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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 ㉞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5-22 (금) 08:51

사리뿟따의 사자후
 
안거 마지막 날, 사왓티에서 우기를 보낸 비구들은 가사와 발우를 손질하고 유행(遊行)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떠날 채비를 끝낸 비구들은 하나 둘씩 동원정사로 모여들었다. 해가 기울며 어둠이 드리울 무렵,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동원정사 안 큰 강당은 비구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동쪽 하늘로 보름달이 떠오르자 한 비구가 일어나 말문을 열었다.
 
“비구들이여, 여러분께 청합니다. 지난 삼 개월 동안 함께 지내며 나의 말과 행동 가운데 진리에 부합하지 못하고 지탄받을 만한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주십시오.”
 
그 순간 바람결에 강당 안으로 스며드는 벌레의 울음소리도 정적을 깨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여러분께 청합니다. 지난 삼 개월 동안 내가 진리에 부합하지 못하고 지탄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거나 듣거나 의심한 적이 있는 분은 말씀해주십시오.”
 
그 비구는 바로 붓다였다. 붓다는 달빛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중들을 향해 세 번이나 물었다.
 
“비구들이여, 여러분께 청합니다. 나에게 진리에 부합하지 못하고 지탄받을 만한 행동이 있었다면 부디 지적해주십시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구들 사이에서 상수제자 사리뿟따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합장하였다.
 
“세존이시여, 당신의 말씀과 행동 가운데 적당하지 못한 점을 제자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세존의 말씀 한마디는 모두 훌륭한 법입니다. 열반에 이르는 법을 그처럼 능숙하게 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존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열반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저희는 그 길을 따라 수행의 과위를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붓다의 뒤를 이어 수많은 비구들이 차례차례 자신에게 있었던 허물을 대중에게 물었다. 밤은 깊어갔다. 동쪽 하늘이 밝아올 무렵, 자자(自恣)를 마친 비구들이 새롭게 제공된 가사와 발우를 챙겨들었다. 가장 먼저 사리뿟따가 세존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세존이시여, 사왓티에서 안거를 마친 저는 이제 세상으로 유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사리뿟따, 그대가 가려는 곳으로 가라. 제도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거든 제도하고, 해탈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해탈을 얻게 하고,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열반을 얻게 해 주도록 하라. 사리뿟따, 그대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이렇게 모든 비구들이 차례를 지켜 붓다에게 작별인사를 드리고 늘 그랬듯이 조용히 떠나갔다. 사리뿟따와 그 제자들이 떠난 후, 사왓티에서 안거한 또 다른 비구들이 차례차례 붓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안거 동안 불편함은 없었는지를 묻는 붓다의 작별인사에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한 비구가 있었다. 그는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날을 세웠다.
 
“스승이시여, 이번 안거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사리뿟따는 참 교만합니다. 자기 말에 고분고분한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고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업신여겼습니다. 자기가 무슨 제일 제자라고 사사건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간섭이 끝없었습니다. 오늘만 해도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정겹게 인사를 나누더니 저를 보자 어깨를 치고 지나가더군요. 그리고 한마디 사과도 없이 떠나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붓다는 즉시 목갈라나와 아난다를 불렀다.
 
“목갈라나여, 지금 당장 사리뿟따를 돌아오게 하라. 아난다, 그대는 사왓티에서 안거한 비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모이게 하라.”
 
붓다의 지시에 따라 목갈라나는 사리뿟따를 찾아 떠났고, 아난다는 사왓티의 정사를 돌며 외쳤다.
 
“비구들께서는 들으십시오. 세존께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동원정사로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비구들께서는 지금 바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동원정사로 모여 주십시오.”
 
몸과 입과 마음의 움직임에 한순간도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는 사리뿟따 장로의 정진력과 위상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아난다는, 큰 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 사리뿟따께서 사자후를 하실 겁니다. 비구들께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상가대중이 하나 둘 동원정사로 다시 모여들자 사리뿟따를 비난했던 비구의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높이 떴던 해가 기울자 동원정사 강당은 다시 비구들로 들어찼다. 어둠이 드리워질 무렵 길을 떠났던 사리뿟따도 동원정사로 돌아왔다.
 
“사리뿟따여, 등불을 밝히라.”
 
대중 앞에 공손히 합장하고 선 사리뿟따에게 붓다가 말했다.
 
