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국 수도 왕사성 인근의 영축산,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신 자리라는 그 영축산을 오르던 날에, 우리 셋은 점심을 거르고 허겁지겁 칠엽굴로 향했다. 칠엽굴은 불멸 후 붓다의 제자들이 모여 처음으로 경전을 결집(함께 암송함으로써 부처님 가르침의 내용을 확정하는 것)한 역사적 장소여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여행 일정에는 ‘차창 조망’이라고만 쓰여 있어서 불타여행사의 윤지홍 실장에게 현지답사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고, 윤실장은 “영축산에서 순례단이 기도하는 동안 대열에서 한명 이상 이탈해 칠엽굴에 다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이날 오전 현장스님이 유학했다는 그 유명한 날란다대학을 답사하는 중에 윤실장은 “칠엽굴에 오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여행 스케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자현 스님이, 오전 회의에서 정한 시간을 무시하고 너무 여유를 부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부 회원이 칠엽굴을 가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했느냐?”라고 물었고 윤실장은 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 남은 일정은 영축산에 오르는 것뿐인데, 스님이 서두를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윤실장은 그제서야 스님에게 ‘칠엽굴’ 얘기를 했고 스님은 이후 진행에 속도를 내 주었다. “칠엽굴에 가면 꼭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라”라고 내게 팁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 “동굴에야 당연히 들어가 보지 그럼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겠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빨리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으며 “그게 무슨 말인가”라고 되물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역사의 현장을 보러 왔는데 염불하고 기도하고 탑돌이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스님에게 고까운 마음도 있었다. 일정 안에 있던 피타콜라석굴, 카필라성도 이미 건너 뛴 상황이었다.

 

애초의 일정은 너무 빡빡하게 짜여진 것이었다. 일정을 느슨하게 짰다가 새로 만들면 가이드들의 불만이 높아진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일정을 넣었고, 그 일정을 애초에 다 소화하기는 무리였다. 그렇게 여행사측은 설명했지만 내게는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순례단의 다수에게는 ‘신앙’이 중요했고 ‘답사’를 목적으로 한 단원은 소수였기 때문에 신앙을 위해서 답사가 자꾸 희생되는 것으로 내게는 보였다. 그래서 날란다 대학에서 윤실장과 얘기하면서 내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기원정사에서 기도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이창재 거사와 둘이서 따로 움직였다가 미아가 될 뻔한 상황도 겪었었다. 기원정사 답사는 5시까지 끝내는 것으로 일정에 적혀 있었는데, 스님은 그때까지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윤실장 그리고 이창재 거사와 함께 순례단을 이탈해, 아직 해가 떠 있는 동안 수닷타장자탑, 앙굴리말라탑을 사진에 담았다.

 

그때 윤실장은 순례단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기 때문에 천불화현탑에는 그를 뺀 둘만이 출발했다. 그런데 삼륜 오토바이 운전기사가 우리를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줬고, 우리는 그와 말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위치로 돌아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는 “이역만리 인도에서 미아가 될지도 모르겠다”라는 공포에 떨었다. 이창재거사가 기원정사 입구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다면, 또한 그걸 운전기사에게 보여주면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내지 못했다면, 고생은 훨씬 커졌을 것이었다.
 
이후 나는 “자현 스님에게 우리의 처지와 생각을 잘 알려 달라”, “미리 당일의 시간 계획을 내게 알려달라”, “스케줄이 너무 늘어질 경우, 내가 따로 취재할 편의를 제공해 달라”라고 요청했고 여행사측도 이에 동의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았다. 매일 엄청난 거리를 가는 강행군의 와중에 주력부대를 위한 배려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고, ‘을’의 입장인 여행사가 스님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내가 직접 자현스님에게 “이렇게 해 달라”라고 요구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소통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위해 버스에서 내렸을 때, 윤실장은 내게 “점심을 거르면 칠엽굴에 오를 수 있는데, 그렇게 하겠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동의했고, 마침 버스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가는 이창재거사에게 달려가 동행 여부를 물었다. 그는 집었던 숟가락을 놓고 출발했으며, 우리는 내가 비상식량으로 갖고 있던 번데기 통조림 130g 한 캔을 나눠 먹으면서 황급히 출발했다.

 

칠엽굴이 있는 비파라산(毘婆羅山) 밑까지는 마차로 이동했다. 그리고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윤실장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귀에서 소리가 난다”라고 했다.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이창재 거사가 칠엽굴 답사에 동행한다”는 말을 순례단 본진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떠올렸고, 그 때문에 주력부대가 우왕좌왕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게다가 다리 수술한 지 얼마 안 되는 이창재 거사의 몸 상태도 걱정이 되어서 나는 “칠엽굴 답사를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게 어떠냐”라고 했지만 잠깐 동안의 구수회의 끝에 ‘계속 전진’ 하기로 했고 등산 30분만에 칠엽굴에 도착했다. 윤실장은 “지난번에는 40분 걸렸는데, 10분 단축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칠엽굴은 의문을 자아냈다. “과연 여기서 500명이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 게 가능했겠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산 중턱에 몇 개의 입구가 있었고, 거기에 이미 진을 치고 있던 현지인 도우미가 플래쉬를 비춰주어 굴 안으로 들어갔으나 길은 비좁았으며, 얼마 못 가서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앞서 가던 이창재 거사와 윤실장이 되돌아 나왔기 때문에 나도 서둘러 나왔다. 빨리 영축산으로 돌아가 본진과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생각을 못했다.

