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산 세심사 (3)
산령당(山靈堂)
세심사는 이모저모에서 궁금증을 일으키는 절입니다.
토착신앙 산신을 받아들인 불교는 모든 절에서나 산신각, 산령각 또는 칠성과 독성을 같이 모시는 삼성각을 두는데, 보기 드물게도 세심사는 전각 이름에 “당”자를 붙여 “산령당”이라 하였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옛날부터 건물 이름에도 서열을 두어서 “전(殿)”은 국왕이나 부처님을 모시는 곳, “당(堂)”은 왕자의 공간이나 관아 ․ 사찰의 모임장소, “각(閣)”은 전과 당의 부속 건물에 붙였기 때문입니다.
산령당 주변도 많은 꽃들로 장엄되었고, 수수꽃다리 향기가 진동합니다.
그렇지만 산령당 안으로 들어서면 “각”이 아니라 “당”으로 격을 높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산령당에는 칠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칠성탱화는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이 우리 ‘인간 수명과 길흉화복을 다스린다’는 민간신앙이 불교와 융화되어 믿음이 된 그림입니다. 탱화의 중심에는 북극성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께서 전법륜인에, 하얀 보주를 들고 결가부좌하고 계십니다.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보살 두 분이 약사여래의 협시보살이고, 약사여래가 약함을 들고 계신 것을 생각하면 치성광여래가 약사여래의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칠성탱화.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로, 도교에서는 자미대제로 일컫는 북극성을 화폭 상단과 하단에 같이 등장시켰습니다.
탱화 상단 좌우에는 도교에서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이, 그 아래에는 삼태성이 그려졌고, 왼쪽에는 남극성을 상징하는 수(壽)노인이 정수리가 위로 길게 솟아오른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화폭에 또 다른 하나로 구획한 하단에는 북극성을 상징하는 자미대제가 훌륭한 품성을 지닌 얼굴에 수염을 쓸어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병듦이 없이 오래 살고, 자손이 귀한 집은 대를 잇고, 흉한 일은 덜어내고 복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소원은 중생들이 충족해야할 본능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민간신앙과 도교 그리고 불교가 종합된 칠성탱화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꼭 있어야 할 그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산신탱화
칠성탱화 오른쪽에는 산신탱화가 걸려있습니다. 세심사 산신탱화를 보면서 이제까지 보아온 ‘산신도에 대한 생각이 단순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산신이 미풍에도 휘날릴 정도의 긴 눈썹과 흰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신탱화
언제인가 모르는 때에 땅이 생겨나면서 산도 생겼고, 산신령은 그 산을 지키며 오랜 세월을 같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주만물 모든 것이 성주괴공하고 윤회가 거듭됨을 생각하면 젊은 산신령도 있을 것인데, 바로 영인산 산신령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탱화에 그려진 영인산 산신령은 눈썹이 검고, 수염에 간혹 희끗희끗함이 보이는 패기가 넘치는 장년의 얼굴입니다. 아직 지팡이가 필요할 때가 안 되어서인지 지팡이는 그려지지 않았고, 차를 끓이거나 과일 공양과 꽃 공양도 산신령이 혼자 하는지 동남동녀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머리에는 중국 사람들이 머리에 천을 두른 형태의 복두를 쓰고 있고, 손에는 깊은 산에서 나는 불로초 영지를 지녔습니다.
산신탱에 호랑이가 표현된 모습은 산짐승의 왕임을 알리는 포효 자세, 산신령 뒤에 엎드려 있지만 늠름하고 엄숙한 자세, 산신령을 태운 자세 등이나 세심사 산신탱에서 호랑이는 그와 다르게 등장하였습니다. 영인산 호랑이는 우스꽝스럽게도 민화에 등장하는 자태로 산신에게 몸을 비비며 옷자락을 물었는데, 꼬리를 세운 것이 영락없는 주인을 향한 고양이의 애정 표현방법입니다.
