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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한 더듬이’의 세상에 ‘말걸기’ - 증강현실

염정우 기자 | bind1206@naver.com | 2017-12-28 (목) 08:55

염정우 기자가 만난 사람들 1
 
이미 우리의 삶 속으로 발을 들여 놓은 제4차 산업혁명. 잘 알지 못한다. 뭔가 두렵다. 영화로 보던 미래의 무너지는 인간의 가치 속에서 나는 주인공처럼 영웅일 수가 없다. 알고 싶었다. 
 

 
동아방송예술대학 이주헌 교수
 

 종로구 장사동 세운상가 4층 마 439호 콜론비아츠. 4평 정도의 까만 공간이 이색적이다. 공간을 지키고 있는 수줍고 ‘예민한 더듬이’를 만난다. 현재 동아방송예술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이주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박사)을 전공하고,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미디어와 인간 사이의 공존 속에서 인간에게 ‘말걸기’ 작업을 통해 미디어와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실험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콜론비아츠에서 12월 12일부터 30일까지 『증강현실/디지털인터랙티브아트(AR/Digital Interactive Art)』전을 하고 있다.
 
 팸플릿 속의 ‘예민한 더듬이’는 보이는 정보의 인식이 다를 수 있음을 느끼고, 머릿속에 가상의 이미지 신호를 전달하기만 해도 실재라고 믿게 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과연 실재하는가?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보이는 것의 심리를 이용하는 마술 같은 세상, 마술에 현혹 되어 더 크고 중요한 진실을 놓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민한 더듬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사이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도구로서 우리의 삶에 더욱 내밀하게 파고든 스마트폰. 거대한 거미줄 속에서 중독되고 이젠 빠져나올 수도 없는, 의지마저 꺾여버린 가여운 나비. ‘예민한 더듬이’는 디지털과 인간이 간섭하는 상호관계를 장치하고,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이 추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의문의 간격을 좁혀보고 싶다.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란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원본 사진을 디지털 컬러링 기술을 이용해서 일반인들이 처음에 뭔지 잘 모르게 변형 했습니다. 사진에 테블릿피시를 비추면 보여 지는 이미지를 통해서 시각정보를 과연 다 믿을 수 있느가? 의문을 던져 봅니다. 보는 것조차 잘못된 것을 볼 수 있고 그것조차도 현대기술로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과연 본다고 하는 것을 100% 신뢰할 수 있느냐, 또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더 진실일 수 있지 않느냐? 우리가 단순히 눈으로 본다는 시각 정보만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같은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기억과 추억을 갖고 있는데, 자기만의 기억과 추억만을 진실이라고 고집한다’고 얘기한다.
 
 “어떤 진실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추구하는 진리의 절대성에 대한 것도 얘기 될 수 있을 것 같구요.”
 
 - 우리가 어떤 진리성이란 것에 얽매여서 질문이나 의문을 갖지도 못하고 아는 것처럼 넘어가는 경우가 많죠.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절대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고요. 지금 우리가 서로 싸우는 그 절대성이라고 하는 것에는 정말 본질적인 절대성과는 관계없는 형이하학적 존재들 끼리 절대적인 진리라고 싸우고 있지 않나 볼 수 있죠.”

- 우리는 보는 것을 믿고 의심을 갖지 않죠.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가상으로 봤다고 그래도 실재로 인식하고 믿게 되죠.
 “그게 증강현실입니다.”
 
- TV나 광고, 영화 같은 것들도 오감이 투영돼서 그 대상을 느끼게 되는 경우들 인데, 그러면 4차산업이나 증강현실의 필요충분조건은 5감과 5감의 대상이 되는 건가요?
 “증강현실이란 말 자체가 현실을 더 보강해서 현실의 공간에서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더한다는 의미가 있거든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존재하고 있지 않는 걸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은 거잖아요. 지금은 기술적인 한계로 시각정보로만 가상을 더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후각이라든지 제3의 감각을 자극하는 정보도 더해질 것이라고 보는 거죠. 결국 이런 것들은 사람의 오감을 통해서 오감을 현혹시키는 거죠. 현혹시키는 이유가 없을 때 보다 있을 때 뭔가 더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증강현실도 가상현실도 인간의 감각을 조정해서 인간에게 더 큰 만족감을 주겠다. 이런 방향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시간이든 자기의 제어권 안에 두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거잖아요. 결국은 인간들의 욕망이 단순히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것을 넘어서 정신적인 부분이나 개념적인 부분들도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없는 걸 보여 지게 한다는 것은 실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는 어떤 감각이라든지 개념이라든지 혼과 관련된 부분을 조절하는 거죠.”
 
