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5회

 

                           룸비니 안개, 카필라성 햇살
                               

 

 선융은 룸비니의 이른 아침과 낮 시간 일교차가 15도 이상이라는 굽타의 말을 떠올렸다. 새벽에는 춥고 한낮에는 더우니 옷차림에 신경 쓰라는 조언이었다. 선융은 반팔 옷 위에  긴팔 옷을 더 입고 룸비니불교대학 운동장으로 나갔다. 짙은 안개가 낀 운동장에는 릭샤꾼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일행은 벌써 릭샤(삼륜차) 1대에 두 명씩 탄 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굽타와 함께 타고 있던 오스트리아와 스위스에서 온 유학생이 선융을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선융에게 드러내는 친밀감의 표시였다. 선융은 여행사 직원이 탄 릭샤에 올라탔다.
 릭샤 4대가 움직였다. 룸비니 구역에서는 자동차의 진입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릭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엔진이 달린 오토릭샤가 아니라 자전거처럼 사람이 발로 페달을 밟아서 나아가는 인력거와 흡사한 릭샤였다.
 룸비니의 안개는 카트만두와 달랐다. 미세먼지에 오염되지 않았으므로 공기와 같이 신선했다. 어머니의 비단 숄처럼 곱고 부드러웠다. 얼굴에 부딪치는 안개의 입자들이 차갑기는 했지만 자애로운 손길 같았다. 선융은 릭샤를 타고 가면서 천처럼 휘감기는 안개를 보고 상념에 잠겼다.
 ‘룸비니 안개는 모성애를 느끼게 하는군.’
 안개는 어머니 같은 대지와 숲이 밤새 토해낸 입김 같았다. 이윽고 릭샤가 룸비니 동산 초입에서 멈췄다. 그곳부터는 걸어서 가야 했다. 어디서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룸비니 동산을 향해 삼삼오오 올라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나타났다가는 서서히 숨기어졌다. 굽타가 앞장서고 여행사 직원이 맨 뒤에서 순례일행을 주시했다. 선융은 룸비니 동산으로 가는 중에 잠시 쉬는 동안  유럽에서 온 유학생과 통성명을 했다. 스위스에서 온 유학생이 자기소개를 먼저 했다.
 “제 이름은 시몬(Simon)입니다. 나이는 27살이고요.”
 오스트리아에서 온 유학생은 선융과 나이가 엇비슷했다.
 “제 나이는 30살입니다. 이름은 로렌(Lauren)이고요. 빈에서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유학을 왔습니다.”
 선융도 자신을 소개했는데 한때 승려 신분이었다고 말하자 두 유학생이 합장하면서 존경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불교도 알고 싶습니다.”
 “저기 계신 분이 한국의 유명한 선찰인 서래사 주지스님이십니다. 정식으로 인사하시죠.”
 “네. 그러겠습니다.”
 선융이 두 유학생을 진공스님에게 데리고 가서 정식으로 소개했다.
 “범어로 된 불경을 읽고 싶어서 유학을 온 학생들입니다.”
 “고마운 학생이구먼.”
 “한국불교도 알고 싶답니다.”
 “언제든지 서래사로 오라고 그래요.”
 선융이 진공스님의 뜻을 전하자 두 유학생이 고개를 숙이며 합장했다. 그런 뒤 로렌이 선융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 한국스님들이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는 중이라고, 굽타 교수님에게서 들었습니다. 우리도 동행할 수 있는지요?”
 “이 문제는 진공스님은 물론이고 다른 스님들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하루 동안 기다리겠습니다.”
 “스님들과 동행하면 부처님 유적지도 답사하고 한국스님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융 씨, 도와주세요.”
 “방학 중이므로 좋은 기회입니다만 오늘 저녁에 가부를 알려주겠습니다.”