그림에 대하여 한 마디도 해서는 안 될 사람이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지만, 굳이 하자면 산신령의 얼굴표정을 힘차게 그려낸 화사(이용해)의 솜씨가 백수의 왕을 멋지게 그리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산신탱을 보면서 영인산 산신령은 산에 사는 동물을 보호하고, 호랑이는 사람을 따르는 친근한 관계임을 나타내고자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탱화는 산신령께서 불자는 물론, 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편안하게 지켜주고, 세심사 수호도 그렇게 하고 있음을 나타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산전(靈山殿)
세심사가 자리한 영인산(靈仁山) 이름에 쓰인 “영”자와 산령전의 “영”자 그리고 전각이름 영산전의 “영”자는 모두 “신령 령”자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품은 뜻은 다릅니다.
영산은 이미 알고 계시듯 인도에 있는 영취산의 준말입니다. 따라서 영산전은 영인산에 있는 법당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영취산에 있는 법당이라는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영취산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행하시고 또 오랫동안 불법을 전하시던 곳이기 때문에 영산전은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가르침을 펴는 모습을 보여 주려한 전각’입니다.
불단에 봉안된 삼세불(좌로부터 미륵불, 석가모니불, 제화갈라보살).
부처님 뒤쪽 후불탱화에 보현보살이 타고 다니는 코끼리의 왕 흰 코끼리와 문수보살이 타고 다니는 청사자가 보입니다.
불단 중앙에는 항마촉지인에 결가부좌를 하신 석가모니부처님을,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인 보살 두 분이 데칼코마니를 한 듯 모셔져 있습니다.
부처님의 왼쪽에 계신 제화갈라보살은 과거칠불의 한 분인 연등불로 석가모니부처님의 과거세에 ‘훗날 성불할 것이다’고 수기를 주신 분이며, 오른쪽의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미래세에 성불할 것임을 수기 받은 보살입니다. 즉, 과거의 부처님과 현재의 부처님 그리고 미래에 오실 삼세(三世)에 걸친 부처님을 모신 것인데, 이렇게 삼세불(三世佛)을 봉안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과거부터 현재를 거쳐 머나먼 미래까지 계속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영상회상도(靈山會上圖)
세분의 부처님 뒤에는 영취산에서 있었던 법회모습을 그림으로 풀어낸 영산회상도가 걸려있습니다. 부처님 생존 시에 최고급의 사진기가 있었다하더라도 사진작가는 영취산에서 열린 야단법석을 촬영하는 것은 무척 난감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거의 많은 부처님과 보살님들, 10대 제자, 16성, 오백성, 독수성, 천이백 아라한은 물론이고 범천과 신장 등 법회에 참석한 수많은 인물들을 한 장에 담아낼 수가 없었을 터입니다. 많은 인물을 촬영하기 위해 구도를 잡고, VIP를 중심축에 모시고, 위신력에 따른 전후좌우 배치 등등 고려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보다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이는 부처님과 직접 관련된 중요 인물만 추려서(?) 그리면 되는 때문입니다.
영산회상도(부분)
후불탱화 중앙에는 결가부좌한 자세에 마왕을 굴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을 취하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자리하셨는데, 두광과 신광 테두리에 붉게 타오르는 화염문과 그로부터 허공으로 뻗치는 빛살을 그려 부처님의 위엄과 가르침이 천상의 세계까지 퍼져나감을 나타냈습니다.
왼쪽에는 연꽃을 들고 청사자를 타고계신 문수보살과 백의관음, 제화갈라보살, 금강장보살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과 연꽃을 든 대세지보살, 석장을 든 지장보살, 미륵보살 등 모두 여덟 분의 보살이 협시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영산회상도의 왼쪽과 오른쪽 부분.
좌우가 같은 모습에 같은 숫자로 그려졌습니다.
팔대보살 뒤에는 십대제자들이 좌우에 각각 다섯 명씩 자리하였는데, 긴 눈썹에 수염이 흰 가섭존자와 파랗게 보일 정도로 머리를 깎은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바로 곁에 그려졌습니다. 모든 중생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부처님이지만 불법을 전하고자 멀리 떠나있던 제자들이 돌아오면 부처님도 한없이 기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꽃 한 송이를 들고 마음을 전하고자 했던 염화시중의 미소도 영취산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이 성스러운 분들을 지켜주기 위해 사천왕이 빠질 수 없다는 듯 좌측 위쪽에는 비파를 든 지국천왕이, 하단에는 칼을 든 증장천왕이, 우측 하단에는 용을 잡고 있는 광목천왕이 위쪽에는 탑을 든 다문천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짙은 청색으로 찬란하고, 곳곳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