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ㆍ예술 > 염정우 기자가 만난 사람들

거덜 난 상상력 속에서 솟아오른 ‘투명한 답답함’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18-01-16 (화) 14:32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을 보면서 전통의 계승을 넘어 전통에 함몰 되어가는 모습을 본다. 작가들의 인고의 세월이 왜 없겠는가마는, 매년 봤던 작품들과 그게 그거다. 현대적인 작품들도 종교적 체험을 그려냈다고 하기에는 그 예술적 상상력이 미천하다. 탱화 속의 불보살들이 화면 속에서 걸어 내려온다. 내려온 자리는 하얗게 남아 번져간다. 문득 뭔가 투명하다. 정육면체의 투명함 속에 반가사유상의 불두가 금박으로 남아 허공에 떠서 세월을 잊고 있다. ‘무아(無我)’ 진귀원. 그런데 답답하다, 사유의 불두에서 나오는 사자후의 맹강함이, 투명한 답답함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작가는 투명한 답답함과 생명의 외침 속에서 어떻게 싸우고 있으며, 어떤 화해를 시도하고 있을까?
 


 
4.19 민주묘지역. 수유리 상가건물 일층의 곱창집을 옆으로 계단을 올라 3층에 있는 방화문이 차갑다. 창고처럼 선반에 쌓아놓은 작품들과 도구들 한편으로, 비닐로 막은 작은 공간에 석유난로 하나를 의지하고 있는 얼굴이 의외로 순진하고 착해 보인다. 진귀원 작가는 1981년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동아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융합디자인 예술대학원 공공미술과를 수료했다. 2013년 『야만의 시대』 개인전을 열고, 5년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세상과 만나기를 준비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 5년 전에 '야만의 시대' 개인전을 하시고 아직 개인전이 없었는데, 그때의 작업과 지금의 작업이 많이 다르네요.
“개인전을 하고 나서 더 이어나가기가 힘든 거예요. 학생일 때는 학비도 해주고 해서 살았는데, 이게 평생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닌 거예요. 제가 작업을 하는 자체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동집약적인 거예요. 개인전을 하고 나면 전부 창고에 집어넣어야하는 거예요. 전시한다고 뭐가 생기는 게 아니라 경력은 생기는데.... 이런 식의 작업을 평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순수하게 생각했을 때는 만드는 즐거움도 있었고 하는데, 판매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공미술 쪽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실제로 이 작업은 이렇게 하고 나서 더 이상 이어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작업을 바꾸려고 하는 데는 그런 점이 컸어요. 저 작업은 딱 저 때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작업인거 같아요. 돈이나 생활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했던 작업이거든요.”
 
-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학생 때나 지금이나 거의 다를 바 없이 노가다처럼 하고 있어요. 조각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거든요. 조형물 같은 거에 용접도하고 FRP작업도하고.. 그런데 지금은 저 보다 어린 사람들이 잘 없어요. 지금은 조소과도 없어지고 미술학과로 총편합되고 그리고 이렇게 물질적으로 다루는 작업들을 거의 안 하거든요. 저는 항상 막내였는데, 지금도 막내인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일당 단가는 좀 올라가요. 그러니까 한 절반만 일하고 절반은 개인 작업을 한다거나, 요즘은 중견기업들 같은 곳에 입구에 놓는 조형물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하는 투명 작업을 보고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어 주실레요? 하면 가서 만들어주고 납품을 하고 합니다.”
 
