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는 면천(沔川)은 유서 깊은 고을이다. 그러다보니 축제도 많고 기념행사도 많다.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과 관련된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은행나무목신제가 해마다 열리고, 복지겸의 딸이 아버지 치병을 위해 아미산 진달래꽃으로 만들어 올렸다는 면천두견주는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어 ‘면천진달래민속축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면천사람이 되었으니, 면천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에는 가급적 참석한다. 지난 주 이틀 동안 열린 진달래축제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했다. 민족정서를 대변하는 꽃이자 당진의 시화(市花)이기도 한 진달래를 주제로 열리는 진달래축제는 면 단위 축제 치고는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다.

 

‘복지겸 장군 숭모제’를 시작으로 총각처녀 귀신에게 진달래를 헌화함으로써 원혼을 달래주는 ‘진달래 꽃무덤 재현’,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닌 ‘진달래 장대 끝에 세우기(진달래 꽃장대)’, 진달래꽃잎을 찹쌀가루 반죽에 붙여 지져먹는 ‘진달래 화전놀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면천 두견주 제조 공개행사’, ‘진달래 비빔밥 나눠먹기’, ‘몽산 진달래 가요제’, ‘진달래 청소년 댄스 및 가요제’, ‘진달래 묘목 나눠주기’, ‘진달래 분재 전시’, ‘진달래 꽃차 체험 및 시음회’, ‘진달래 꽃가지 던져 넣기’, ‘진달래 사생대회 및 백일장’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전통과 민속을 보존‧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의미 있는 진달래축제는 조금은 어설프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고을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한 아름답고 멋진 축제였다. 특히 축제라는 이름으로 도처에서 자행되는 이른바 ‘살생 놀이’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에 안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후 기초 자치단체 차원의 축제가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어느 축제이든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겠지만, 최근 들어 대량 살생을 부추기거나 즐기는 축제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늘 불편하다. 생명을 죽이는 살육의 축제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이런 축제가 되레 자치단체의 치적이 되거나 언론의 찬사를 받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생명의 소중함도 돈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실상이 소름을 돋게 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축제가 있었다. 석가왕국은 농사가 중심인 나라였다. 그래서 매년 봄이면 파종에 앞서 국가 차원에서 ‘농경제’를 열었다. 아버지 정반왕을 따라 농경제에 참석한 싯다르타는 갈아엎은 논밭의 흙더미에 노출된 벌레들을 새들이 날쌔게 잡아먹는 장면을 보고, 먹고 먹히는 살육의 순환 고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바라문의 의식에 싫증을 느끼고 싯다르타는 잠부나무 아래 그늘로 가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편안함과 행복을 주었던 이때의 명상이 훗날 고행을 마친 후 대각을 이루게 한 마지막 수행법의 결정적 모티브가 되었고, 마침내 부처, 즉 깨달은 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는 결정적인 대전환의 계기가 일곱 살 때 참석했던 ‘농경제’라는 축제의 장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각지에서는 사시사철 축제가 열린다. 꽃 축제, 물 축제, 단풍 축제, 눈 축제가 전국적으로 간단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생명을 대량으로 잡아먹는 축제가 유행하고 있다. 돈이 된다는 이유로 축제기간 동안 수많은 물고기나 가축들이 놀이꺼리가 되어 죽음을 맞는다. 산 생명을 죽이는 대규모 살육의 축제는 참으로 끔찍하다. 

 

어쩌려고
어쩌려고 저러나
원혼을 어쩌려고
과보는 또 어쩌려고
수천수만 생명을 놀이삼아 죽이나
증오의 눈길
원한의 몸부림이
두렵지 않는가
업보가 모자라서
사랑의 씨앗
연민의 씨앗을 심어주어야 할
아이들에게까지
살생을 부추기는가
어쩌려고
허~, 어쩌려고 저러나
카니발 천국,
대한민국아!
               -졸시 ‘카니발 대한민국’

 

불가에서는 세상을 고해(苦海)로 여긴다. 생로병사가 다 괴로움이니 매우 적확한 인식이다. 이런저런 괴로움이 많지만 가장 두려운 괴로움은 ‘죽음’이다.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끝없이 살려 하고 죽기 싫어하는 것이 모든 중생의 공통된 본능이다. 생명은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아니다. 동물, 곤충, 미생물까지도 생명을 지속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을 끊는 행위보다 더 큰 죄업은 없다. 내 목숨이 소중하듯 남의 목숨도 소중하다. 부처님께서 계율의 첫머리에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랑으로 능히 중생을 즐겁게 하고
연민으로 능히 중생의 괴로움을 뿌리 뽑으리.
以慈能與衆生之樂 以悲能拔有情之苦

 

제1계인 불살생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게송이다. 불자는 물론, 불자가 아니더라도 마땅히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다고 육식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생명을 앗는 행위를 즐기는 대상으로 삼지는 말라는 것이다. 

 

사랑과 연민은, 따지고 보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또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표지이자, 부처가 되게 하는 종자이기도 하다. 시집장가 못가고 죽은 억울한 고혼까지 달래주고자 하는 면천의 진달래축제를 보면서 마음이 뿌듯해진 까닭이다. 생명을 놀이꺼리로 삼는 살육의 축제, 더는 늘어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