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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㊳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6-19 (금) 08:40

아자따삿뚜의 참회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라자가하의 왕궁 뜰에 화사한 웃음꽃이 만발했다. 빔비사라 왕의 폐위를 둘러싸고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했던 친족들이 새로 왕이 된 아자따삿뚜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계기로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아버지를 닮아 인물이 훤하군요.”
 
부왕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 패륜을 저질렀다는, 아자따삿뚜의 마음속에 늘 도사리고 있는 죄책감을 아는 측근들은 왕의 묵은 감정을 털어내려는 듯 애써 너스레를 떨었다. 한껏 과장된 말들로 축하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 발 물러난 이가 있었다. 웨데히였다. 누구보다 기뻐해야 할 왕자의 할머니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손자를 바라보자 아자따삿뚜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러나 그가 남편과 비참한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웨데히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정치는 비정하고 냉혹한 것이다. 어머니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두 마리의 숫사자가 한 숲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아자따삿뚜는 부왕을 폐위시킨 후 감옥에 유폐시켰고, 그것도 모자라 물과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런 남편을 살려보겠다고 꿀에 갠 곡물을 몸에 바르고 감옥을 드나들던 어머니 웨데히의 발걸음마저 막고, 마침내 아버지를 찌는 더위 속에서 목마름과 굶주림에 지쳐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자신의 만행을 잘 아는 아자따삿뚜로서는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아, 이 깊은 골을 무엇으로 메워야 하나?’
아자따삿뚜는 왕비의 품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귀여운 손자를 받아주길, 해맑은 손자의 얼굴에서 지난 일들은 잊어주길 고대하며 어머니 웨데히에게 다가갔다. 웨데히가 선뜻 손자를 받아 안지 않자 아자따삿뚜는 짐짓 어색함을 달래려 아이를 얼렀다. 아자따삿뚜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요?”
“그렇니? 네 아기가 많이 사랑스럽니?”
“네, 어머니. 이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는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것이 다였다. 모자간 오랜만의 대화는 짧게 끝났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답답함을 깨트려보려는 심사로 아자따삿뚜가 다시 말을 꺼냈다.
 
“어머니,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도 저처럼 기뻐하셨나요?”
 
웨데히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친족들의 떠들썩한 웃음이 멈추고 무거운 침묵이 오래도록 궁전을 휘감았다. 눈물을 훔친 웨데히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네 아버지보다 더 너를 사랑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네 엄지손가락을 보거라.”
“엄지손가락을요?”
“그래, 큰 흉터가 있지?”
“예, 이 흉터는 언제 생겼죠?”
“네가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 일이다. 엄지손가락에 큰 종기가 생겼지. 생손을 앓던 무렵부터 경기(驚氣)를 하며 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의사란 의사는 다 불렀지만 이 넓은 마가다 국에서 까무러치는 너의 울음을 그치게 할 사람은 없었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한 사람이 바로 네 아버지셨다.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을 네 아버지가 입으로 빨아주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쳤지…. 울음을 멈추고 방긋거리는 네 모습이 좋아 아버지는 네 손가락에서 입을 떼지 않고 밤을 새우셨다. 혹여 네가 울까 싶어 네 아버지는 그 고름을 모두 삼키셨단다.”
“…”
 
아자따삿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아자따삿뚜가 한참 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눈물은 그의 얼굴을 온통 다 적셨다.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통곡하는 아들을 늙은 어미 웨데히가 다가가 품에 안았다.
그날 이후 아자따삿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이 감길만하면 온몸을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이 기다렸다는 듯 엄습해왔다.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져 만사에 짜증이 일어났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솟구쳤다. 명의 지와까가 백방으로 약을 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지와까도 치료를 포기했다.
 
“저는 대왕의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마가다국 최고의 의사가 치료하지 못한다면 낫지 못할 병이구나.”
“대왕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분 계십니다.”
“그가 누군가?”
“세존이십니다.”
 
