갈아입게 하되 헌 옷의 빈대와 벼룩을 옮겨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만공은 경허스님 앞에 새 옷을 내놓고 말했습니다.
 “스님, 이 가사는 스님께 드리라고 신도가 놓고 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돌려드리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스님께서 입으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허스님은 만공의 속마음을 이미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빙그레 웃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만공, 이 새 가사를 입겠네. 신도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겠지.”
 “그럼, 이 헌 가사는 깨끗이 빨아 기워서 제가 입겠습니다.”
 “다만, 빨기 전에 만공이 할 일이 하나 있네.”
 “무슨 일입니까?”
 “그 헌 가사에 있는 빈대와 벼룩을 새 가사로 옮겨주게나. 그러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지 않겠나.”
 만공은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습니다. 자신이 한 생각은 잔꾀에 불과했으나 스승 경허스님의 생각은 자비로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지혜였기 때문이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