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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직전의 남전스님과 그 제자인 조주스님의 대화입니다.
“스님께서는 백년 후에 어디에 계실 것입니까?”
“산 밑 신도 집, 한 마리 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소와 다른 물소입니다. 제자가 말합니다.
“그러면 저도 스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따라오려거든 풀 한 다발을 가져오너라.”
남전스님의 이 말은 참으로 무서운 소리입니다. 그 큰스님이 죽어서 신도 집의 소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시은을 많이 입으면 그 집에 짐승으로 가서 갚는다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세상에 공것은 전혀 없습니다. 받아쓰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이것은 시줏밥 먹는 절의 스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평생 살아가면서 빚질 노릇을 했는지, 빚 갚는 일을 했는지 때때로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남의 신세를 졌으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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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 날 한국불교는 부유한 자, 권력 있는 자를 더 우대하는 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돈 많고 이름 있고 권력 가진 사람들만이 주지실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습니다. 큰절일수록 더 심한 현상입니다. 세속의 논리와 가치관이 수행자들의 청정도량까지 물들여 버린 것입니다. 돈을 많이 내는 곳이 우대받는 곳이 절이라면 어떻게 그곳을 진리추구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까? 더 세속화되고 더 타락하기 전에 수행자들이 본래 출가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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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노릇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 대신 타락하기도 쉽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가 중노릇하기가 쉽지 않은 때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풍부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세태이기 때문에 수행자로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칫 그 그물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아야 되는데 그 그물에 걸립니다. 우리는 무심히 이것저것 받아서 씁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쓰지 않으면 완전히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출가란 무엇입니까? 세속을 떠나 자기 뜻을 가지고 살기 위해, 세속적인 물질의 세계가 싫어서 그곳에서 뛰쳐나온 것이 출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자는 청정한 규범, 질서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어진 질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내가 한 생각 일으켜서 내디딘 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제하고 자기 분수를 헤아리면서 받아 써야 합니다.

 

 

나의 장편소설 <소설 무소유>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일화이다. 어느 날 불일암을 갔을 때 마침 점심할 시간이 되어 스님께서 식사당번, 내가 설거지당번을 했다. 스님께서 그렇게 정하셨다. 점심메뉴는 국수. 스님께서 삶은 국수를 우물로 가져가 찬물에 담그셨다. 그래야 면발이 꼬들꼬들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때 국수 서너 가닥이 바가지를 넘어가더니 우물 앞으로 난, 빨래도 하는 물길에 빠졌다. 스님께서는 “신도가 수행 잘하라고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국수 가닥을 얼른 주워서 드시었다. 덧붙여 하시는 말씀. “신도가 준 것은 정재(淨財)라고 해요. 그러니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오.” 정재, 즉 맑은 재물이라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의 일도 잊히지 않는다. 스님께서 돌아가신 나의 선친께 겨울내의를 선물하신 일이다. “시주받은 내의인데 나는 한 벌만 있으면 되니 아버지께 갖다 드리시오.” 스님의 산문집을 편집하느라고 서울에서 내려와 불일암을 올라온 나를 격려하는 마음에서였겠지만 위의 공감법어에서 말씀하신 스님만의 ‘빚 갚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님 덕분에 그 겨울을 따뜻하게 지냈다고 내게 여러 번 말씀하시던 선친의 모습이 어제의 일인 듯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