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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불자도 내 백성이고, 유자도 내 백성이다”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19-08-01 (목) 05:53

어떤 진실이던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진실로서 유효하다. 다만 그 증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이 우리에게 있느냐가 문제다.
 

태양 반사광 속에 있는, 파랑색 동그라미 속 희미한 점이 지구이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1990년 2월 14일 칼세이건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 64억Km 떨어진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지구를 향해 돌릴 것을 지시한다. <창백한 푸른 점>은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의 사진을 부르는 명칭이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 칼세이건의 동명의 책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사진에 대한 소감 중에서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영화는 세종의 한글 창제 과정에 ’신미‘라는 승려의 적극적인 개입을 그렸고, 이것이 역사의 왜곡이라는 주장과 사실이라는 주장이 서로 맞서고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 왜곡인지의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이 부분에 있어서는 정찬주 작가의 현대불교 [특별기고] “영화 ‘나랏말싸미’는 옳다”-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723와 법보신문 이재형 국장의 데스크칼럼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주장이 부당한 이유 -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463에 잘 정리 되어 있다.) 문제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명에 대한 사대에 충실하던 조선 초기, ‘내 나랏글을 꿈꾼다’는 일은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발상이다. 또한 그 꿈이 기득권층이 대대손손 권력과 신분을 유지하는 무기가 한자이고 한문이던 시대에, 그 독점을 깨버리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는 위험한 발상에서부터 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세종의 우리글에 대한 의지는 기우제 발원문을 읽는 신하에게 말한 영화 속 첫 마디로 알아볼 수 있다.
“그렇게 빌면 이 땅의 신령이 알아듣겠는가? 우리말로 해라!”
 
신미에 대한 이미지는, 소헌왕후가 큰스님에게 대장경을 달라고 떼쓰는 일본 승려 문제에 지혜를 빌리는 대목에서 ‘꼴통’으로 묘사된다.
 
 
세종과 신미의 첫 만남에서 신미의 기싸움이 대단하다.
“너희들은 왜 절을 하지 않는 거냐?”
“개가 절하는 거 보셨습니까? 나라에서 중을 개 취급하니 국법을 따를 뿐입니다”
대화 도중 모든 소리글자의 뿌리가 산스크리트어라는 걸 간파한 세종은 신미에게 도움을 청한다.
“너, 나 좀 도와라.”
“너는 개를 자처하지만, 너나 나나 백성들이 지어준 밥을 빌어먹고 살지 않느냐. 나 좀 도와다오.”
“난 공자를 내려놓고 갈 테니, 넌 부처를 내려놓고 가라.”
“아니오. 나는 부처를 타고 가겠습니다. 주상은 공자를 타고 오십시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나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나 그 속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기존의 문화로부터 개방적일수록 유리하다. 문화의 새로운 상상력의 가능성에 대해 두려워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새로운 상상력의 낯섦에 대한 유연한 정신이야말로 새로운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특히 배경지식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는 정반대로 낯선 상상력에 노출시킴으로써 유연한 정신의 힘을 키울 때 극복된다.
세종은 낯선 문명을 이용해 자신의 활로를 뚫으려 하고 있다.
 
 
‘아래 아(·)’자를 넣느냐 마느냐 하는 토론에서 세종은 승려들의 의견을 들어, 살리는 쪽으로 수용한다. 어떤 이는 이 장면을 한글 창제의 주체가 세종에게서 신미로 넘어가는 헤게모니 싸움으로 보고 있으나, 이것은 모든 것을 정치논리로 보려는 심각한 중독 현상이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나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나 그 속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위의 장면은 언어학의 대가 두 명이 새로운 글을 만드는 현장에서 자신의 이론을 펼치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오류를 바로잡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세종은 소통과 수용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복천암 ⓒ 장명확
 
 
새 문자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만들 때가 왔다. 새 문자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전수하라는 세종의 말을 들은 신미는 세종과 한판 언쟁을 하고 속리산 복천암으로 돌아간다. 소헌왕후의 죽음으로 세종은 신미를 다시 부른다.
“새 문자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책으로 만드시지요.”
“그 일을 맡아 주겠는가?”
“내용을 정리해 드릴 테니, 책을 만들어 반포하는 것은 유자들과 하십시오.”
“중들 뒤끝도 참 만만치 않구나.”
“그래야 새 문자가 살아남는다면서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이나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나 그 속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어느 순간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현실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당위성만을 강조하며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서로의 상처만 깊어질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앞뒤 없는 미움과 증오라면, 그것은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세종은 공자에서 내리려 하고, 신미는 타고 온 부처에서 내렸다.
 
 
“좋은 이름을 붙여줘야 할 텐데.”
“귀한 아이일수록 오래 살라고 천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이 땅의 풍속이지요.”
“언문이 어떤가? 언이라는 글자에는 상스럽고 속되다는 뜻도 있지만, 강하고 억세다는 뜻도 있지.”
“언문! 좋네요.”
 
가늠하기 힘든 우주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아주 적은 시간을 태양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다. 인간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끊임없는 상상력과 도전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의 유전자는 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에게 친절히 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어찌 비단 문화에 국한되는 이야기이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 낯선 상상력을 끌어안자. 저 <창백한 푸른 점>에 누가 또 있는가? 우리들 밖에 없지 않은가!
 

복천사 남쪽 200미터에 있는 신미부도(信眉浮屠). ⓒ 장명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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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아리랑 2019-08-01 07: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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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에  대한 관심이 기자의 밝은 바람처럼, 각자가 타고 있는 것들을 타고 와 관객이 되기를 그리고 타고 있는 것들에서 내리는 엔딩을 상상해 본다. 신미와 세종이 그리했듯이_()_
남도산중 2019-08-01 08: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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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본질적인 관점에서 나랏말싸미를 바라본 귀하고 이색적인 기사입니다.
다경 2019-08-01 09: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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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품격있는 불교언론 <미디어붓다>가 지향하는 성격의 기사라고 봅니다.
육감도 2019-08-01 16: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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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참히 생각해보게하는 기사네요
깨불자 2019-08-03 14: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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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남도산중 2019-08-05 08: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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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을 부정하는 일부 학자들의 논리는 실록의 두 부분이다. 첫 번째는 이른바 군왕중심사관으로서 세종의 친제(親制)로 모든 공을 돌리는 ‘임금이 (1443년에)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라는 부분과 두 번째는 ‘세종대왕이 병인년(1446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었다.’라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신미스님이 한글창제에 간여했다는 주장은 허구이자 역사왜곡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부분은 집현전 학사출신 사관들의 의도적인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 지우기일 수 있다. 한글창제 반포 이후에 세종이 신미스님을 만났다고 해야만 신미스님의 ‘한글창제 역할’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종이 세종의 유언에 따라 신미스님에게 우국이세(祐國利世)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존호를 내리려 할 때 집현전 학사 출신인 하위지와 박팽년이 사생결단하듯 반대한 사실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우국이세는 ‘국왕(나라)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했다’라는 뜻인 바, 한글창제 말고는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없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병약한 문종은 박팽년 등의 극렬한 반대를 받아들여 '우국이세'는 삭제하고 '혜각존자'는 '혜각종사'로 위상을 격하시켰다. 이는 한글창제 역사 속에서 일부 집현전 학사들의 세종 친제를 못 박고 신미스님 지우기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적인 상상력이, 서두에서 예를 든 두 부분에만 갇혀 있는 일부 학자들에게 벼락같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성현 2019-08-10 15: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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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