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이전에 있던 일이다. 백운동 골 안의 마하연에는 앞날을 환히 내다보고 만사를 훌륭하게 처리하며 신비한 도술까지 소유한 비범한 스님이 어린 상좌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를 “마하연도사”라고 불렀다.

 

어느 날 해질 무렵이었다. 공양미를 거두러 아침 일찍 마을로 내려갔던 상좌가 돌아와 도사 더러 하는 말이 요즘 마을에서 동해바다 건너로 있는 왜적들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올 차비를 하느라고 승려로 가장한 간첩들을 들여보낸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사는 상좌의 말에 아무런 기색도 나타내지 않더니 “얘야! 행각승(떠돌아 다니는 승려로) 가장한 왜의 간첩 놈들이 우리나라에 기여 들어 사방을 떠돌아다니면서 물정을 탐지한다는 사실은 내 다 알고 있다. 여기 마하연에도 한 놈이 곧 당도하게 될 것이다.

 

 

 

이 말에 상좌는 깜짝 놀라면서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도사는 상좌의 물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지금 당장 내강마을로 내려가 오늘 밤중으로 나무하러 다니는 몇몇 아이들을 모아놓고 ‘내일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가 되면 이리로 허름하게 차린 행각승이 하나 지나갈 터이니 그놈을 만나면 “ 이놈, 승려로 변장을 하고 남의 나라를 염탐하러 돌아다니는 너 같은 놈은 그냥 살려둘 수 없다!”하고 막 달려들어 혼 줄을 내여 주라.“고 하였다.

 

상좌가 도사의 말대로 내강마을로 내려가 일을 꾸며놓고 절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휠씬 넘은 때였다.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내강마을 나무군 아이들은 상좌의 말대로 몸둥이를 하나씩 장만해가지고 마을 어귀에서 지켰다. 그런데 한낮이 되어도 그 승려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무군 아이들은 할 수 없이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해가지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날 새벽 회양읍을 떠난 승려로 가장한 왜국 간첩으로 내강마을 어귀에 이르자 수많은 아이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겁이 덜컥 나서 하루 종일 산 밑에 있는 바위틈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놈은 저녁 땅거미가 질 때에야 어슬렁어슬렁 마하연에 찾아들어 하루 밤 자고가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이 사실을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는 도사는 그놈을 반갑게 맞아들여 저녁대접을 푸짐하게 하였다.

 

얼마 후 도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그 승려에게 하는 말이 “오늘 밤은 달이 유난히 밝소. 우리 함께 달구경을 하며 세상이야기나 나눠요” 하니 그 행각승도 좋다고 하였다.

 

그들이 뜰아래 내려섰을 때였다. 집을 지키고 있던 청삽살개가 달을 쳐대보고는 쉴사이 없이 자지러지게 짖어대였다. 행각승은 개를 보고 이상히 생각하여 도사에게 “왜 청삽살개가 저렇게 극성스레 짖는가요”라고 물었다.

 

이때 도사는 그 행각승의 거동을 살피면서 “저 개는 비록 기르는 개에 지나지 않으나 능히 천기를 살피고 세상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영물이요. 요즘 왜나라가 우리 조선을 침범하려고 엿보면서 주야로 병장기를 만들고 있는데 바로 그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요.”라고 하였다. 계속해서 도사는 “지금 왜놈의 간첩들이 조선에 몰래 숨어들어 각처를 돌아다니며 물정을 살피고 있는데 그런 자는 이 금강산 부근에도 있소...”

 

도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놈은 칼을 빼들고 도사를 해치려고 하였다. 어느 사이에 삽살개가 달려들어 그놈의 손을 덥석 물었다. 이렇게 되자 그놈은 도사 앞에 엎드려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였다.

 

이때 도사는 “네 이놈, 똑똑히 듣거라, 우리 조선은 나무하는 아이들이나 심지어 개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도 자기 나라를 침노하려는 원수들에 대해서는 제때에 분별할 줄 알며 절대로 용서해 주지 않는다. 하루속히 망령된 짓을 그만두고 네 나라에 돌아가 조선 침략의 흉계를 버리도록 하라.”하고 추상같이 말하였다.
그리하여 행각승으로 가장한 그 간첩 놈은 자기 졸개를 데리고 자기 나라로 도망치고 말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