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을 따르는 산짐승들2
 -수월 스님의 바랑     
                         

 

 

 산짐승을 사랑한 스님이 또 있습니다. 법명은 같지만 이 스님은 고운사에 계셨던 수월 스님이지요. 스님은 사철 누더기 한 벌로 사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의 누더기를 보고 더럽다고 여기는 신도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사시는 스님에게서 수행자의 향기가 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님은 하늘 천(天) 자도 모르는 무식쟁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님을 무식쟁이라고 여기는 신도 또한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스님에게는 부처님처럼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자를 몰라도 스님께서 경전을 손가락으로 짚으면 경전의 뜻이 스님의 마음속에 그대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스님께서 <법화경>을 손으로 짚자 순간 <법화경>의 뜻이 다 스님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스님의 눈은 샛별처럼 반짝였는데, 함께 있던 젊은 스님들은 스님의 눈에서 나오는 생사리를 보았다고 합니다. 사리란 고승이 돌아가셨을 때 남기는 것인데 살아생전에 나왔다니 얼마나 스님의 정신이 깊었으면 그러하였겠습니까?
 짐승들은 만주의 수월 스님처럼 고운사 수월 스님도 좋아했습니다. 스님이 고운사에서 점곡으로 넘어가는 잿마루에 올라 땀을 들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노루 한 마리가 뛰어오다니 고개를 스님의 장삼 밑으로 숙였습니다.
 “누가 너를 쫓는 모양이구나.”
 스님은 노루가 몸을 숨겨달라고 그러는 줄 금세 알아차렸습니다. 스님은 장삼을 벗어 노루를 덮어주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 후에 사냥꾼이 나타났습니다. 사냥꾼은 잿마루까지 달려오느라고 숨을 쉬지 못하고 헐레벌떡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뉘시오?”
 “저는 안동 일직면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나를 부르시오?”
 “이곳으로 노루 한 마리가 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숨을 고르고 난 뒤 천천히 말하시오.”
 수월 스님은 사냥꾼을 옆에 앉히고 나서 다시 말했습니다.
 “꼭 사냥을 해야만 하오? 사냥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소?”
 사냥꾼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스님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자, 자네가 찾는 노루가 여기 있네. 내가 감추고 있었지.”
 수월 스님이 장삼을 걷어내자 노루가 나타났습니다. 사냥꾼은 스님 옆에서 도망가지 않는 노루를 보고는 할 말을 못 했습니다.
 “여보게. 살생을 하지 말게. 지금은 이 노루가 자네한테 죽음을 당할지 모르지만 다음은 노루가 자네 목숨을 노릴지 모르네. 원수가 되어 원한을 품고 죽고 죽이고.... 원수진 마음이 그칠 날이 없으니 윤회를 면할 길도 없어지는 것이지.”
 사냥꾼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스님, 말 못 하는 짐승이 살려고 스님의 장삼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보니 제가 못할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포수 짓을 그만두겠습니다.”
 그래도 노루는 스님의 장삼 자락 속으로 파고 들 뿐 도망치지를 못했습니다.
 “정말로 그럴 텐가.”
 “스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사냥꾼을 계곡 아래로 총을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노루를 쓰다듬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노루가 움찔했습니다. 사냥꾼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사냥꾼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살생심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수월 스님이 일어나면서 말했습니다.
 “고만 가거라.”
 그제야 노루는 잿마루를 넘어갔습니다. 가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만주의 수월 스님이나 고운사의 수월 스님이나 자비심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 같은 스님입니다. 하늘에 뜬 달과 물에 비친 달이 같듯이 말입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