“사리뿟따, 그대가 떠난 뒤 얼마 후 저 비구가 나에게 찾아와 말했다. 안거 동안 사리뿟따가 교만하고 제일 제자임을 치부하며 사람을 업신여겼고, 사사건건 간섭했다고 말했다. 또 오늘 유행을 떠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는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저 비구에게는 어깨를 치며 지나쳤고, 그런데도 한마디 사과도 없이 떠났다고 분개했다. 사리뿟따여, 저 비구의 말이 사실인가?”

사리뿟따가 고개를 돌려 비구를 바라보았다. 낯은 익지만 이름은 모르는 비구였다. 어깨를 부딪힌 일이 있다면 아마도 가사 자락이 스칠 정도의 가벼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그 비구를 비난하거나 곤경에 빠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사리뿟따는 무릎을 꿇었다.
 
“세존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그러나 사리뿟따의 생각을 훤하게 읽고 있던 붓다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차가웠다.
 
“사리뿟따여,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그대는 많은 이들의 스승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 그대가 대중의 의심을 산다는 건 결코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니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사리뿟따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강당을 울렸다.
 
“세존이시여, 늘 자신을 살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동료 수행자에게 모욕을 주고 유행을 떠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늘 스스로를 살피며 주의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청정한 수행자를 업신여기고, 그런 행위를 저지르고도 기억하지 못하며, 그런 행위를 저지르고도 참회하지 않은 채 유행을 떠났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땅에는 깨끗한 것도 버리고 깨끗하지 못한 것도 버립니다. 똥, 오줌, 침, 가래, 피, 고름도 버립니다. 그런 것을 버려도 땅은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혐오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걸레는 깨끗한 물건도 닦고 깨끗하지 못한 물건도 닦습니다. 똥, 오줌, 가래, 침, 피, 고름도 닦습니다. 그런 것을 닦더라도 걸레는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혐오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손이 잘린 비천한 찬달라(旃陀羅, 불가촉천민)는 모든 이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넝마를 걸치고 깨어진 바리때를 든 찬달라는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이들에게도 고개를 숙입니다. 감히 머리를 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수모를 견딜 줄 아는 찬달라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며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두 뿔이 잘린 황소는 네거리 한가운데서도 사람을 들이받지 않습니다. 뿔이 잘리고 잘 길들여진 황소는 참을성이 많아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노닐어도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 마음은 대지와 같고, 걸레와 같고, 찬달라와 같고, 뿔이 잘린 황소와 같아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고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당신으로 인해 눈뜬 진리 안에서 선을 쌓으며 자유롭게 노닐 뿐입니다.”
 
고개를 숙인 그의 온화한 몸짓은 코끼리보다 웅장했고, 낮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는 사자의 포효보다 우렁찼다. 잠시 깊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붓다가 말했다.
 
“비구여, 이제 그대가 말해보라. 추호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사리뿟따를 비난한 비구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붓다의 발아래 엎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청정한 수행자를 모함하고 비방했습니다.”
 
붓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대는 먼저 사리뿟따에게 참회해야 한다.”
 
비구는 사리뿟따의 두발에 눈물로 참회했다.
 
“존자여 용서하십시오. 미치광이처럼 안정되지 못한 제가 질투와 교만을 누루지 못하고 청정한 당신을 모함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사리뿟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눈물짓는 비구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합장했다.
 
“비구의 허물을 제가 용서하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었다면 비구께서도 용서하십시오.”
 
붓다의 교단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보름달 주위를 수놓은 밤하늘의 별처럼 제자들이 스승 붓다 못지않게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은 사리뿟따였다. 
 
잇따른 여자 아라한들의 출현
 
붓다 당시, 마가다 왕국이나 까시, 코살라 왕국의 사회조직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이등시민으로서 실로 비천한 것이었다. 가르갸, 마이뜨레이 등 공개토론과 논쟁에 활발히 참여한 몇몇 극소수의 여류 명사들이 있기는 했지만, 여자들은 거의 자기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잠부디빠에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은 뿌리 깊고 다양했다. 대개는 여인들이 겨우 남자들을 위한 향락의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들의 능력이란 고작 잡다한 가정의 허드렛일이나 자녀를 부양하는 일에 한정된 것으로 여겼다. 여자도 남자가 도달할 수 있는 수행의 절정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여자가 왕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라비 국의 공주로 태어난 쎌라(Selā)는 알라비국의 공주라는 신분이기에 알라비까라고도 불렸다. 그녀 역시 여인을 다만 감각적 향락의 대상일 뿐이며, 이 세계에서 자유와 평안을 이룰 수 없는 존재라고 믿었다. 붓다가 알라비 국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아버지 알라비왕과 함께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확신을 얻어 재가 여신도가 되었다가 나중에 외경을 얻어 출가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던 그녀는 감각적 쾌락의 부질없음을 통찰하고, 형성된 것들을 성찰하면서 인연이 무르익어 궁극적인 앎이 성숙하자 머지않아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지를 이렇게 노래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창칼과 같고
존재의 다발은 그 형틀과 같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라는 것,
이제 나에게는 불쾌한 것이다.
 
