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몇 시간씩 나붓나붓 흩날렸다. 눈발은 하늘을 가득 메운 나비들의 군무(群舞) 같았다. 이따금 매서운 북서풍이 섞이면 눈보라로 바뀌었다. 눈은 안적사(安寂寺)로 가는 모든 길을 지워버렸다. 세상은 오직 흰 색  하나뿐이었다. 산야는 폭설에 덮여 숨을 죽였다. 소나무 가지들이 때때로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지르며 꺾어졌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질 때마다 달아나는 나무의 혼처럼 눈보라가 일었다.
 그러나 눈은 강을 덮지는 못했다. 강은 푸른 뱀처럼 산허리를 완고하게 감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을 맞이한 강은 허연 입김처럼 안개를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강은 살아서 숨 쉬며 흘렀다. 
 간이역은 강 옆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간이역도 보름 동안 내내 폭설에 시달렸다. 눈 더미는 간이역 지붕을 짓눌렀다. 그래도 간이역은 적막한 산중에서 생기를 보였다. 수도가 얼어 강에서 강물을 떠오는 늙은 역무원이 있고, 기차가 하루에 두 번 눈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그리고 간이역 난로 연통에서는 연기가 폴폴 났다. 연기는 제 몸을 숨김없이 드러냈다가 허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늙은 역무원은 다리를 절룩거렸다. 강에서 물을 떠오다가 미끄러진 탓이었다. 기차가 올 시각이었다. 역무원은 빗자루를 들고 나가 사람이 다니는 통로를 쓸었다. 눈을 쓴다기보다 끊임없이 퍼붓는 눈과 싸웠다. 역무원은 긴 칼 같은 빗자루로 쌓인 눈을 후벼 팠다. 철로에서 간이역까지 통로는 눈의 터널 같았다. 간이역에서 내리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눈이 내리면서 등산객과 약초꾼들이 발길을 끊었다.
 추추추추- 추추-.
 기적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기차는 산짐승이 우는 소리를 냈다. 늙은 역무원이 빗자루를 제자리에 갖다놓고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는 식식거리며 달려왔다. 기차는 간이역에서 잠깐 쉬면서 숨이 벅찬 듯 허연 김을 내뿜었다. 산촌에서 산촌만 오가는 오래된 기차였다. 역무원이 원을 그리며 수신호를 보내자 기차는 다시 움직였다. 역무원 눈에는 기차가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다.
 ‘날 의심하는 길고양이 같은 기차야.’
 역무원이 난로 연통에서 나는 연기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역무원 뒤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기차의 마지막 칸에서 내린 남녀였다. 북서풍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역무원은 간이역 처마 밑에 서서 남녀의 기차표를 받았다. 남녀는 간편한 복장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아저씨, 안적사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돼요?”
 “지금 절로 가겠다고?”
 여자가 발을 경쾌하게 동동 굴렸다.
 “예, 무슨 일이 있어요?”
 “갈 수 없어. 눈이 쌓여 산길이 막혔어요. 버스가 끊긴 지 며칠 됐어.”
 “이 부근에 여관 같은 숙소는 있겠죠.”
 “강가에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빈 집이지. 주인이 자물쇠를 잠가 놨어요. 그러니 역에서 난로를 쬐다가 오후에 오는 기차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 
 여자 손을 잡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걸어서 갈 수는 없습니까?”
 “절까지 30리 길인데 아예 갈 생각을 말아요.”
 “가는 길만 가르쳐주세요.”
 역무원이 두 사람이 신고 있는 운동화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운동화를 신고 갈 수는 없어요. 운동화 속으로 눈이 들어가면 체온이 떨어지고 바로 동상에 걸려요. 걷지 못해 죽을 수도 있어. 작년에 대학생들이 몇 명 죽었어요.”
 여자가 낙심하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 기대가 단번에 어긋났으니 명랑한 말투가 바뀔 만도 했다. 여자가 역무원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오후 기차로 나갈게요.”
 “잘 생각했어. 젊은이.”
 여자가 먼저 난로 옆에 앉고 남자가 마지못해 뒤따라 앉았다. 역무원이 난로 입구를 들여다보더니 통나무 토막을 집어넣었다. 난로 연기는 간이역 유리창을 통해서도 보였다. 통나무 토막이 들어가자 검은 연기가 잠시 나더니 다시 흰 빛깔로 바뀌었다. 연기인지 눈보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은 난로 옆에 둘러앉았다.
 “결혼한 부부요?”
 “앞으로 결혼할 사입니다.”
 “애인이구먼.”
 역무원이 자신의 속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 비닐 속에는 정장을 한 누런 남녀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여자는 흰 꽃을 한 아름 든 채 웃고 있었다. 역무원이 사진을 잠시 쳐다본 뒤 도리질하며 말했다.
 “지금이 좋을 때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괴로울 때도 있겠지. 하지만 젊을 때는 곧 잊어버려요. 나이 든 우리들과 달리 상처가 빨리 아물지.”
