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여행을 마치고 화홍포항에 도착하여, 다음 여행 목적지 청산도로 떠날 수 있는 완도항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완도중학교가 있는 남망봉 고개 마루에서 거친 숨을 달래기 위해 자전거를 세우고 목을 축이는 순간, “지장기도도량 신흥사”를 알리는 표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수원에서 600여리나 되는 완도까지 왔으면서 ‘완도에 있는 사찰을 하나도 안보고 간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길가에 자전거를 채우고 약간 가파른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신흥사를 향하여 5분여를 걸으면서 이렇게 좋은 자리에 절이 있다는 것에 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발부리에 완도시내 전체가 붙었고, 가까이는 명사십리를 자랑하는 신지도가 자리하였는데, 그 너머로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바닷가에 부딪히는 흰 거품과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만들어낸 길게 이어진 흰 물살의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는 사찰은 우리나라에 이곳 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겨우 해발 150m뿐이 안 되는 낮은 산의 이름을 지으면서, 멀리 내다본다는 뜻을 가진 “망(望)”자를 넣어 남망봉(南望峰)이라 이름 지은 것은 만용이 아닌 진실을 담은 표현입니다. 

 

 

신흥사 경내를 들어가는 입구는 범종각입니다. 2층 누각으로 지은 범종각 1층 계단을 통해 오르면 대웅전 마당에 들어서게 됩니다. 평지가 아닌 산에 사찰을 조성하려면 축대를 쌓고 대지를 조성할 수밖에 없고, 그 대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이 필요한 까닭에 대부분 사찰은 누각의 1층을 통과해야 합니다.
신흥사가 낮은 산에 지어졌어도 지형의 특성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일주문과 천왕문 등을 세움이 없이 범종각 계단을 통해 오르면서 부처님의 나라에 들어섬을 의식하게 하였고, 계단을 오르며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였습니다.    

 

 

 

불전사물 중 범종만을 비치할 경우에 “범종각” 현판을 걸 듯, 범종각에는 범종만 걸려있습니다. 굵은 원기둥 네 개로 사모지붕 집을 짓고, 네 개의 내림마루가 모이는 곳에는 절병통 대신 암막새와 수막새를 바로 놓고 뒤집어 놓아 멋들어진 탑 모양을 빚었습니다. 기와장이의 재간에 탑 기단부의 앙련과 복련이 연상됐고, 그 위에 올라앉은 장식도 ‘탑 상륜부의 보륜을 상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네 기둥에는 아침 예불할 때 외우는 게송이 주련으로 걸렸습니다. 

 원차종성변법계 철위유암실개명 삼도위고파도산 일체중생성정각
(願此鐘聲遍法界 鐵圍幽暗悉皆明 三途離苦破刀山 一切衆生成正覺)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두루 울려나가기를 원합니다.

일체 중생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하소서. 

 

종각에 들어서서야 범종의 이름이 “장보고범종”인 것을 알았고, 이로써 이곳이 완도임이 실감났습니다. 완도는 통일신라시대에 장보고 장군이 군사기지(청해진)를 설치하여 당나라해적을 격퇴하고, 국제무역항으로 발전시킨 곳입니다. 그 당시 완도는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드나드는 국제도시로 번창했고, 장보고는 “청해진대사”로 불렸습니다.

 

종신에는 범종각 기둥에 걸린 게송과 함께 저녁 예불할 때 외우는 게송도 새겨졌습니다.

 

 

장보고범종에는 아침저녁으로 완도시내를 내려다보는 곳에서 중생들이 깨우침을 얻고, 성불하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범종각 이층 바닥이 나무마루인 까닭에 울림통 역할을 할 반달모양의 구덩이(명동)를 파내거나 항아리를 놓을 수 없는 것에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범종이 시내와 남해를 바라보는 높은 곳에 위치하여, 종소리가 대지와 허공 그리고 깊은 바다 속까지 중생이 있는 모든 곳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범종각을 통해 올라선 마당에서 대웅전과 약사전을 마주하게 됩니다. 약사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습니다. 정면 세 칸을 같은 너비로 짓고, 기둥과 문설주를 띄워 벽체를 만듦으로써 기둥 사이가 창호로만 채워져 있지 않는 특이한 점을 지녔습니다. 한옥에서는 보기드믄 형태입니다.

 

 

 

약사여래는 보살로 수행하는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소멸시키겠다는 큰 소원을 성취시켜 부처님이 되신 후, 동방정유리세계에 계시면서 중생들의 질병은 물론 크고 작은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부처님입니다.

 

문화재 안내판에 의하면, 불단에 봉안된 목조약사여래좌상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는데, 1628년에 조성된 후 1845년과 1865년에 개금불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개금불사가 이루어진지 150여년이 지나는 동안에 불자들이 올린 향초 공양에 의한 그을음이 상당했음에도 방금 전에 개금한 듯 금빛이 찬란하여, 부처님을 깨끗하게 모시는 공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통상 약사여래부처님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오른손을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에 약단지를 올리고 계시지만, 신흥사 부처님은 왼손을 올리셨고 무릎 위에 편하게 놓은 오른손에는 어느 것도 올려있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불상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불상이 오른손을 올렸고, 비로자나부처님도 오른손을 높이 들어 왼손 검지를 감싼 것을 생각하면 신흥사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왼손을 올리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주존불만 봉안한 법당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존불 좌우에 협시불을 모신 삼존불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흥사 약사전은 협시불 없이 약사여래부처님만을 주존불로 모셨습니다. 신흥사는 약사전을 천불전으로 조성하였습니다.
본존불로 모신 약사여래부처님의 좌우에 모신 모든 부처님의 생김새가 똑 같아서 ‘서른두 가지 훌륭한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없고, 모든 상호를 갖추었다고 여래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자들께서 이미 아시겠지만, 작은 절을 크게 보이고자 천 분이나 되는 부처님을 모신 것이 아니라, 좋은 일로 또 싫은 일로 부딪히는 사람들 모두 모두가 부처님인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하려함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큰 부처님을 향해 절을 올렸습니다.

 

 

대웅전은 정면 다섯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졌습니다. 서까래를 길게 한 탓인지 처마가 깊어져 추녀를 제법 굵은 활주로 받쳤는데, 방문한 때에는 대웅전을 보수하는 공사가 진행되려는 찰나였습니다.

 

 

 

어수선하게 보이지만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가는 날이 장날이다”라기 보다는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웅전이 지은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싶은데, 호화스러움을 피하려 는 마음이었던지 덤벙주초에 기둥을 세웠습니다. 벽화를 보기위해 측면을 돌면서 걱정이 생겼는데, 좌우측 우주(귀기둥)는 곧게 섰는데 평주가 안쪽으로 제법 기울어져 있음이 눈에 띄었기 때문입니다.

 

 

한옥을 지을 때 통상 기둥머리를 건물 안쪽으로 약간씩 기울여주는 “안쏠림”을 하지만 ‘그런 것이 있는가?’하고 관심을 가져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건축년도가 오래된 건축물만 문화재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지어지는 아름다운 건축물도 후손에게 물려져 문화재가 될 수 있는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오가며 보는 모든 법당들이 튼튼하게 오랫동안 남아서, 불자들의 불심이 깊어지는 터전이 될 것을 기원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