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면 법당 바깥벽에 그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을 벽화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런 벽화 중에는 산신령처럼 눈썹이 허연 노승과 작은 가마솥을 들고 있는 젊은 제자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노승이 손가락으로 가마솥을 든 젊은 제자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그림이지요.
 노승의 표정은 만족스럽지 못한 듯하고, 작은 가마솥을 두 손으로 든 젊은 제자는 노승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도대체 노승과 젊은 제자 사이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젊은 제자는 원래 옷감 장사를 하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옷감이 든 보따리를 등에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장사였던 것이지요. 청년의 보따리에는 무명천이나 명주, 삼베 등 여러 가지 옷감이 들어 있었습니다. 청년은 부자들이 비단을 주문하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청년에게 비단 장사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그날도 청년은 비단을 보따리에 넣고 험준한 고갯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고개 너머에 사는 부자가 미리 비단을 주문해 두었던 것이지요. 청년은 고갯마루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땀을 들이며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썹이 허연 노승이 다른 길손들은 모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나무 저편에서 꼼짝 않고 서 있기만 했습니다. 길손들은 고갯마루로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처음에는 노승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곧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따리 장사 청년은 누더기를 걸친 노승의 행동이 궁금했습니다.
 노승은 누가 자신을 보건 말건 부처님처럼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며 서 있기만 했습니다. 청년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노승에게 다가가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청년은 노승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스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왜 그런가, 젊은이.”
 “사람들은 고개를 올라오느라 다들 힘들어하고 있는데, 스님께서는 지금 미소를 짓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키고 있는 중이라네.”
 “중생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청년은 노승의 주위를 돌며 말했습니다.
 “이 누더기 속에 있다네. 누더기 속에서 중생들이 맛있게 공양하고 중이라네.”
 청년은 점점 더 이상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더기 속에 무슨 중생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허허허. 아직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먼. 누더기 속에 있는 이와 벼룩에게 나의 피를 먹이고 있다는 말이네.”
 그제야 청년은 노승을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노승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노승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노승은 이와 벼룩이 피를 빨아먹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인이란 하찮은 이와 벼룩을 위해서도 몸을 바치는 분이구나!’<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