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 비구들과 함께 까삘라왓투를 떠난 붓다는 웨살리의 큰 숲 중각강당(重閣講堂)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 때가 대각을 성취한 지 5년 째 되던 해였다. 그런데 붓다의 아버지 숫도다나 왕이 이 해에 병이 들었다. 부왕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접한 붓다는 아버지의 수명이 다했음을 간파하고는 제자들을 이끌고 까삘라왓투로 향했다.
까삘라왓투에 도착한 붓다는 까삘라왓투 교외의 큰 숲에 머물며 틈틈이 부왕(父王)을 찾아가 법을 설해 드렸다. 붓다가 까삘라왓투를 첫 방문했을 때, 법문을 듣고 성자의 흐름에 들었던 숫도다나 왕은 아들이자 스승인 붓다의 법문을 들으면서 마침내 완전한 청정(아라한과)을 얻을 수 있었다. 생의 마감할 시점에 임박해 성자가 된 숫도다나 왕은 모든 번뇌가 소멸된 열반의 기쁨과 궁극의 목표인 해탈을 성취했다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숫도다나 왕이 아라한과를 성취한 지 7일째 되던 날, 붓다가 머물던 까삘라왓투의 교외 큰 숲으로 왕궁에서 파견한 사자가 급하게 말을 달려 찾아왔다.

 

“세존이시여, 부왕께서 위독하십니다. 대왕께서는 마지막으로 세존과 난다, 라훌라, 그리고 아난다 존자님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붓다는 먼저 난다를 왕궁으로 보내고 채비를 갖춰 그 뒤를 따랐다. 가슴에 열이 얽히어 괴롭고 초초하고 불안한 증상(번조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숫도다나 왕은 붓다가 도착하자 그를 에워싸고 있던 친족들을 물리치고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좀 어떠십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돌을 눌러 기름을 짜는 듯한 고통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세존을 보니 이 아픔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붓다는 말없이 부왕의 다리를 주물렀다.

 

“아, 세존이시여, 아주 편안합니다.”

 

시나브로 숫도다나 왕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베개 옆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회한의 눈물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붓다가 되겠다는 꿈도 이루었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꿈도 이루었는데…. 나는 실로 이룬 것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나의 아들이자 스승인 당신으로 인해 마침내 나의 할 일을 다 해마치고 이렇게 세연을 마치게 되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 붓다여. 고맙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숫도다나 왕의 형제들이 눈물을 훔치며 위로하였다.

 

“형님, 지혜와 신통을 겸비한 세존께서 당신의 아들인데 무슨 걱정이십니까. 또한 둘째 아들 난다와 손자 라훌라, 그리고 아난다가 모두 이 자리에 있는데 악마의 그물인들 두렵겠습니까.”

 

그때 조용히 일어나 몇 걸음을 옮긴 붓다가 부왕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부왕이시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왕의 덕은 청정하며 마음의 때도 없습니다.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들은 진리를 다시 생각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선행의 공덕을 믿으십시오. 부디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세존이시여, 나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이 슬픔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제가 수없는 생애 동안 쌓은 공덕과 보리수 아래에서 얻은 이익이 부왕을 슬픔은 물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숫도다나 왕은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들의 손을 잡아 가슴에 얹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내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붓다를 보고 가는 마지막 길이 행복합니다.”

 

숫도다나 왕은 누워서 합장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세연을 마친 것이었다. 왕을 돌보아왔던 사끼야 족 의사가 향수로 왕의 몸을 씻고, 솜과 털과 명주로 시신을 감싸 관에 안치했다. 시신을 다비장의 사자좌로 옮길 때였다.

 

“제가 앞쪽에서 관을 들겠습니다.” 붓다가 말했다.

 

그러자 친족들이 말리고 나섰다.

