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탁자에 커다란 밥통이 죽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에 대바구니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회사도장이 찍힌 튼튼한 사기그릇 찻잔이 있어 여공들은 각자 그 찻잔에 밥을 덜어 먹었다. 그것은 조잡하게 만든 우동그릇에 가까운 것으로 밥을 조금밖에 담지 못했다.
 식당은 전쟁터였다. 얼른 먹고 쉬려는 여공들이 앞 다투어 밥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반찬은 오오사카에 많이 잡히는 정어리와 무짠지였다. 정어리는 비료로 쓰였다. 회사는 그것을 비료보다 싼값으로 사서 오랫동안 보관을 했기 때문에 절반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상태였다. 무짠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짠지가 오래되면 벌레가 생겼다. 그런데도 주방 사람들은 그대로 끓여주기 때문에 도중에 벌레가 나왔다. 옥아는 죽은 벌레를 골라내면서 또 빌었다. 벌레님, 극락왕생 하세요.
 새벽 5시 30분.
 수도간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대강 얼굴을 씻고 나면 싸이렌이 울렸다. 싸이렌은 정확하게 5시 55분에 울렸다. 그 5분 사이에 공장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임금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가혹한 징계를 받아야 했다.
 커다란 솜이 모여 작은 실타래가 되는 과정.
 주먹이 날아왔다.
“똑바로 못 해!”
“헉!”
 옥아는 쓰러졌다.
 험한 일을 해보지 못한 옥아가 실수로 실을 끊어먹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반장을 쳐다봤다. 반장의 눈가에 희미한 미소가 다시 지나갔다.
“이 썅년이 어디서 굴러먹었어!”
 그 순간 옥아는 바닥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반장은 옥아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동시에 무릎으로 그녀의 면상을 후려쳤다. 옥아는 제대로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코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개수작을 부려. 한 번 더 그런 눈으로 보면 좋은 곳으로 팔아버려!”
 반장은 쓰러진 옥아의 몸뚱이 위로 침을 뱉았다.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여공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 여공에게 오히려 일본인보다 더 혹독하게 대했다. 옥아는 그저 물끄러미 반장을 쳐다보았다. 무심한 눈빛이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옥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작업대에 앉았다. 목숨이 붙어 있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가시나무를 삼키는 것이 삶인 것이다.
 그런데 또 기계가 정지되었다. 어느 여공이 조는 통에 실이 기계에 말려들어간 것이다.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 여공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처음에는 가만있던 여공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돼지만도 못한 쪽바리 새끼야, 어디 두고 보자!”
 그러나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한 감독은 다시 호통을 치며 자리를 떠나려 하였다. 그 때였다. 조선인 작업반장이 다시 여공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뭐야!, 다시 한 번 말해봐!”
 작업반장은 쓰러진 여공을 마구 짓밟았다. 작업반장인 그녀는 공장에서는 유일하게 여자 협화회의 일원이었다. 옥아는 자신도 모르게 작업반장에게 다가갔다. 
“또 너냐?”
 작업반장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그건 옥아도 마찬가지였다.
 옥아는 작업반장에게 같은 조선인 운운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이라는 말은 입 밖에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선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여겨본 적도 없었다. 
“이건 너무하지 않아요?”
 옥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간단했다. 다른 여공들과 다르게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것이 작업반장의 화를 더 돋우었다.
“씨팔년!”
 우악스런 작업반장의 손에 잡힌 옥아는 다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작업반장은 옥아를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옥아는 반장을 향해 욕 한번, 주먹 한번 내밀지 않았다. 고스란히 맞고, 고스란히 머리를 뜯겼다. 그 때 일본인 감독이 손을 들었다. 작업반장의 동작이 멈춰졌다. 일본인 감독은 옥아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들어갔다. 작업반장은 분을 풀지 못해 씩씩거리다가 협화회 사무실로 달려갔다.
 협화회는 발족 후 재일 조선인을 제2차 대전의 인적자원으로 이용하는 동원 계획의 첨병으로서 움직여 특별 고등경찰, 헌병 등의 어용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협화회 간부에게는 일정한 보수를 주었다. 말하자면 협화회 간부라는 것은 회사의 조선인 노무계인 셈이었다. 회사에서도 조선인 노무관리는 아예 일본인들 보다 더 철저하게 회사에 협조하는 조선인들에게 맡긴 것이다.
 어쩌다가 고향에서 편지가 오면 남자 반장이 읽어 주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고향에서 보낸 편지 또한 부모들이 직접 쓴 편지가 아니었다. 돈을 받고 편지를 대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적당히 보낸 것들이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
  너도 몸조심하고 회사에서 말하는 것은 잘 지키며 열심히 일하여라.