모든 곳에서 환락은 파괴되고
어둠의 다발은 부수어졌으니
악마여, 그대는 이와 같이 알라.
사신이여, 그대는 패배했다.
 
쏘마(Somā)는 자신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남자가 획득할 수 있는 도덕적 궁극에 이를 수 없다고 생각한 여인이었다. 빔비사라 왕의 제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성년이 되었을 때, 라자가하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확신을 얻어 재가의 여신도가 되었다가 나중에 세속에 대한 염오를 일으켜 출가한 뒤 통찰 수행을 통해 분석적인 앎과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녀는 거룩한 경지를 얻은 후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왓티에 머물렀다. 쏘마는 특히 여성을 폄훼하는 사람들을 단호하게 꾸짖곤 했다. 최상의 경지는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얻을 수 없다는 당시의 팽배했던 편견에 대해 쏘마는 게송을 통해 단호하게 반박했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모든 곳에서 환락은 파괴되고
어둠의 다발은 부수어졌으니
악마여, 그대는 이와 같이 알라.
사신이여, 그대는 패배했다.
  
여성 수행자 위말라(Vimalā)는 오랫동안 여자에게는 오직 아름다움만이 중요한 것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속아 살았던 여인이었다. 웨살리에서 자신의 미모를 팔아 살아가는 여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성년이 되어 어머니처럼 미모를 팔아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목갈라나 존자가 웨살리 시내에서 탁발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사로잡혀 그의 처소까지 찾아가 유혹했다. 이런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이교도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목갈라나는 그녀에게 부정(不淨)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잘못된 행동을 나무랐다. 그러나 위말라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일어났고 외경심이 생겨 우바이가 되었다가 나중에 교단의 허락을 받아 출가했다. 그녀는 이후 붓다의 지도아래 용맹정진하면서 인연이 무르익자 오래지 않아 거룩한 경지를 얻었고, 그때의 성찰을 감흥어린 시구로 노래했다.
 
용모와 자태와
미모와 명성에 취하고
젊음에 우쭐하여
나는 다른 여인들을 깔보았다.
 
이 몸을 요란하게 단장하고
어리석은 사내를 유혹하며
올가미에 쳐놓은 사냥꾼처럼
창가(娼家)에 서 있었다.
 
장식을 보여주면서
여러 은밀한 곳과 드러난 곳을 보였으며
갖가지 종류의 환술을 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희롱했다.
 
그러한 내가 오늘 삭발하고
대의(大衣)를 걸치고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 앉아
사유의 여읨을 성취했다.
 
천계에 속하든 인간계에 속하든
일체의 멍에를 끊어버리고
일체의 번뇌를 멸진시켰으니
청량해져서 우리는 열반을 실현했다.
 
꾸루 국의 깜마싸담마 시에서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난둣따라(Nanduttarā)는 몇 가지 학문과 기예를 배우고 출가하여 자이나교도가 되었던 여인이다. 그녀는 목갈라나에게 논쟁을 걸었다가 훈계를 받고 확신을 얻어 붓다의 상가에 출가했다. 그녀는 붓다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는 그녀가 참여할 수 있는 종교 활동이란 그저 해나 달에게 절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녀 역시 분석적인 앎과 거룩한 경지를 성취한 후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다가 궁극의 경지를 이룬 감흥을 이렇게 노래했다.
 
화신과 월신과 천신에 
항상 나는 예배했다.
강의 목욕장에 나아가
물속에 들어가곤 했다.
 
많은 서계(誓戒)를 지켰으니,
머리를 반쯤 깎고
땅바닥을 침상으로 만들었고
밤에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단장과 치장을 즐기고
목욕과 마사지도 역시 즐기며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괴로워하면서도
이 몸을 애지중지하기도 했다.
 
