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도록 알람을 맞춰 놓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알람이 울지 않았다. 아마도 알람을 듣지 못할 정도로 곤한 잠에 빠졌을 것이다. 어젯밤 지붕을 쓸어내리는 소리, 철문을 드르륵 드르륵 여닫는 소리가 밤늦게까지 잠을 설치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따금씩 동물들이 서로 으르렁 대는 소리도 들렸고, 휘파람 소리를 내는 바람도 스산하게 불었다. 툭툭툭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발자국 소리를 연상시켰다. 첫날밤에는 귀신이 있나? 생각했을 정도로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다음날 자세히 살펴보니, 지붕을 쓸어내리는 소리는 야자수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지붕과 부딪히는 소리였고, 창문소리 여닫는 소리는 옆 꾸띠에서 나는 것이었다. 경험한 이는 알겠지만 적막한 수행처에서는 작은 소리도 상상 밖으로 멀리, 크게 퍼져나간다.

 

수행차 함께 담마마마까에 온 도이 법사께서 내 꾸띠의 창문을 두드려 깨워주는 자비를 베풀어준 덕에 가까스로 새벽 4시 좌선에 늦지 않게 참석할 수 있었다. 어제의 정진에서 기대와 좌절을 동시에 맛본 터라, 오늘은 처음부터 마음 급하게 먹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다짐을 세웠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3배를 올리고, 평좌를 틀고 앉았다.
감기에 걸린 수행자들이 적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기침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침 소리보다 더 큰 장애는 수행센터 바깥의 인근 마을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노랫가락 소리이다. 가사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어 망정이지 가사 내용을 알아들었다면 수행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확성기로 엄청나게 크게 노래를 틀어도 이 나라에서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텐데 말이다.

 

 

 

본격적으로 수행을 하게 되면 다리가 쑤시거나 저려오고, 엉덩이가 아프다가 등짝이 아프고, 목 부분이 아프게 되는 고통의 순환이 시작된다더니 과연 그랬다. 첫날과 둘째 날에는 멀쩡했던 등이 뻐근하게 아파온다. 뻐근함을 견디며 마음으로 연신 일어남 사라짐을 되뇌며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해보지만, 어느 순간 깜빡 사띠를 놓치고 만다. 쥐도 새도 모르게 혼침이 침입한다. 사띠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등골에 진땀까지 솟는다. 용을 쓴 탓인지 몸에 열이 나면서 서늘한 새벽인데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가만가만 잠바를 벗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사투!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일갈하셨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농사를 짓는 한 바라문에게 탁발을 갔다가 그로부터 ‘당신도 밭을 갈아 먹을 것을 직접 마련하시오’라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나도 밭을 갈고 있소. 나는 사띠라는 쟁기로 마음의 밭을 갈고 있다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3년 전부터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한 나의 입장에서 이 말씀이 지금 이 순간처럼 실감나게 수긍되는 순간은 없었다.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지난한 일인지 며칠 앉아 보니 알겠다.
이곳에서의 수행은 한 시간 앉음수행, 한 시간 걸음수행이 교차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행 초보자에게 걸음수행의 중요성은 아주 크다는 것이 먼저 수행의 길에 든 선배 수행자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집중력을 키우는 데는 걸음수행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바닥의 느낌을 관찰하면서 걷는 걸음수행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듦 듦, 나아감 나아감, 내려놓음 내려놓음의 3박자로 흔들림 없이 최대한 느리게 걷는 것이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점심공양을 마친 후 이병욱 선생과 함께 담마마마까 경내를 산책했다. 일단 걸으며 소화를 시켜야 다시 정진법당으로 가서 앉음수행을 하는데 거북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한국불교를 걱정했다. 수행센터 안에서 담소를 나누며 산책로를 거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들키지 않게 주위를 살피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눴다.
현재의 한국불교 모습은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불교, 법(진리)은 실종되고 치장(데코레이션)만 남아 있는 불교, 부처님의 불교에서 크게 벗어나 중국의 도교와 한국의 무속이 혼재된 불교라는 데 우리는 동감했다. 그리고 한국불자들이 선택해야할 대안은 테라와다 불교라는 데에도 견해를 같이 했다. 껍데기만 남은 불교는 오래 존속되지는 못할 것이며, 조만간 새로운 흐름이 거세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았다.
 
