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연재 > 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㊶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7-10 (금) 14:27

“찰나 찰나 늘 깨어 있으라”
 
우기가 끝나고 붓다는 다시 웨살리로 돌아왔다. 붓다는 어느 날 탁발을 마치고 오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짜빨라(Capala)의 영수(靈樹)로 자리를 옮겼다. 붓다는 그곳에서 아난다에게 우데나, 고따마까, 삿땀바까, 바후뿟따, 사란다다, 짜빨라 등의 영묘(제띠야, 일종의 사당)가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붓다는 이곳에서 아난다를 향해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아난다, 신통력에는 네 가지 기초가 있다. 목적에 대한 집중, 힘의 집중, 생각의 집중, 그리고 집중된 탐사가 그것이다. 누군가 이와 같은 기초를 닦아 신통력을 얻으면 질병을 이기고 온전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난다, 나는 이미 그것을 닦은 적이 있고, 내가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으면 더 이상 병에 걸리지 않고 수명을 온전히 다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의 죽음에 의기소침해진데다, 임박해오는 붓다의 열반을 걱정하고 있던 아난다는 붓다의 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했다. 아난다가 처해있는 마음상태나 여러 경황이 붓다의 이 말이 갖는 의미를 간파하거나 이해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붓다의 언급은 ‘정각자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었지만, 세 번이나 거듭해 같은 말을 전해도 아난다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붓다는 아난다가 자신의 말을 듣고 이 세상 사람들과 신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래오래 머물러 달라고 간청한다면, 비록 늙고 병든 몸이지만 조금 더 오래 머물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아난다가 자신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세상에 머물 인연이 다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 붓다는 제자들의 모임인 상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상가는 안정되어 있으며, 비록 자신의 부재한다고 해도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마침내 붓다는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열반에 들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며칠 후 붓다는 예고 없이 제자들이 모여 정진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비구들 모두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계속되는 고통에 크게 쇠약해진 붓다를 더는 피곤하게 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그들은 누구 하나 질문하려 하지 않았다.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한 붓다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오늘따라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하구나. 그대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짓눌려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나는 죽음이 성향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들의 본성이라고 강조하여 말해왔다. 생겨난 것은 소멸한다.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그대들은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고 완전을 획득할 수가 있다. 부지런히,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말고 정진하라. 찰나찰나 늘 깨어 있으라. 집중이 흐트러져 번뇌와 망상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진의 고삐를 놓지 말라. 게으름이 그대들을 압도하게 하지 마라.”
 
붓다는 잠시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이제 늙었고, 남은 수명은 아주 짧다. 머지않아 나는 그대들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귀의처를 만들었다. 비구들이여, 부지런하고 늘 깨어 있어라. 덕스럽고 청정하라. 잘 집중된 마음으로 그대의 마음을 끊임없이 지켜보도록 하라. 이 법과 계율 속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는 자는 반드시 윤회를 벗어나 괴로움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남기고 붓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아직까지 해탈을 이루지 못한 아난다를 비롯해서 많은 비구‧비구니들은 비탄에 잠겼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침내 아난다가 대중을 향해 말했다.
 
“벗들이여, 신통력의 네 가지 기초를 계발하고 증진한 사람은 질병을 극복하고 자기 수명을 최대한 연장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런 능력을 성취한 사람들 가운데서 으뜸이십니다. 세존께서는 마음만 먹으면 더 오래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세존께 당신의 신통력을 사용해서 가능한 한 오래 사시도록 간청하여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아난다여. 아주 훌륭한 제안입니다. 부디 세존께 그렇게 간청해주십시오.”
 
온 대중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후, 아난다는 기회를 기다리다가 마침 적절한 기회가 찾아오자 붓다에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많은 제자들은 세존께서 신통력을 사용하여 수명을 더 연장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마음을 정한 후였지만 붓다는 아난다의 간청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 그것이 승가를 이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부질없는 미련만 부를 것인가?’ 한동안 그 결과에 대해 숙고한 뒤 결론을 내린 붓다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 염력으로 병을 극복하고 완전한 수명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는 이미 지난번에도 그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대와 비구들이 내게 더 살아달라고 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 갈망, 헤어지지 않으려는 갈망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지금 그대들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그대와 승가에 대한 커다란 해악을 가져다 줄 뿐이다. 아난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도 언젠가는 이별하거나 사별하고, 사후에는 생존의 장소를 달리하기에 이른다. 아난다야, 생겨나고, 존재하고,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성질을 지닌 것을 괴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을까? 그런 도리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향한 부질없는 기대와 욕망은 나에 의해 버려지고, 내뱉어지고, 내던져졌다. 수명의 소인은 버려졌다.”
 