 선융은 개인적으로 찬성했지만 다른 스님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으므로 유보해서 말했다. 릭샤가 좀 전보다 빠르게 굴렀다. 휴식을 취한 릭샤꾼이 페달을 힘껏 밟고 있었다. 릭샤꾼들은 아예 선 채로 페달을 밟았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가 장난치듯 경쟁했다.
 릭샤가 룸비니 동산 초입에 도착하자 안개가 조금 걷혔다. 게으름을 피우듯 느릿느릿 물러났다. 직사각형의 진홍색 마야부인사원이 흐릿하게 보였다. 굽타가 입장권을 일행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주었다. 룸비니 동산 정문부터는 입장권을 받았다. 굽타가 정원 잔디밭 공터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런 뒤 룸비니 동산에 대해서 설명했다.
 “여기서는 자유시간을 충분하게 드리겠습니다. 룸비니 유적이라면 세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기부처님이 태어나실 때 마야부인이 기댄 아쇼까나무와 용들이 아기부처님의 몸을 씻어준 싯다르타 연못입니다. 두 번째는 이곳이 룸비니 동산임을 증명해준 아쇼까  석주이고, 세 번째는 후대에 조성됐습니다만 아기부처님의 탄생상을 봉안한 마야부인사원입니다. 다 둘러보시고 저기 아쇼까나무 뒤쪽 잔디밭으로 모이시면 됩니다. 저와 함께 하시면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순례일행은 굽타를 따라서 마야부인사원부터 참배했다. 선융은 일행을 따라가지 않고 아쇼까나무 그늘로 갔다. 한국에서 ‘무우수’라고 부르는 아쇼까나무 그늘에는 황색 승복을 입은 네팔 승려가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인도와 네팔의 승복은 티베트와 달리 황색이었다. 아쇼까나무 그루터기 앞에는 여러 개의 촛대에 촛불들이 켜져 있었다. 아마도 네팔 승려에게 보시하면 촛불을 켜고 소원성취를 빌어주는 듯했다. 선융은 네팔 승려가 명상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가갔다. 선융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순례자입니다. 아쇼까나무 아래서 명상하고 있는 스님이 부럽습니다.”
 “룸비니 동산은 어느 곳이나 다 행복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룸비니 동산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그의 표정은 온화했고 말투는 진지했다.
 “하루 한 끼만 먹고 네 시간씩 이 자리에서 명상을 합니다. 승려가 된 지 24년이 됐고 저는 비베깐난다 비꾸(비구)입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룸비니에서, 그것도 아쇼까나무 밑에서 수행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제야 굽타가 일행을 인솔하고 아쇼까나무 쪽으로 왔다. 비베깐난다와는 구면인 듯 서로 눈인사를 하며 합장했다.
 “바로 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마야부인이 아기부처님을 낳으신 겁니다. 여기서는 이 나무를 아쇼까트리라고 합니다. 보리수가 아닙니다. 아쇼까는 산스크리트어로 ‘우울함이 없다, 근심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쇼까나무를 무우수(無憂樹)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선융은 일행을 만나기로 한 아쇼까나무 뒤편의 잔디밭으로 가서 앉았다. 어느 새 안개가 걷히고 명주실 같은 햇살이 룸비니 동산 곳곳을 비쳤다. 선융은 아기부처가 태어나면서 외쳤다는 불경 속의 탄생게(誕生偈)를 읊조렸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엄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나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