아자따삿뚜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빔비사라 왕의 더 없는 벗으로서 자신에게도 위협적인 존재였던 붓다였다. 그래서 한 때 데와닷따와 모의해 살해하려고 했던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그런 붓다를 찾아가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 어떻게 세존에게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고 머리를 숙인단 말인가!’
두려운 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자따삿뚜는 수많은 미녀들을 모아 술과 노래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용감한 장군들을 불러 정벌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혹 권신들이 모의를 획책하는 것은 아닌지 염탐꾼을 풀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그것도 지치면 종교지도자들을 불러 대화도 나눠보았지만 마음속 불안과 답답함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아자따삿뚜의 얼굴에는 나날이 그늘이 짙어갔다. 도톰하던 눈두덩이 내려앉고 횃불처럼 빛나던 눈동자는 하루가 다르게 생기를 잃었다.
그러던 어느 보름날이었다. 정기적인 조례를 위해 화려한 복식을 갖춰 입은 신하들이 장신구를 착용하고 발아래 머리를 조아렸다. 난간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퀭한 눈동자로 바라보던 아자따삿뚜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오늘 밤은 청명하여 낮고 다름없구나. 이런 날 뭘 하면 이 가슴이 시원해질까?”
 
그러나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나서지를 않았다. 처음 듣는 질문도 아니었고, 나름 권해본 일마다 왕의 불쾌함만 더했기 때문이었다. 공연히 나섰다가 도리어 대왕의 미움을 살까 다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지와까였다.
 
“대왕이여, 오늘 밤은 청명하여 낮과 다름없습니다. 이런 밤은 세존을 찾아뵙기에 더없이 좋은 날입니다.”
“세존….”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아자따삿뚜가 입을 열었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저의 망고동산에 계십니다. 세존을 만나보시면 대왕의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질 것입니다.”
“가자, 그대의 망고동산으로.”
 
오백 마리 하얀 코끼리에게 일산과 비단 휘장을 드리워졌다. 상아를 황금으로 장식한 왕의 코끼리에게는 마가다국의 휘장이 펄럭였다. 왕과 부인들을 태운 코끼리 행렬 주위는 번쩍이는 창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에워쌌고, 검은 말을 탄 수많은 신하들이 왕 뒤를 따랐다. 성문을 나서자 밝은 달빛에도 숲 속은 어두웠다. 아자따삿뚜는 어둠이 두려웠다. 흔들리는 횃불의 물결처럼 그의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지와까는 선왕의 주치의로 오랜 세월 총애를 받은 신하가 아닌가? 혹 반역을 꾀한 것일지도 몰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자따삿뚜는 손을 들어 행렬을 멈췄다. 지와까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자따삿뚜는 매서운 눈매로 지와까를 노려보았다.
 
“사실대로 말하라. 감히 날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이냐?”
“대왕이여, 제가 어찌 감히 대왕을 속이겠습니까?”
 
지와까의 진실한 눈빛에 아자따삿뚜는 의심을 거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숲은 여전히 어둡고 정적이 감돌았다. 1,250명의 비구는커녕 사슴 한 마리도 살지 않는 죽음의 숲 같았다.
‘오랜 벗을 죽이고 자신마저 살해하려 한 나에게 세존이 원한을 품고 있을지도 몰라….’
문득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왕은 급히 행렬을 멈추고 칼을 뽑아 들었다.
 
“숲을 뒤져라.”
 
용감한 친위대가 순식간에 숲으로 흩어졌다. 아자따삿뚜는 지와까의 목에 칼날을 겨눴다.
 
“실토하라. 숲 속에 군사와 비구들을 매복시키고 날 유인한 것이지.”
 
지와까는 애원했다.
 
“대왕이여, 제가 어찌 감히 대왕을 속이겠습니까?”
 
한참 지난 후 친위대장이 돌아왔다.
 
“숲 속에 매복한 흔적이 없습니다.”
 
아자따삿뚜는 힘없이 칼을 거뒀다. 왕 일행은 다시 앞으로 나갔다. 멀리 동산의 정문이 보였다. 행렬이 멈췄다. 두려움과 의심을 거두지 못한 아자따삿뚜의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와까,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지와까는 왕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 용기를 북돋았다.
 
“대왕이여, 더 나아가소서. 반드시 행복을 얻고 경사를 맞이할 것입니다.”
 
머뭇거리는 아자따삿뚜를 대신해 지와까가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진하라.”
 
곧 동산 관리인이 달려 나왔다. 코끼리에서 내린 왕은 신하들과 함께 동산으로 돌아섰다. 동산은 말끔하고 아담했다. 아자따삿뚜는 지와까의 안내를 받으며 붓다가 머물고 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두 발을 깨끗이 씻고 강당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짓눌렀던 의심과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넓은 강당 사자좌에 앉은 붓다는 작은 등잔 빛에도 황금의 산처럼 찬란하고, 주위를 에워싼 1,250명의 비구는 숲의 어둠보다 고요하고 얼굴을 달빛보다 맑았다.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거룩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왕은 희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자따삿뚜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우리 왕자도 이처럼 평온하고 지혜로운 눈빛이기를….’
강당에 메아리가 울렸다.
 
