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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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적 방법론의 지양

남의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정신을 더욱 증진해가야 할 것이다. 종교간의 대결을 타개할 바람직한 길은 오직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학문적인 비교연구만이라도 더욱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여러 종교에 대한 학문적 비교연구를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재의 종교학적 기본 입장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비교종교학은 애초에 다른 종교애 대한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현대 종교학은 이런 호교적 입장을 반성하고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종교는 이래야만 한다’는 등의 규범을 묻는 일은 신학이나 종교철학에 맡기고, 제 자신은 오로지 ‘종교는 어떤 모양으로 있는가(be)'를 묻는 일에만 한정시키게 되었다. 종교학의 대상이 되는 자료는 크게 종교사상 종교행동 종교체험 종교활동의 네 방면으로 접근되는데, 이 중에서 종교사상에 대한 연구가 현재 제일 부진한 까닭은 현대 종교학의 그러한 제한 때문이다.

종교에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종교사상이다. 종교행동이나 체험 사회적 활동 등은 사상을 바탕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종교사상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은 요아킴 바하(joachim Wach)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신학 우주론 인간관의 세 가지 테마라고 말할 수가 있다. 종교의 근본 바탕이 되는 이런 문제를 제쳐두고 어떻게 종교의 참다운 뜻을 파악할 수가 있을까? 종교의 체계적 이해는 종교사상에서 출발하여 행동 체험 활동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사상이 근본이 되는 것은 궁극적 실재에 관한 것이므로 그것부터 구명(究明)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필연적으로 종교학에서 금기로 치고 있는 규범(norm)에 관한 문제에까지 접촉하게 될 것이다. 현대 종교학은 이제 스스로 걸머진 제한을 신중하게 풀면서 이런 깊이에까지 파고들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종교학자인 미셀 파이(Michael Pye)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종교의 현상학적 연구는 여러 종교의 진위 가치 등을 묻는 궁극적인 물음에 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상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는 자료 자체가 그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종교인인 ‘기독교는 비신화화(非神話化)할 수 있는가.’ 불교의 참뜻은 무엇이며 현대화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던지고 있다. 현상학적 연구의 대상에는 이러한 자료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같은 종교의 교설 속에 서로 엇갈리는 말이 있을 수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단순히 그것이 신의 계시라는 것만으로는 지적인 신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보다 심오한 이유‘가 필요하다. 비교 종교의 대상에는 이런 ’심오한 이유‘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사상의 진위(眞僞)나 가치 등에 관한 문제는 정말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경솔한 독단이나 속단이 내려져서는 안된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것은 종교 간의 이해와 관용은커녕, 다시 심각한 대립과 쟁론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호교적인 비교종교학이 반성되고 현대 종교학에서 종교적 범규(範規)에 관한 문제가 금기되었던 것은 그러한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단정을 내리려면, 그러기 전에 그 종교에 속한 전문적인 수행인에게 먼저 그 내용을 검토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미셒 파이는 말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