잠시 쉬고 난 붓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난다여, 만일 내가 수명을 연장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유를 위해서라야 한다. 그 이유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로 하여금 집착과 미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어야지, 그것을 조장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아난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대들이 집착과 미움을 벗어내기 위해 노력할 때가 아닌가? 내 수명은 이제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이 석 달이 다하는 날, 나는 이 육체를 눕히고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다. 이 사실을 상가에 알리도록 하라.”
 
이야기를 마친 붓다는 아난다를 돌려보냈다. 아난다는 붓다가 이야기한 것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러자 수많은 제자들이 아난다에게 항의했다.
 
“아난다, 세존께서 생명연장의 가능성을 암시했을 때, 그것을 간청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전체 상가의 불운이며, 커다란 손실입니다.”
“벗들이여, 세존께서 처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나는 무언가에 씌어 있었습니다. 열정과 갈망, 그리고 집착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세존께 그런 요청을 하자고 그대들을 부추긴 것 또한 마귀의 소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비난이 내게 떨어지겠지만 감수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존경하는 스승을 모시고 오랜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직도 그 분의 진정한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열정과 갈망, 그리고 집착을 극복하려고 진지하게 시도해 본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궁극의 목표를 위해 정진합시다. 그것이 우리의 스승께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아난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대중을 등지고 붓다의 처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붓다는 아난다에게 큰 숲 강당으로 갈 것이니, 웨살리 인근에 머물고 있는 모든 수행자들을 모이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다음 날 수행자들이 강당에 다 모였을 때 아난다는 붓다에게로 가 수행 승려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음을 알렸다. 붓다는 아난다의 안내를 받으며 강당으로 향했다. 마련된 자리에 앉은 붓다가 간절한 표정과 목청으로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제까지 나는 내가 깨달은 법을 설명했다.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실천하고 수행해서 궁극의 목표를 꼭 성취하기를 바란다. 마치 청정한 행동이 길게 이어져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것처럼 그런 행동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신들과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는 길이다. 그 ‘법’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네 가지 늘 마음속에 두고 새기는 토대(四念處), 다섯 가지의 능력(五根), 다섯 가지의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고리(七覺支), 여덟 종류로 이루어진 고귀한 길(八正道)이다.”
 
붓다는 잠시 숨을 가다듬은 후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러 가지 사상(事象)은 지나가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수행을 완성하라. 오래 지나지 않아서 나는 열반에 들 것이다. 이제부터 세 달이 지나기 전에 나는 열반에 들 것이다.”
 
붓다의 단언을 들은 비구들의 낯빛이 일제히 하얗게 질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단호하게 입멸을 예고하는 스승의 태도에 기가 질린 듯했다. 비구들의 표정을 말없이 지켜보던 붓다는 마치 유언을 남기 듯 힘겹게 말을 이었다.
 
“비구들이여, 내 나이는 한계에 이르렀다. 나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나는 너희들의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것을 이루었다. 너희들은 태만하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 이 생각을 잘 지키고 정신을 집중해서 자기 마음을 분명하게 지키도록 하라. 이 설법과 계율에 충실한 사람은 끝없이 삶을 되풀이하는 윤회에서 벗어나고, 일체의 고통도 끝나게 될 것이다.”
 
“웨살리를 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붓다는 아침 일찍 속옷을 입고 옷과 바리때를 손에 들고 웨살리 시내로 탁발을 하러 나갔다. 붓다는 웨살리 시내에서 탁발을 하고 다시 돌아와 식사를 마친 다음, 몸을 돌려서 코끼리가 바라보듯이 웨살리 쪽을 응시하면서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야, 내가 웨살리를 보는 것은 이것으로 마지막일 것이다. 이 몸으로는 다시 이곳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어서 반다 촌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아난다가 대답했다. 붓다와 제자들은 반다 촌으로 향했다.
한편 붓다가 입멸을 위해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웨살리의 왕과 릿차위 족 사람들은 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100리 길을 마다 않고 붓다의 행렬을 좇아왔다. 붓다가 사랑했고, 붓다를 사랑했던 릿차위 족들에게 설법을 한 후 간곡히 말했다.
 