그 후에 확신을 얻어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이 몸을 있는 그대로 보니,
감각적 쾌락의 욕망과 탐욕이 뽑혔다.
 
일체의 존재가 끊어지고
욕망도 소망도 끊어지고
일체의 멍에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적멸을 얻었다.  
 
쏘나(Sona)는 사왓티 시의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성년이 되자 시집을 가서 열 명을 자식을 얻어 자식을 많이 낳은 여인이라는 의미의 ‘바후뿌띠까’라는 명칭을 얻었다. 그녀는 남편이 출가했고, 나이가 들었을 때 모든 재산을 아들과 딸들에게 분배하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아들딸들은 단 며칠 동안만 그녀를 봉양하고는 멸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이렇게 자식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은 다만 자녀를 생산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그녀는 사왓티의 비구니 수행처를 찾아가 출가를 요청했다. 구족계를 받은 그녀는 ‘나이가 들어 출가하였으니, 방일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구니로서의 모든 의무를 완수하면서 밤새도록 정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낮은 건물의 기둥을 손으로 잡고 발걸음을 옮기며 수행자의 삶을 닦았고, 걸으면서도, 어두운 곳에서는 머리를 나무나 다른 것에 부딪칠까봐 나무에 손을 대며 걸으면서 정진했다. 그녀의 이런 용맹정진이 알려지면서 붓다가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특별한 관심을 주고 자상하게 가르침을 설했다.
 
“쏘나여, 최상의 원리를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최상의 원리를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것이 낫다.”
 
붓다의 이 가르침을 듣자 쏘나는 그 자리에서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그녀는 자신이 얻은 경지를 감흥어린 시구로 읊었다.
 
이러한 집적의 몸으로
열 명의 자식을 낳았으니
그 후 허약하고 늙어서
나는 수행녀를 찾아갔다.
 
그녀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존재의 다발과 감각의 영역과 인식의 세계에 대하여
그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깎고 나는 출가했다.
 
그러한 내가 정학녀(淨學女)였을 때에
하늘눈이 청정해졌고
예전에 내가 살았던
전생의 삶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마음을 통일하고 잘 정립하여
인상을 여읨을 알고
나는 즉시 해탈을 얻었으니,
집착 없이 적멸에 들었다.
 
실로 다섯 존재의 다발들은
완전히 알려졌고 뿌리째 뽑혔다.
비참한 고령의 그대여, 부끄럽다.
그러나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  
 
이처럼 붓다에 의해 설립되고 붓다의 양모 고따미에 의해 인도된 여성 수행자, 비구니들은 붓다에 의해 잘 설해진 가르침에 따라 자신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변혁시키는 창의성과 진취적 기상을 발휘했다. 여인들의 용기와 열정은 마침내 그들로 하여금 장애를 극복하고 도덕적‧정신적인 문제에서 남성과 동일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쑤바 “감각적 쾌락은 악마가 펴놓은 그물”
 
그러나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그들 여성 제자들이 마주쳐야 되는 문제가 있었다. 평온하고 고요한 주변 분위기가 좋아 명의 지와까의 망고 숲에 살고 있던 비구니 쑤바(Subhā)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 사실 어느 때, 어디서나 다른 비구니들도 겪을 수 있는 문제였다. 어느 날 탁발을 마치고 망고 숲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호색한이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멈춰 선 쑤바 비구니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벗이여, 혹시 내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가? 왜 그대는 앞길을 가로막는 것인가? 나는 거룩한 붓다의 제자로 청정한 길에 들어섰다. 무슨 까닭으로 내 길을 방해하는가?”
“그대는 젊고 아름답다. 무슨 나쁜 일을 저질렀기에 그 황색 가사를 걸치고 사문처럼 나선 것인가? 그 추한 가사를 벗어 던지라. 그대의 아름다운 몸은 그따위 더러운 넝마가 아니라, 까시 산(産) 비단으로 감쌀 만하다. 그대보다 더 사랑스런 여인은 어디에도 없으리라. 인생을 즐기자. 봄의 첫 새벽, 청춘의 즐거움을 누릴 더 좋은 시기는 없으리라. 나무들 꽃으로 덮여, 하늘엔 향기가 가득하다. 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내 그대에게 온갖 환락을 누리게 하리라. 무엇 때문에 그대는 그 사랑스런 육체를 시들게 하는가? 연못에서 꺾어낸 연꽃처럼 실없이 시들게 하려는가?”
“결국 화장터에 눕게 될 이 몸뚱이를 그렇게 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 쑤바 비구니가 물었다.
“이 세상에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극히 드물다. 오,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의 눈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무색하게 한다. 누가 그 고운 눈을 보고 잊을 수 있으리! 사랑스런 여인이여, 그 의미 없는 생활을 버리고 그대가 가진 특별한 자연의 선물을 즐기자. 내 그대에게 간절히 비나니, 그대를 보고 난 뒤,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벗이여, 진전 없는 길을 가려하지 마라. 붓다의 제자를 따라다니는 것은, 마치 달에게 애원하거나, 장대한 히말라야를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다. 나는 이미 모든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이 단출한 삶의 기쁨을 택했다.”
 