 이주헌 교수는 ‘이제 인간은 생물, 물질 그리고 개념과 공존하는 존재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앞으로 가상의 개체가 AI(인공지능)에 의해 움직이고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감성을 보인다면, 우리는 이 존재를 무엇이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 하셨던 말씀 중에 ‘우리가 동식물과 공존하고 물리적 환경과 공존하면서 사는데,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여 졌던 영혼·가상·개념과 공존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철학적으로 보면 그 용어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 데요. 의미적으로만 설명을 드리면, 이런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과 공존해 왔죠. 기계나 로봇 같은 것들. 그런데 지금은 그것들을 뛰어 넘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심지어는 그것을 머릿속에 상상만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실재로 구현하기 시작한 거죠. 예를 들어 포켓몬이라는 게임을 한다면, 예전엔 머릿속에서 공상과학 만화에서나 생각했던, 겨우 시각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것들을 실재 3차원에서 구현해서 마치 공간에 있는 것처럼 구현하니까 우리가 이제 공존하는 영역이 훨씬 더 넓어진 겁니다. 우리가 가상의 개념과 공존하는 겁니다.”
- 증강현실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실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그래서 개념과 상상의 것들을 실재 공간 손에서 구체화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인 것 같습니다.
 

 
세 명이 일 때는 두개의 연결이, 열 명 일때는 아홉개의 연결이, 열다섯 명 일 때는 열네개의 연결이 마치 거미줄 처럼 얽힌다
 

- 서로가 개입한다는 의미에서 ‘간섭’이라는 말을 써도 될까요?
 “좀 간섭이라는 것은 좀 더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원하거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이라면 간섭이라는 말도 맞는 측면이 있죠.”
 
 “저의 두 번째 작품이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서 우리가 가입하는 순간 우리가 그 거대한 네트워크에 들어가게 되죠. 거기까지는 저에 의지지만 그 이후의 삶은 저의 의지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죠. 제가 싫어도 누군가에게 카톡이 전해오면 제가 받아야 하고, 거기에 응답하지 않으면 유형무형의 압력이 오게 됩니다. 그때부턴 간섭을 받는 거죠. 저의 의지와 관계없이 행동해야 하니까. 처음에 시작을 자기가 했을 뿐이지 그 외의 생활은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거죠. 그걸 시각화 한 것이 두 번째 작품입니다.”
 
- 가상개체가 움직이는 AI로 나타나고 사람과 서로 감성적으로 간섭할 때, AI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겠느냐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거든요?
“고통이라는 감정도 생리학적으로 보면 신경물질의 전달이잖아요. 사실 AI는 정보를 전달하는 흐름 같은 것이 있겠죠. 이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은 사람이 느끼는 것과 좀 다른 형태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해킹 같은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자신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못하게 되면 뭔가 자기 존재 가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거죠. 사실 고통이란 것은 더 큰 일이 일어나기 전의 경고잖아요. 그런 식의 싸인을 AI도 가지고 있을 거구요.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느낄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개념이 될지 아니면 사건 경고의 개념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AI도 어떤 신경체계랄까 하는 것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더 나아가 AI가 판단해서 표현을 할 때 감성적인 표현을 하면 사람들은 또 한 번 속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되는 군요.
 “예, 어떤 정보가 들어와서 AI가 ‘고통스럽다’고 표현 했을 때 그 메카니즘은 사람이 짜준대로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이러이러한 자극이 들어 왔을 때 95%의 사람이 고통을 느낀다면, 너도 고통으로 표현하라’ 이런 식으로 알고리즘은 짜주는 거죠. 그랬을 때 사람들은 얘가 사람처럼 반응하는 구나 오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미래학자들이 어느 순간 얘가 스스로 학습하거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메카니즘이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자기가 스스로 자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갖고 있죠. 그래서 얘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을 해버릴 까봐 걱정하는 거죠. 그래서 무조건 미래의 컴퓨터에는 셧다운 기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전원을 꺼버리는 거죠. 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상무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살상무기가 돼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죠.”
 
