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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종의 ‘불전으로 읽는’ 붓다 일대기㉛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20-05-01 (금) 08:20

나는 이미 멈췄노라, 앙굴리말라!
 
라자가하에 머물던 붓다가 사왓티로 돌아와 머물던 때였다. 어느 날, 탁발 길에 나선 붓다에게 사람들이 황급히 달려와 말했다.
 
“세존이시여, 이 길로 가지 마십시오. 이 길은 위험합니다. 이 근처 어딘가에 악당 앙굴리말라가 숨어 있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이 근방에서 멀리 달아났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앙굴리말라라는 젊은이가 사람의 손가락(앙굴리)으로 만든 목걸이(말라)를 걸치고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 근처에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사왓티 주민들은 언젠가 그가 시가나 마을을 습격할지도 모른다며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그러나 붓다는 사람들의 간청에 미소로 답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로 계속 걸어갔다. 겁에 질린 사람들의 표정으로도 앙굴리말라가 재물을 빼앗기 위해 사람들을 해치는 흔한 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개의하지 않았다. 붓다는 앙굴리말라라는 젊은이가 지금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자신은 물론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앙굴리말라는 자신이 숨어 있는 외진 숲길에 나타난 붓다를 보고 생각했다.
‘코살라의 왕 빠세나디도 내가 두려워 이 길을 피한다. 그의 군대조차 이 길 가까이 오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홀로 이 길을 걸어오는 저 사끼야 족 출신 수행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 손에 죽어, 나의 목걸이에 더할 손가락 하나를 보시할 셈인가?’
붓다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던 앙굴리말라가 숲에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거기 서라! 사문이여. 거기 서라. 그대와 이야기하고 싶다.”
 
앙굴리말라는 몇 가지 의심스러운 것을 묻지 않고는 붓다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을 참이었다. 필시 이 길을 혼자 온 것은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앙굴리말라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앙굴리말라는 그 자리에 선 채 목청껏 소리쳤다.
 
“멈춰! 멈추란 말이다!”
 
그때 앙굴리말라의 귀에 청아하면서도 위엄을 갖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미 멈췄네. 그대도 멈추고 싶지 않은가?”
 
 
천천히 걷는 붓다의 목소리였다. 앙굴리말라는 어리둥절해졌다. 걸어가고 있으면서도 멈추었다고 말하는 속셈을 알 길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그는 골똘하게 생각했다.
‘저 사끼야 족 출신 수행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주장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걷고 있으면서도 멈췄다고 말한다. 오히려 여기 멈춰 서 있는 나에게 멈추라고 말한다. 이게 뭔가? 뭔가 여기에 묘한 의미가 있음에 틀림없다.’
앙굴리말라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 길을 가고 있는 붓다의 뒤를 좇아가며 다시 소리쳤다.
 
“사문이여, 그대는 멈춰 섰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멈춰 서 있는 나에게는 멈추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앙굴리말라,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멈췄다. 또한 윤회 속을 헤매며 달리는 것을 멈췄다. 그러나 그대는 무고한 생명들에게 가한 그 폭력에 의해, 급류에 휘말린 조각배처럼 끝없이 흘러가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그대 앞에 참담한 재앙이 밀어닥칠 것이다.”
 
부드러웠으나 위엄 어린 붓다의 꾸짖음에 앙굴리말라의 마음은 동요되고 있었다. 쫓기듯 마음이 다급해진 앙굴리말라가 물었다.
 
“내 앞에 무슨 재난이 온다는 말인가?”
“억센 힘과 극도의 주의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그대는 아마 한동안 살인마의 짓을 계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게 될 때, 그대에게 참사가 덮쳐올 것이다. 왕의 군대는 그대를 붙잡아 그대의 모든 죄상을 응징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와 같은 처벌을 모면한다 하더라도, 그대의 죄악은 망령처럼 따라붙어 세세생생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붓다의 말을 듣는 순간 싸늘한 전율이 앙굴리말라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칼을 내려놓고 손가락 목걸이를 벗어 덤불 속에 내던져 버리고는, 붓다 앞에 엎드려 절하며 간청했다.
 