젊은이는 그 정도의 말로는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의 악의를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을 것 같았다.
 
“벗이여, 그대는 내 눈에 반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이 두 눈을 뽑아 그대에게 준다면 만족하겠는가? 그러면 그대는 날 더 이상 성가시게 하지 않겠는가?”
 
젊은이는 당황했다.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쑤바가 다시 말했다.
 
“벗이여, 나는 이 더러운 육체 때문에 괴로워하고 시달려 왔다. 나는 이 따위 몸뚱이에는 집착하지 않는다. 감각적 쾌락은 날선 칼이요, 인간의 매력이란 망나니의 도마와도 같다. 나는 거기서 어떤 기쁨도 찾을 수 없다.”
“고행자들의 그 따위 말에 속지 마라. 그들은 온갖 감각적 쾌락을 즐기고, 더 이상 향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정을 떠나지 않았는가? 우리는 단 한 번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 유일한 향락의 기회를 내던져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젊은이가 말했다.
“벗이여, 그대가 말한 대로 나이가 들었을 때야 출가한다고 생각하는 수행자나 바라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수행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사끼야 족 출신의 성자, 고따마 붓다의 가르침을 따른다. 나이든 사람이 수행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어찌 젊은 사람이라고 그런 행복을 이룰 수 없겠는가?”
“하지만 맛도 보지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감각적 쾌락을 비난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있다. 나는 그런 쾌락을 탐닉하는 자들이 그 욕망 때문에 결국 어떤 고통을 받는지 보아왔다. 나는 사람들이 탐욕과 증오와 미혹의 결과로 끝내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마는 것을 보았다. 빔비사라 왕이 그와 같은 범죄자를 처형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들을 처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자기 행위의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누이여, 그대가 옳기를 바란다. 그대의 삶에 기쁨이 있기를!”
 
 
젊은이는 자기 행위가 기다리고 있는 불행한 결과를 떠올리고,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는 쑤바에게 수작을 거는 것은 전혀 쓸데없는 짓임을 알았다. 그는 달아나다시피 돌아서 사라졌다.
붓다를 만난 자리에서 쑤바는 그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붓다는 쑤바의 능력과 용기, 그리고 상황을 처리한 그녀의 방법을 칭찬했다. 또한 외롭게 수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비구니 제자들이 당면한 위험을 염려한 붓다는 그처럼 외진 거처는 피하라고 당부했다.
쑤바는 자신의 경계를 이렇게 노래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은
공포스러운 공격과 같고
뱀의 머리와 같으나,
어리석고 눈먼 일반 사람들은 그것들을 즐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라는
진흙탕에 사로잡혔으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다.
삶과 죽음의 끝을 그들은 곧바로 알지 못한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 때문에
나쁜 존재의 길로 나아가며
자신의 질병을 가져다주는 길로
사람들은 다양하게 걸어간다.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적의를 낳는 것, 고뇌를 주는 것,
오염시키는 것, 세속의 미끼,
결박시키는 것, 죽음의 속박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광기를 일으키고, 속이고, 마음을 혼란시키는 것으로
중생을 오염시키기 위해
악마가 펴놓은 그물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끝없는 위험이고, 고통은 많고, 해독은 크고,
쾌미는 적을 뿐, 갈등을 만들고
밝은 덕성을 해치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을 원인으로
그처럼 내가 불운을 겪고 나서,
항상 나는 열반을 기뻐했으니,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으리.
 