“릿차위 족들이여,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오.”
 
붓다는 슬퍼하는 릿차위 족을 뿌리치기 위해 께사리아(Kesaria)에 이르러 그들에게 자신의 바리때(발우)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릿차위 족 사람들은 부처님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머뭇거릴 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에 걸친 붓다의 설득 끝에 릿차위 족들은 자신들에게 건네준 바리때가 붓다가 이곳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징표로 여기고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릿차위 족 사람들은 붓다로부터 바리때를 받은 그 자리에 거대한 7층탑을 세웠다. 사실 이 자리는 붓다가 출가했을 당시 사냥꾼과 가사를 바꾸어 입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출가와 열반의 길목에서 붓다는 자신을 가장 따르고 아꼈던 웨살리의 릿차위 사람들과 이별했다.
릿차위 족과 헤어진 붓다는 반다 촌에 머물렀다. 붓다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네 가지 가르침을 가르쳤다. 네 가지의 가르침은 성스러운 계율(聖戒), 성스러운 정신 통일(聖定), 성스러운 지혜(聖慧), 성스러운 해탈(聖解脫)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아직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너희도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유전하고 윤회했다. 이 네 가지 도리는 무엇이겠는가? 존귀한 계율, 존귀한 정신, 존귀한 지혜, 존귀한 해탈이다. 수행승들이여, 지금 나는 이 존귀한 계율과 존귀한 정신통일과 존귀한 지혜와 존귀한 해탈을 깨닫고 통달했다. 생존에 대한 망집(妄執)은 이미 끊어졌다. 생존으로 이끄는 망집은 이미 소멸했다. 이제 다시는 미망의 생존을 받을 일은 없다.” 
 
붓다는 반다 촌에서 머물 만큼 머문 후 아난다에게 핫티 촌으로, 암바 촌으로, 잠부 촌으로, 보가 성(城)으로 갈 것을 지시했다.
붓다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보가 성으로 향했다. 보가 성에서 붓다는 아난다 사당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그곳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큰 교시(四大敎示)’에 대해 말하겠다. 너희들은 잘 듣고 주의해라. 이제부터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비구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실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구들이여, 여기에 한 사람의 수행승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벗이여, 나는 이 가르침을 붓다로부터 눈앞에서 직접 들었다. 눈앞에서 보았다. 이것이 이법(理法)이다. 이것이 계율이다. 이것이 스승의 가르침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 수행승이 말한 것은 기쁘게 받아들일 것도 아니며 배척할 것도 아니다. 기쁘게 받아들이지도 배척하지도 않고 그 문구를 바르게 이해해서 하나씩 경전에 모아 계율에 참조하고 음미해야 할 일이다. 이 문구를 하나씩 경전에 모아 계율에 참조하고 음미해서 경전의 문구에도 합치하지 않고 계율의 문구에도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붓다가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 수행승이 오해한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런 이유로 너희는 이것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어구를 하나씩 기억해 계율에 참조하고 음미해서 그것이 내가 설한 계율의 어구에 일치할 때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분명히 이것은 붓다가 말씀하신 것이고 이 수행승이 바르게 이해한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을 첫 번째 ‘전거(典據)의 참조’로 받아들여라.”
 
붓다는 ‘이렇게 붓다로부터 직접 들었다’에 대한 설법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장로 등 수행 승려들의 무리(상가) 등 규정에 맞는 교단으로부터 들었다’, ‘박식하고 법과 계율을 잘 지키는 장로들에게 들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유능한 장로에게 들었다’는 경우를 각각 예로 들면서 그 어구를 하나씩 기억에 모아 계율에 참조하고 음미해서 그 기억의 내용들이 계율의 어구에 일치할 때에 비로소 ‘붓다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붓다는 제자들이 자신이 입멸에 들고 난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붓다의 가르침(설법)’에 대한 분쟁을 예견하고, 이를 해결할 기준을 제시한 것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문구에 대해 그 자리에서 바로 찬성하거나 반대하지 말고 하나하나의 말을 잘 생각해서 가르침의 내용과 계율의 내용에 비추어 봐 일치된 것임을 확인한 다음에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는 노 스승의 간절한 설법을 듣고 있는 아난다의 눈가에는 시나브로 이슬이 맺혔다. 
붓다는 보가 성의 아난다 사당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위해 많은 설법을 했다. ‘계율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정신통일은 이와 같은 것이다, 지혜는 이와 같은 것이다, 계율과 함께 수행해서 완성된 정신통일은 큰 과보를 얻고 크나큰 공덕이 된다, 지혜와 함께 길러진 마음은 수많은 더러움, 즉 욕망의 더러움, 생존의 더러움, 견해의 더러움, 무명의 더러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한다’는 붓다의 삼학(三學, 계정혜)에 대한 설법은 제자들에게 지혜의 눈을 열어주려는 간절함, 곧 스승 없이 각자 수행에 나서야 할 제자들에 대한 연민, 그 자체였다.
 