“거룩하신 이여, 제게 자비를 베푸시어 미래의 고통으로부터 저를 구해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세존께 귀의하게 해주십시오.”
 
살기 등등했던 살인마가 순식간에 나약하고 가련한 존재가 되어 애원하고 있었다. 붓다는 그런 모습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라, 비구여!”
 
흔쾌하게 앙굴리말라의 출가를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앙굴리말라는 이렇게 간결한 의식으로 상가에 입문했다. 극악한 살인자 앙굴리말라는 붓다의 제자, 즉 비구가가 된 것이었다. 붓다는 비구가 된 앙굴리말라와 함께 기원정사가 있는 제따 동산으로 들어갔다.
 
잘 참았다. 앙굴리말라!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던 무법자 앙굴리말라가 붓다의 제자들 속에 숨어 제따 동산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사왓티에 퍼졌다. 그러자 그가 언제 다시 나타나 험한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주민들은 기원정사로 붓다와 제자 비구들을 방문하는 것조차 꺼려하게 되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그들은 왕궁 앞에 모여 빠세나디 왕에게 제따 숲으로 군대를 보내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붙잡아달라고 요청했다. 빠세나디 왕 역시 앙굴리말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 나서기로 결심하고 병사들을 이끌고 제따 동산을 향해 출발했다. 주민들은 빠세나디 왕이 살인마를 제자로 삼은 붓다와의 대결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두려움 속에서 소식을 기다렸다. 이윽고 제따 동산에 도착한 왕에게 붓다가 물었다.
 
“왕이시여,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혹시 변방에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입니까?”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접 왕국도 우리를 공격해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앙굴리말라가 사왓티에 나타나 세존의 제자들 속에 숨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매우 흉악한 자입니다. 붙잡아 처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왕이시여! 만약 그가 출가하여 삭발하고 황색 가사를 입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가 살생을 멈추고 하루 한 끼 식사로 성스럽고 고결한 수행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스승이시여, 그렇다면 저는 기꺼이 수행자에 대한 예를 올리고, 공양하며 보호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앙굴리말라는 해괴하고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많은 코살라 사람들에게 참사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고결한 수행자가 되어 근신하는 비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앙굴리말라는 붓다 가까이에 앉아 고개를 깊이 숙이고 세존과 왕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 순간 붓다가 앙굴리말라를 가리키며 빠세나디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여기 앙굴리말라 비구가 있습니다.”
 
순간 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했다. 붓다는 그의 동요를 알아채고 말했다.
 
“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앙굴리말라는 이제 더 이상 손가락 목걸이를 걸치지 않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머리를 들어 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실로 지난날 자신이 해친 생명들에 대한 무거운 가책을 담은 미소였다. 참으로 품위 있고 겸손하며 진심을 다한 미소였다. 왕의 두려움과 공포를 말끔히 씻어내는 미소였다. 왕은 앙굴리말라 앞으로 나가 물었다.
 
“앙굴리말라 비구께서는 고귀한 가문 태생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앙굴리말라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부친께서는 어떤 가계였습니까? 어머니의 성은 무엇입니까?”
“부친은 ‘각가’이시며 어머니는 ‘만따니’였습니다.”
“고귀한 각가만따니의 아들이시여, 저의 공양을 허락해 주십시오. 가사와 음식, 거처와 약을 공양하겠습니다.”
“대왕이시여,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차라리 나무 밑에 살며, 탁발한 음식에, 사람들이 버린 넝마를 기워 만든 가사로 살면 족합니다.”
 
빠세나디 왕은 앙굴리말라의 겸손과 근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붓다를 향해 말했다.
 
“스승이시여, 실로 훌륭하십니다. 자제할 수 없는 자를 근신케 하시는 세존의 힘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사왓티에 오래 머물러 주십시오. 그것은 우리 코살라 왕국의 자랑이며 복입니다.”
 
붓다는 대답대신 미소를 머금으며 이렇게 말했다.
 
“왕이시여, 이제 일어나기에 적당한 시간입니다.”
 
