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대의 불화가 우리들의 삶을 위로하며 우리들의 마음에 공감을 받는 따뜻한 그림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더불어 내가 40년 넘게 그려왔던 전통불화의 모든 조형방식을 버리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불화가 아님을 또한 잘 알고 있다.”

 

‘불이不二’의 조형화 작업으로 우리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박경귀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비로자나국제선원 1층 갤러리 까루나는 불기2563(2019)년 9월 1일(일)부터 9월 30일(월)까지 박경귀 작가 “달맞이꽃” 초대전을 개최한다.

 

 

 

작가는 불화의 전통적 기법을 차용해 오직 ‘불이不二’의 조형화 작업을 하고 있다. 대칭되는 두 대상에 극도의 긴장 상태를 조장하여 두 대상에 주목하게 한다. “화엄법계도”는 만월과 인물이 서로 대응하게 그려진 대칭적 구도의 작품이다. 만월은 깨달음의 상태이고 사각큐브 속 인물은 깨달음을 얻고자 수행하는 자다. 이 그림은 대칭하고 있는 만월과 인물 사이에 어떠한 대상도 없이 진공의 시각공간을 만들면서 오로지 대칭하고 있는 만월과 인물 두 대상만을  주목하게 한다.

 

 

 

전통불화는 다양한 문양이 화면에 빼곡히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불화표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기서 문양은 대상을 장엄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대상을 명확히 드러내거나 부각시키려는 목적도 함께 갖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전통적 불화에서 문양이 갖고 있는, 대상을 장엄하고 대상을 명확히 드러내거나 부각시키려는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적극적으로 작업에 적용하고 있다. 다만, 전통불화의 문양이 식물이나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해 그의 작업에서는 문자의 집합시키며 문양을 만들었다. 작품 “The Full Moon”에서 만월은 지인들의 이름을 새겨 문양화 시켰다. 주목하는 대상 속에 자신과 인연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새기며 문양화하는 과정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마음속에 담으며 호명하는 것과 같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들을 떠 올리게 됨은 물론 지금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 ‘Link Buddha_잊지 않으마’ 의 붓다가 덮고 있는 법의法衣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쓴 비통의 편지 글을 촘촘히 적어 장엄스런 문양을 만들었다. 그들의 편지를 법의에 새긴 것은 자비로운 부처님이 그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계시며 깊은 바다 속 얼어버린 그들의 차가운 몸을 모포로 둘러 따듯하게 감싸 주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받았던 충격을 치료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 속의 달은 우리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대상이다. 우리들의 어머님이 달 밤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소박한 소원을 빌 때 어머님께 손짓해 준 대상이다. 또한 둥근 달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화엄법계도”에 등장하는 달은 가는 선을 서로 수없이 연결시키며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서로 인연으로 연기되어 있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작가의 그림 속 소재와 표현은 불이사상을 근간으로 조형화를 시도하며 나온 것으로 연기적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