 

 그것이 대부분의 편지 내용이었다. 여공들은 그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글을 모르기 때문에 모두 함께 울었다. 여공 중에 한글을 아는 여공은 옥아 뿐이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
“글을 모르면 산송장이지요. 작업반장이 여러분에게 읽어주는 고향 편지는 모두 거짓이에요.”
 여공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은 배워야 합니다. 내가 밤에 글을 가르칠테니 시간이 되는 사람은 모두 와요.”
 여공들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여자 작업반장이 옥아를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강옥아, 소독장으로 집합!”
 옥아는 얼른 소독장 안으로 뛰어갔다.
“거기가 아니다. 밖으로 나와!”
 대나무발로 둘러친 소독장 앞. 
 옥아는 멍청하게 작업반장을 쳐다봤다.
“뭐해, 벗지 않고!”
 옥아는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반장이었다. 옥아가 마당에서 그렇게 빨리 옷을 벗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눈부신 몸, 그 순간, 반장의 미간이 흔들렸다. 그러나 역시 작업반장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이쁜 몸이구나. 이질로 죽고 싶지 않으면 그걸로 하반신을 씻어라.”
 크레졸이 던져졌다. 크레졸을 손에 든 옥아는 문득 회산과 이구의 얼굴을 함께 떠올렸다. 보고 싶은 얼굴, 그러나 이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빡빡 씻어요?”
 옥아는 큰소리로 반장에게 물었다.
 어이가 없는지 반장이 피식 웃었다. 

 

 

 조선인 여공은 결핵, 이질,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이 성행할 때 많이 죽었다. 조선인 여공이 죽으면 회사에서는 죽은 여공의 동료나 같은 방의 여공들이 시신 곁에서 밤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장례도 간단하고 허술했지만 스님을 불러 경을 읽게도 해주었다. 
 그렇지만 그건 여공에 대한 배려가 아니었다. 여공이 한 명 죽으면 다른 여공이 동요하기 때문이었다. 조선인 여공이건, 일본인 여공이건 죽으면 모두 불교식으로 행하여 스님이 경을 외운 뒤 묘지로 시신이 옮겨졌다. 그 때에도 관은 회사의 잡역부가 메고 친한 동료들과 함께 시라노읍의 묘지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래도 만장은 한국식대로 달았다. 조선에서의 장례는 불교식이라고 하여도 시체를 그대로 매장하는 토장의 형식이었지만 일본은 화장을 하여 그 유해만 매장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동료 여공들이 우겨도 한국식으로 할 수는 없었다.
 옥아가 방적공장에 온지, 두 달 남짓.
 시라노읍 묘지에서 장례가 있었다.
 청진에서 온 경란이가 폐병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늘 하던 방식대로 경란이의 시체를 태우고 여공들은 일부의 유해를 거둬 조그만 돌로 묘비를 세웠다. 물론 경란이의 가족은 한 명도 없었다. 남은 유해는 골아에 넣어 회사에 보관해두었다가 청진의 유족에게 보낸다고 하나 그것을 믿는 여공은 한 명도 없었다. 묘비 맨 앞에 선 작업반장과 그 뒤에 선 여공들의 합장을 끝으로 장례식이 마감되었다.  
 그 순간, 옥아가 반장 앞에 나섰다.
“또?”
 작업반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옥아도 쓸쓸하게 웃었다.
“경란이에게 천수경이라도 한 구절 외워주려고 합니다.”
 작업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구성진 옥아의 독경소리, 참관 나왔던 회사 간부들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옥아가 야학을 시작하자 전체 여공들이 몰려들었다. 잠자기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인 여공 단 한명도 빠지지 않았다. 
 마침내 창문을 가린 어두컴컴한 방안에‘가갸거겨’가 울려퍼졌다. 주간 근무를 마친 여공들이었다. 공장 안에서는 그렇게 조선인을 못살게 굴던 작업반장도 한글 야학만은 눈감아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경계 인원을 2-3명 복도에 배치했다.
 하루에 두 시간, 여공들의 의지는 강렬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졸음을 견뎌냈다. 고향에서 온 편지를 읽고 싶은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본인 공장에 들불처럼 번진 한글 야학은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다시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야학 선생 중에 사회 운동가와 노동 운동가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옥아는 여공들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나는 독립 운동가나, 노동 운동가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씨 조선이 그런 부류들 때문에 망했거든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독립을, 노동을 이용하는 불쌍한 사람들.”
 그날 밤 처음으로 옥아는 회산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그건 편지가 아니었다. 편지는 쓸 수가 없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한편의 시, 그리고 이곳에서 여공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다는 추신을 달았다.

 

     골짜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산도 강도 바다도.
     언제나처럼 저녁놀이 타오르면
     무성한 나뭇가지 위에서 새들이 훼를 친다.
     어디로 갔는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뒤틀어진 가시나무 가지 끝을 지나
     봉우리 봉우리 위를 넘나들던 구름의 이름을 좇아서
     내가 온 이 곳의 슬픈 불빛.
                                               
 일본군은 종군 위안부를 작부, 창기, 추업부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 용어들은 본질적인 면을 드러내는 용어는 아니다. 이런 용어들은 이 제도를 만든 일본군의 일방적인 당위성을 포장한 용어로서 피해자 측의 시각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활동을 통해 붙여진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라는 용어가 그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용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에서조차 <종군 위안부>는 당시 쓰이던 역사적 용어로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강제 성노예가 되었던 여성 본인들조차 성노예란 말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