빠세나디 왕은 붓다에게 최상의 예를 올리고 자리를 떠났다.
며칠 뒤, 거리로 탁발을 나간 앙굴리말라는 한 집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아주 조그만 오두막으로 몹시 가난하고 궁색해 보이는 집이었다. 잠깐 동안 문간에 서서 기다렸지만 누구 하나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곧 지금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여인은 집안에 홀로 있는 것이며,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집안을 들여다보고 옹색한 침대 위에서 버둥거리며 해산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는 서둘러 제따 동산으로 돌아가 붓다에게 정황을 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앙굴리말라의 이야기를 들은 붓다가 말했다.
 
“앙굴리말라,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라. 고통에 빠진 그 여인을 구하도록 하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 여인 앞으로 다가가 무언가를 외워서 그녀로 하여금 고통스런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도록 하라.”
“무엇을 외워야 합니까?”
“‘누이여, 내가 태어난 이래 나는 어떤 생명도 해친 적이 없다. 그 진실로 인하여 그대와 그대의 아이는 평안케 되리라!’라고 말하면 된다.”
“스승이시여,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앙굴리말라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붓다는 미소를 머금었다. 앙굴리말라가 늘 방심하지 않으며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했던 것이다.
 
“그렇다. 앙굴리말라. 거짓은 도움이 될 수 없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수행하는 비구에게 올바른 길이 아니다. 그러나 앙굴리말라.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모순됨이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이여, 내 성자의 제자로 다시 태어난 이래 어떤 생명도 고의로 죽인 적이 없습니다. 이 진실로 그대와 그대의 아이는 평안할 것입니다.’라고.”
 
앙굴리말라는 그 집으로 다시 돌아가 여인 앞에서 그렇게 세 차례 외웠다. 여인은 더 이상의 고통 없이 아이를 낳았다. 문간 밖으로 걸어 나오는 비구가 앙굴리말라인 것을 알아본 마을 사람이 생각했다.
‘붓다의 제자들은 초대받지 않은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문간에 서서 시주를 받는다. 지금 이 집 남자주인은 출타하고 집에 없다. 나무꾼인 그는 지금 그의 밥벌이를 위해 나무를 베러 먼 숲에 가 있지 않은가? 저 흉악한 앙굴리말라는 지금 위대한 스승 붓다조차 욕되게 할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앙굴리말라는 몰려든 마을 사람들이 던진 돌멩이와 몽둥이에 맞아 심한 상처를 입었다. 앙굴리말라는 터진 머리에 피를 흘리며, 깨진 바리때에 걸레처럼 찢긴 가사를 끌고 제따 동산으로 향했다. 붓다는 기원정사의 정문 앞에서 앙굴리말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붓다는 처참한 모습으로 기다시피 겨우 돌아온 앙굴리말라의 손을 잡고 연못으로 데려가 피 묻은 얼굴을 씻겨주며 말했다.
 
“잘 참았다. 앙굴리말라! 견뎌야 한다. 세상은 무지하고 소견이 좁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한번 만들어진 나쁜 평판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좋은 평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고통을 그대의 업이 익어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끊임없이 갈고 닦아라. 열심히 정진하는 자에게는 과거의 악행으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도 더 이상 따라붙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업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앙굴리말라는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확고한 신념으로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겠습니다. 확고한 신념으로 훌륭한 벗들과 사귀어 반드시 열반을 성취하겠습니다. 저는 본래 흉포한 악인,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든 더럽고 타락한 최악의 강변을 떠돌다 다행히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지금 제가 흘리는 피는 지난날의 업장을 녹이는 것이니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지난날 어리석어 악행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그쳐 다시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구름을 헤치고 나타난 해님이 온 세상을 환히 밝히듯 제가 지은 악업이 다하는 날, 다시는 죽음의 길에 들어서지 않는 길을 걷겠습니다. 저는 구태여 살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이제는 참회하며 악업이 다하는 날을 기다리며 번민하지 않겠습니다.”
 