- 문제는 주체가 인간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요. 어떤 것이든 인간이 문제가 되는 것이군요.
 “그렇죠. 저는 기본적으로 이번 두 작품에는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이 발달돼서 인간이 풍요로움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증강현실을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존재가 부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죠. 언젠가는 큰 부가장치 없이 더 자유롭게 실상과 허상을 공유해서 볼 수가 있게 되겠죠. 어떤 홀로그램의 아름다운 여인이 다정히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 왔을 때 인간 보다 더 호감을 가질 수 있거든요. 또 이 가상객체는 그 뒤에 더 커다란 AI나 빅데이터가 있어서 사람 보다 더 저를 잘 알거든요. 실제로 제가 흘리고 다니는 정보들이 많거든요. SNS라든가. 그래서 저 보다 저를 더 잘 알아서 통제하는 수준까지 갈 수도 있거든요. 기술이 더 발달해서 실물하고 똑 같은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호감의 이미지를 가진 어떤 객체가 제 앞에서 듣기 좋은 얘기를 한다. 그러면 사랑에 빠질 수 있거든요.”
 
- 거기에 촉감까지 더해준다면...
“그러면 그 순간에, 실재의 사람은 저를 불편하게 하고 이해도 못하고 하면 저는 사람보다는 이 객체와의 시간을 더 즐거워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게 되면 인간의 가치,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다른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이런 것들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 그런 상황들은 분명히 오리라고 보여 지는 상황이지요.
 “예, 앞으로 십년 안에 올 수도 있습니다.”
 
- 증강현실은 우리에게 성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이 인문학적으로 고민하고 확대되어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시대에서 지금은 조금씩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 순간 새로운 종교로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재 보다 더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증강현실에도 한계는 있을 거라는 거죠. 물론 현실 보다 더 좋게 느껴져서 도피처로 삼을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것도 ‘헛되다’라고 느끼게 되겠죠. 그러면 실상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종교가 아니라 가상의 어려움, 물질적인 고통만 극복하려는 종교가 아니라, 정신적인 적인 고통이라든지 어떤 생물과 무생물, 물질과 비물질, 정신과 육체를 초월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해야 되는,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어 하는 종교적인  무언가가 발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가상으로부터의 절망이 구체화 될 때 그런 것들이 떠오를 수 있다는 말씀이죠?
 “네. 그래서 종교계에 계신 분들이 이런 기술적인 발전이라든가 하는 흐름들을 더 빨리 읽으셔 가지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게임이 갖고 있는 폭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폭력적인 게임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된다. 이런 접근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 이런 게임은 이미 큰 흐름이고, 트렌드화 되어 있는데, 단순히 폭력 때문에 안돼! 하고 막아서 막아질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대안을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게임을 만드시는 분들 중에 굉장히 힐링이 되는 게임을 만드시는 분들이 있어요. 아무런 주제도 없이 여행하는 게임인데 아주 감성적으로 다가와서 좋은 여행을 하고 온 것 같은 그런 게임을 추구하는 개발자들도 있습니다. 마약 치료도 무조건 마약을 하지마라! 이게 아니고 마약의 충동이 있을 때 다른 더 좋은 방법으로 유혹을 희석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는 사례가 있죠.”
 
- 교수님의 ‘말걸기’라는 시도는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의 제 생각을 ‘이건 어때?’라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거죠. 제 생각을 주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보고 있는데 ‘너는 어때’ 이렇게 말을 거는 거죠. 저의 다른 작가 노트에, 제 생각은 아니지만 ‘작가는 일종의 더듬이 같다’라는 말을 썼어요. ‘시대의 더듬이’가 민감해서 세상의 변화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빨리 잡아내죠. 작가들의 역할은 일반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이런 면도 있어’라고 자꾸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무턱대고 전진하거나 올라가지 않고 주변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듬이의 역할이죠.”
 