 

“세존께서는 하늘 위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분이십니다. 아무리 숙세의 인연이 깊다지만 인천의 스승께 인간의 상여를 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분들의 뜻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상여를 들지 않으면 비구는 부모의 은혜도 모른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생길 것입니다.”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간 후, 붓다는 시신을 드는 대신 향로를 들고 다비장으로 앞장섰고, 꽃을 뿌려 공양하고는 쌓아놓은 땔감 위에 불을 붙였다.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달려들 듯 울부짖는 사람들에게 붓다가 말했다.

 

“이 세상은 무상하고, 무상하므로 고통스럽습니다. 영원한 것이란 어디에도 없으니, 몸뚱이란 본래 덧없는 것입니다. 한세상을 산다는 것, 환상과 같고 타오르는 불꽃과 같고 물에 비친 달그림자와 같습니다. 모두가 잠시 그렇게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무상한 몸으로 잠시 살다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저 사나운 불길을 보십시오. 이 불길을 뜨겁다 여길지 모르지만 욕심의 불길은 이보다 더 뜨겁습니다. 그러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의 즐거움을 얻으십시오.”

 

부왕 숫도다나의 장례를 마친 후 붓다는 한동안 니그로다 동산에 칩거했다. 먼 여행과 부왕의 임종을 지키고 다비를 지켜본 탓에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한편 붓다의 양모 고따미는 니그로다 숲으로 붓다를 찾아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고따미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았다. 사랑하는 남편은 가벼렸고, 마치 내 생명의 한 부분처럼 키웠던 싯다르타는 왕위도 버리고 출가수행자가 되었다. 아버지 뒤를 이을 난다도 형을 따라 나섰고, 어린 손자 라훌라까지 그리 되었다. 까삘라왓투에서의 내 삶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게 되어 버렸다. 이제 나도 스스로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오직 붓다만이 나를 도울 수 있다.’
곧 그녀는 니그로다 동산으로 붓다를 찾아갔다. 붓다는 그녀의 얼굴에 가득 찬 비탄과 슬픔을 보았다. 붓다에게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아 그녀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가르침 아래 여인네들도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면 좋겠습니다.”

 

붓다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양모 고따미가 이렇게 중대한 문제를 제안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붓다는 즉석에서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혁신적인 조치를 내릴 경우 장기간에 걸쳐 야기할 여러 가지 결과를 면밀히 숙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이미 바라문교가 지배하고 있던 잠부디빠의 철학, 종교, 사회 및 정치생활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고 있었다. 영원불변하는 실재로서의 자아와 영혼의 부정, 의식주의에 대한 단호한 비판, 카스트 제도의 거부, 그리고 왕권신수설에 대한 붓다의 비판은 일부 바라문교도들의 소동을 야기했고, 크샤트리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하물며 상가에 여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심각한 사회 조직의 와해를 초래할 것이며, 바라문교도들뿐만 아니라 여성이 가족을 결합하고 유지시키는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생각하는 다른 종교인과 일반인들까지도 반발할 것이 분명했다. 붓다는 종교생활에 있어서 남녀의 평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가르침이 기존의 질서를 사회전반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급속하게 변혁시키고 붕괴시키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붓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점진적인 사회 변화로 이끌어갈 분위기가 성숙되기를 바랐다.
양모 고따미가 자신을 출가수행자, 비구니로 상가에 받아들여 줄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출가수행자가 되기를 바라는 그녀의 의도는 의심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 붓다가 당면한 두 가지의 곤란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양모 고따미가 슬픔을 극복하고 위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을 주축으로 성립된 상가가 세상에서 건전하게 존속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다. 간청하는 고따미를 지켜보던 붓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고따미여, 나의 상가에 여성 출가자를 받아달라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선왕의 그늘에 의지해 저는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그늘이 사라졌습니다. 붓다께서도 아시는 것처럼 이곳 까빌라왓투에는 혼자 남은 여자들이 많습니다. 곁을 떠난 사람들로 가슴 아파하는 여인들입니다. 세존이시여, 불쌍한 저희들이 세존의 그늘에 의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고따미여, 나의 상가에 여성 출가자를 받아달라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여인이 나의 상가에 들어와 가사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행을 닦아 밝게 깨닫도록 하십시오.”