붓다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앙굴리말라를 칭찬했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이후 앙굴리말라는 한적한 곳에 들어가 홀로 살면서 수행에 전념했다. 근면하고 성실하게 수행한 앙굴리말라는 뛰어난 직관력을 성취했다. 마침내 그는 출가수행의 궁극 목표인 깨달음을 이루고, 그 감흥을 이렇게 노래했다.
 
전에 방일했지만 그 후로는 방일하지 않는 자,
그는 이 세상을 비추나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그가 지은 삿된 업을 유익함으로 덮는 자,
그는 이 세상을 비추나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참으로 젊은 비구가 부처님의 교법에 몰두할 때
그는 이 세상을 비추나니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나의 적들은 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 교법에 몰두하기를!
나의 적들은 참으로 법으로 인도하는
좋은 분들을 섬기기를!
 
참으로 인욕을 설하고
온화함을 칭송하는 분들이 있으니
나의 적들은 그들의 법을 때때로 듣고
그것을 따라 행하기를!
 
그러면 분명 그들은 나를 해치지도
다른 이를 해치지도 않으리라.
최상의 평화를 얻어
악하거나 강한 자들을 보호하기를!
 
물 대는 자들은 물을 인도하고
화살 만드는 자들은 화살대를 곧게 하고
목수들은 나무를 다루고
지자들은 자신을 다스린다.
 
어떤 자들은 몽둥이로 길들이고
갈고리와 채찍으로 길들인다.
그러나 나는 몽둥이도 없고 칼도 없는
여여한 분에 의해서 길들여졌다.
 
비록 예전에는 살인자였지만
이제 내 이름은 ‘불해(不害)’이다.
이제야 나는 참된 이름을 가졌으니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똥군 니디
 
사왓티 거리에서 변소의 똥 무더기 치우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니디(Nidhi, 尼提)라는 사람이 있었다. 더벅머리에 낡고 헤진 옷을 걸치고, 온 몸에서 악취가 나는 그를 사람들은 더럽다며 피해다녔다. 그와 손이 닿는 것은 물론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붓다가 아난다와 함께 걸식을 하고 있었다. 니디가 인분이 가득한 무거운 똥통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길을 뒤뚱뒤뚱 걸어오고 있었다. 뒤늦게 붓다를 발견한 니디는 급하게 비켜서려다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벽에 부딪친 똥통이 박살나고 똥물이 사방에 튀었다. 붓다와 아난다의 가사에도 오물이 군데군데 묻었다. 니디는 오물이 흥건한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비볐다.
 
“세존이시여, 제발 용서하십시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니디에게 붓다는 손을 내밀었다.
 
“어서 일어나라. 니디여.”
 
어쩔 줄 모르는 니디의 똥이 가득 묻은 손을 붓다는 잡아 일으켰다.
 
“가자. 나와 함께 강으로 가서 씻자.”
“저같이 천한 놈이 어찌 존귀하신 분과 함께 길을 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붓다는 아난다에게 바리때를 건네고 말없이 나디의 손을 이끌었다. 니디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강에 이르러 붓다가 손수 씻어주려 하자 니디가 물러섰다.
 
“안 됩니다. 세존처럼 성스러운 분이 저처럼 천한 놈의 더럽고 냄새나는 몸을 만지시다니요.”
 
붓다는 개의치 않고 니디의 팔을 잡아당겼다.
 
“니디여, 그대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그대의 옷은 더러워졌지만 그 마음은 더할 바 없이 착하구나. 그런 그대의 몸에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향기가 난단다. 니디여,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니디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맑은 눈동자로 붓다를 우러러보았다.
 
“왜 그리 급하게 피했는가?”
“오늘 퍼내야 할 똥이 많아 정신이 없었습니다. 통이 하도 무거워 온통 신경을 쏟다 보니 세존께서 오시는 줄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멀리 돌아갔을 것입니다.”
 
구석구석 꼼꼼히 씻는 부처님의 손길에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며 니디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죄송합니다. 거룩한 가사를 그만 더럽혔습니다.”
 
붓다는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니디여, 출가하여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는가?”
 
붓다의 말에 니디는 놀라 펄쩍 뛰었다.
 
