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관료이며 유학자인 이지함(호는 토정1517-1578년)은 주역 같은 책을 연구하여 당시 민간에서 이른바 “천기”하늘의 조화를 아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가 생전에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고 하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1570년대에 이지함은 8도 강산을 유람하다가 어느 해에 강원도 금강산에 찾아들었다. 갈수록 끝없이 펼쳐지는 절승경개에 끌리어 그가 어느 한 높은 산마루 아래에 이르렀을 때 이미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사방은 아직도 환하였다. 그는 바위 위에 한 암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거기에 올라가 대돌 옆에 지팽이를 세우고 난간에 의지하여 황혼속의 금강산을 내려다보다가 피곤한 김에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두어 사람의 승려가 나와 법전을 손질하면서 병풍도 갖다놓고 자리고 마련하였다. 무슨 일인가고 물어보니 “지금 여러 명산의 산신령님들이 나라에 일이 생긴 것을 근심하여 의논하러 모여오고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촛불 등불이 훤히 비치는 가운데 위엄 있는 옷차림을 한 여러 신령들이 차례로 와서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먼저 삼각산의 신령이 지리산의 신령더러 하는 말이 “요즘 천문을 보니 천왕별의 움직임이 정상이 아닌데 남에서 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 남쪽에서 무슨 사변이 생겨날 듯하오. 이것은 왜국의 요사스러운 기운이 동남쪽으로 해서 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소.”라고 하였다.

 

 

 

지리산 신령이 그의 말을 이었다.
“비단 별의 운행에 변괴가 있을 뿐 아니라 사람의 일에도 염려되는 바가 있으니 남쪽 오랑캐가 날뛰는 것이 날로 걱정하고 있소. 그런데 조정에서는 연희만 차리고 편안히 놀고 있으니 나라가 망할 때가 닥쳐 왔나보오. 천운이 이러하니 더 말해서 무엇 하리오.”

 

이 말을 듣고 금강산 신령이 크게 놀라면서 “조선은 예의지국이요,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면서 제물을 받아먹고 있으니 우리 또한 예의 지신의 셈이요. 저 왜국은 짐승의 나라요. 그 추악한 남쪽 오랑캐가 하루아침에 들어와 살게 되면 우리도 또한 짐승의 신으로 되고 말 것이니 이 아니 부끄럽고 망신스러운 일이요. 이 자리에 모인 여러 신령들이 제가끔 깊이 생각하여 대책을 세우는 것이 좋은가 하오.”라고 하였다.

 

산신령들은 모임을 마치더니 서로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하고 물러가는 것이었다. 이지함이 이때 눈을 뜨고 본즉 당초에 지팽이를 세워 두었던 곳을 바위 모서리에 지나지 않았고 몸을 위지하였던 것은 한그루의 소나무였다. 그리고 환히 비치던 등불은 봉우리 위에 걸려 있는 새벽달이었다.

 

그는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때로부터 그는 앞날에 반드시 왜놈들의 변란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왜놈의 정탐꾼이 기여 들지나 않는가 하여 눈을 밝혀가면서 살피었다.

 

 

 

그가 삼척고을에 임시로 가 있을 때었다. 승려 차림을 한 자를 만났는데 말소리나 얼굴 모색이 틀림없이 왜놈이었다. 그놈을 붙들어다 여러모로 심문하니 죄상을 실토하면서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이지함은 1578년에 충청도 아산현감으로 있다가 죽었는데 14년 후인 임진년에 왜병이 침입하였다. 이때 왜장의 하나인 쯔시마의 평의지란 놈은 앞을 내다보는 이지함이 살던 삼척고을에는 군사를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 이 전설에는 왜적의 침입에 대처하여 미리 대책을 세우려고 한 당시 사람들의 애국적인 사상이 반영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