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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최강희

 불교의 윤리적 교설

1. 선업과 악업

   5) 은(恩)과 특수윤리

삼세인과의 도리를 깨치고, 이에 입각해서 십 선업을 행하고 사무량심으로 보시, 지계할 것을 설하는 교설은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보는 보편적 윤리라 말할 수 있다. 인간은 부모 없이 생을 받을 수 없고 사회를 떠나 생활할 수 없다. 따라서 소속집단에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고, 외적에 대해서는 집단을 위해 싸우지(殺生) 않으면 안 된다. 어찌 이런 특별한 사회적 측면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함경에서 특수한 사회윤리를 설하는 대표적인 경전은 선생경(善生經)이다<중아함 권 15> 거기에는 (1) 부모와 자식 (2) 스승과 제자 (3) 아내와 남편 (4) 친족과 자기 (5) 노복과 주인 (6) 사문과 신자 등의 여섯 가지 관계가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여섯 관계를 유교의 오륜과 비교할 때 군신(君臣)과 친우(親友)의 윤리가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함경에는 정법(正法. 十善道)으로 나라를 다스려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전륜성왕이라는 이상적인 왕이 부각되어 있고<중아함 권15 전륜왕경> 신의(信義)를 지키는 착한 벗과 사귈 것이 줄기차게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법구경 권상>

따라서 불교는 특수한 사회윤리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겠는데, 이런 차별적인 인간관계가 그의 보편적인 윤리설과 어떤 근거 위에서 맺어질 수 있을까? 이런 견지에서 그런 교설을 살펴 볼 때, 우리는 그 속에 한결같이 흐르고 있는 ‘은(恩),이라는 개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경에서 설해진 여섯 가지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의 오륜도 부자관계가 근본이 되어 군신 부부 형제 친우의 차례로 되어 있다.

불교에서의 ‘효“는 아들 된 자의 당연한 도리라고 설하지 않고 아버지의 자은(慈恩)과 어머니의 비은(悲恩)을 열거한 다음(施恩), 그런 막중한 은을 어찌 갚지 않겠느냐(知恩. 報恩)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佛說父母恩難報經> 따라서 불교의 효는 보은(報恩)이라고 해도 좋다. 이러한 부모의 은혜를 바탕으로 스승의 은혜 국왕의 은혜 중생의 은혜 시주의 은혜 등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제2장 3절 ’보은사상‘ 참조>

따라서 불교의 특수한 인간 유대관계는 은혜를 통해 맺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보편적 윤리설과 모순하지 않는다. 시은(施恩)과 보은(報恩)의 당위성은 업보설의 정신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은’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론적 난관을 타개해 나간 착상이 놀라울 뿐이다. 불교의 사회 윤리는 이렇게 ‘은’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것은 절대적인 상하종속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상호화합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아함경에서도 신하의 충성보다는 국왕의 선정이 주로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 또한 다른 종교의 사회윤리와 비교되는 불교윤리의 독특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계속)

고익진 저      불교의 체계적 이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