“높은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 그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부모는 좋고 유익한 것 있으면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올리는 법.”
 
붓다의 맑은 목소리에는 한 점 질책도 원망도 묻어 있지 않았다.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여. 가까이 오십시오.”
 
평온한 얼굴로 맞이하는 붓다에게 아자따삿뚜는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진속하게 여쭈었다. 수행자들은 세상에 빌붙어 사는 무익한 존재들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던 아자따삿뚜에게 붓다가 말했다.
 
“대왕이여, 나의 가르침에 들어와 부지런히 노력하고,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고요한 곳에서 즐거워하며 방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되고 나아가 모든 번민과 고뇌가 사라진 지혜를 얻게 됩니다. 대왕이여,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는 현생에 이와 같은 이익을 얻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관념들로 화려한 궁전을 짓고 그 속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던 다른 수행자들과는 전혀 달랐다. 붓다의 말씀은 지금 이 자리에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혜들이었다. 아자따삿뚜는 시나브로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아자따삿뚜에게 붓다는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또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른다고 차분하게 일러주었다. 선하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마음가짐과 행동을 부지런히 실천하고, 악하고 무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행동은 삼가라고 당부했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말이었다. 아자따삿뚜는 자리에서 일어나 붓다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세존이시여, 저의 참회를 받아주소서. 선왕께선 독단과 편견 없이 나라를 다스린 성군이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욕심에 눈이 멀어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철없던 저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그대는 진정 어리석고 철이 없었습니다.”
 
붓다는 눈길을 거두고 먼 허공을 바라봤다.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에서 아자따삿뚜는 흐느꼈다. 그의 흐느낌이 잦아들 무렵 붓다가 다시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잘못을 잘못인 줄 알고 뉘우치는 이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이익을 얻고 편안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눈물로 참회하는 아자따삿뚜에게 붓다는 가르침을 베풀어 그를 이롭게 하고 기쁘게 했다. 보름달이 하늘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아자따삿뚜는 무릎을 꿇고 합장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거룩한 세존께, 거룩한 세존의 가르침에, 거룩한 세존의 상가에 귀의합니다. 저 아자따삿뚜가 바른 가르침으로 살아가는 우바새가 되도록 허락하소서. 지금부터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붓다는 부드러운 미소로 허락했다. 붓다의 제자로 다시 태어난 아자따삿뚜는 이후 교단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면 항상 붓다의 자문을 구했다. 선정을 베풀며 법도에 따라 국정을 수행한 아자따삿뚜는 마가다국을 더 강한 강대국으로 성장시켰다. 
 