- 작가님의 ‘야만의 시대’이야기 속에 우리의 불안이 ‘한국 사회 그 자체’에서 온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딱 그 시기인 거예요. 결혼이나 학업이나 취직, 그 안에서 가장 불안을 느끼는 세대더라고요. 그래서 왜 이럴까 작업이랑 연계해서 찾아봤는데,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거의 십년 째 1위더라고요. 그게 우리 민족의 특징이 아니잖아요. 분명히 다른 게 있을 거라고 찾아보니까 이게 구조적인 문제, 그리고 이 구조적인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왔냐?라는 것들이 신자유주의적인 무한경쟁 체제에서 사람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하는 것을 보며, 이것이 구조의 문제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 개인적인 불안이 아니라 사회에서 오는 구조적인 불안이라는 말씀인데, 그런 작업들이 ‘인터뷰’란 작품에서 내면의 다양한 불안이 보이고요, ‘덫’에 걸린 모습, ‘어반 아나콘다’ 같은 경우 그런 구조 속에 삼켜지는 사람들의 불안이 보이던데요.
“불안을 설명할 때 공포랑 비교해서 많이 설명하더라고요. 공포라는 것은 정확한 대상이 있을 때 공포를 느끼는데, 불안이라는 건 그 공포가 만성화된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불안의 특징은 어디서 나타날지, 실체는 찾을 수 없는데, 언제 나한테 덮칠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을 불안이라고 정의하더라고요. 실제로 어떤 전쟁이 있는 사회가 아닌데, 전쟁에서 죽는 사람들 보다 자살자가 더 많은 거예요. ‘총칼이 안 보이는 거지, 뭔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사람을 쥐어짜고, 위해를 가하고 있구나’ 그런 것들을 보이게 하자는 거죠. 도시 속의 아나콘다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안 보이는 것들을 보이게 만들어서 표현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어반 아나콘다_합성수지_우레탄도장_700X2500X600mm_2009
 
 
- 작가노트에서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척도가 행복이라면, 우리는 가장 야만적인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작가께서 생각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어떤 것입니까?
“제가 사는 방식도 비슷한데, 일본에 ‘사토리 세대’라고 있더라고요. ‘득도’했다고 이렇게 말하는데, 실제로 아예 결혼이나 연애 이런 걸 완전히 포기하고 .... 너무 긴 불황 사이에서 만들어진 세대라서, 기대 자체가 아예 없는 거예요. 얘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거의 없는 거예요. 정말 적게 쓰고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데, 아이러니하게 행복도가 되게 높은 거예요. 남하고 비교 안 하고 자기 안에만 들어가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까 이게 맞는 거 같은데, 뭔가 이게 옳다고 할 수 없는 거 같은데, 사실은 저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거예요. 제 친구들은 결혼은 해서 가정을 가졌는데 아기 놓는 거를 되게 무서워하는 거예요. 아기를 놓는 순간 자기 생활이 어떻게 될지를 아는 거예요. 완전히 일에 메여가지고... 근데 사실은 갖지 않으면, 가진 게 없으면 편하잖아요."
- 인간의 구조적인 욕망에서 오는 인간 소외, 그로부터 오는 위협과 불안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셨는데, 이러한 것들을 드러낸다고 하는 행위는 어떤 것인지요. 다시 말해서 나 혼자 느끼고 있을 때와 여럿이서 공감한다는 것의 차이점은 어떤 걸까요?
“일단 그 문제를 같이 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하지 못하면 각자의 고통이 되잖아요.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맥락에 닿아있을 거 같아요. 내 작업을 보면서 당시에 제 또래의 젊은 커뮤니티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사실 제가 공감하기를 원하던 거였고, ‘그런 것들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만 해도 뭔가 안심이 되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불안들의 실체를 끄집어내서 보여 주는 거잖아요. ‘인터뷰’ 같은 작업에서, 정해진 대답을 강요하면서 완전히 자기와는 다른 모습으로 가서 가면을 쓰고 대답을 해야 되잖아요. 기업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을 원한다면서, 창의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거거든요.” 
 
- 자기들이 원하는 창의적인 대답을 원하죠.
“인터넷에 자세에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다 있어요. 자기의 모습이 아니잖아요. ‘너의 속마음은 이랬잖아?’ 하고, 이런 것들을 꺼내서 한 번 내놓고 같이 보자 하는 거예요. 해결책은 줄 수 없어도 같이 공감하고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안심이 어느 정도 되는 거죠.”
 

인터뷰_합성수지_우레탄도장 /각 500X400X1200mm /2010 
 
 
- 모든 작가들의 고민이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같이 느끼고 고민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하지요. 전시의 시공간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계신지요?
“지금 보시다시피 안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홍보를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책으로 치면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들이 솟아져 나오잖아요.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읽히는 것들과 마케팅을 잘하는 것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내가 좋은 작업을 먼저 하고 그거를 인정받으면, 그래서 고전으로 남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안되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사실은 전시 5년 텀은 굉장히 긴 거거든요. 다들 그렇게는 안 하는데... 작업을 내놓을 수 없더라고요. 올해는 어떻게도 전시를 해 볼 생각입니다.”  
 
