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깨끗이 닦아내야 합니다. 자기 정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기 정화는 참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금생도 금생이지만, 전생에 어떤 몸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몸을 가지고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불교의식 가운데 한문으로 된 참회의 구절이 있는데, 번역을 해보면 이렇습니다.

 

 “제가 어리석은 탓으로 무량겁을 두고 한량없는 허물을 지어왔습니다. 이제 뉘우쳐 참회하오니 다시는 허물을 짓지 않고 언제까지나 깨달음을 추구하고 자비를 실천하게 하소서.”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소원은 울림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진심으로 하면 천지신명까지도 감동하게 됩니다. 기도에는 어떤 요구보다도 간절한 마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영혼에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에는 침묵이 뒤따라야 합니다. 침묵이 받쳐 주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말이 없어야 합니다.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 등 좋은 기도처라고 해서 많은 불자들이 기도하러 갑니다. 그곳에 가보면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법당에서 기도하고 나와서는 뒷방에 모여 반찬이 어떻다는 등 떠드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어떤 일이 마음속에서 깊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기도가 마음속에서 깊어지기를 바란다면, 결코 그것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영적인 체험이 내 안에서 일어날지라도 그것에 대해서 발설하지 마십시오. 기도 경험자들이 하는 공통적인 충고입니다. 묵언과 침묵으로 일관할 때 비로소 어떤 진리의 소리가 내 안에서 울려 나옵니다. 될 수 있으면 기도할 때 말소리를 작게 하십시오. 또 기도의 장소를 가리지 마십시오. 고요하고 청정한 도량이면 어디서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번거롭고 분주한 곳에서는 오히려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이름난 기도 장소에 가 보십시오.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 남의 엉덩이에 대고 절해야 하고 부처님한테 절할 여백이 없습니다. 서쪽에만 극락세계가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흰 구름이 걷히면 어디나 청산입니다.

 

 기도는 법당이나 성당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말 한 마디마다 기도가 배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법당에서 하는 것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기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집에서 하는 것입니다. 내 집과 방이 바로 법당이고 성당입니다.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곧 기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건강할 때 기도해서 맑은 업을 지어야 합니다. 병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루하루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 어려운 고비를 무난히 넘길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신앙의 꽃이 피고 깨달음의 열매가 맺습니다.

 

 

 나는 절에서 기도할 때 무엇을 바란 적이 거의 없다. ‘무엇을 도와주십시오.’가 아니라 ‘무엇을 하겠습니다.’라는 식이다. 발원이나 맹세인 셈이다.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은 그 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이야말로 법당이라는 자각이 들어서이다. <유마경>에도 청정한 마음이 법당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기도에는 절이라는 형식이 따른다. 절을 가지고 전설을 남긴 분은 성철스님이다. 성철스님이 던진 화두, 불전 삼천배(佛前 三千拜)가 그것이다. 나를 만나고 싶거든 ‘부처님 앞에서 삼천배를 하라.’는 말이다. 내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일이다. 여름철 휴가를 맞아 나는 가족과 함께 해인사로 갔다. 성철스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법당에서 가서 삼천배를 해야 성철스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성철스님을 뵙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족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해인사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대구로 나오는데 해인사 총무스님이 승용차로 우리 가족을 태워 주었다. 마침 해인사 총무스님도 대구에 볼 일이 있었던 것이다. 해인사 총무스님은 원택스님이었다. 훗날 성철스님께서 입적하신 지 3년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서울의 모 신문에 <암자로 가는 길>을 연재하고 있었다. 취재차 원택스님이 암주로 있는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갔다. 원택스님은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지 않겠냐고 나에게 제의했다. 나는 성철스님을 직접 뵙지 못했던 탓에 망설였다. 뿐만 아니라 대구까지 우리 가족을 승용차로 태워준 원택스님의 고마움도 새삼 기억이 나서 갈등했다. 그래서 나는 “서울로 가서 1주일 동안 생각해본 뒤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백련암을 내려왔다. 1주일이 지나가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성철스님을 뵙기 위해 그때는 삼천배를 못했지만, 부처님께 삼천배하는 마음으로 원고지 3천장을 쓰자. 그러면 성철스님의 진면목이 보이겠지.”
 이러한 사연으로 집필한 소설이 <산은 산 물은 물>이다. 민음사에서 초판이 나왔을 때 하루에 8천 권씩 나갔으니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소설이다.

 

 또, 절 하면 돌아가신 일타스님의 맏상좌 혜인스님이 떠오른다. 혜인스님은 해인사 장경각에서 6개월 동안 1백만 배를 한 분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내가 스님에게 “절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장경각에서 여섯 달 동안 1백만 배를 마쳤습니다. 법당 마룻바닥에 1백만 번을 부딪친 무릎이 나중에는 곪아 터져서 고름 덩어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제가 1백만 배를 마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1백만 배도 중요하지만 간절하게 하는 1배가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혜인스님께서 내 산방에 오시어 좋은 터에 살고 있다며 덕담을 하시고 가셨는데 홀연히 스님께서 그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