사끼야 족의 멸망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첫해, 바라나시 사슴동산(사르나트) 동산에 머물 때 마하코살라의 뒤를 이어 왕위에 등극한 빠세나디가 까삘라왓투에 사신을 보내 공주와의 청혼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청혼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군사를 동원하겠다고 위협까지 하자 사끼야 족들은 곤경에 빠졌다. 순수 혈통을 유지하려면 왕족을 보낼 수 없고, 청혼을 거절하면 빠세나디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때 숫도다나를 대리해 까삘라왓투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던 마하나마(아난다의 형) 왕에게 여종과의 사이에서 난 와사와깟띠아가 있었는데, 마하나마 왕은 그녀를 아름답게 단장시켜 빠세나디 왕에게 시집보냈다.
와사와깟띠아는 곧 임신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위두다바라고 했다. 아이는 얼굴이 단정하고 매우 총명했다. 위두다바는 여덟 살 때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외가인 까삘라왓투로 갔다. 그때 까삘라왓투에서는 붓다께서 설법할 강당을 짓고 있었다. 아직 철부지였던 위두다바는 시종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가 붓다가 설법을 할 높은 사자좌에 앉아 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끼야 족 사람들이 놀라 화를 내며 ‘종년의 자식이라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수근 거렸다. 이 말을 들은 위두다바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는 어린 나이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종년의 자식이라며 모욕을 당한 것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분노를 일으켰다. 이때 위두다바는 언젠가 반드시 사끼야 족에 대한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42년 되던 해, 아버지 빠세나디 왕을 내쫓고 왕이 된 위두다바는 예전의 수모를 잊지 않고 곧바로 사끼야 족을 괴멸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소식은 곧 붓다에게도 전해졌다. 붓다는 위두다바의 군대가 까삘라왓투로 가는 국경 근처의 큰 신작로 옆,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 밑에 미리 와서 앉아 았었다.
군대를 이끌고 까삘라왓투로 향하던 위두다바 왕이 붓다를 발견하고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잎이 무성한 나무도 있는데 어찌하여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앙상한 나무 밑에 앉아 계십니까?”
“왕이여, 친족의 그늘이 없는 사람은 이처럼 앙상한 나무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붓다가 대답했다. 위두다바 왕은 80이 다 되어가는 노스승이 그늘이 성근 뙤약볕에 앉아서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고, 훗날을 기약하며 군사를 되돌렸다. 하지만 복수심에 불타던 왕은 얼마 후 다시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 그러나 역시 붓다가 같은 장소에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할 수 없이 군사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두다바 왕이 세 번째 군사를 일으켰을 때 붓다는 ‘업보란 하늘로 옮길 수도, 쇠그물로 덮을 수도 없다’고 탄식하며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붓다가 나타나지 않자 위두다바 왕은 그대로 군사를 몰아 까삘라왓투를 공격했다. 수많은 사끼야 사람들이 코살라의 군사들이 몰고 온 코끼리에 밟혀 죽었다. 참극을 보다 못한 사끼야 족의 왕 마하나마가 위두다바 왕에게 자신이 연못에 들어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살육을 멈춰달라고 애원했다. 마하나마 왕은 위두다바의 외할아버지였으므로 그도 이를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하나마 왕은 연못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나무뿌리에 자신의 머리를 묶고 떠오르지 못하게 했다. 살육이 멈춰진 시간 동안에 한 사람이라도 이곳을 탈출하도록 하기 위한 왕의 마지막 연민심이었다. 그 사이 많은 사끼야 족들이 도망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까삘라왓투를 멸망시키고 사왓티로 돌아가던 위두다바 왕은 니그로다 정원을 지나던 중, 도망친 사끼야 족 여자들을 목격했다. 왕은 술에 취해 그 중 한 여인을 희롱하다가 반항하자 화가 나 주위에 숨어 있던 다른 여자들까지 찾아내 모조리 죽였다.
눈에 띠는 사끼야 족을 무참하게 몰살시킨 위두다바 왕은 오랜 원한을 갚았다며 의기양양해서 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궁에 돌아와 보니 제따 왕자가 유흥을 즐기고 있었다. 위두다바 왕이 왜 전쟁에 나가지 않았느냐고 꾸짖자 왕자는 차마 사람을 죽일 수 없어서 나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 위두다바는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단숨에 제따 왕자를 베고 말았다.
붓다는 위두다바의 군대가 돌아간 후 사끼야 족 처녀들이 살해당한 니그로다 숲에 가서 죽은 사끼야 족을 위로하는 인과법문을 설법하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내가 법을 설하던 곳이었으나 이제 텅 빈 폐허가 되고 말았구나. 나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복수를 복수로써 갚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복수는 새로운 증오를 낳을 뿐,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더 크고 더 힘이 있는, 자비와 복수를 하나로 묶어낼 그 무엇이 있다. 비구들이여, 앞으로 이레 안에 위두다바와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모두 살생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다.”
 
붓다의 예언대로 위두다바 왕은 군사들과 시녀들을 데리고 아띨라 강변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베풀던 중, 갑자기 많은 개미떼가 몰려오자 할 수 없이 연회장을 강가로 옮겼는데 그날 밤 엄청난 폭우가 내려 왕과 군사들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개선한 지 불과 이레만의 일이었다. 이것은 살육의 피할 수 없는 과보였다. 이때가 붓다 성도 42년째의 일이었다.
 
화살보다 더 빠른 것
 
붓다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서 머물던 어느 날이었다. 붓다가 주위에 있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들이여, 궁술의 달인 네 사람이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 네 사람이 힘껏 동서남북을 향해 각자 활을 당긴다면 나는 그 화살을 모두 잡아내겠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호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대들은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 남자는 사람의 능력을 넘어선 빛보다 빠른 사람이 분명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자들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빛보다 더 빠른 사람이 분명합니다. 설사 한 사람의 궁사가 쏜 화살을 잡기만 해도 그럴 것인데, 네 사람이 동시에 쏜 화살을 잡아낸다면 그는 빛보다 빠른 사람이 분명합니다.”
 
붓다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그 남자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해와 달이 움직이는 속도다. 해와 달이 움직이는 속도는 그 남자보다 훨씬 더 빠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른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수명이다. 사람의 수명이 변해가는 속도는 해와 달이 변해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이렇게 사유하여 숙고한 사람만이 인생을 헛되이 허비하지 않는다.”
 