 남자는 별로 말이 없지만 여자는 불안한 듯 역무원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좋기도 하고 괴롭기도 해요.”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이지. 나 같은 사람의 시간은 빛도 없고 그림자도 없어. 무덤덤하고 지루할 뿐이지.”
 눈보라가 유리창을 때렸다. 유리창이 덜컹 하고 비명을 질렀다. 눈보라가 유리창을 깨고 곧 들이칠 것만 같았다.
 “저는 이곳 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강기슭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데다 이제는 눈 치우느라 지쳤어요. 봄에는 여기를 떠나려고 해요.”
 “아저씨, 죄송해요.”
 “마누라 먼저 보내고 아무도 오지 않는 여기를 자원했지만 이제는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지. 저 연기같이 사라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오.”
 남자가 외로움이 몸에 밴 역무원의 푸념이 듣기 싫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무원의 친절은 자신의 지독한 외로움을 잊고자 하는 습관이었다. 나이 들면 누구나 크고 작은 낙엽 같은 외로움만 켜켜이 쌓이는 법이었다.  
 “절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세요.”
 “지금 간다는 말이오?”
 “서두르지 않으면 캄캄해질 것 같습니다.”
 “정 가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걱정이 돼서 그래요. 외길이니까 산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쭉 따라가기만 하면 절이 나와요.”
 남자가 배낭을 메자 역무원은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잠시 도리질을 하더니 간이역 밖까지 나와 산길이 난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면장갑 두 켤레를 내밀었다.
 “이거라도 끼고 가요. 체온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
 “다음에 뵙겠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눈보라를 피해 잔뜩 머리를 숙이고 걸었다. 역무원이 소리쳤다.
 “절을 못 찾겠으면 망설이지 말고 돌아와요!”
 두 사람은 눈보라 치는 눈길을 걸었다. 남자가 바람벽처럼 앞에 서고 여자가 뒤따랐다. 여자는 남자의 발자국만 보고 걸었다. 산짐승들이 낸 발자국도 희미하게 보였다. 그런데 산중으로 깊이 들어서자 눈보라의 기세가 강변보다 덜했다. 눈 덮인 산중이 두 사람을 껴안아주는 듯했다. 두 사람은 역무원이 왜 자신들에게 겁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산중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도시는 두 사람을 도망치게 했지만 산은 그들을 묵묵히 받아주었다. 멀리 산짐승 한 쌍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산짐승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솔숲 속으로 피해 들어가 버렸다.
 “선융스님, 쉬었다 가요.”
 “주혜 씨. 스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환속했으니 그냥 선융이라고 불러요.”
 “습관이 돼서 그래요.”
 주혜가 이마에 땀을 훔치며 말했다. 선융도 걸음을 멈추었다. 사실 선융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주혜에게 표정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선융은 요의를 느끼고 몇 걸음 걸어가 바지 지퍼를 열었다. 오줌발이 눈길을 노랗게 일자로 물들였다. 찬 공기가 선융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몸의 체온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융은 진저리를 치며 지퍼를 올렸다. 잠깐 쉬었는데도 주혜의 뺨에 소름이 돋고 붉은 입술이 파래졌다. 선융은 체온을 유지하려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갑시다.”
 “절에는 스님이 계실까요?”
 “동안거이니 절을 지키고 계실 겁니다.”
 “스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실까요?”
 “설마 묘유스님이 우리를 쫓아내지는 않겠죠.”
 “우리를 쫓아내면 우리는 어디로 가죠?”
 “갈 데가 없으니 절에서 버텨야죠.”
 주혜가 몇 마디 산새처럼 재잘거리더니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잠시 후에는 빈말처럼 공허하게 말했다.
 “주님이 계신 교회처럼 받아주시겠죠.”
 “그럴 겁니다. 따뜻한 스님이거든요.”
 “그렇다면 절이나 교회나 겉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거네요.”
 “자비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라면 같겠지요.”
 “묘유스님은 자비로운 분이세요?”
 “내가 살았던 서래사의 진공스님은 선승이고 묘유스님은 학승이죠. 남매가 성격이 달라요.”
 서래사 주지스님인 진공은 선융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융이 환속했으니 이제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선융은 서래사 부근에 있는 교회의 목사 딸인 주혜를 만나 산문을 떠났던 것이다. 주혜는 선융의 말에 안심했다. 주혜에게 절은 항상 낯설었다. 천왕문 좌우에 서 있는 사천왕상도 그렇고 지장전 안에 빙 둘러앉아 있는 염라대왕과 시왕들도 무서웠다. 대웅전 안의 부처와 부처를 협시하고 있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도 낯설기만 했다. 법당 안에 밴 향냄새도 코를 감싸 쥐게 했다.
 눈보라가 또 휘몰아쳤다. 자애로운 품속 같던 산중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회초리를 들고 두 사람을 다그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산모퉁이를 돌아 협곡으로 들어섰다. 협곡 아래는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낭떠러지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다. 선융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주혜의 손을 잡고 눈보라와 맞섰다. 눈보라가 위세를 부리듯 낭떠러지 밑의 협곡을 오갔다. 주혜가 겨우 눈을 뜨고 말했다.