마지막 공양을 받고…
 
 
얼마 후 붓다는 보가 성을 떠나 북쪽의 빠와(Pava)라는 작은 고을에 이르렀다. 빠와에 도착한 붓다와 제자들은 금세공(金細工)인 쭌다(Cunda)의 망고 숲에 거처를 정했다.
붓다와 제자들이 자신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쭌다는 몹시 기뻤다. 그는 붓다를 찾아가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붓다는 쭌다에게 ‘진리에 관한 설법’을 들려주고, 일과 수행을 잘 해 나가도록 격려했다. 쭌다는 붓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에 보답하기 위해 다음 날 점심공양에 붓다와 제자들을 초청했다. 붓다는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공양 초대를 한 쭌다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요청에 응했다.
붓다와 제자들을 위한 공양을 준비하면서 쭌다는 한없이 기뻤다. 그가 마련한 음식 가운데는 멧돼지 고기 요리가 있었다. 공양이 시작되면, 주인이 제일 먼저 붓다에게 음식을 올리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 보통의 관례였다. 가족들이 음식 접시를 가져다 주인에게 건네주면, 주인은 첫 국자를 주빈에게 올리고 아래로 물리는 것이다.
쭌다가 올리는 음식을 본 붓다가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멧돼지 요리라는 것을 안 붓다는 제자들이 이 음식을 쉽게 소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채식에 의존하고, 별다른 육체적 운동을 하지 않는 그들에게 기름투성이 음식은 사실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붓다가 쭌다에게 말했다.
 
“쭌다여, 나와 제자들을 위해 이 음식을 마련하느라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요리는 그들에게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가 원한다면, 내게는 이 음식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제자들에게는 주지 말도록 하십시오.”
 
쭌다는 당황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최소한 붓다만이라도 드실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붓다가 공양을 마치자 쭌다가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몇 종류의 사문이 있습니까?”
“춘다여, 사문에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도를 실천함이 뛰어난 사문이고, 둘째는 도를 설하는 것이 뛰어난 사문이고, 셋째는 도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사문이고, 넷째는 도를 행하는 척하며 악만 저지르는 사문입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문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속으로는 삿된 마음을 품고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며 거짓을 일삼는 진실하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도를 행하는 척하며 악만 저지르는 이들입니다. 대중을 이끄는 이들 가운데도 속은 혼탁하면서 겉만 깨끗한 이들이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지만 속내는 간사하고 나쁜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구리에다 금을 입힌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그를 훌륭한 사문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가 누구든 겉모양만 보고 한눈에 존경하거나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붓다는 이어 갈망과 집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관대함과 보시의 중요성에 대한 설법을 하고 쭌다의 집을 나섰다.
기거하고 있던 망고 숲으로 돌아온 붓다는 또 다시 극심한 통증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붓다는 고통스러움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이 지나갔다. 붓다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감각과 의식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 즉 멸정(nirodha)에 들었을 때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멸정에 든 상태로 침상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는 것은 붓다가 추구해온 생활방식이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붓다는 아난다를 불러 빠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꾸시나라로 가자고 당부했다. 꾸시나라로 가는 도중 휴식을 위해 큰길을 벗어나 나무그늘에 들어간 붓다가 아난다를 불렀다.
 
“아난다, 가사를 좀 접어 깔아주게. 피곤해서 잠시 누워야겠네.”
 