- 예술 또한 많은 문화적인 활동처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서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가 없는 것인데, 굳이 말해보자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예술가의 역할이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길에서 볼 수 있는 공공미술품을 생각하면, 곡선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깐 우리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만 생각하면 네모반듯한 것만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그 사이에 리듬과 균형 활력을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사람이 비 맞는 것을 되게 싫어하는데,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비를 맞으며 뛰어가는 모습이 좋았는데, 그다음부터 비 맞는 게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세상은 똑같은데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이잖아요. 근데 그 관점을 바꿔 줄 수 있더라고요, 예술가들은.”
 
- 작가님의 삶 속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고 공감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뭐 멘토나 그런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뭐가 있을까... 아는 선생님이라도 하나 있어야 되는데... 생각이 안 나네요.”
- 하하, ‘영향받지 않음’과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셨군요. 아주 신선합니다.
 
- 중복되는 질문 같기도 한데, 작가님의 야만의 시대를 보면서 사람들이 엽기적이라는 반응들이 있는데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종류의 무의식을 누군가 형식적으로 드러낼 때 상당한 불쾌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들켜 버린 거죠. 작가님은 사람들이 구태여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왜 꼭이 드러내고 싶은 건가요?
“그게 진실이잖아요. 양쪽의 면을 갖고 있는데, 보여 줄 때는 밝은 면만 보여 주잖아요. 저희 같은 사람은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거죠. 원래 그게 사람이고 우리 사회니까 그런 것 같아요.”
 - 작품 중에 ‘vanitas’에서는 그 이전에 보였던 작업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성찰과 불안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상당히 내면적인 성찰과 허무와 불안이 보이는데요. 어떤 시각적 변화가 있었을까요?
“가면서 더 어두운 면이 생기는 게 뭔가 죽음에 대한 탐구처럼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뭔가 지금까지 오는 그 중간의 작품이라고 생각돼요. 야만의 시대랑 현재하고 있는 작업과의 사이에 안 좋은 일들이 너무 많았고... 세월호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은 소녀하고 해골은 아주 오래된 상징이죠. 극단적인 것 두 개, 생산적인 것을 상징하는 가임기의 소녀와 죽음이란 것을 붙여 놓은 거 드라고요. 그런 것들을 같이해 놓음으로써 삶이 얼마나 허무하고, 생과 사의 순환 같은 것을 보여 주면서 어차피 이렇게 허무한 것이니까 욕심내지 마라 이러한 느낌이더라고요. 의도적이지 않았는데 그런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물에 대해서도 표현을 많이 하게 되고요. 금방사라질 것들에 대해 이런 것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제가 갖고 있더라고요. 곧 사라져가는 황혼 같은 시기에 씨앗을 잔뜩 머금고 있는 이런 것에서 오는 느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두 작업 사이에서 금방 없어져 버리는 것 들을 남겨놓으려는 작업들을 한 것 같아요.”
 
- 물, 여자, 달 같은 것들이 생명에 대한 상징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정육면체의 투명한 답답함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것이 물이었군요.
“물에 대한 메타포로 쓰고 있었어요.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죽음 앞에서 이뤄지는 많은 갈등에 대한 메타포죠. 이 모든 것들을 ...”
 
-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서 저는 여러 가지를 느꼈는데요. 먼저 다가온 것은, 이미 우리의 삶 속의 내밀한 부분까지 침투돼 버린, 그래서 그 부조리마저 익숙해져서 투명해져 버린 삶 속에서의 어떤 절규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전의 작업들은 해석의 여지가 많이 없는데, 보는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많이 없었어요. 지금 작업들이 좋은 게, 보는 사람들이 해석을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들어보니까 이렇게 봐지는 좋은 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어떤 현대 미술 작가들은 자기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내던져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좋은 자기표현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할 때가 많아요.
“거의 텍스트를 보지 않으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작품들이 있어요.”
 