 

 

 

자현 스님은 “굴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했다. 막다른길에 있던 개구멍 같은 곳으로 뚫고 들어가면 넓은 광장이, 사람 수십명이 서 있을 공간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끝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서 ‘경전 결집’이 과연 가능했을까? 순례단원 염법심 보살은 “내가 전에 거기 들어가 봤는데, 경전의 기록이라면 어렵겠지만 암송은 거기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답답한 곳에서 최소 수십 명이 모여 경전을 결집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굴 입구 중에 하나는 바위로 덮여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옛날에 지진이 나서 굴이 무너진 것이고, 지진 이전에는 굴이 더 넓었다는 말도 있다. 칠엽굴은 다만 마하가섭이 수행하던 곳이었고 실제 결집을 한 장소는 칠엽굴이 아니라 그 밑의 너른 공터였다는 설도 있다.

 

자현 스님은 “500명이라는 건, 다만 상징적인 숫자다”라고 말했다. “붓다가 열반한 직후에, 제자들이 각기 기억하고 있던 교법을 합송하여 서로 확인을 거친 뒤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모임, 즉 ‘1차결집’이 역사의 사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다만 그 결집이 붓다 교단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라고 스님은 덧붙였다.

 

붓다의 가르침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차츰 소멸되어 간다든지 잘못 전해진다든지, 혹은 해석상의 이론(異論)이 제기되는 등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자들은 결집을 했다. 그것이 언어로 정착된 것은 불멸 200여년 후 아소카왕 시대의 3차결집에서였다. 그렇다면 그 결집의 과정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왜곡됐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불멸 이후 부처님 법통(法統)의 초조(初祖)로 추앙받는 마하가섭이 의심스러웠다. 그는 붓다 재세시 ‘두타 제일’의 칭호를 받았는데, 두타행이란 곧 ‘고행’을 이른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이고 ‘극단에 치우치지 않음’이니 ‘고행’과는 거리가 있다. 마하가섭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중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수행자는 꼭 나무 밑에서 수행해야 한다”, “반드시 걸식을 해야 한다” 등의 교조주의적인 주장을 한 것은 교단을 분열시킨 데바닷다와도 다르지 않다. 경전에는 사리불이나 아난다는 많이 나오지만 마하가섭은 잘 나오지 않는다.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꽃을 들어보였더니 그 뜻을 마하가섭만이 알아듣고 미소지었다”라는 염화미소의 이야기는 중국 선종의 선사들이 날조한 것이다. 부처님은 논리적으로 얘기하지 이런 식으로 모호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마하가섭이 부처님 열반지에 뒤늦게 도착하자 관 속 부처님이 다리를 내밀어 반겼다는 ‘곽시쌍부’의 이야기도 만들어낸 이야기임이 너무나 분명하다. 붓다가 앉아있던 자리의 절반을 가섭에게 양보하여 함께 앉도록 했다는 ‘다자탑전반분좌’ 등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무관한 ‘마하가섭 띄우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마하가섭은 사기꾼이 아닌가?

 

자현 스님은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셨는데 결집의 장소를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마가다국 왕사성의 칠엽굴로 한 것은 마하가섭과 아사세왕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둘은 모두 왕사성이 근거지였고, 마하가섭은 출가 전에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1차 경전 결집에 마하가섭의 재력이 힘이 됐다는 설도 있다.

 

불경을 세밀하게 읽어보면 마하가섭 파들이 부당하게 아난다를 해코지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아난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적인 풍모를 보이는 것으로 읽힌다. 마하가섭파들이 경전 결집 전 아난다에게 “왜 소소계(부처님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소소한 계율)가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부처님께 묻지 않았느냐”, “부처님께 미리 말했더라면 부처님이 더 사실 수도 있었는데 왜 부처님께 열반을 미루라고 적시에 여쭙지 않았느냐”, “왜 비구니의 출가를 허락하도록 부처님께 요청하였느냐” 등의 질문으로 아난다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했을 때, 아난다는 내용상으로는 이 조치들이 잘못이 아님을 주장하면서도 교단의 화합을 위해 형식상으로는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난다는 불멸 후 근본주의자 마하가섭의 세에 밀렸다. 중국의 선종에서는 신비주의적인 마하가섭의 행태가 추앙받기도 했다. 그러나 경전의 행간을 읽으면 아난다야말로 역사의 승리자임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불교의 역사는 결국 누구의 이야기가 더 진실한 것인가의 ‘이야기 전쟁’이 아니었겠는가?

 

글 · 사진 = 김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