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스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현대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문학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제정한 ‘제16회 유심작품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수상자와 수상작은 △ 시부문 고형렬(시인)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시조부문 박방희(시조시인) <삼릉 숲에서> △학술부문 송준영(시와 세계 주간) <禪, 발가숭이 어록> △특별상부문 천양희(시인. 예술원 회원)이고 상금은 각 부문 1천오백만 원이다.
시상식은 2018년 8월11일(만해축전 기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거행한다.
 
* 문의 :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서울사무소 (전화 739-5781) 
 

 

 한 소년의 표상은 해가 뜨는 동해가 아니라 해가 지는 서산이었다. 만해 선사가 『님의 침묵』을 완성한 내설악의 어느 오동나무에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떨어지는 것을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잊을 수가 없었다. 설악산을 바라보면 어떤 명행과 사변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나이 먹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것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과산(飯顆山)에서 볕에 그을린 두보에게 ‘다 시 때문이지’라고 한 이백의 말을 듣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를 줄은 몰랐지만 당신에게 귀복(歸服)하는 것이 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이를 먹어서 편해지고 산도 늙은 것 같고 시름도 내 몸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설악이 잘 보이는 바닷가로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매일 해가 지는 저녁의 설악산을 보는 것이 꿈이 되었다. 그것은 그 아이 때문이라고 말해야 하겠다. 선재처럼 사람을 찾아다니지 아니하고 안에서 기다림의 서사가 된 부속암자를 가본 지도 한 세월이 흘렀다. 함께 마등령을 넘던 그 청산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 동해관음을 생각하는 그 아이는 공룡능선으로 떨어지는 해를 두 눈으로 받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아이의 마음은 설악의 영원한 오세암(五歲庵)이 되었다. 그 비선대 너머의 오세에게 절하고 싶은 그 간절함만 유심(唯心)이라 할 수 있을지, 나이 먹는 만큼 산은 더 높아가고 멀어질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설악에서 무엇인가가 깨어지는 소리를 듣곤 한다. 아직 오지 아니한 우리의 고통 같기도 하고 어느 아라한의 희열 같기도 하며 그 선반에서 떨어진 사물 소리 같기도 하다. 산속에서 평생을 깎아가며 우듬지를 올렸을 어느 송백이 내장한 나이테의 침묵과 그 솔잎의 바람소리를 들려주려면 좀더 걸어야 할 것이다.
 시를 대신하여 늘 수평선을 내다보던 설악산 너머 사진리 모래기의 두 형제섬에게 설악이 만든 이 상을 바친다. 감사하다. 
                                                      
시부문 수상자 / 고형렬

 

  오랫동안 시의 길에서 방황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이 음유시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시작은 동시였습니다. 그 다음 청년기에는 시를 쓰고 가장 마지막 장년기 이후에 시조를 썼습니다. 시에서는 오래 방황하고 지지부진하였으나 되돌아간 동시에서 나름의 경지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문학의 결실은 시조에 와서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동시의 강점은 단순함과 명쾌함입니다. 직관에서 오는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이 있는가 하면 천진한 이미지와 비유로 놀라움을 주기도 합니다. 어린이가 세상과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인 감각과 직관으로 쓴 동시, 그래서 쉽게 소통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동시, 거기에 독자의 정서와 사고에 새 지평을 열어주는 동시가 저의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미흡했습니다. 성인의 사고와 감정을 담아내기에는 좀 모자랐던 것입니다. 
  시업에서 오래 겪던 혼돈과 헤맴은 결국 시조에 이르기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온 어떤 자유시들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시조! 시조의 형식과 율격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질서를 통하여 저의 시는 품品과 격格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를 구원한 시조의 나무에다 둥지를 틀고 더욱 정진하고자 합니다. “애기 중이 치는 건// 법당 앞/ 동종인데// 덩덩/ 우는 것은/ 마주한/ 큰 산이네.// 그마저/ 경이 되는 건/ 귀를 연/ 마음이고”(「동종소리」)처럼 마음을 열고 “암자에서/ 저녁종이 운다.// 눈 덮인/ 잣나무 위에서// 청설모/ 한 마리// 귀 세워/ 듣고 있다”(「저녁종」)처럼 귀 세워 듣겠습니다.
  그러다가 “물방울들은/ 어디서든/ 몸을 둥글게 말고/ 삼삼오오//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한 생각 다 차올라/ 둥글어지면/ 미련 없이, 툭// 떨어진다”(「물방울 나한들」)처럼 기다리며, “뭉게뭉게/ 피어 오른/ 산벚 한 그루// 첩첩산중에/ 잘 들어앉은/ 암자 한 채!”(「산벚꽃」) 같고, “산사람도/ 넘기 힘든/ 얼음산// 봄은 맨발로/ 넘어왔다”(「제비꽃 1」)의 제비꽃 같은 작품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시조와 인연을 맺게 해준 《유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 말씀 올립니다. 대구에서 올라온 대구문인협회 선생님들, 함께해온 유심시조아카데미 동인 여러분들과 이 보람과 기쁨을 오래 나누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시조부문 수상자/ 박방희

 

하얀 백지 한 장을 내어 놓고 싶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종이 한 장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내 전부인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금강경 연재를 마쳤다. 눈 내리는 봄날 금강경 31분을 쓰고 그만 쓰기로 했다. 그리고 또 며칠, 햇살 내리는 봄날 32분을 썼다.
연속이 웃기는 연속, 일탈이 아무렇지도 않게 머물고 있다. 뭐 따로 있을까 보나, 연속의 일탈은 연속인가 시간과 공간이 없는,
나는 순간 찰나의 미학을, 공과 같이 흐르는 흐름의 미학을 만났다. 아니 두 개의 질긴 일탈, 이 몸이 되어 만나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는 있다. 하얀 백지는 거울이 되어 내어 놓는다.

