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에 찍힌 발자국2
 -구산 스님의 바랑   
 

 

 눈은 흰나비 떼가 무섭게 몰려오듯 쌓여갔습니다. 이제 토굴은 눈에 고립돼 작은 섬처럼 외로워졌습니다. 가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면 솜이불 같은 눈 속에서 조릿대가 꼼지락거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조릿대는 쌓인 눈이 무거워지면 가지가 휘어지면서 올빼미가 날갯짓하듯 ‘푸드득 푸드득’ 하고 소리를 내었습니다.
 달포 후에는 쌀과 보리가 떨어져 스님은 굶어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겨울 날 양식을 미리 준비해 둘 걸. 산짐승들이 오지 않는 걸 보니 굉장한 눈이야.”

 

 이때 산 아랫마을에 사는 어느 아주머니 보살도 잠을 못 이루며 걱정했습니다. 보살이란 여자 신도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 신도는 토굴에서 정진하는 스님의 양식을 대주었던 아주머니였습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토굴로 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산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낭떠러지가 있고 산길이 몹시 가파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눈이 쌓여 산길인지 낭떠러지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긴,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해도 돌아가는 먼 길이 있긴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아주머니 신도는 쌀을 머리에 이고 먼 길을 나섰습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눈은 도토리나무들의 허리가 겨우 보일 만큼 산자락을 덮고 있었습니다. 어디가 산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아주머니 신도는 막막했습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눈 감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관세음보살은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보살이었습니다. 아주머니 신도가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자 산토끼 발자국이 하나 보였습니다. 산토끼가 지나간 지 얼마 안 된 듯 선명하게 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산토끼 발자국을 따라가 보자. 먹이를 구하러 산 아래까지 내려왔던 산토끼가 분명할 것이다.”
 아주머니 신도는 구산 스님의 가족 같은 백운산 산토끼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토굴에서 산토끼를 보았던 것입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산토끼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스님이 계시는 토굴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산등성이와 골짜기를 몇 번이나 넘고 넘었습니다.
 지름길로 가면 벌써 토굴에 다다를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주머니 신도는 산토끼를 믿었습니다. 지치지 않고  산토끼 발자국을 따라 바지런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산토끼 발자국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더 또렷했습니다.
 마침내 토굴에서 풍경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주머니 신도는 조릿대 숲속으로 사라지는 산토끼를 언뜻 보았습니다. 그때 구산 스님은 마루에 앉아 참선에 들어 있었습니다. 참선 공부에 빠져 양식 걱정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해 겨울도 구산 스님은 토굴에서 부지런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신도에게 눈 덮인 산길을 안내해 준 산토끼 덕분이었습니다. 평소에 밥덩이를 내어준 구산 스님에게 산토끼가 은혜를 갚은 것이지요. 그 산토끼는 태어나기 전에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시골 마을에서 구산 스님에게 이발을 공짜로 했던 가난한 산중 농부가 아니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