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사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면 북쪽의 맑은 담소에 뿌리를 박고 병풍처럼
솟아있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며 그 밑의 맑고 푸른 담을 청류담이라고 부른다.

 

 

 

이 병풍바위와 청류담을 등지고 네모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예로부터 책상바위라 불러오고 있다. 먼 옛날 이 골안에서 신선이 되기 위하여 도를 닦던 도사들이 이 책상바위에서 경을 읽었다고 한다. 근세기 어느 해 박가성을 가진 한 노인이 별금강 구경을 왔다가 신선골의 이 책상바위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안내하던 노인이 사람들에게 이 책상바위는 옛날 도사들이 신선이 되기 위해 경을 읽던 바위라고 하자, 박노인이 나서며 “옳수다. 우리 가문의 옛 조상이 이 책상에서 경을 읽던 도사를 만나본 일이 있다고 전해오고 있수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박노인에게 쏠리었다.”

 

“그게 사실이요?”
“사실이라구요. 그때 우리 옛 조상이 신선이 될뻔했다우.”
“어떻게요?”
“그럴만한 사연이 있지요.”

 

그러면서 박노임은 자랑삼아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박노인의 옛 조상 한 분이 젊었을 때 한 산골에서 늙은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고, 고개 넘어 골짜기에는 피가성을 가진 한 젊은이가 역시 늙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박가와 피가는 고개 넘어 서로 오가면서 다정하게 지내였다.
어느 날 박가를 찾아온 피가는 별금강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피가의 말을 들은 박가는 부쩍 호기심이 동하는지라 첫 마디에 응해나섰다.

 

두 젊은이는 늦은 여름 어느 날 별금강을 찾아 떠났다. 별금강에 올라 절경을 돌아보면서 신선골 책상바위 앞에 이르니 나이 많은 한 도사가 열심히 소리 내어 경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별금강의 절경과 어울려 마치 신선이 내린 듯하였다.

 

두 젊은이는 거기에 매혹되어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경 읽기를 그치고 잠시 쉬려는 도사에게 다가갔다.
“도사님, 무엇을 그처럼 읽고 계시오이까?”
“어떻게 하여야 신선이 되는가가 쓰여있는 경을 읽고 있다.”
“ 것을 다 읽으면 신선이 되오이까?”
“이대로 몸과 마음을 수련하면 신선이 되는 거지 다른 게 있겠느냐?”
“그럼 우리 같은 사람도 신선이 될 수 있소이까?”
“될 수 있구말구”.
“신선이 되려면 몸과 마음을 어떻게 수련해야 하나이까?”
“그 조항을 다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조항들만 지키면 되느니라.”
그러면서 도사는 신선이 되기 위한 기본조항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사람이 신선이 되려는 것은 장생불사하기 위한 것이니 그러자면 곡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곡식에는 사람의 몸을 해치는 3가지 벌레가 있어 사람이 영생할 수 없게 하니 솔잎, 버섯, 채소 등과 여러 가지 약초를 먹되 화식을 피하고 생식을 해야 하느니라. 다음으로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온몸에 생기가 넘치게 하며 몸을 절조있게 놀려 관절마다에 노화가 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몸에는 늘 불순한 기가 생겨서 사람의 죽음을 재촉하기에 그것을 없애지 않고서는 장생불사할 수 없다. 또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느니라. 선한 덕행이 쌓아져야 장수할 수 있다. 300 가지 착한 일을 하면 지상의 신선인 진선이 되고, 1,200가지 착한 일을 하면 하늘의 신선인 천신이 되느니라.
이대로 몸과 마음을 수련할 곳은 이 세상에 별금강만 한 곳이 없느니라. 그리 할 수 있겠느냐?“

 

 

 

“할수 있소이다”
“신선이 되려거든 아무 때나  찾아오너라. 내 도와줄터이니.”
“고맙소이다.”
별금강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두 젊은이의 기분은 하늘에 오른 듯 둥둥떳다.
“여보게. 우리 신선이 되지 않겠나?”
피가가 흥분하여 박가에게 물었다.
“글쎄...”

 

박가는 자신이 없는 듯 선 듯 대답을 못하고 머리만 기웃거렸다.
“여, 뭐 그리 생각하나? 사내가 한번 세상에 났다가 100살은 넘겨야지. 그래 50-60년 살다가 죽겠나? 신선이 되려고 도를 닦다가 지선, 천선은 못되더라도 120살은 넘긴다지 않나.”
“하긴 그래. 그런데 이왕 도를 닦을 바에야 천신이 되어 장생불사해야지.”
“그렇지 않구.”
“그럼 우리 당장 부모님들에게 말씀드리구 별금강에 들어가세.”
“그럼세.”

 

집에 돌아온 피가는 부모님들에게 말하여 곧 승인을 얻은 후 별금강으로 들어갔으나, 박가는 늙은 부모을 남겨두고 자기만 오래 살겠다고 차마 말할 수 없어 입도 떼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피가는 별금강에서 도를 닦은 후 신선이 되었지만 박가는 신선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박노인이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자 옆에 있던 한 노인이 말하였다.
“그러니 임자네 옛 조상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높아 신선이 못되었군그래.”
그러자 옆의 다른 노인이 끼여 들었다.

 

“아닐세, 임자의 조상은 마음이 약해 신선이 못되었을 걸세. 난 또 조상 자랑이라구 해서 굉장한 이야긴가 했더니 신선이 못된 이야기구만. 하하하...”

 

동료들의 놀림에 박 노인은 부끄러워하거나 성내지 않고 오히려 웃는 얼굴로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나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도 신선이 못된 옛 조상을 조금도 탓하지 않았다네.”
“그건 어째서?”
“우리 옛 조상이 신선이 되지 않고 제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았기에 우리 선조들도 태어나게 되고 나도 세상구경을 하게 된 게 아니겠나. 만약 나의 옛 조상이 신선이 되어 저 혼자 오래 살았다면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겠나?”
“웅?”
노인들은 뜻밖의 화제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노인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박가성이 열 손가락 안에 안 든다면 서운하다고 할 만큼 번성했으나 피가는 어떤가?”
“하긴 그렇군. 피가의 옛 조상은 저 혼자 장생불사해서 피가가 희성이 되었군그래.”
노인들은 저마다 그럴 듯하다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있는 책상바위 앞에서 사람들이 선뜻 걸음을 떼지 못하는 것은 저 혼자 장생불사하려고 도를 닦기보다 제 땅을 아름답게 가꾸며 값있게 사는 것이 더 보람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