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에 찍힌 발자국1
-구산 스님의 바랑
 

 
 전남 송광사에 가면 구산 스님의 부도가 있습니다. 부도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돌탑이지요. 구산 스님은 판사 출신인 효봉 큰스님의 제자입니다. 효봉 스님은 일제강점기 때 판사였는데 어느 분에게 사형을 언도하고는 같은 인간으로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집을 떠나 스님이 된 분입니다.
 구산 스님은 젊은 시절에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깎아주는 시골 동네의 이발사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비록 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발사 출신이었지만 절에 들어온 이후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행하여 고승이 된 분이랍니다.
 스님들이 머리카락을 깎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출가하기 전과 달리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고 지혜롭게 살겠다는 맹세의 표시랍니다. 구산 스님은 남의 머리를 깎아주다가 어느 날 효봉 스님이란 스승을 만나 자신의 머리도 깎이게 되었지요.
 구산 스님은 늘 미소를 짓고 다니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스님께서는 심지어 돌아가실 때도 ‘이제 미소 지으며 가노라’ 하고 한 마디를 남기신 분입니다. 죽음이란 두려움 앞에서도 미소를 짓다니 평범한 우리들과 아주 다른 분이지요.
 <눈길에 찍힌 발자국>은 스님께서 전남 광양시 백운산의 한 토굴에서 수행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토굴이란 한두 스님이 수행할 정도의 작은 움막집을 말하지요. 그때 스님께서는 토굴에서 혼자 수행하시고 있었습니다.

 

 백운산 토굴 시절 구산스님은 공양(식사)하기 전에 늘 앞마당으로 갔다고 합니다. 토굴 마당 앞에는 조릿대들이 파랗게 울타리가 되어 있었고, 굴뚝 키만 한 돌배나무 한 그루가 토굴 지붕에 할머니 손처럼 가만히 손을 얹고 있었답니다.
 주춧돌만 한 반반한 돌은 돌배나무 바로 아래에 있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공양하기 전에 반드시 돌 위에 밥덩이를 조금 얹어 놓으며 나직이 중얼거렸습니다.
 “관세음보살.”
 그러면 조릿대 대숲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산토끼가 살금살금 다가와 밥덩이를 먹곤 했다고 합니다. 스님이 외는 “관세음보살” 소리에 산토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산토끼는 밥덩이를 다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제나 조금씩 남겨두어 자기보다 작은 딱새나 곤줄박이들이 날아와 먹게 하였던 것이지요. 산토끼는 자기보다 작은 생명들과 나눠 먹을 줄 알았지요.
 산토끼는 토굴에서 혼자 수행하는 스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산토끼를 보고 부끄러워할 때도 있었습니다.
 “기특하기도 하지. 너를 보면 나눠 먹을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내가 부끄럽구나.”
 산토끼가 사라지고 나면 흩어진 밥알을 쪼아 먹기 위해 산새들이 날아왔습니다. 과일 조각이라도 놓은 날은 다람쥐와 청설모가 다녀갔습니다. 어느새 토굴에도 빈 가지 사이로 가을이 가고 손 시린 겨울이 왔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하늘에 눈구름이 가득 찼습니다. 이윽고 백운산에 며칠째 눈이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눈은 맨 먼저 스님이 다니는 산길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눈이 돌배나무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러자 토굴에 오곤 하던 산짐승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