무아(無我)  에폭시_금박 
 
 
- 새로운 기법을 창안해낸다는 것은 ‘나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있고, 세상과 대화하고 싶다’는 의지 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투명함 속에 무언가를 가두는 작업을 통해서 작가님이 보여 주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인가요?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이걸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하고 그걸 하나 찾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항상 하고 나면 누군가 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그게 사람 미치는 거죠. 그래서 에폭시 작업을 하면서 구글링을 계속해요. 혹시나 비슷한 작업이 있어서 나보다 먼저 발표하거나 내가 그 사람의 아류가 될까 봐. 사람들이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아방하게 계속 나가려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업까지 나가 버리는 거죠. 그 작업이 독특하긴 한데, 살아남을지는 모르는 작업인데, 어쨌든 미술관에서는 그런 작업들을 먼저 쳐주죠. 특별한 작업이니까. 사실은 뭔가 계획적으로 한다기 보다 나만의 독창적인 것을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찾아보는 거죠.”
 
- 지금하고 있는 금박 작업이 ‘종말’ 같은 느낌, ‘우상들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우상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작업하는 방식이 계획을 가지고 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그다음에 찾거든요. ‘내가 이것을 왜 했을까?’하고. 그렇지만 그것조차도 다 설명을 못할 때가 되게 많거든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을 보면 , ‘금박이라는 게 어떤 거냐?’라고 하면, 금이라는 게 영원하다고 보이는 거잖아요. 색깔이 변하지 않고 상하지 않는 거잖아요. 그리고 성스러운 것을 포장하는 건데, 이게 실제로 미리 수가 0.0003그램인가 그래요. 되게 얄팍한 거예요. 그걸로 덮어 놓는다는 게. 그런데 우리가 개금을 하잖아요. 결국 벗겨지고 다시하고 사실은 영원불변한 것들을 표현하려고 하는 건데 결국 그게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들이... 그 영원하게 유지하려고 하는 작업들 자체가 되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의 전체는 아니지만, 지금 제가하고 있는 작업의 콘셉트예요.
에폭시 안에 가둔다는 게 꺼낼 수가 없어요.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데 그리고 안과 밖이 투명하지만 서로 침투가 안 되는 세계거든요. 이면을 보여주지만 닿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금박을 통해서 재미있게 표현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이 시리즈를 하고 있어요.
 
- 그리고 정육면체의 투명함 속에 사람과 나비가 등장합니다. 갇혀 버린 자유와 날고 싶은 욕망이 엉켜있는데요. 작품 속의 사람과 나비는 어떤 대화를 하고 있을까요?
“...진짜 어렵네요.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하하”
- 저 작업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저 느낌을 알 거예요, 대화를 알고. 그런 것들을 다 따로 갖고 있을 것인데, 작가가 갖고 있는 느낌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겠으나 작가의 말로 표현하는 것을 듣고 싶었는데, ‘생각해 본적 없다’는 말이 아주 진솔합니다.
 
- 작가님이 불교의 일에 직접적으로 활동을 하시지 않더라도, 밖에서 보는 불교에 대한 인식은 어떠신지 솔직한 말을 듣고 싶습니다.
“몸은 가깝지 않은데 마음은 되게 가깝거든요. 날파리 하나도 안 죽이려고 하고, 벌레도 좀 안 잡으려고 하고, 그런 게 불교 때문에 그런 것 도 있거든요. 모르겠어요. 좀 이상한 스님들도 있는 것도 봤고, 어디든 다 그런 거니까 뭐.. 그러다가 ‘빨갱이들은 죽여도 돼’이런 스님들을 보면, ‘아이고 이걸 어떡하냐!’ 그런 건 있어요. 목사님들이 좋은 차 타고 다니면 그러려니 하는데, 스님들이 너무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걸 보면 좀 불편한 건 있어요. 요번 상 받으러 갈 때 보니까 VIP 화장실이 또 따로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역사적으로도 어차피 스님들이 귀족과 결탁해서 비리가 있었고 그사이 또 도 닦는 스님들이 계신 거고 뭐 그런 거라서...”
 