제자들은 화살의 비유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하여가는 스승의 제자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법문이었기에 눈물을 흘리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다. 
 
온몸에 털이 솟구치는…
 
붓다의 나이 79세 때, 웨살리의 마하와나 수도원의 꿋따가라 살라 2층에 머물 때였다. 그때 릿차위 족의 왕자 수낙깟따(sunakkhatta)가 신통력과 사물의 시초에 대해 함구하는 붓다를 비난하면서 상가를 떠났다. 그리고 나체수행자 꼬락캇띠야(korakkhattiyavatthu)의 제자가 되어 웨살리의 수행자들에게 이렇게 붓다를 비난했다.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했고 지극한 탁월함도 없다. 단지 사유를 조작하여 즉흥적으로 말재주에 따라 담마를 설할 뿐이다.”
 
마침 사리뿟따가 웨살리 시내로 탁발을 갔다가 수낙깟따가 붓다를 비난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리뿟따가 탁발에서 돌아와 이런 비난의 소식을 전하자 붓다가 말했다.
 
 
“사리뿟따, 어리석은 수낙깟따는 나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나의 정신적인 능력은 하나에서 여럿이 되며,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자유로운 공간처럼 집착 없이 담을 통과하고 성벽을 통과하고 공중에서 물속에서 땅속을 드나든다. 사리뿟따,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 귀로 멀고 가까운 신들과 인간의 소리를 다 듣는다. 또 나에게는 열 가지 힘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첫째, 나는 이 세상에서 조건을 갖춘 경우와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여실히 안다. 둘째, 나는 이 세상에서 과거‧미래‧현재의 업보에 관해 가능성과 조건을 통찰하여 그 과보를 안다. 셋째, 나는 이 세상에서 모든 운명으로 인도하는 길에 관해 안다. 넷째, 나는 이 세상에서 많은 세계로 구성된 다양한 세계에 관해서 안다. 다섯째 나는 이 세상에서 다른 중생들의 여러 가지 경향에 관해서 안다. 여섯째, 나는 이 세상에서 중생들의 능력이 높고 낮음에 관해서 안다. 일곱째, 나는 이 세상에서 명상‧해탈‧사마디‧성취에 대한 오염과 청정과 벗어남에 대해서 안다. 여덟째, 나는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한다. 예를 들어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내지 열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가 파괴되고 수많은 세계가 생성되면서 당시 나는 어떤 용모를 지녔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어떤 목숨을 지녔으며, 그곳에서 죽은 뒤 다시 태어나는 전생의 삶의 시간과 모습을 낱낱이 기억한다. 아홉째, 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의 눈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 등장하는 중생들에 관하여 분명하게 안다. 우리에게 다섯 갈래의 운명이 있다. 다섯 갈래란 지옥‧축생‧아귀‧인간‧천상이다. 나는 지옥과 지옥에 이르는 길을 알며, 그 행로를 따라 몸이 파괴되고 죽은 뒤에 고통스러운 곳, 나쁜 곳, 타락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을 여실히 안다. 축생과 축생에 이르는 길, 아귀와 아귀에 이르는 길, 인간과 인간에 이르는 길, 천상과 천상에 이르는 길을 여실히 안다. 열째, 나는 닙바나(열반)와 닙바나에 이르는 길을 여실히 알며, 그 길을 따라 번뇌를 깨뜨려 마음의 불순물이 다한 목샤(Moksha, 열반)를 지금 여기에서 여실히 안다. 나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본다. 그런데 나에 관해 ‘수행자 고따마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무거운 과보로 인해 던져지듯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붓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만일 여기에 숯불구덩이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오로지 숯불구덩이를 바라보고 살아왔다면 그 사람은 그와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고 길을 걸었으므로 사후에 숯불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 만일 여기에 똥구덩이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오로지 똥구덩이만 바라보고 살아왔다면 그 사람 역시 그와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고 길을 걸었으므로 사후에 똥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 만일 이층누각에 안락의자, 긴 털의 흑모 양탄자, 긴 털의 백모 양탄자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오로지 그 누각만을 애지중지하고 살아왔다면 그 사람 역시 그와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고 길을 걸었으므로 반드시 누각으로 다시 올 것이다.”
 