 

 선융은 눈을 감고 상념에 잠겼다. 아기부처가 태어나자마자 어떤 연유로 탄생게를 외쳤을까? 선융은 아기부처의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불경에 의하면 도솔천에서 깨달음을 이룬 호명보살이 아기부처로 이 세상에 강생(降生)했다고 하므로 탄생게는 호명보살의 원력이 아닐 것인가. 도솔천을 날아다니는 천인(天人)들이 호명보살의 마음을 읽고 이렇게 청했던 것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당신이 10바라밀을 행하심은
 제석천이나 마왕, 범천, 전륜성왕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옵고,
 오직 저 세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고자
 온갖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신 것이옵니다.
 스승이시여,
 바야흐로 부처님이 되기 위한 때가 왔나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될 때나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전생 때 수많은 정업(淨業)을 닦은 보살이시니 천상천하에 더없이 존엄하다는 뜻이 아닐 것인가. 삼계개고아당안지란 고통 받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게 구원하겠다는 결의이자 맹세가 아닐 것인가.’
 선융은 자신의 마음에 울림을 준 ‘삼계개고아당안지’를 한 번 더 생각했다.
 ‘삼계개고아당안지이야말로 자비의 극치가 아닐 것인가. 이는 부처의 존재를 더 위대하고 거룩하게 하는 맹세가 아닐 것인가. 수행자가 진리를 구하고자 정진하는 것은 세상의 생명들을 편안하게 구원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수행자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로렌과 시몬이 선융의 좌우로 앉아 명상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의자생활을 한 습관 때문에 가부좌를 하지 못하고 두 다리를 모은 채 옆으로 뻗었다. 그것도 불편한지 잠시 후에는 두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고쳐 앉았다.
 “편하게 쭉 뻗으세요. 아무런 자세라도 상관없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시몬은 어떤 인연으로 불경을 읽기 시작했지요?”
 “우리 마을에는 티베트 난민들이 스무 명 이상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티베트사원이 있지요. 그들이 일하는 회사의 회장님이 사비를 들여 지어준 사원이지요. 물론 회장님은 기독교도이고 스위스 분입니다. 티베트 난민들은 어디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사원이 생김으로 해서 안정을 되찾고 회사 일도 더 적극적으로 했답니다. 저는 티베트사원을 드나들면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만약 스위스를 가게 된다면 꼭 그 회사의 회장님을 만나보고 싶군요.”
 “회장님은 돌아가시고 이제는 그 아들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아쉽군요.”
 로렌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인연은 헤르만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읽고 난 뒤부터였다고 말했다.
 “저는 문학청년이었어요.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읽고 나서 인도와 부처님을 동경하게 됐지요. 결국 부처님이 태어나신 이곳까지 와서 룸비니불교대학에 입학했지요.”
 “저도 <싯다르타>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헷세와 다르게 부처님을 알고 있습니다.”
 “선융 씨, 무엇이 다릅니까?”
 로렌이 몹시 흥미를 느끼는 듯 깊은 눈에서 빛이 나왔다. 풋풋하고 푸른빛이 나오는 듯했다. 선융은 로렌에게 되물었다.
 “로렌 씨는 헷세가 싯다르타를 바라본 시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감동적이었습니다. 싯다르타라는 한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구원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성과 의지로 성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저와 같은 서양인에게는 큰 충격이었지요.”
 “불교를 깊이 알기 전인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저도 <싯다르타>를 몇 번 읽고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지요.”
 선융은 헷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청년 싯다르타가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알고 출가하여 수행자로서 고행하다가, 그것마저도 놓아버리고 보리수 밑에서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이룬다는 내용이 헷세의 <싯다르타>였던 것이다. 헷세는 고뇌하던 한 인간 싯다르타가 어떻게 깨달음을 이루는지 그 과정을 귀납적으로 묘사하고 서술할 뿐이었다. 전생과 내생의 시간을 부정하는 기독교 문명 속에서 자란 헷세의 관점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헷세의 <싯다르타>가 틀렸다는 것입니까?”
 “틀렸다기보다는 부처님 일생 중에서 한 부분만 보았다는 것이죠. 불경에 의하면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전생 때의 원력에 의한 선택이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 지상에서의 부처님 일생은 중생들에게 당신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일 뿐인 겁니다.”
 만약 선융이 <싯다르타>라는 소설이나 서사시를 썼다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역사적인 인간의 시간뿐만 아니라 그 전후를 다 기술했을 터였다. 전생의 공간, 즉 도솔천에서는 중생제도의 원력을 세운 보살로 살았는데, 금생이라는 공간에서는 잠시 고뇌하고 방황하는 왕자의 배역을 맡았다가 하늘과 땅의 스승인 부처로 돌아간 뒤에는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다가 완벽한 열반에 들었으므로 그랬다.
 선융과 로렌이 주고받는 대화를 옆에서 듣고만 있던 시몬이 말했다.   
 “비로소 제 두 눈이 떠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외눈으로만 부처님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융 씨를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찾아가는 친구일 뿐입니다. 부처님도 진리를 등불 삼고 자신을 등불 삼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순례일행이 잔디밭에 다 보였다. 그러자 굽타가 말했다.
 “다 모이셨지요? 이제 마야부인사원 옆에 있는 아쇼까 석주로 가겠습니다. 기원전 250년에 아쇼까 왕이 부처님 탄생지에 왔다는 기념으로 세운 돌기둥입니다.”
 석주는 진홍색 페인트를 칠한 마야부인사원 측면에 있었다. 굽타가 석주에 새겨진 글씨를 한국말로 읽었다.

 

 ‘많은 신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다시(아쇼까의 다른 이름) 왕은 즉위한 지 20년이 지나 이곳을 친히 참배하였다. 여기서 석가모니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세우도록 지시했다. 이곳에서 위대한 분이 탄생했음으로 경배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기리어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하고 생산물의 8분의 1만 징수케 한다.’