- 작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어떤 때인가요?
 “어떤 컨셉이나 이런 메시지를 표현해보겠다는 것이 정해지면 그 다음 부턴 일이 쉽게 풀리는데, 뭔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느껴지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구상화 되지 않을 때, 막연히 어떤 느낌만 있고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을 때 힘들죠. 그래서 제가 표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반응이 왔을 때 ”아, 내가 ‘말걸기’를 잘했구나.”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인터뷰 후기
 
 인터뷰에서 만난 증강현실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반면 인간의 소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는 기술이었다. 나만의 기억을 타인들과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갈등과 평화의 안목을 넓혀 줄 수 있는 도구이고, 새로운 현혹에 갇혀버린다면 더욱더 인간을 갉아 먹을 수 있는 도구다.
 그러나 이젠 두렵지 않다. 변화와 주체와 사건, 이런 현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부처님은 ‘모든 것은 변하고,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는 없으며, 오직 서로 의지하여 일어난다’고 말씀하신다. 불교의 무상은 변화를 인정하기에 변화되는 앞으로의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고, 무아를 계속 되돌아보기에 디지털이나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먼저 고집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인연에 기대어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기에 발전에 대해서 긍정적이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런데 두렵다. 새로운 기술들은 오감을 향해서 무섭게 질주해 온다. 그런데 우리의 주변에는 뗏목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뗏목을 버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변하는 진리가 저기 있다고 자기들만의 암호로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많다. 내 눈코귀혀몸마음의 단속도 어렵다. 12처에서 벌어지는 탐진치를 알아차리기 숨 가쁘고, 버리기는 더더욱 힘들다.
 
거기 누구 없소?

서산 마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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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이불재 2017-12-28 09:46:16
답변  
최근에 불교계 언론에서 본 기사들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기자의 고뇌가 묻어 있는 느낌입니다. 미디어붓다가 불교계 언론의 증강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경담 2017-12-28 10:08:33
답변  
감사합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기원 2017-12-28 11:56:04
답변 삭제  
와.. 거기 누구 없소... 이 한마디에 많은게 담겨있네요..^^
화엄 2017-12-28 12:16:42
답변  
화엄

우리 현실속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세계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합니다.
감사합니다.
경담 2017-12-28 12:55:23
답변  
감사합니다.
김은주 2017-12-28 14:40:51
답변  
"예민한 더듬이"와 "스스로 움직이기를 멈추지않는 더듬이"이의 불꽃튀는 대화네요^^
이주헌 작가님의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합니다!
경담 2017-12-28 16:19:26
답변  
감사합니다.
무등 2017-12-28 20:01:04
답변  
증강현실은 새롭게 나타난 개념이라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 같아요. 세상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람마다 달리보지 않습니까. 이것도 나름의 증강현실 실현하는것이란 느낌. 좀 다른것이있다면 기계적인것이 개입되느냐  않느냐 차이. 좀더 자세히 읽어봐야겠어요
경담 2017-12-29 14:10:41
답변  
댓글, 감사합니다.
달마아리랑 2017-12-28 22:35:57
답변  
염증나는 정보의 탁류 속에서 청량제 같은 기사를 접합니다.  짱!
경담 2017-12-29 09:20:15
답변  
감사합니다.
빠띠고사호잔 2017-12-29 12:00:59
답변  
거기 누구 없소?

네, 여기도 거기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구'는 없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생멸하는 담마만 있다고 합니다.
경담 2017-12-29 14:09:25
답변  
네, 공감합니다.
그런데 저는 '없다'라는 말이 주는 허무주의를 경계합니다.
마치 없는 그 무엇이 있어서 '진짜 없다'라고 느껴지는 것이죠.
제가 스스로 '없는 것'을 체험하지 못했는데, 자꾸 '없다'고 하니 .....
수행도 머리도 짧은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겁니다.
빠띠고사호잔 2017-12-31 15: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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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없다'라는 말이 주는 허무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를 어느정도 아는 분들에게는, '있다'라는 말보다는 '연기한다'라는 말을 쓰려고 하고, '없다'라는 말보다는 '연기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연기한다'거나 '연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떤 면에서는 불교를 아는체 한다고 하거나, 일상용어를 쓰라고 하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일상용어로 '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