 
붓다는 아난다가 네 겹으로 접어 깔아준 가사 위에 누워 한동안 쉬고 나서,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 갈증은 붓다가 당장 앓고 있는 병 때문이었다. 마실 물을 길어오기 위해 아난다는 근처에 있는 강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에 흐르는 물은 온통 흙탕물이었다. 아난다가 생각했다.
‘필시 많은 수레가 위쪽 여울을 건너간 것 같다. 세존께 이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상류 쪽으로 올라가 맑은 물을 찾아봐야겠다.’
아난다가 맑은 물을 찾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붓다는 그동안의 극심한 통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오직 멸정에 들 수밖에 없었다. 붓다가 나무 아래에서 멸정에 들어 있는 동안 천둥번개와 함께 억수같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제자들도 비를 피해 나무 밑에 들어가 있었다. 붓다는 소나기가 그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대로 멸정에 들어 있었다.
그때 말라 족 사람으로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인 뿌꾸사(Pukkusa)가 꾸시나라에서 빠와를 향해 길을 걷고 있었다. 뿌꾸사는 나무 아래에 앉아 멸정에 들어 있는 붓다를 눈여겨 바라보고는 붓다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붓다의 여정과는 반대로 꾸시나라에서 빠와로 가는 도중에 비를 만나 나무 밑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는 붓다가 멸정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었다.
 
“스승이시여, 저는 위대한 성자 알라라 깔라마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그의 직계제자도 아니고 만난 적도 없지만, 그 분의 가르침을 찬탄하며 그분이 가르친 목표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알라라 깔라마님께서 명상에 잠겼을 때 오백 대의 수레가 곁으로 지나갔답니다. 조금 뒤 누가 알라라 깔라마님에게 수레가 지나갔는지 물었더니, 그 분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오백 대의 수레가 지나가는 것을 모를 만큼 깊은 삼매에 들었던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당신께서 그 천둥 번개와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에도 끄떡없이 앉아 계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당신은 알라라 깔라마님의 직계제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벗이여. 한때 나는 그분의 제자로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그를 떠나 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알라라 깔라마께서 획득한 것보다 훨씬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성취하였습니다. 천둥 번개, 그리고 소나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 내가 성취한 능력 가운데 최상의 것이 아닙니다.”
“스승이시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뿌꾸사가 간청했다.
 
“벗이여,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될 어려움 가운데 천둥 번개, 비 따위는 최악의 것이 아닙니다. 갈망과 증오, 그리고 미혹함은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며, 보다 더 파괴적인 것입니다. 만약 모든 감각기능을 완벽하게 갖춘 어떤 사람이 성성하게 깨어 있으면서도 갈망과 증오와 미혹에 동요되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룬 것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주창하는 수행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붓다의 설법을 들은 뿌꾸사가 말했다.
 
“존귀한 이여, 그렇다면 저는 알라라 깔라마에 대한 믿음을 큰 바람 속에 날려 보내고 급류 속에 흘려보내겠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 멋진 일입니다. 자칫 뒤집어질 뻔한 사람을 일으키듯, 덮여 있는 것을 열어주듯,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듯, ‘눈 있는 사람들은 모습을 볼 것’이라는 말처럼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주듯, 붓다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존귀한 이여, 이런 이유로 저는 붓다에게 귀의하고 싶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평생 세속의 제자로 살아가겠습니다.”
 
말라 족의 아들 뿌꾸사는 부드럽고 윤기가 나는 금색 옷을 두 벌을 붓다에게 바쳤다. 붓다는 두 벌의 옷을 받아 한 벌은 직접 입고 나머지 한 벌은 아난다에게 건넸다.
붓다는 뿌꾸사를 ‘법에 관한 강의’를 통해 가르치고 격려했다. 
붓다는 이때 아난다가 바리때에 가득 담아온 깨끗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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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혜송 2020-07-10 18: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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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표님!
대역의 여정이 회향을 향하고 있네요
근념하셨습니다
그리고
훌륭하십니다
나렌다 2020-07-11 16: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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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솔직한 마음은 혹여 잘못이 있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담마마마까에서의 단기출가수행 체험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두사두사두
화엄 2020-07-14 1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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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감사합니다.
도솔 2020-07-27 2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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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님, 이제 열반경에 이르렀군요. 새로운 부처님 이야기가 빨리 출간되기를 빕니다. 뉴욕에서 도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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