 

붓다의 이 한마디는 고따미의 심장을 쥐어짰다. 고따미는 붓다의 발등에 볼을 부비며 거듭 애원했다.

 

“여자는 태어나 아버지에게 의지하다가 결혼하면 남편에게 의지합니다. 나이가 들어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자식을 의지해 살아가야 합니다. 선왕도 떠나고 두 아들도 떠나고, 귀여운 손자마저 떠난 지금 제겐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부디 가련한 저를 붓다의 그늘에서 쉴 수 있게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따미여, 나의 상가에 여성 출가자를 받아달라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여인이 나의 상가에 들어와 가사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행을 닦아 밝게 깨닫도록 하십시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끼야 족 여인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지난 해 물싸움 때 붓다에게 출가한 5백 비구들과 생이별했던 사끼야와 꼴리야 족 젊은이들의 부인들이거나 어머니들이었다.

 

“세존이시여,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은 여인들이 붓다의 그늘에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소서.”
“고따미여, 나의 상가에 여성 출가자를 받아달라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여인이 나의 상가에 들어와 가사를 입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청정한 행을 닦아 밝게 깨닫도록 하십시오.”

 

고따미가 두 번, 세 번 간청했지만 붓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녀는 풀이 죽어 눈물을 흘리며 니그로다 동산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냉정을 잃지 않은 모종의 결기가 서려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굳게 결심을 하는 표정이었다. 고따미가 떠나고 난 다음 아난다가 붓다에게 물었다.

 

“스승이시여, 어머님께서 몹시 실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을 우리 상가에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이유라도 있습니까? 여자는 깨달음과 해탈에 이를 능력이 없는 것입니까?”
“아난다, 나는 여인들이 깨달음과 해탈을 성취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상가에 출가해 있는 많은 남성 수행자들이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수행자들이 욕망과 정염의 속박 속에 여전히 갇혀있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많은 출가수행자들이 그런 상태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아난다. 나의 첫 번째 제자가 남자였다는 것이 여인들에게는 안타까운 조건으로 작용했을 뿐이다. 이미 형성된 우리의 상가는 당연히 그들의 깨달음과 해탈에 도움이 되는 환경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붓다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흐른 뒤 붓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난다, 나는 여자 이상으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어떤 소리나 냄새도, 맛도, 감촉도 여자와 관계된 것 이상으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아난다여, 남자 이상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것도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소리나 냄새도, 맛도, 감촉도 남자와 관계된 것 이상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게 곧 여자가 느끼는 남자의 매력이며, 남자가 느끼는 여자의 매력이다. 아직 갈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남녀 제자들을 함께 생활하게 하는 것은 마치 불과 기름을 가까이 두는 것과 같다. 그럴 경우 매우 엄격한 계율로 상가를 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난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끼야 족들은 극단적인 고행에 거의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붓다의 첫 번째 까삘라왓투 방문 때,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잠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금욕주의에 대한 그들의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고따마 붓다가 가르치는 완화된 형태의 금욕주의가 그들 사이에서 인정되고 있었다. 바라문 사제들의 권위를 무너뜨린 붓다의 정치, 사회철학과 함께 세속적 생활의 가치를 인정하는 가르침은 점차 사끼야 족의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로히니 강물을 놓고 물싸움을 벌일 때 두 번째로 까삘라왓투를 방문한 붓다를 존경과 호의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끼야 족들은 노환으로 위급한 부왕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붓다가 까삘라왓투에 도착하기 얼마 전에 대형 회당의 건축을 마쳤다. 그들은 이 회당의 낙성식에 붓다를 초청했다. 낙성식의 절정은 붓다의 설법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끼야 족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을 때, 붓다는 쌓인 피로와 통증으로 간략하게 법문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붓다는 아난다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난다, 나는 지금 등에 심한 통증을 겪고 있다. 들어가 쉬어야겠다. 내가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이미 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주도록 해라.”

