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 두 스님은 불가의 대표적인 학승들이다. 호진 스님은 일찍이 유학해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에서 교수를 지내며 숱한 제자를 양성했고, 지안 스님은 조계종을 대표하는 대강백으로 수많은 학인스님들을 배출해낸 스님이다.

두 분은 불교학이라는 큰 산을 놓고 교단 바깥과 안에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탐구해온 우리시대 대표적인 학승들이다. 이 두 분의 정은 또한 돈독해서 많은 후학들에게 진정한 도반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

크게보기어느 때 호진 스님이 홀연히 인도로 떠났다. 1년 동안 붓다의 자취를 찾아 붓다의 성지를 여행하는 목적에서였다. 이국의 황량한 벌판에서 붓다를 흠뻑 느끼며 떠오른 것이 아마도 둘도 없는 도반, 지안 스님이었던 모양이다. 호진 스님은 지안 스님에게 편지를 썼고, 지안 스님은 정성껏 답장을 보냈다. 이렇게 주고받은 편지글이 시절인연으로 불교신문에 몇 차례 연재되었고, 그것이 또한 이 편지글을 책으로 묶는 결과를 낳았다. 책의 이름은 『성지에서 쓴 편지』(도피안사).

“지안 스님과 나는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연구 분야와 방법이 다르다. 한 사람은 초기불교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또 한 사람은 대승불교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불교연구자라 해도 붓다의 교리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입장에서 쓴 내용을 한 곳에 묶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 책이 나오게 된, 호진 스님이 밝힌 동기다.

호진 스님의 편지는 단순한 편지글이 아닌 부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아 부처님이 몸소 걸으셨던 장장 수백 킬로미터의 길을 2600년의 시차를 두고 구법의 길을 나선 도보순례기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 더위와 숙소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 걸고 구법의 길을 나선 호진 스님과 도반 지안 스님간에 주고받은 진솔한 편지글을 통해 어떤 것이 부처님의 인간적인 참 모습인지를 알게 된다.

두 스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가노라면 초기불교를 공부한 수행자와 대승불교를 공부한 수행자의 깨달음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그 대목을 잠깐 살펴보자.

“지안스님, 우리는 수행의 목적이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것, 즉 성불하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다시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싯다르타의 첫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깨닫기 위해서’, 즉 ‘연기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5비구들은 두고라도 종교와 관계가 없었던 아사와 그의 많은 친구들조차도 싯다르타의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모두 깨달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깨달음이 ‘끝’이 아니라 반대로 ‘시작’이었습니다.”

“(호진)스님의 말씀대로 깨달음이 이해의 영역이 되어야 쉽지요. 선에서도 깨달음을 이해의 영역으로 보는 관점도 있었습니다. 소위 돈오점수에서의 돈오는 해오(解悟)라고 하여 이해의 영역으로 설명한 규봉종밀 선사 같은 분의 해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난 뒤의 새로운 인식이라는 말이지요.”

주고 받는 법담이 정겹고 흥미롭다.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펼쳐가는 지안 스님의 안목이나, 붓다의 체취가 담긴 성지를 순례하며 문득문득 피부로 와닿게 붓다를 느끼는 호진 스님의 감동이 온전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모두 열세 편의 편지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첫 설법을 한 녹야원, 슈라바스띠, 꾸시나가라 등 호진 스님의 붓다를 느끼는 여정을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함께 할 수 있다.

이 책은 호진 스님이라는 우리시대 한 위대한 학승의 안목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2600년 전 붓다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게다가 대승불교의 대강백 지안 스님이 편지를 읽고 감상을 붙인 자연스러운 ‘주석’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더 없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호진, 지안 두 불교학승을 통해 붓다의 내면의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