 

눈 내리는 어느 봄날 금강경 31분을 이렇게 썼다

 

‘눈은 내리고 다시 눈은 내릴 것이고 아득한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작년 또 작년을 넘어 눈이 내린다
  오늘도 아닌 오늘 오늘의 눈이 내린다 눈 위에 내가 눈 아래 내가 있다 나는 나 아닌 눈사람 눈을 머리에 이고 다가오는 사람들, 다가오고 지나고 열심히 아스팔트 위에서 눈사람이 걸어가네 나 없는 내가 걸어가고 작년 넘어 눈이 내리고 다음다음의 눈이 올 것이고 주먹코를 풀면서 주먹코 밑 입술 위 카이젤 수염 눈사람이 걸어가네 눈으로 다리를 베어낸 빨간 우체통이 눈을 감고 눈에 다리를 묻고 서 있네 눈이 다리를 감추고 바람이 눈 사이로 망토를 펼치면 어린아이를 감추고 날아가네 바람다리 눈이 된 바람이 그렇게 오고 그렇게 가네 없는 내가 보이는 내가 보여 지지 않는 내가 있고 그 곳곳마다 바로 이 찰나의 눈이 눈을 보네
햇살 내리는 봄날 햇살 만지며 다시 32분을 이렇게 쓴다  

 

‘Zero의 발견, 0은 0을 발명하고’
  까마득한 옛날 설산 아래 모든 물물物物의 존재는 슈나(śūnya), 곧 무아無我임을 말씀한 이가 있었네. 본래 그렇다고 말한 이가 있네. 이때는 눈에 있는 모든 것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를 세며 살아왔었지. 그리고 1000년 후 모든 존재 앞에 뭔가 있다는 인도인들의 생각이, 또 그로부터 100년 후 없는 듯 있는 자리에 0을 넣었고, zero를 말하게 되었네. 1000년 전 성인의 무아란 천리天理의 말씀이 드디어 0이란 숫자로 나타나게 되었다네.

 

……0.5, 0.4, 0.3, 0.2, 0.1, 0, 1, 2, 3, 4, 5……
……-5, -4, -3, -2, -1, 0, 1, 2, 3, 4, 5……

 

  0의 발명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 사람 사는 동네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세계를 0.1, 0.2, 0.3, 0.4, 0.5…, 드디어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머릿속에 그리게 되었네. 삶으로 불의 발견과 정신 속의 0의 발명은, 슈나란 무아이고 0이고 이 zero는 중국에선 공空으로 일컬어지고 이 공은 반야부 600권으로 벌어지고 모자란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고 고요로 들어간 공은 선방수좌禪房首座들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우리를 졸리게 하고 울먹이게 하고   
  슈나란 무엇인가? 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0, 제로란 무엇인가? 모든 고요의 둘러빠짐은 어째서 되비침으로 태어나는가? 공의 지난至難함이여! 흔히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음으로 짐짓 나타나는 공이여! 오늘도 책상머리에 두고 온 지우개 한 토막이여! 그대 오늘도 그대로 잘 있는가? 0이여! 무아여!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새벽 4시 잠이 오신다 자야겠다.
수상소감이여, 자야겠다.

 

학술부문 수상자 / 송준영

 

쓰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도 사는 척할 수 없다는 말을 생각할 때마다 살아있는 것들은 기어이 스스로의 운명을 완성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탱자나무는 가시 사이에 꽃을 피우고 그 가시 사이에 열매를 맺지만 깊은 향을 간직한다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은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는 말도 생각합니다. 그 생각들에 기대어 시를 써온 50여 년 동안은 자신을 절단 내야 절창이 나온다는 것을 안 시기였고 피로 쓴 것만이 정신이란 걸 겨우 깨달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선지 쓰는 척할 수 없는 시심(詩心)이 유심(唯心)에 닿아 뭔가 멋진 것을 찾을 때까지 쓰고 쓰고 또 썼던 것입니다. 쓸 때마다 입이 쓰고 마음이 쓰고 시가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쓰는 것이 곧 사는 것이라 믿으면서 시를 살아냈습니다. 그런 저에게 특별히 특별상을 내리신 것으로 알고 기쁘게 두 손으로 받겠습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나’라는 산을 넘고야 말겠습니다. 영원성을 갈망하는 시의 낱말을 더 붙잡겠습니다. 삶을 겹눈으로 보면서 새로운 것에 늘 두근거리겠습니다.
만해정신에게, 유심에게, 심사하신 분들에게 절합니다.

 

특별상 수상자 / 천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