“세존이시여,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미천한 제가 감히 어떻게 사문들과 섞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 될 말씀이십니다.”
 
붓다는 맑은 물을 움켜 디디의 정수리에 부어주며 말했다.
 
“염려 말거라. 니디여,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그대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것이다.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이고도 늘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두를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의 법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피부색의 차이도 없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성취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붓다의 자상한 설명을 들은 니디가 밝게 웃었다. 그리고 붓다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했다.
 
“세존이시여, 저도 붓다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똥군 니디는 비구가 되었다. 똥을 푸던 니디가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주위에 퍼졌다. 사왓티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시작됐다.
 
“세존께서는 왜 그런 천한 자에게 출가를 허락하셨을까?”
“아니 그럼, 붓다와 제자들을 초청하면 똥 푸던 그놈도 따라온단 말인가?”
“따라오는 게 대수겠어. 똥 푸던 그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판에.”
 
투덜거리며 불만에 가득 차 기원정사로 찾아온 사왓티 사람들에게 붓다가 말했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들을 공경하십시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왓티 출신의 쭐라빤타까도 숨겨진 보석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형 마하빤타까는 뛰어난 지혜로 상가 내에서 존경을 받았다. 마하빤타까는 거룩한 경지를 얻고 나서 최상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생각했다. ‘내 동생 쭐라빤타까에게도 이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는 대부호였던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만약 외할아버지께서 허락하신다면 쭐라빤타까를 출가시키겠습니다”라고 청했다. 할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은 그는 동생을 출가시켰다. 그는 열 가지의 학습계율을 확립하고 4구의 시를 외우도록 했다.
쭐라빤타까는 형이 내려준 4구의 시는 ‘훌륭한 향기를 지닌 홍련화처럼, 연꽃은 아침에 피어난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허공에서 태양처럼 작열하는, 광휘를 비추는 앙기라씨를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쭐라빤타까는 넉 달이 넘도록 이 시를 외우지 못했다. 파악하고 파악하며 밤낮없이 외워도 외워지지가 않았다. 그러자 마하빤타까가 동생에게 말했다.
 
“쭐라빤타까야, 너는 이 가르침을 배울 수가 없을 것 같구나. 넉 달이 지나도록 시 하나도 외울 수 없다니, 출가자로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여기서 나가라.”
 
결국 형은 동생의 게으름과 무지를 꾸짖으며 동생을 승원에서 내쫓아버렸다. 기원정사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 있던 쭐리빤타까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붓다였다. 붓다는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함께 공양을 하며 물었다.
 
“쭐라빤타까야, 왜 울고 있었느냐?”
“세존이시여, 형님이 저를 쫓아냈습니다.”
“쭐라빤타까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나의 교법에 출가했다. 이제부터는 ‘라조하라낭(티끌 제거), 라조하라낭’이라고 외우며, 오직 이것을 붙잡고 정신활동을 기울여라.”
 
이후 쭐라빤타까는 붓다가 준 천 조각을 들고 늘 쓸고 닦고 어루만지면서 앉아 있곤 했다. 그가 그것을 만질수록 오염된 것들이 생겨났고, 더욱 어루만지자 접시를 닦는 행주처럼 되었다. 궁극적인 앎이 성숙되자 쭐라빤타까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천 조각은 원래 아주 청정했다. 이 업으로 획득된 몸 때문에 오염되어 달리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상하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마음도 그렇다.’
이렇게 깨끗해지고 더러워지는 모습들을 관찰한 쭐라빤타까는 남모르게 지혜의 안목이 생겨나 마침내 붓다의 가르침을 성취하였다. 그는 괴멸에 의한 쇠퇴를 확립하여 그 가운데 선정을 거듭 생겨나게 해서, 바른 선정에 입각한 통찰을 통해 분석적인 앎과 더불어 거룩한 경지를 얻었다. 또한 거룩한 경지를 통해 붓다의 가르침과 계율, 그리고 가르침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비구니들에게 설법할 차례가 돌아왔을 때였다. 쭐라빤타까가 자신이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4구의 게송을 읊자 비구니들은 어린아이들이나 외우는 게송이라며 비웃었다. 그러자 쭐라빤타까는 하늘로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의 신통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비구니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붓다의 가르침을 들었으면 아무리 쉽고 간단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한마음으로 게으름 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천한 사람이란
 
붓다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붓다는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들고 사왓티 시내로 탁발을 하러 들어갔다. 마침 불을 섬기는 바라문 악기까 바라드와자의 집에 성화가 켜지고 제단에는 재물이 올려져 있었다. 붓다는 사왓티 시에서 차례로 탁발을 하면서 악기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의 집 앞에 당도했다. 악기까 바라드와자는 붓다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서며 말했다.
 
