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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님의 역사 속의 불교여행 17

석현장 | | 2018-05-29 (화) 09:29

원효스님이 환생해서 일본에서 살고 가셨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가마쿠라 유행사에 있는 잇펜스님 동상이다.(현장 스님 제공)
 
 
원효스님의 행적을 그대로 살다가신 분을 가마꾸라시대의 잇펜스님이라고 한다.
 
일본 정토종에는 위대한 선지식이 세분 계신다. 정토종의 호넨. 정토진종의 신랑. 시종의 잇펜이 바로 그분이다. 특히 잇펜스님에 이르러 일본 정토종은 절정에 이르렀다고 야나기 무네요시는 평가한다.
 
고대 일본불교에는 관승과 사도승의 두부류의 승가가 있었다. 국가에서 도첩을 받고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고 설법하면서 기득권을 누리는 관승이다.
 
사도승. 혹은 둔세승은 나라의 허가 없이 출가하여 민중들에게 설법하고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나누어 가진다.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간병봉사하고 염을 해주고 댓가 없이 장례의식을 도와준다.
 
가장 가난하고 천시 받는 민중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부처처럼 귀하게 여긴다. 그들을 대중들은 시장속의 성인이란 뜻의 이치 히지리라고 불렀다.
 
잇펜스님이 그러한 히지리의 전통을 이어간 스님이었다. 그는 일본의 국토 전역을 걸어서 다니며 아미타불의 구원을 설법했다. 잇펜은 거주하는 절도 없이 평생을 구름처럼 물처럼 다녔기 때문에 유행승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일상 쓰는 유행이란 말도 유행승에서 유래된 말이다.
 
춤추는 유행승 잇펜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면 부처도 나도 구별이 없어지고 아미타불의 영원한 생명과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나무아미타불 한편만 염불해도 아미타불의 본원으로 극락에 왕생한다고 그의 법명도 일편이다.
 

잇펜스님 일생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해질녁 제자들과 함께 행각하는 모습이다.(현장 스님 제공)
 
 
아미타불의 공덕으로 이미 구원받은 기쁨을  춤으로 표현했으니 환희용약 염불춤이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시중이라 표현했는데 그들은 북치고 괭가리를 울리며 춤추고 염불하며 시장을 떠돌며 나무아미타불을 노래하였다.
 
잇펜스님의 춤과  염불은 무녀에게 전승되어 무대예술화 되고 가부키의 뿌리가 되었다.
 
잇펜스님의 행색은 완전히 거지꼴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얻어먹고 한데 잠을 자면서 오래살수 있었을까? 
 
그는 겨우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열반에 들기 전에 자신의 저술을 불태운다.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은 마침내 나무아미타불 육자로 돌아간다. 나의 가르침은 육자에 모두 담겨 있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문도들은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 들판에 내다 버려서 짐승들에게  베풀어 주라.ᆢ”
 
잇펜은 그의 제자들 이름에 유아미타불. 대아미타불. 향아미타불 등 앞 글자 한자만 달리해서 동명동호 아미타불로 호칭했다.
 
“그대가 바로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이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다. 태아가 탯줄을 통해 어미와 하나이듯이 우리는 우주의 탯줄을 통해 아미타불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지금 일본에서는 제주 올레길을 걷듯이 잇펜스님이 평생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걸음걸음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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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화엄 2018-05-30 10: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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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스님의 환생일 수도 있겠군요. 어느쪽이든 대단한 스님이시군요.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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