우빨라완나 “끔찍하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
 
우빨라완나 비구니는 라자가하 출신이었다. 그녀는 한 남자를 자기 어머니와 함께 남편으로 섬기게 된 기구한 운명을 박차고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쑤바 비구니가 자신이 겪은 일을 붓다에게 이야기할 때, 우빨라완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녀가 붓다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악한을 쫓아버리기 위해 신통력을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눈썹 사이에 붙어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렇다. 우빨라완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상황을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수바는 그 젊은이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포기하게 했다. 이런 방법이 보다 더 오랜 효과를 내게 할 수 있다. 신통력으로 몸을 바꾸거나 숨는 것은 수바가 했던 것처럼 지속적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신통력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대의 힘을 과시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게 하는 방법이 더 좋은 것이다.”
“저도 동감입니다. 스승이시여!”
 
신통력보다는 인격적인 힘을 향상시킴으로써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여인들의 잠재력을 인정한 데 기쁨을 느낀 우빨라완나가 대답했다. 우빨라완나가 자신의 경지를 밝히는 게송을 읊었다.
 
우리 두 사람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았으니,
그러한 나에게 미증유의
털이 곤두서는 외경이 일어났다.
 
우리 두 사람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았으니,
끔찍하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부정한 것, 악취 나는 것, 형극이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재난을 보고
여읨에서 오는 견고한 안온으로 보았으니,
라자가하 시에 살던 그러한 나는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나는 전생의 삶을 알게 되었고
하늘눈은 맑아지고,
타인 마음을 읽는 지혜가 생겨났고
청각세계가 청정해졌다.
 
신통이 나에게 깨우쳐졌고
일체 번뇌는 부수어졌다.
여섯 가지 곧바른 앎이 이루어졌고
깨달은 님의 교법이 실현되었다.
 
신통력으로 사두마차를
내가 화작(化作)한 뒤에 
영광스러운 세상의 수호자이신
깨달은 님의 두 발에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마음을 제어했고
신통의 기초를 잘 닦았다.
여섯 가지 곧바른 앎을 구현했고
깨달은 님의 교법을 실현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창칼과 같고
존재의 다발은 그 형틀과 같다.
그대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라 부르는 것,
이제 나에게는 불쾌한 것이다.
 
모든 곳에서 환락은 파괴되고
어둠의 다발은 부수어졌으니,
악마여, 이와 같이 알라.
사신(死神)이여, 그대는 패배했다.
 
끼사고따미 “진리를 못 보고 백년을 사느니…”
 
 
고따미는 사왓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가난했기 때문에 고따미라는 이름을 얻었고, 몸이 가냘팠기 때문에 끼사고따미라고 불렸다. 그녀는 까삘라왓투 출신으로 붓다의 친척인 부자 상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집을 가서도 가난한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로 온갖 멸시를 받았다.
그녀는 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다가 한창 나이에 죽었다. 외동아들이 죽자 그녀에게 슬픔의 광기가 생겨났다.
그녀는 ‘예전에 나는 멸시를 받았지만 아들이 생기고 부터는 존경을 받았다. 그들이 나의 아들을 밖에 내다가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죽은 아들의 시체를 허리에 매고 ‘내 아들을 위해서 약을 주세요.’라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시내를 헤맸다. 사람들은 ‘약이 어디에 있느냐?’라며 욕을 해댔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때 한 현명한 사람이 ‘이 여자는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마음이 혼란해진 것이다. 붓다께서는 그 약을 알고 계실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아주머니,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을 찾아가서 아들의 약에 대해 물어보시오.’라고 권했다.
그녀는 붓다가 법문을 하는 날 기원정사를 찾아가 법문이 끝난 후 애원하듯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 아들을 위해 약을 구해주십시오.” 
 
붓다는 그녀가 거의 실성할 지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생의 무상함과 인간은 결국 사별할 수밖에 없다는 법문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녀 스스로 냉정을 되찾고 인생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붓다는 그녀에게 말했다.
 
“단 한 번도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을 찾아 겨자씨 한 줌을 얻어 오시오!”
 
붓다의 말을 들은 후 그녀는 집집을 돌며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서서히 인생의 무상함과 살아 있는 한 결국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붓다가 자신을 위해 가장 친절하고 연민에 가득 찬 처방을 내려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들의 시신을 시체 버리는 곳에 버리고 붓다에게 돌아와 비로소 설법을 듣고 받아들일 채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붓다가 물었다.
 
“흰 겨자씨를 얻어왔는가?”
“세존이시여, 흰 겨자씨를 구하는 일은 그만두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입각처가 되어주십시오.”
 