 “선융스님, 길을 잘못 든 게 아니예요?”
 “이 길 하나뿐이니 맞을 거요.”
 “30리를 더 걸은 것 같아요.”
 “눈길이라 더뎌서 그래요. 내 짐작으로는 시오리 온 느낌이에요.”
 “고작 반밖에 오지 않았다니 두려워요. 간이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눈보라가 두려워서 그런 생각이 들 거예요.”
 “선융스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이 세상에 끝이 없는 것은 없어요. 지금 이 눈보라도 끝이 있을 겁니다. 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절망하지 않죠.”
 “주혜 씨. 다시 한 번 더 부탁해요.”
 “무얼요?”
 “이제 저를 선융이라고 불러주세요. 스님이라고 하니 은사님인 진공스님께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래요.”
 “알겠어요. 선융 씨.”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진공스님의 기대를 저버렸으니 늘 죄를 지은 것 같지요.”
 “사실은 저도 마음속에는 ‘선융스님’이 아니라 ‘선융 씨’에요.”
 선융이 주혜의 손을 꽉 쥐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달리 주혜가 손을 뿌리쳤다. 선융이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눈송이들이 날벌레처럼 붙어 있었다.
 “선융 씨는 이렇게 고집이 센 분인 줄 몰랐어요.”
 “고집 때문에 늘 망했지요.”
 주혜는 이미 울상을 짓고 있었다. 몹시 화가 나 있는 것도 같았다.
 “추워서 그래요?”
 “춥기도 하지만 돌아가고 싶어요. 이 산중이 두려워요.”
 “조금만 참으면 절이 나올 거예요.”
 “이렇게 더 가다가는 얼어 죽을 것만 같아요.”
 주혜가 갑자기 흐느끼며 말했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멍이 든 것처럼 사색이 돼 있었다. 선융은 무리해서 간이역을 떠났다고 잠시 자책했다. 그러나 선융 자신의 처지는 진퇴양난이었다. 두 사람이 간이역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 있었다.
 “좀 천천히 갈까요?”
 “....”
 주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때마침 눈보라가 선융을 도와주었다. 협곡을 휘젓고 다니던 눈보라가 제 풀에 꺾인 듯 잦아졌다.
 “보세요. 눈보라가 순해졌어요.”
 “미안해요.”
 주혜가 선융의 말을 따르겠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주혜의 다리는 이미 마비가 온 듯 약간 비틀거렸다. 선융은 주혜의 배낭을 벗겨 자신의 배낭 위에 얹었다. 그리고 간이역 역무원의 말이 문득 생각나 주혜의 운동화를 벗겨 살폈다. 주혜의 젖은 양말은 이미 얼어 발에 엉키어 붙어 있었다. 선융은 주혜의 언 양말을 벗긴 뒤 몇 번이나 세차게 그녀의 발을 문질렀다. 그래도 주혜의 얼어가는 발은 나무토막처럼 무감각했다. 
 선융은 주혜를 끌다시피 걸었다. 선융도 마음속으로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갈등이 왔다. 산문을 나서면 자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주혜를 만나 눈 덮인 산중에 갇힌 것이 또 다른 구속으로 느껴졌다. 눈보라가 물러간 허공에서 부처의 말이 차갑게 들려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두 사람은 사력을 다해 협곡을 빠져나왔다. 눈 덮인 내리막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주혜가 발을 잘 움직이지 못해 미끄러졌다. 선융도 발을 헛디뎌 나뒹굴었다. 산자락으로 처박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선융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일어났다.
 마침내 내리막길을 지나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나타났다. 건너편 산자락에 조그만 절이 하나 웅크리고 있었다. 산중은 온통 눈이 점령한 눈의 나라인데, 절은 눈을 거부하듯 푸른 대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선융은 안적사라는 직감이 들었다. 언젠가 묘유스님이 서래사를 찾아왔을 때 안적사는 대숲이 일품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다 왔어요. 주혜 씨.”
 이번에는 지쳐버린 선융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힘들게 말했다. 선융의 얼굴도 주혜와 같이 얼어 있었다. 얼굴이 군데군데 검푸른 빛을 띠었다. 절은 틀림없는 안적사였다. 절 초입에 안적사라고 쓰인 표지석이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런데 선융은 산문을 들어서자마자 쓰러져버렸다. 법당에 있던 묘유스님이 주혜가 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 나왔다. 묘유스님의 눈에는 절 마당으로 들어선 두 사람이 마치 폭설을 피해 들어온 산짐승처럼 보였다. 묘유스님과 주혜는 선융을 객사로 들였다. 잠시 후 묘유스님이 객사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그러자 객사 굴뚝에 연기가 춤추듯 솟구쳤다. 연기는 온몸으로 춤추듯 솟구쳤다가 온몸으로 사라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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