오후 2시. 한국관에서의 법문 시간이다. 오늘도 에인다까 사야도의 녹음 법문이다.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는 ‘요까나까’에 대한 법문이다. 법문의 요지는 성인과 범부가 어떤 상황을 맞았을 때 이를 대처하는 방법의 차이를 부처님께서 설법한 것이다. 요까나까는 범부든 성인이든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를 대하는 방식에서는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성인은 풍부한 물질을 소유했을 때나 비루한 물질을 가졌거나 상관없이 ‘이 또한 무상한 것이고, 그러므로 고통스러운 것이며, 이것을 주재할 특별한 주체도 없다고 생각하여 삼법인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부는 이런 경우를 만났을 때, 교만해지거나 아상에 휩싸이거나 하고, 또한 슬퍼하거나 비탄에 빠져 가지가지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일으켜서 3계6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윤회의 고통에 휩싸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인은 어떤 경우를 만나거나 당했을 때, 그것을 삼법인을 숙고하는 계기로 삼아 탐진치에 물들지 않고 지혜를 발현해 열반을 성취하는 반면, 범부는 삼법인으로 숙고하지 못해 윤회의 사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의 법문이다.

 

오늘 저녁에는 세 번째로 열리는 법문축제에 참석해야 한다. 법사는 담마마마까 선원의 창건주이자 한국의 비구니인 혜송스님이다. 혜송스님은 법문을 한국어로 할 수 없고, 미얀마어와 빨리어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국에서 온 요기(수행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혜송스님의 법문제목은 ‘힘이 충분하면 행복을 성취한다.’이다. 스님은 이 법문의 출처가 삼장(三藏) 중에서 경장(經藏), 5부 니까야 중에서 <인곡뜨라(앙굿따라) 니까야> 5장 ‘힘 5종’이라고 밝혔다. 혜송스님은 설법에 들어가기 전에 부처님 재세 시 비구니 가운데 ‘지혜제일’로 추앙을 받았던 마가다국 왕비출신 ‘케마테리’를 찬탄하는 부처님의 게송을 읊어 법상에 오르는 자신의 심경을 대변했다.

 

 

 

아는 분은 다 아는 것이지만, 비구니가 법상에 오르는 것은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는 테라와다 불교전통에서는 사변(事變)에 가깝다. 계맥의 전통이 끊어졌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비구니 제도가 사라진 테라와다 권의 대표적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비구니 스님이, 한국 비구니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인 법회의 법상에 오르는 일은 참으로 희유(稀有)하고 희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려나, 불교기를 든 청년 불자들의 길 안내와 일산을 받쳐 든 젊은 불자들의 극진한 호위를 받으며, 띨라신(여성 출가수행자)들이 그 뒤를 따르는 가운데 법회장으로 입장하는 혜송스님의 표정이 조금은 상기되어 있는 듯 보였다. 이와 같은 획기적인 사건이 가능한 것은 혜송스님의 미얀마 불교에서의 위상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었다. 미얀마 정부로부터 ‘불교를 번창시킨 기수’라는 최고의 칭호를 헌장 받은 대 법사답게 그 위용은 법회에 참석한 사부대중의 합장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담마마마까의 최고 스승 에인다까 사야도 역시 각별한 예의로 혜송스님을 맞아 법상으로 인도했다. 혜송스님이 미얀마에서 이미 사야도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는 없었던 법석이어서 그런지, 혜송스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지만 목청은 쩌렁쩌렁 우렁찼다. 혜송스님의 법문에 300여 동참 불자들은 시종 합장을 풀지 않고 번갈아 합송을 하면서 경청했다. 자비관 낭송과 삼보예찬 합송으로 시작된 설법에서 혜송스님은 부처님께서 사왓티 기원정사에 머물 때 하신 법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설법을 시작했다.

 

 

혜송스님은 오늘의 법회에 참가한 모든 사부대중이 도와 과를 성취하고 열반에 이를 것을 축원한 후 ‘불법이 영원하기를!’이라는 말로 법문을 마쳤다.
혜송스님의 간결하고도 힘 있는 법문에 동참 대중들은 지극한 합장3배로 경의를 표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