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익진 박사(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교수)의 저서 『현대한국불교의 방향』을 요약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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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불경(常不輕)의 보살행(菩薩行)

서늘한 남국의 새벽이다. ‘싱갈라’는 깨끗이 몸을 씻고 동서남북 상하 육방(六方)을 향해 경건히 예배를 올린다. 부처님은 이 젊은이의 모습이 여간 기특한 게 아니다

‘젊은이여, 그대는 무슨 이유로 육방을 예배하는가.“ 부친이 돌아가실 때 육방 예배를 유촉하셨습니다. 그 유촉을 받들어 하루도 게으름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육방에는 단지 방위의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동쪽은 부모, 서쪽은 스승, 남쪽은 아내, 북쪽은 친족, 하방은 하인, 상방은 성자(聖者)로 생각하고 예배함이 좋으리라.”

싱갈라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끓고 그 육방을 예배하는 구체적인 설명을 다시 듣는다. 욱방예경(六方禮經)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교는 형식적인 예(禮)를 부정한다.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라고 해도 인간적인 알맹이가 없는 예는 단연 거부하는 것이다.

불교처럼 예(禮)에 대한 규정이나 정의가 없는 종교도 없는 것 같다. 불교에서 굳이 예에 대한 개념을 찾아본다면 ‘나무(南)’라는 술어가 생각된다. ‘나무’는 범어의 ‘나마스(namas)'라는 말을 소리로 옮긴 것인데 ’구부린다‘는 뜻을 갖고 있다. 절할 때 몸을 굽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신을 다 바쳐 귀의(歸依)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나무’는 단순한 예라기보다는 믿음에 가까운 개념이다. 불교에는 예에 대한 형식적인 설명이 드물다. 그러면서도 믿음에 대한 강조는 지나칠 정도로 행해지고 있다. 믿음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요, 깨달음에 드는 문이다. 그러나 불교의 이러한 믿음은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바가 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이라면, 불교의 믿음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라고 말할 수가 있다.

인간은 무지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러나 불교의 믿음은 인간의 이러한 사악함과 유한성에 절망하지 않고 인간성에 끝까지 신뢰를 두는 입장에 있다. 인간은 스스로 깨달을 능력이 있으며, 자기의 구원을 스스로 실현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법화경에 설해진 상불경(常不輕) 보살은 이러한 뜻을 잘 보여준다. 상불경 보살은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조소하고 나무라도, 심지어는 몽둥이로 때리고 돌을 던져도, 그는 이 모든 괴로움을 감내하면서 “당신들은 부처님이 되십니다”는 말을 끊이지 않으면서 한결같이 예배하였다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