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의 울창한 수림과 송림, 기이한 바위, 서울보다 낮은 기온으로 여름철의 피서지로 각광받으며 사시사철 도시민들의 휴식처인 남한산성!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네가 알고 있는 남한산성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남한산성이 요즘 단순한 성곽이나 공원이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등 지켜야 할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이 백제 시대부터 한 나라의 승망성쇠를 가른 한반도의 중요 요충지이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외세와 치열하게 항전한 우리 역사의 산 증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들어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남한산성에 얽힌 눈물겨운 역사가 알려졌고, 남한산성을 찾는 외지인들이 늘어났지만, 김훈의 소설에도 남한산성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스님들의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 남한산성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러던 차에 남한산성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힌 책 '남한산성과 팔도사찰'(대한불교진흥원)이 출간됐다. 남한산성에 살며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전보삼 교수가 대한불교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집필한 원고를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김훈의 소설이 나오기 전에 이 책이 나왔더라면 소설이 훨씬 더 풍요로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못내 남는다.

이 책은 남한산성의 문화적인 중요함뿐만 아니라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해 남한산성이 어떻게 축성되었는지, 실제 축성에 동원된 승군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한 어떻게 팔도사찰이 건립되었으며 남한산성 내 팔도사찰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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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전보삼 교수는, 전국의 승려들이 종교를 뛰어넘어 나라 사랑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목적 아래 팔도사찰을 건립하고 남한산성을 축성하고 외세에 맞선 결과가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담담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다 알다시피 남한산성은 아름답고 섬세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 시대에 약 400년 동안이나 수도로 자리했고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관통해 지금까지 우리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곳이다.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많은 성이 있지만 그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고대성에서 현대성에 이르기까지 성곽의 구성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복합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산성으로는 단연 남한산성이 꼽힌다.

남한산성은 또한 조선 시대에 병자호란 등 외세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과 경기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중심지에 위치하며, 유사 시 수도권 방어의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서 옛 조상의 호국정신과 민족자존의 상징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역사의 장에 팔도사찰과 승군이 있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국란의 시기에 늘 그랬듯이 조선 8도를 부처님의 힘으로 하나로 모으고 실천에 옮긴 중심인물은 벽암 각성선사였다. 벽암 각성선사는 조선왕조의 서산, 사명의 뒤를 이은 3대 8도 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 임명되어 신라시대 고찰인 망월사와 옥정사를 제외하고 성 내의 팔도사찰과 남한산성의 축성의 대임을 완성한 호국 승군장이다. 4장대를 중심으로 8개 사찰과 승군 본영으로 개원사를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아가 병자호란 때 호국승군인 항마군(降魔軍)을 조직한 전술가요, 승군을 이끈 용장이기도 했다.

벽암 각성선사가 이끌던 의승군은 이때부터 수도 방위를 위한 상비 정예군의 면목을 갖추었고, 조선왕조 270년 동안 승번제를 통해 산성을 수호하며 진충호국(盡忠護國)하는 애국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관군에게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던 축성역사(築城役事)를 헌신적으로 훌륭히 완성해냄으로써 벽암 각성선사는 인조 4년(1626)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라는 시호(始號)와 함께 가사(袈裟), 발우를 특별히 하사 받기도 한다.

남한산성을 축성‧수비‧경영하는 데 앞장섰고, 항마군을 조직해 쓰러져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 했던 벽암 각성선사의 충성스러운 애국심과 헌신적 역량은 우리가 높이 평가해도 모자람이 없다.

조선왕조의 배불 정책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 불교계였지만, 자신들의 안위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던 호국 정신을 살필 수 있는 곳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을 축성하고자 조선 8도의 승려들이 동원되었고, 축성이라는 큰 임무를 완성한 이들도 승려들이었다. 인조 2년(1624) 대대적인 축성을 시작하면서 국가에서 승려들이 거처할 사찰을 먼저 건립했는데, 국청사‧천주사‧남단사‧한흥사‧장경사‧개원사‧동림사 7개 사찰이 그것이다.