 

 룸비니 동산을 나온 순례일행은 승합차를 다시 타고 네팔의 국경지대인 틸라우라코트로 갔다. 원래는 석가모니 부처의 사리함이 나온 인도의 삐푸라하와 지역으로 가려고 했지만 네팔 출신인 굽타가 틸라우라코트 지역으로 가자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무케르지(P.C. Mukerjee) 같은 고고학자는 카필라성이 인도의 삐푸라하와 지역이 아니라 네팔의 틸라우라코트 지역이라고 주장했거든요.”
 안개가 완전히 걷혀버린 때문인지 틸라우라코트 숲을 투과하는 정오의 햇살은 맑고 투명했다. 순례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카필라성 서문 앞에 있는 퇴락한 토담집 앞에서 멈추었다. 토담집 마당에서는 아낙네가 화덕을 만들어놓고 짜파티를 구워 팔았고, 서문은 벽돌 무더기만 남아 있었다. 일행은 서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맞은편 오솔길에서는 꼬질꼬질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야외학습을 나와 있었다. 교사는 자전거 손잡이를 잡은 채 순례일행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아마도 교사는 학생들에게 싯다르타 태자가 카필라성의 동서남북 문밖에서 본 것, 즉 사문유관(四門遊觀)을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선융이 불경에서 본, 싯다르타 태자가 부왕 슛도다나 왕에게 허락을 받은 뒤 마부를 앞세우고 시종과 함께 나간 사문유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싯다르타가 첫 번째로 나간 성문은 동문이었다. 태자가 동문 밖에서 본 노인은 가죽과 뼈만 앙상했고, 쭈글쭈글한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더러웠다. 노인은 성을 향해서 쓰러질 듯이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날 성으로 돌아온 싯다르타는 ‘늙어가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하고 밤을 새우며 고뇌했다.
 싯다르타가 두 번째로 나간 성문은 남문이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병으로 괴로워하는 병자였다. 그는 자신이 토해놓은 오물에 뒹굴면서 고통스럽게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역시 싯다르타는 성으로 돌아와서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하고 병자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싯다르타가 세 번째로 외출한 성문은 서문이었다. 마차를 타고 가는데 슬픈 얼굴을 한 사람들이 시신 주위에 모여 있었고, 한 여자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싯다르타 태자는 시신 곁에 마차를 세우게 하고 마부에게 물었다.
 “죽음이 어떤 것이기에 저렇게 슬피 우는 것인가?”
 “태자님이시여, 사람은 모두가 반드시 죽습니다. 누구라도 결코 죽음을 벗어날 수 없사옵니다.”
 싯다르타가 네 번째로 외출한 성문은 북문이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황색 승복을 입은 출가자였다. 지팡이를 든 수도승은 그윽한 눈으로 길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싯다르타는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 마차에서 내렸다.
 “사문이시여, 출가에는 어떤 이로움이 있는 것입니까?”
 “저는 일찍이 집에 있을 때 생로병사에 관한 것을 직접 겪어보고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친족을 떠나 쓸쓸하고 고요한 곳에서 수행하여 해탈할 수 있도록 힘써 왔습니다. 제가 수행하는 것은 맑고 성스러운 길입니다. 저는 바른 법을 실천하고 본능을 이기고 큰 자비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안심을 줍니다. 생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어 사람들을 보호하고,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영원히 해탈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출가의 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승의 말을 듣자마자 싯다르타는 자신도 출가할 것이라고 결심해버렸다.
 ‘이 길이야말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제 나는 이 길을 가고야 말 것이다.’

 

 짜파티를 굽던 아낙네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급히 일행을 앞질러 갔다. 오솔길 끝의 동문 쪽에는 황색 승복을 입은 네팔의 승려가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아낙네가 네팔 승려에게 짜파티를 공양하러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선융은 문득 2천5백여 년 전 싯다르타 태자가 거닐었던 틸라우라코트 숲길을 염치없이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오의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지는 숲길에 와 있다는 현재의 인연이 고마웠다. 양명한 햇살은 싯다르타 태자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순례일행은 카필라성을 나와 들판 길을 걸었다. 성 부근에 있는 슛도다나 왕과 마야부인의 스투파로 가기 위해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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