 

붓다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회당의 안쪽 방으로 조용히 물러났다. 붓다의 설법에 이어 아난다가 대중 앞으로 나서 ‘수행자의 길’에 대한 설법을 하고, 어떻게 도덕성(戒)과, 집중(定), 그리고 지혜(慧)를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설법의 말미에 아난다가 선언했다.

 

“혈통을 기준으로 할 때, 사람들 가운데 크샤트리야가 으뜸입니다. 그러나 신과 인간 가운데 지혜와 도덕성을 갖추고 정의롭게 처신하는 자야 말로 가장 뛰어난 사람입니다.”

 

아난다의 설법에 만족한 사끼야 족 사람들은 역시 사끼야 족 왕자 출신인 아난다에게도 아낌없는 찬양의 갈채를 보냈다.

 

 

출가 후 육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행한 격심한 고행과 몸을 돌보지 않는 수행의 후유증이 조금씩 붓다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대각을 이룬 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전하기 위해, 나라에서 나라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끝없는 여정이 마침내 붓다의 육신에 경종을 울린 것이었다. 그 뒤로도 며칠 동안, 붓다는 몸져누운 채로 니그로다 동산에 머물고 있었다. 아난다는 붓다에게 필요한 음식과 약을 마련하고 몸소 간호하고 있었다. 붓다가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끼야 족 사람들이 니그로다 동산으로 찾아왔지만, 아난다는 붓다가 쉬고 있는 움막 앞에 서서 그들을 되돌려 보냈다.

 

“여러분, 세존께서는 고행의 후유증으로 앓고 계십니다. 지금은 쉬셔야 합니다. 회복되었을 때 다시 오십시오. 지금 붓다를 위해 필요한 것들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돌아가십시오.”

 

며칠이 흐르고 붓다의 건강도 점차 회복되어가고 있을 때, 이제는 나이가 들고 기력도 쇠해져 지팡이에 의지해야만 하는 붓다의 장인인 야소다라의 아버지 숩빠붓다가 붓다를 찾아왔다. 그는 한 때 자기 딸과 외손자를 버리고 떠난 사위를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도 붓다를 인정하고 두둔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난다가 그를 붓다가 머무는 움막 안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고, 붓다에게 미음을 드리기 위해 처소 바깥으로 나갔다. 미음을 들고 돌아온 아난다가 움막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숩빠붓다가 붓다에게 평소 궁금했던 것을 질문하고 있었다. 노쇠한 그는 붓다와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세존이시여, 이전 법문에서 세존께서는 ‘집중(禪定)하는 자에게 지혜(智慧)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정이 지혜를 불러오는 것입니까? 아니면 지혜가 있어야 선정에 들 수 있는 것입니까?”

 

아난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세존께서 이제 겨우 회복되고 계신데, 저 사끼야인, 숩빠붓다가 까다로운 질문으로 휴식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때 긴 설명으로 다시 피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난다는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키기 위해 붓다에게 죽을 바쳐 올리고, 공손하게 숩빠붓다의 손을 잡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붓다는 한 때 사위였던 자신을 찾아온 노쇠한 크샤트리야를 천막 안에 머물도록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숩빠붓다가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세존이시여, 세속에 사는 재가자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붓다가 대답했다.

 

“숩빠붓다여, 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확신을 가진 자입니다. 그들은 손과 발로, 입으로, 그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내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깨어 있어 미혹하지 않으며, 헛된 맹신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믿음, 정진, 마음관찰, 마음집중, 빤냐(지혜)가 행복을 성취하게 하는 다섯 기둥입니다. 이 다섯 기둥을 늘 간직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처음부터 완벽하게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점진적 수행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노(老) 크샤트리야는 붓다의 간곡한 설법에 더욱 집중했다. 붓다가 말을 이어갔다.

