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의 달 맞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바보동자’ 출간
정찬주-정윤경의 두 번째 동화…글에 생명력 불어넣는 그림 눈길

동화책은 어린아이들이나 읽는 거라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다. 어른동화, 성인동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어도 좋은 동화를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읽기도 쉬워야 하지만 동시에 깊은 울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쉬워야 하고 동시에 감동도 깊어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양립불가’에 가깝다.   

그런데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를 발표하고 있는 부녀가 있다. 소설가인 아버지는 동화를 쓰고, 화가인 딸은 그림을 그린다. 정찬주, 정윤경 부녀가 그 주인공이다. 

이미 첫 번째 합작품 <마음을 담는 그릇>에서 빼어난 솜씨를 선 보였던 이 부녀가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또 한 권의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마음동화’ <바보동자>(작가정신 펴냄)를 펴냈다. 

크게보기

부처님오신날과 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5월 출간된 마음동화 '바보동자' 표지

‘감동 만점’의 줄거리는 우리시대 대표적인 불교구도소설 작가로 정평이 난 정찬주 작가의 내공이 빚어낸 것이니 두 말이 필요 없고, 이 책에서 보다 눈여겨 볼 부분은 줄거리에 펄펄 생명력을 뿜어 넣어주는 화가 정윤경 씨의 ‘독특한’ 그림들이다. 가히 이 책을 두고 ‘동화’라는 명칭 이외에 우리 고유의 정서를 담은 ‘우리 문화 그림책’이라 불러도 좋은 이유다. 

‘1고수 2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에서 북을 치는 사람이 첫째이고, 소리 잘하는 사람은 버금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명창이라 해도 고수가 잘해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을 이 말은 가지고 있다. ‘정찬주·정윤경’ 부녀의 공동작품인 <바보동자>를 읽으면서 ‘1고수 2명창’을 떠올렸다면 정찬주 소설가에게 비례를 범하는 것일까?

아무튼 정윤경의 그림이 있어, <바보동자>는 둑자에게 맑은 마음결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화가 정윤경은 불교 구도소설의 정형을 일궈낸 소설가 아버지와 불교적 메타포를 담은 도자기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도예가 어머니(박명숙)의 영향을 받아 불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어쩌면 그의 그림이 불교적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은 오랜 전생의 불연으로 인한 ‘생이지지(生而知之)’의 결실인지도 모르겠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젊은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특히 불자 예술가를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려운 시대에 정윤경의 등장은 반갑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작가 스스로도 불교적 그림을 그리는 데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아버지가 문학에서 불교 구도소설이라는 새 장르를 구축한 것처럼, 그림에서도 새로운 전형을 만들겠다는 원력을 세웠으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잠시 <바보동자>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나이가 오백 살이나 된 낡은 절에 사는 아이가 있다. 세상 모든 게 즐겁고 재미있기만 한 아이는 다람쥐와도 친구가 되고, 배고파 찍찍대는 쥐도 가엾기만 하다. 그 덕에 바보라고 놀림 당하기 일쑤다. 아이가 다람쥐와 놀다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어느 날, 십 년째 ‘말을 하지 않는’ 수행을 하던 금강 스님은 아이의 말 한마디에 말문을 연다. “너야말로 내 스승이구나!”

이 동화는 금강 스님의 눈을 뜨게 한 개구쟁이 동자승 이야기다. 금강 스님을 일깨운 아이의 말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은 종교적인 가르침보다도 더 크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바보 동자>는 마음의 위안이 필요한 어른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올곧은 성장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다. 

금강 스님이 <바보 동자>를 통해 관세음보살을 만난 것처럼, 많은 분들이 이 마음동화 <바보동자>를 읽고 각자의 보살을 친견하시기 바란다. 부처님오신날과 어린이날이 들어 있는 봉축의 달 5월에 우리 곁으로 온 마음동화 <바보동자>를 ‘강추’한다.

*작가 정찬주는?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명상적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온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오던 그는 자연을 스승 삼아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저잣거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늘 마음속에 그리던 남도 산중에 집을 지어 들어앉았다. 샘터사에 근무한 십수 년 동안 법정스님의 책들을 십여 권 만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도타운 사제지정을 맺었다. 스님은 작가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산중에 있는 듯 없는 듯 무지렁이 농부처럼 잊힌 듯 살면서 자연의 섭리를 좇아 살고자 하는 그의 바람은 솔바람으로 시비에 집착하는 귀를 씻어 불佛을 이룬다는 뜻의 '이불재(耳佛齋)'라는 집 이름에 담겨 있다.저서로는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하늘의 도>, <다불>, <만행>, <대 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다인기행>,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을 받았다.

*화가 정윤경은?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뒤, 영국 킹스턴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그림책에 선과 색을 자신만의 터치로 섬세하게 펼쳐 세상 사람 모두와 소통하기 위해 현재 ‘삼매화 아틀리에’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린 책으로 그림책 <마음을 담는 그릇> 등이 있고, <아들어 너는 최고의 인생을 살아라>,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등 몇 권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