그러자 붓다가 말했다.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이 마음을 빼앗기면,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가듯, 악마가 그를 잡아간다. 불사(不死)의 진리를 보지 못하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진리를 보면서 하루를 사는 게 낫다.”
 
붓다의 이 한 마디에 그녀는 성인의 흐름에 든 경지를 확립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붓다의 허락을 얻어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출가 후 열심히 팔정도를 닦아 깨달음에 이르고 해탈을 성취하게 되었다.
그런데 끼사고따미가 여인들이 당면한 불행한 상황을 깨닫고, 출가하여 정진에 전념하게 된 것은 빠따짜라(Patācārā)라는 여인이 겪은 참담한 불운에 대해서 알고 난 다음이었다.
 
빠따짜라는 사왓티 부자 상인의 딸이었다. 자기 집 하인과 눈이 맞은 그녀는 부모들이 정한 같은 카스트 출신 남자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날, 연인과 함께 달아나 버렸다.
그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의 작은 오두막에서 살게 되었다. 남자는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다 땔감으로 팔아서 생계를 연명했다. 그 사이에 두 아들이 생겨났다. 어느 날, 개미집에 올라서서 나무를 베던 사내가 뱀에 물려 쓰러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사내를 찾아 숲으로 들어간 여인이 발견한 것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였다. 누구 하나 비탄에 잠긴 그녀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사왓티의 부모에게 돌아가기로 작정했다. 돌아오는 길에 강을 건너면서 두 아들을 잃었다. 겨우 고향집에 돌아온 그녀는 부모들이 이미 오래 전에 불길에 휩싸여 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그녀는 거의 알몸으로 사왓티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사람들은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돌멩이와 몽둥이를 내던져 그녀를 쫓아내려 했다.
붓다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다친 몸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길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붓다를 보고 멈칫멈칫 물러섰다. 사태를 파악한 붓다는 나이든 여인네에게 벌거벗은 그녀가 입을 만한 옷가지를 가져오게 했다. 붓다는 그녀에게 제대로 옷이 입혀지고 나서 가까이 다가갔다. 붓다는 허리를 굽히고 잠시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그저 미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갖 비탄과 너무 큰 슬픔에 젖어 있었다. 붓다가 말했다.
 
“누이여, 이제 부끄러움을 아시오!”
 
고향 사왓티에 돌아온 이래 그토록 따스하게 말을 붙여온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누이라고 불러주는 이 사람이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 경황 중에도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나랑 같이 갑시다.”
 
붓다가 말했다. 나이 든 여인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아나타삔디까(기원정사) 사원까지 부축해서 따라왔다. 붓다는 비구니들에게 그녀를 씻기고 상처를 돌봐주라고 부탁했다.
몇몇 비구니들이 그녀를 보살펴주고, 자비로운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슬픔을 나누었다. 그날 해질 무렵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온전해졌다. 그녀는 붓다를 만나 출가하겠다는 결심을 말하고 허락을 받았다. 빠따짜라는 그 뒤 마음속에 쌓인 집착과 미움을 제거하기 위해 열심히 정진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생각했다.
‘어떤 사내는 호미로 밭을 파 씨를 묻고 곡식을 가꾸어, 아내와 자식을 먹이고 재산을 늘린다. 여기 나는 애써 정진하고, 계를 지키며, 끊임없이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러나 아직도 마지막 목표는 아득하기만 하다.’
절망감 속에서 발을 씻고 방에 들어온 그녀는 손에 들고 온 등잔을 한쪽에 내려놓고 침상에 누웠다. 손을 뻗어 등잔불을 끄는 순간, 번적이는 섬광처럼 무상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모든 집착과 갈애가 사라졌다.
사원은 이렇게 남성 출가자뿐만 아니라 일상의 괴로움에 시달린 많은 여성 출가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마침내 해탈의 꽃을 피워내는 곳이 되었다. 훗날, 끼사고따미는 자신이 이룬 경지를 게송으로 읊었다.
 
가족을 잃은 비참한 여인이여,
한량없는 고통을 겪었구나.
많은 수천의 생애 동안
그대는 또한 눈물을 흘렸다.
 
시체가 버려진 곳 한 가운데에서
아들의 살이 뜯어 먹힌 것조차 보았다.
가족을 잃고 모두에게 경멸당하고
남편이 죽었지만, 나는 불사(不死)를 얻었다.
 
불사로 이끄는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을 나는 닦았다.
열반이 실현되었으니,
가르침의 거울로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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