 

“점진적 수행의 인내를 이끄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깨달은 사람의 말에 자주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그 사람이 정말 깨달은 사람인가? 깨달음을 이루고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바른 사람인가? 나아가 행실이 이웃에게 존경과 감화를 주고 있는가? 혹 속임수나 신통력, 요상한 신비로 위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그가 가르치는 교의가 애매모호한 것은 아닌가? 실제 경험에 근거한 것인가? 어떤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 한정된 것은 아닌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두루 입증되는 보편타당한 이론이며, 성자들에 의해서 지금도 실천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 점검하도록 하십시오. 셋째 그들의 제자들에 대해 숙고하십시오. 그들의 행실은 고결하며, 솔직하고 바른가? 청정하게 살면서 이웃에 봉사하고, 훌륭한 도의와 모범이 되고 있는가? 이렇게 점검하도록 하십시오. 넷째, 자신의 도덕적 자세를 비판적으로 숙고하십시오. 내 행위는 무조건 올바른 것인가? 혹 방종하며, 고집불통이고 독단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명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이렇게 점검하도록 하십시오. 다섯째, 자신의 착하고 관용적 자세를 비판적으로 숙고하십시오. 내 생활이 탐욕에 예속된 허위의 삶은 아닌가? 나는 검소하고 낭비를 자제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이웃에게 인색하지 않고 널리 보시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렇게 점검하면서 행복의 다섯 기둥을 성취하도록 하십시오.”

 

숩빠붓다는 붓다가 일러준 재가자를 위한 교훈을 되새기며 존경의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붓다와 제자들은 까삘라왓투를 떠나 웨살리로 향했다. 웨살리에 도착한 붓다는 큰 숲의 중각강당에 머물고 있었다.
이 무렵, 붓다의 보호 아래 여자들도 출가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관철시키지 못했던 고따미가 무엇인가 단단하게 결심을 한 듯 손수 머리를 깎고 거친 베옷을 걸친 채 까삘라왓투의 거리에 나타났다. 왕비의 지위로 화려한 비단과 보석을 마다하지 않던 그녀가 화장을 지우고 맨발로 거리에 나서자, 약속이라도 한 듯 사끼야 족 여인들이 하나 둘 그 뒤를 따랐다. 꼴리야를 지나 말라 국의 땅으로 들어섰을 때, 하나 둘씩 늘어나던 여인들의 행렬은 오백 명이나 되었다. 사끼야 족 여인들이 집단으로 붓다를 만나 여성의 출가를 허락할 것을 다시 간청하기로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떠나간 남편과 아들을 그리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여인들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진 것도 없이 무작정 고따미를 따라 붓다가 머물고 있는 웨살리의 큰 숲으로 향했다. 그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사람들로는 야소다라의 친정어머니 아미따 부인, 야소다라와 절친했던 아노빠마 등도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삭발하고, 황색 가사를 걸치고는 웨살리로 향해 출발했다. 까삘라왓투에서 웨살리까지 머나먼 여정은 크샤트리야 여인들로서 호사스럽고 편안하게 살아온 여인들에게는 실로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웨살리에 도착한 그들의 발은 상처와 물집으로 부르트고, 온몸이 더러운 먼지로 뒤덮였으며, 체력은 바닥 나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들은 이곳저곳을 찾아 묻고 또 물으며, 붓다와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첨탑당까지 도착했다. 그때 마침 아난다는 붓다가 쉬고 있는 방문 앞 작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는 황색 가사를 입고 다가오는 일단의 여인들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따미가 인솔하는 사끼야 여인들 모두가 먼지투성이에 다리를 절며 극도로 지쳐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굳은 결의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아난다가 말했다.