붓다가 사리뿟다를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사리뿟따, 나의 고통스러운 삶은 이와 같았다. 나는 발가벗고, 편의를 거부하고, 손가락을 빨고, 오라는 초대를 거부하고, 제공된 음식을 거부하고, 할당된 음식을 거부하고, 옹기에서 떠주는 것을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가 받지 않고, 임산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물고기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곡주를 받지 않고, 과일주를 받지 않고, 발효된 차를 마시지 않았다. 나는 한 끼를 위해 한 집에 머물렀고, 두 끼를 위해 두 집에 머물렀고, 일곱 끼를 위해 일곱 집에 머물렀다. 나는 하루 한 번 식사했고, 사흘에 한 번 식사했고, 나흘에 한 번 식사했고, 점점 보름에 한 번 식사를 했다. 오로지 야채만 먹거나, 쌀겨만 먹거나, 풀만 먹거나, 쇠똥만을 먹었다. 또한 나는 숲속의 나무뿌리나 열매를 먹고, 시체에 덮인 옷을 입고, 누더기 옷을 입고, 띠리따 나무의 껍질로 만든 옷을 입었다. 그리고 나는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고행을 했다. 나는 앉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나는 못이 박힌 침대를 잠자리로 사용했다. 사리뿟따, 나의 구차한 삶은 이와 같았다. 몇 년 동안 먼지와 때가 몸에 쌓여 피부이끼가 생겨났다. 마치 띤두까 나무의 그루터기가 수년간 지나면서 피부이끼가 생겨난 것처럼, 내 몸에도 피부이끼가 생겼다. 나의 인욕하는 삶은 이와 같았다. 나는 나아가고 물러섬을 깊이 새기고 한 방울의 물에도 나의 연민을 실어 ‘나는 길 위의 틈새에 사는 작은 생명체라도 다치지 않기를’ 하고 기원했다. 나의 외로운 삶은 이와 같았다. 나는 한림처에 들어가서 소치는 사람이나 나물 캐는 사람이나 땔감을 줍는 사람이나 나무꾼을 보면, 숲에서 숲으로, 밀림에서 밀림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고지에서 고지로 그들을 피했다. 마치 사슴이 인간을 피하듯이, 그들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는 외양간에 소가 떠나고 소치는 목자가 떠나면 그것에 사지를 구부리고 들어가 젖을 빠는 어린 송아지의 똥을 먹었다. 나아가 나는 내 똥과 오줌을 먹었다. 사리뿟따, 내가 먹은 부정한 음식은 이와 같았다. 나는 죽은 자의 뼈를 베개 삼아 무덤가에 침대를 만들었다. 소치는 아이들이 다가와 침을 뱉고, 오줌을 싸고, 오물을 던지고, 내 귀에 막대기를 넣었다. 어떤 수행자는 청정은 음식에서 온다고 말하며 꼴라열매를 먹고, 꼴라열매의 즙을 마시고, 꼴라열매의 혼합음료를 복용했다. 나 역시 꼴라열매를 먹었다. 하루 한 개의 꼴라열매를 먹자 나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나의 사지는 대나무 줄기의 옹이처럼 되었고, 나의 엉덩이는 낙타의 발과 같고, 갈빗대는 지붕 없는 서까래와 흡사했다. 눈빛은 눈구덩이가 가라앉아 깊은 우물 속의 물빛 같았다. 창자가 등에 붙어 창자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지고 등뼈를 만지면 창자가 만져졌다. 그것은 최상의 고행이었다.”
 
고행시절 겪었던 극심한 고통을 상세히 설명한 붓다는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리뿟따, 이제 나는 늙고 병들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내 나이 팔십에 가까워졌지만 아직 나의 총명은 쇠퇴하지 않았다. 나의 총명한 제자들 역시 마치 잘 훈련되고 실천되고 숙련된 궁수가 가볍게 활을 쏘듯이, 알아차림과 보존과 상가의 총명한 지혜를 갖추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네 가지 새김의 토대(사념처)에 대해 묻고 또 물으면 나는 대답하고 또 대답할 것이다. 내가 해설하면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나 대소변을 볼 때나, 거듭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래도 나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다함이 없고, 가르침의 언어도 다함이 없고, 대답도 다함이 없을 것이다.”
 
그때 비구 나가싸말라가 붓다의 등 뒤에서 부채를 부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이 법문을 들으니 온몸에 털이 솟구칩니다. 이 법문의 제목을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나가싸말라, 이 법문을 ‘온몸에 털이 솟구치는 법문’으로 기억하라.”
 
붓다가 대답했다. 사리뿟따 장로는 온몸에 털이 솟구치는 법문을 마음 깊이 기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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