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종 미얀마 수행기

“어, 산비둘기가 죽어 있네!”

이학종 | urubella@naver.com | 2018-01-12 (금) 15:18

 

밤새 내린 눈(폭설)으로 덮인 현묘재 전경

이틀째 내린 눈으로 동네가 하얗다. 현묘재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 좌우 앞뒤로 드리운 산자락은 소나무와 대나무 숲을 빼고는 온통 눈 세상이다. 온 동네가 순백의 옷을 입으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눈 내린 날의 새벽은 평소보다 이르다. 눈의 ‘자체발광’에, 해 뜨기 훨씬 전인 데도 어둠이 지레 맥을 추지 못한다. 일찌감치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싸늘한 겨울기운이 피부로 스며든다. 콧등이 따가울 만큼 추위가 매섭다. 뉴스에서는 ‘최강 한파’ 운운하며 호들갑이 한창이지만 겨울에 이 정도의 추위가 며칠은 있어야 해충들이 죽는다는 말도 있으니, 추위가 마냥 싫지는 않다.

밤새 20센티미터도 넘게 눈이 쌓였다.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걷기 어려울 정도다. 장독대와 마당을 가로질러 본채와 텃밭 사이로 난 앞뜰에는 마치 손가락 서너 개를 모아 콩콩 찍어놓은 모양의 동물 발자국이 일렬로 찍혀 있다. 밤새 고라니 한마리가 다녀간 것이다. 작은 기척에도 줄행랑을 치는 겁 많은 고라니가 집 둘레의 뜰과 앞마당까지 다녀간 것을 보면 먹을 것이 부족했나 보다. 발자국의 깊이가 채 2센티미터도 안 될 정도이니 필시 어린 녀석이거나 배를 곯아 체중이 많이 줄어든 고라니일 것이다. 현묘재의 위치가 마을의 맨 위, 뒷산 기스락과 접해 있는 터라 겨울철에는 주린 동물들이 내려올 개연성이 큰 곳이기는 하다.

사실 고라니는 농사철 내내 농부들에게는 골칫거리다. 그들 입장에선 먹이를 찾아오는 것이지만, 고라니가 나타나 밭을 휘젓고 가면 농사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뙤약볕 아래서 구슬땀 흘리며 정성껏 심어놓은 콩이며 들깨, 고추 따위의 모종들에게 고라니의 발길질은 조자룡이 휘두르는 헌 칼과 진배가 없는 것이다.
피해를 막기 위해 시골 밭 대부분은 고라니 망(網)을 친다. 우리 텃밭에도 예외 없이 뺑 둘러 고라니 망을 쳐 놓았다. 고라니 망은 수확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대개 철거하지만, 다시 망을 칠 수고를 덜어볼 요량으로 이번에는 그대로 놔두었다. 그런데 한 겨울인데도 고라니 망이 둘러쳐 있는 게, 외려 고라니를 불러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고라니 입장에서는 무언가 먹을거리가 밭에 남아있기 때문에 망을 거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을 수도 있지 않은가.

고라니 발자국을 따라 집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아침이면 집을 한 바퀴 돌며 밤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살피는 것이 산골 ‘풋시인’의 일상이기도 하지만, 오늘 새벽은 폭설로 인한 피해가 있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어제 해질녘 어렴풋이 들었던 무언가 ‘쿵’하며 부딪치는 듯한 소리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서 더 찬찬히 집과 뜰 안을 살폈다.

“어, 산비둘기가 죽어 있네!”
현묘재 왼편 뜰에 제법 큰 산비둘기가 누워있다. 아무래도 드레스룸의 자연채광을 위해 서쪽 벽 상단에 낸 통유리 벽에 부딪쳐 죽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벽에는 산비둘기가 들이받은 흔적이 선연하다. 유리벽에 비친 서쪽하늘을 진짜 하늘로 착각해 날아들다가 유리벽과 정면충돌을 한 것이다. 지난여름에는 참새 한 마리가 베란다의 유리 창문을 들이받고 죽더니, 이번에는 산비둘기가 같은 이유로 죽는 참사가 벌어졌으니, 새벽부터 영 마음이 찝찝하다.

 

현묘재 서쪽 벽면 윗부분에 자연채광을 위해 낸 유리벽.

‘에이, 어리석은 녀석들! 그래 이 넓은 창공을 놔두고 작은 유리벽에 비친 하늘로 죽을 줄도 모르고 날아들 게 뭐람. 그래서 너희들을 두고 새머리라고 하는 거야. 이 녀석들아.’ 나도 모르게 유리에 비친 하늘을 진짜 하늘로 착각한 새들을 나무랐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혹시 유리에 금이나 가지 않았나, 하는 염려도 일어났다. 지난여름 충돌사한 참새는 몸집이 작아서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비둘기는 제법 큰 놈이었기 때문이다.

바닥에 배를 드러낸 채 뒤집혀 죽어 있는 비둘기를 집어 들었다. 제법 묵직하다. 이것을 어찌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뒷산에 묻어주기로 했다. 삽을 챙겨들고 뒷산으로 걸어 올라갔다. 뒷산 초입을 지나 스무 발짝쯤 오르면 나타나는 오가피 나무숲에 묻어주기 위해 언 땅을 파냈다. 땅 표면이 얼어 작은 웅덩이를 파는 데도 제법 숨이 차오른다. 웅덩이 속에 산비둘기를 눕혀 놓고 흙을 끼얹으려다가 잠시 멈췄다. ‘내가 이곳에 집을 짓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 자연채광을 한다며 벽에 투명유리벽을 내지 않았더라면 네가 이렇게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자연을 벗 삼아 살겠다며 산 기스락에 집 지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곳이 본래 새와 동물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거나 달렸던 곳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보금자리를 땅이건 하늘이건 ‘동물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차지했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나무아미타불~’ 마음속으로 좋은 몸 받고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한 삽 한 삽 조심스럽게 흙을 덮었다. ‘부디 다음 생에는 사람의 몸을 받고 태어나,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서 지혜롭게 살아가야 한다.’

산비둘기를 묻고 내려오는 길옆 감나무에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산비둘기는 마치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죽은 비둘기가 혹시 저 비둘기의 짝인가? 제짝이 묻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픔을 억누르고 있었나? 골똘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산비둘기는 후드득 둔탁한 날개 짓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동쪽 산(옥녀봉)으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해와 눈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빛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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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경담 2018-01-12 17: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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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하얀 일상이 그림 처럼 흘러갑니다.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합장.
다경 2018-01-13 10: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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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아리랑 2018-01-13 08: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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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길고양이로 내게 오게된 냥이가 보리란 이름으로 살다가 불현듯 저세상으로 떠났다 ㅡ산비둘기처럼 이런저런 사연으로 엄설동안에 이생을 떠나는 모든 생명들의 아름다운 귀환을 빌어본다()
다경 2018-01-13 10: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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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에 금이 갔을까 염려했던 이기적 마음을 참회합니다.
화엄 2018-01-13 09: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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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전경만큼 시인의 자비로운 마음이 전해집니다.

저도 먼저 간 산비둘기를 위해 나무아미타불!
다경 2018-01-13 10: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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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빠띠고사호잔 2018-01-16 08: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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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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