 

“고따미시여, 무슨 까닭으로 헤진 옷을 입고 맨발로 서서 얼굴은 더럽고 옷은 먼지투성이인 채로 이렇게 지쳐서 울고 계십니까? 여러분, 점심은 드셨는지요? 제가 어떻게 하면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난다이시여, 저희들의 식사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오직 한 가지 우리가 편안해질 수 있는 길이라면, 세존을 뵙고 우리도 출가하여 붓다의 상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세존의 법과 계율을 받고 출가하지 못합니다. 그것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따미가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그만 멈추십시오, 고따미시여. 잠시 마음을 진정하시고 저를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지금 들어가서 세존께 여러 분들의 뜻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아난다는 그들을 거기서 기다리도록 하고, 붓다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아난다와 사끼야 여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들은 붓다가 아난다에게 물었다.

 

“아난다, 나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귀한 손님들이 오신 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까삘라왓투에서 온 많은 사끼야 족 여인들이 세존을 뵙고자 합니다. 그 가운데는 세존의 어머니 고따미와 야소다라의 어머니 아미따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이 출가를 원하는 것이냐?”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해버렸습니다. 그들은 삭발한 머리에 황색 가사를 걸치고 있습니다. 오직 세존의 허락을 받기 위해 그 먼 길을 맨발로 걸어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들의 발은 부르트고 온몸이 먼지투성이이며 완전히 지쳐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여인들이 교단에 들어와 수행자로 살도록 허락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붓다는 단호했다.

 

“아난다, 여자들이 나의 상가에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말라.”

 

그러자 아난다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험한 길을 맨발로 걸어온 여인들입니다. 부르튼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때와 먼지 가득한 얼굴에는 눈물자국만 선명합니다. 세존께 간청 드립니다. 저 딱한 여인들이 교단에 들어와 수행자로 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난다, 여자들이 나의 상가에 들어오는 것을 청하지 말라.”

 

아난다는 그러나 붓다의 옷자락을 붙들고 거듭 애원했다.

 

“세존이시여, 고따미는 젖을 먹여 당신을 기른 어머님이십니다.”

 

아난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붓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눈물짓던 아난다가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옷깃을 바로하고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자도 수행하면 남자와 같이 수행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자에게도 깨달음을 성취해 열반을 얻을 기회가 제공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부디 첫 여인 아라한이 될 기회를 고따미에게 주십시오.”

 

붓다는 눈을 감고 침묵했다. 꽤 오랜 시간이 정적 속에 흘렀다. 이윽고 생각에 잠겨 있던 붓다가 아난다에게 말했다.

 

“아난다, 이제 더 이상 여인들을 상가 바깥에 세워둘 수 없게 되었구나. 그들도 이제 출가교단의 한 부분이 되게 해야겠구나. 그러나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가까이 살게 될 남녀 제자들을 계도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계율을 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난다는 몹시 기뻤다. 그는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는 이 열정적인 사끼야 여인들의 출가를 위해 자신이 맡은 역할에 스스로 기꺼워졌던 것이다. 아난다가 사끼야 여인들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만약 여러분들이 엄격한 계율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세존께서 여러분의 출가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런 계율 제정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난다여. 우리들의 출가가 허락된다면 어떤 계율도 감수하겠습니다.”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여인들의 목청에 기쁨과 감동이 가득했다. 여인 출가의 허락 조건인 팔경법은 매우 무거운 계율이었다. 붓다가 이런 계율을 내린 것은 반드시 여성이 남성보다 세속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인식, 여성을 대하는 당시 사회의 차별적 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붓다는 비구니는 물론 재가여성들에게 일체의 차별을 두지 않고 법을 펼쳤기 때문이다. 당시 붓다의 상가는 갓 일어난 신흥종교였다. 교세를 확장해가는 과정에 외도들의 위협을 수없이 받았고, 승가가 자리를 잡는 동안 국왕 등 통치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출가를 하면 가정과 사회가 붕괴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특히 여성은 가정을 지키는 안주인이었고, 가정을 유지하고 자녀를 출산해 양육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이들의 출가는 지배 계급에게 교단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될 개연성이 아주 큰 것이었다.
이외에도 수행자들의 생활환경이 여성들에게 결코 녹록치 않았다. 수행자들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걸식을 하며 숲이나 공터에서 밤을 보냈다. 여성이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붓다로 하여금 여성의 출가 허용을 고민하게 했던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가를 허락받은 고따미 등 사끼야 족 여인들은 한 없이 기뻤다. 먼 여독으로 쌓인 피로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들은 본래의 안색과 윤기를 금세 되찾았다. 그들은 한적한 자리로 물러나와, 먼지와 때에 찌든 몸을 씻고 가사를 빨았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그들은 붓다의 저녁 설법을 듣기 위해 대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구족계를 받아 최초의 여성수행자, 즉 비구니가 된 고따미는 붓다에게 다가가 예경하고 한 쪽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붓다가 가르침을 설했다. 고따미는 붓다로부터 명상 주제를 받고, 자상한 지도아래 수행에 전념하여 오래지 않아 곧고 바른 앎과 분석적인 앎을 수반하는 거룩한 경지에 도달했다. 고따미는 깨달음을 성취한 후 스승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한 붓다 앞에서 이렇게 그 소회를 노래했다.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깨달은 님이시여, 영웅이시여,
일체 중생들의 최상자이시여, 귀의하나이다.