개원사를 본영으로 하고 4장대를 중심으로 이들 사찰을 좌우에 2개씩 배치해 조선 8도를 상징하고 있으며 이곳에 부처님의 원력을 총집결했다. 이것은 화엄에서 말하는 ‘일즉다(一卽多)요, 다즉일(多卽一)’의 논리로 모두가 모여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크게보기사찰 이름도 호국과 관계있는 국청‧천주‧한흥‧남단사 등으로 지어 나라 사랑의 실천도량임을 알려준다. 벽암 각성선사가 조선 8도 도총섭으로 전국의 승려들을 관장하고 남한산성 수축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산성이 완공된 후에도 승려 370여 명으로 승군을 조직하여 산성의 수비를 책임졌다. 이 제도가 바로 승번제(僧番制)이고 1894년 갑오경장 이후 개화의 물결에 휩쓸려 폐지될 때까지 270년간 지속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임금을 호위하고 끝까지 항전하던 장소인 남한산성은 이후 반청 운동의 상징적 위치로 있게 된다. 청과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은 후, 조정은 이곳에 수어청(守禦廳)을 설치하여 직접 관리했으며 수어사를 병조판서와 겸직시켜 권력의 핵심에 두었다. 남한산성은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며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방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더없이 중요한 국가 시설이었던 것이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병자호란 후 충절을 지키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삼학사(三學士)의 넋을 기리는 현절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당은 남향이지만 남한산성의 현절사는 남한 행궁을 향하고 있어 서향집이다. 죽어서도 임금을 향한다는 조선의 지고한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한산성의 무수히 많은 돌이 모여 성곽을 이루었듯이, 승병들이 성곽을 수축하고 관리‧유지했다는 사실은, 남한산성이 호국승군들의 호국의지를 빼고는 존재할 수 없는 도량이었음을 증명한다. 조선의 배불 정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피어난 불교의 진충보국 정신은, 종교 이전에 국가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 것이었다. 그 불교의 이상향이 꽃피어난 곳이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 내 사찰들은 ‘국가가 있어야 종교도 있다’는 불교의 종교적 특성을 강조한 사찰들이었다.

또한 이 사찰들은 일반적인 종교 시설이 아니라 군사용 막사 개념인 군막 사찰로 중요한 구실을 했다. 국가의 위기에 변방의 일선에 선 첨병 역할을 사찰이 담당했다는 것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조선 후기 270년간 산성 승번제를 통하여 남한산성을 수비하고 관리‧유지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남한산성 내 사찰은 조선 후기 사회의 특성을 파악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소중한 역사적․문화적 유산들이 형태도 보존하지 못한 채 그 의미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최근에야 남한산성 문화관광 사업단의 신설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등 남한산성의 문화ㆍ역사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지만, 정작 남한산성을 이루어낸 승군과 팔도사찰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한산성 내 사찰은 그 자체가 남한산성의 구성 요소였다. 따라서 팔도사찰의 복원‧정비가 이루어져야만 남한산성의 진정성이 비로소 회복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한불교진흥원은 '남한산성과 팔도사찰'을 펴내기 위해 민병천 이사장과 배명인, 김규칠, 이용부 이사가 직접 남한산성을 수차례 답사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불교진흥원이 의욕을 갖고 추진하는 불교문화총서의 제1권이기도 하기에 그만큼 정성을 기울였던 것이다.

불교진흥원은 이 책에 이어 올해(2010년) 안에 '북한산성과 사찰'(가제)이 출판될 예정이다. 이 책에서는 남한산성에서 다 다루지 않았던 승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 시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관군, 의병들과 많은 전공을 세운 승병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영입하여 산성수호의 책임을 맡기게 되었는지, 이 때 산성축조와 사찰건축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조선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구국의 선봉에 선 승군들의 고충과 이로 인한 불교계의 폐해까지도 조명해 보는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지은이 전보삼 교수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사)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이자 신구대학 미디어콘텐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기도 광주시에 만해기념관을 설립하고, 관장으로서 만해 한용운 선생의 나라사랑과 문학정신, 철학정신을 후세에 전하며 국가사적지인 남한산성 행궁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 『푸른 산빛을 깨치고』, 『남한산성』 등이 있으며, 주요논문으로는 『한용운의 화엄사상연구』, 『남한산성의 문화재 현황과 보존에 관한 연구』 등 50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