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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불(癡呆佛)!’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18-02-12 (월) 09:48

기자는 부처님의 인연으로 미디어붓다에 오기 전에 한 노인 요양병원에서 ‘도움이’로 일한 적이 있었다. 환자 수 230명 내외의 병원에서 물리치료실로 가는 환자들을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돌아오면 침대에 눕혀드리는 일이었다. 그 일도 노인들의 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요령이 필요한데,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가슴을 밀착시키고 환자복의 허리춤을 움켜쥐는 것이다. 씨름하고 자세가 비슷하고 유사한 기술들이 쓰인다. 어느 날인가 병실에 들어서며 할머니를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나온 한 마디, ‘치매불(癡呆佛)!’ 오랜만에 정들었던 사람들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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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을 들어섰는데 한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잇몸만 남은 입이 짙은 남도 사투리로 누군가를 부른다. 간병인 말로는 삼 일 동안 계속 저러고 있다고 한다. 방 모퉁이에서 딸이 웅크리고 앉아서 울고 있다는 것이다. “○○야으~, ○○야으~~” 할머니에겐 실제로 보이는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우리가 사는 것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우리가 사물을 볼 때 느끼는 감각경로는 빛의 자극이 감각기관인 눈으로 들어오면, 감각신경을 통해서 대뇌피질로 올라가고, 다시 척수를 통해서 내려온 운동신경은, 운동기관인 근육을 자극해서 반응운동을 하게 된다. 촉감의 경로는 자극이 감각기관(피부)에 감지되면, 감각신경이 척수를 따라 올라가 연수에서 교차되어, 대뇌피질로 전달되고 다시 연수에서 교차되어, 척수를 타고 내려온 운동신경이 운동기관인 근육을 자극해서 반응운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뇌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이라고 판단되는 것을 선택하여 인식한다. 기억에 기초한 자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말하는 ‘오온’의 과정이다. 모든 ‘육근’과 ‘육경’이 만나는 ‘12처’의 모든 드라마가 이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 어머니들이 웃고 계시다. 
 
 
삼일 동안을 방 보퉁이에서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딸의 이름을 부르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바라보면서, 그 할머니 어디에서 부처를 찾아야 하는가. 부처님의 부처는 중생이라는데, 저 치매 걸린 할머니는 중생에 끼지도 못하는 건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죄 인지도 모르면서, 죄의 뿌리까지 치닫는 사람들의 어디에서 불성을 찾을 수 있는가. 도대체 하루가 흐리멍덩한 기자의 삶 어디에 자성청정심이 있기나 한 건가.
 
기자는 불교 공부가 미천해서 스님 네 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불교와 인연을 맺고 나서, 수도 없이 외어온 <반야심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불성이니, 여래장이니, 본각이니, 참나니 하는 말은 나의 숨통을 죄어 온다. 죽을 때까지 하여도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매달려 보는 것은 삶이 괴롭기 때문인데, 그럴수록 밑 빠진 항아리다. 누군가 ‘나에게 알맞은 길’을 가르쳐 줄 인연은 없는가.
 

간병인들의 70%는 조선족이다. 중환자실은 두 명의 간병인이 근무하고, 치매환자가 끼어 있는 일반병실은 한 명의 간병인이 돌본다.
 
 
스승 복이 없는 기자가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고타마 싣달타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괴로움’에 대하여 가장 사실적으로 접근해갔던 지성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모든 것은 변하고,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으며, 오직 서로 의지하여 일어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의지한다. 이 아름다운 독백은 마치 중력 같아서, 어디 한 군데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도, 저 무지한 죄악에게도, 멍청한 기자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된다. 모든 현상은 고타마 싣달타의 이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이것을 발견하기 전에도 있었고, 발견한 후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 
 
우주 원리의 법신으로 비로자나불을 얘기한다. 그럴진대 비로자나 부처님이 세상에 모습을 보일 때 어찌 항상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보이실 것인가. 치매의 모습은, 끝도 없는 악의 모습은, 어리석은 기자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모습은 우주와 서로 의지해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이 세상의 모든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뿐만이 아니라, 저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모든 모습도 부처님의 성품이다. 이 세상의 어떤 상황이라도, 그것이 ‘변하고 있으며, 고정된 실체가 없고, 서로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던, 동식물, 광물, 사물이든 간에 법신이 작용하고 있는 부처의 성품인 것이다. 어디 부처가 아닌 것이 있겠는가.
 

“목욕 시키는 것도 힘들지만 밤에 잠 못 잘 때, 밤새 소리 지르고  그리고 밤에 똥 두 번씩 쌀 때 그럴 땐 잠 다 깨고 잠 못 자는 거지.
뭐 괜찮아, 할머니들이 병으로 그런 거잖아. 그런 거 같고 속상해 할 거 같으면 못 할거라요. 병이 그런 걸... 우리도 늙으면 어떤 병이 걸릴 어찌 아나? 다 그저 우리가 잘 해드리면 우리한테 복이 온다 싶어 하지. 하하“
 
 
세상 모두가 부처라면, 괴로움은 없는가. 아무리 괴로움이라고 하는 부처의 성품이 실체가 없다고 하지만, 이 괴로움이란 부처를 어쩌란 말인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픔을, 힘을 가지고 있는 악으로부터의 부조리를, 게으르고 무명에 쌓여 괴로운 스스로를 어쩌란 말인가.
 
지혜가 없어서 ‘바르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팔정도’는 기자에게는 실천하기 힘든 가르침이다. 치매 걸린 내 어머니 치매불(癡呆佛)을 바라보면서, 적폐불(積幣佛)들의 만행을 보면서, 눈물 흘리고, 분노하는 스스로 부처를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하고,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으며, 오직 서로 의지하여 일어난다’는 것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가엾은 부처님들에게 108배 한다.
 
이생에서는 더도 말고
이만큼만이라도 하고 가자.
 
스승 복 없는 기자가 궁여지책으로 이해한 불교다.
 

몽산리 석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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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화엄 2018-02-12 10: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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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마음아프네요. 모든것이 무상하다 하지만 이 할머님도 젊음이 있고
꿈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이불재 2018-02-12 12: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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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불, 치매부처님.... 이 한 마디로 염기자님의 메시지는 끝났습니다.
아리랑 2018-02-12 15: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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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차적인 생각의 수레를 끄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널뛰는 망각의 늪에 사는것일까ㅡ노령화 사회의 어둠 속에서 기자는 '치매불' 이란  죽삐를 친다///
기원 2018-02-13 17: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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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참 어렵네요... 먹먹합니다..
기중 2018-02-13 17: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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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없는 괴로움이라는 부처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
보상 2018-02-13 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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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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