 

일체의 괴로움은 완전히 알려졌고
원인인 갈애는 말라버렸고,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은 닦여졌고
적멸은 나에게 실현되었습니다.

 

예전에 나는 어머니이자
자식이자 형제이자 자매였으나,
있는 그대로를 알지 못하며,
죄를 씻지 못하고 윤해해 왔습니다.

 

저 세존을 내가 친견했으니,
이것이 최후의 몸으로,
태어남으로 인한 윤회는 부수어졌으니,
이제 다시는 윤회하지 않습니다.

 

분발하여 노력하고
항상 용맹정진하니,
화합된 제자들을 봅니다.
이것이 깨달은 님들에 대한 예경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마야 부인께서는 고따마를 낳았으니,
질병과 죽음에 타격받은 자들의
괴로움의 다발을 제거했습니다. 

 

붓다는 고따미에 이어 나머지 오백 명의 수행녀들을 최상의 경지로 이끌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설법을 시작했다.

 

“성자의 도 닦음에 대해 말하리라. 그것은 행하기도 어렵고, 도달하기도 어렵다. 이제 그것을 설명할 것이니, 굳게 하고 확고히 하라. 마을에서 욕설도 듣고 공경도 받는다. 그러나 마음은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의 성냄으로부터 멀리하라. 교만 없이 평온하게 유행하라. 숲에서 불의 화염처럼 여러 가지가 나타난다. 여인은 성자를 유혹한다. 그들이 유혹을 느끼게 행동하지 말라. 성행위를 삼가고, 온갖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식물이건 동물이건 살아 있는 존재에 집착하지도 말고 적대하지도 말라. ‘나는 그들과 같고, 그들은 나와 같다’고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여 죽이지도 말고 죽이도록 하지도 말라. 일반 사람들이 집착하는 욕망과 탐욕을 버리고 지혜를 가진 사람은 길을 가라. 그리고 이 지옥의 그 너머로 가라. 배를 비우고, 음식을 절제하고 적게 원하고 탐욕이 없어야 한다. 갈애에서 벗어나면 욕망이 없어 평온하게 된다. 성자는 탁발을 하고 나서 숲으로 가서 나무 아래 앉아야 한다. 명상에 전념하는 지혜로운 성자는 숲에서 즐거워야 한다. 스스로 기뻐하면서 나무 아래서 명상을 하라.”

 

붓다가 설법을 마칠 때 5백여 여인 출가자들은 여섯 가지 곧바른 앎, 즉 아빈냐(abhiññā)를 성취했다. 아빈냐는 아라한과를 얻으면 성취되는 육신통의 조건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