“까까중아, 거기 섰거라. 가짜 수행자여, 거기 섰거라.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
 
당시 일부 바라문들은 붓다의 상가에 천한 계급 출신들도 수행승으로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구실로 종종 붓다를 이렇게 비난했다. 악기까 바라드와자의 비난을 들은 붓다가 이렇게 말했다.
 
“바라문이여, 도대체 그대는 천한 사람을 알고나 있으면서 그런 비난을 하는가? 또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면서 그런 비난을 하는가?”
“고따마여, 나는 사람을 천하게 하는 조건조차 알지 못하오. 그런 것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주시겠소?”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주의해서 잘 들으시오. 내가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소.”
 
붓다는 이어 천한 사람을 만드는 조건을 열거했다.
 
“화를 내고 원한을 품으며, 악독하고 시기심이 많고 소견이 그릇되어 속이길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한 번 생겨나는 것이건(태생, 습생, 화생, 사회적으로 노예계급을 상징) 두 번 생겨나는 것이건(난생, 사회적으로 바라문, 왕족, 평민 계급을 상징) 이 세상에 있는 생명을 해치고 살아 있는 생명에 자비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마을들뿐 아니라 도시들을 파괴하거나 약탈하여, 독재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마을에 있거나 숲에 있거나 남의 것을 나의 것이라고 하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붓다의 설법이 물 흐르듯 이어지자 악기까 바라드와자의 자세도 달라졌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붓다의 말을 경청했다. 붓다의 설법이 계속됐다.
 
“빚을 졌으면서 돌려 달라는 독촉 받더라도 ‘갚을 빚이 없다’고 발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얼마 안 되는 물건을 탐내어 행인을 살해하고 그 물건을 약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십시오. 증인으로 불려 나갔을 때 자신이나 남 때문에 또는 재물 때문에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폭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서로 사랑에 빠져서 친지나 친구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자기는 재물이 풍족하면서도 나이 들어 늙고 쇠약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혹은 배우자의 어머니를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유익한 충고를 구할 때 불리하도록 가르쳐주거나 불분명하게 일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나쁜 짓을 하고서도 자기가 한 짓을 남이 모르기를 바라며 그 일을 숨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남의 집에 가서는 융숭한 환대를 받으면서도 자기 집을 찾은 손님에게는 대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성직자나 수행자에게 욕하며 먹을 것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어리석음에 휩싸여 사소한 물건을 탐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자기를 칭찬하고 타인을 경멸하며 스스로 교만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남을 화내게 하고, 이기적이고, 악의적이고, 인색하고, 거짓을 일삼고,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깨달은 사람을 비방하고 혹은 출가나 재가의 제자들을 헐뜯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아시오. 거룩하지 못한 사람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가장 천한 사람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설한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참으로 천한 사람인 것입니다.”
 
천한 사람의 조건을 열거한 붓다는 바라문 악기까 바라드와자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인 것이 아니며, 태어나면서 바라문인 것도 아닙니다.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도 되고 행위에 의해서 바라문도 되는 것입니다.”
 
붓다의 설법을 들은 악기까 바라드와자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렇게 말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존자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을 갖춘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이,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오니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의 신자로서 받아주십시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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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도솔 2020-05-07 21: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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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감동적입니다. 너무 쉽게 가슴속까지 박히는 글입니다.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 작가님이 건필을 기대합니다. 도솔 합장
Julie Song 2020-05-08 00: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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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다양한 지몰랐습니다. 다음 연재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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