- 이번 불교미술대전에서 ‘무아’라는 작품으로 장려상을 받으셨는데, 작업이 진행되어 온 맥락에서 보면 내면의 성찰이 많이 성숙된 느낌도 있고요, 다른 한 편으로는 알을 깨려고 하는 의지도 보입니다. 또 하나의 느낌은 금박의 불두를 통해서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박제화 돼버린, 그래서 불러도 대답해주지 못하고 현대인들의 삶과 뒹굴지 못하는 불교의 부조리한 현실도 봤습니다. ‘무아’란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하는 작업이 사라지는 것들인데 실제로 죽음과 사라짐은 바로 탄생과 닿아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게 되게 좋은 지점인 것 같아요. 한 세계가 소멸되어 사라진다는 것은 다른 것의 탄생이 전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 금박을 넣기 전에는 꽃이나 다른 것들을 넣었었는데, 금박을 넣을 때 직관적으로 처음 넣게 된 게 불상입니다. 불상과 금박이 맞닿아 있기도 하지만 그 느낌이 가장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거의 직관적이라서 설명하기 어려운데 불교와 허무한 것들의 지점들이 잘 맞는다고 느껴졌고, 공즉시색 색즉시공 그런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에 들어가 있는 극소량의 금으로 그 형상이 다 표현되는 거죠. 실재로는 거의 비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물질이거든요. 그러니까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처럼, 아예 없지도 않고... 뭔가 불교적인 것들과 잘 맞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 앞으로 본인의 작가정신은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계신지?
“일단은 투명한 것으로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보고 있거든요. 뭘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 형식으로 제시해 봐야지 이런 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찾은 다음에 이게 어떤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지는 그 뒤에 갖더라고요. 형식 안에서 말하는 방식이 나오더라고요. 아마도 그런 형식적인 걸 탐구하고, 여러 가지 표현 방식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면 또 많이 다른 표현이 나올 것 같아요.
 
- 다양한 시도 속에서 자기가 의도치 않아도 나타나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지금은 ‘모를 뿐이 다’라는...
“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떠신지요?
“올해는 꼭 개인전을 해보고 싶어요. 오년 동안 계속 새로운 작업은 만들어오고 있는데 발표를 할 수 없었거든요. 이제야 남한테 보여 줄 수 있는 작업이 나오는 것 같아서, 올해는 어떻게든 개인전을 하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후기
 
그는 싸우고 있지 않았다. 엄습해오는 불안과 공포의 정체를 찾아보고, 숨어 있는 실체를 드러내서 공감하고, 서로 껴안고 위로하며, 같이 있음에 안심하며 앞으로 나가는 지혜가 있다. 언어는 단정 짖지 않는다. 그래서 고여 있지 않고 흐른다.
아픈 관점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으며, 고전으로 남고 싶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삶과 죽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영원할 것 같은 허무한 금박을 만지며 중도를 체험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잘잘못을 긴 호흡과 시간을 갖고 나무라지 않는다.
포기와 행복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스스로의 무의식을 찾아 실험해보는, 그전에는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겸손한 실증주의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화해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시간 내내 즐거웠다.
잔뜩 찌푸린 도심의 콘크리트속에서 솟아오르는 나비를 본다.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아리랑 2018-01-16 16:33:05
답변 삭제  
법당에 피워진 분향의 날개짓이 산줄기를 타고 떨어지는 겨울 비와 만난다ㅡ
거기에서도 나비를 본다. 신선한 작가와의 좋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속 깊은 기자를 접하며...브라보
이불재 2018-01-16 16:38:07
답변  
내 젊은 날을 보여준 글 같아서 더욱 공감이 갑니다.
경담 2018-01-17 20:26:34
답변  
선생님의 격려에 항시 새로운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빠띠고사호잔 2018-01-17 13:08:19
답변  
수행에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그림(어반 아나콘다)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크랩하여 수행 글의 소재로 사용하였습니다.
경담 2018-01-17 20:25:48
답변  
네, 감사합니다.
화엄 2018-01-17 16:34:08
답변 삭제  
작가가 좋아하는 작품을 하며  즐겁게 살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