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천 기자
hgcsc@hanmail.net 2017-01-31 (화) 17:45
지율스님의 산막일지
지율 지음, 사계절
296쪽, 1만5800원
'도롱뇽 소송'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지율 스님이다. 2001년 천성산을 살리겠다며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생명을 건 단식을 다섯 차례나 단행했다. 그 끈질긴 투혼에 응답하는 듯 여기저기서 공명(共鳴)이 있었다. 무려 사십만 명이 도롱뇽 살리기 운동에 동참했다. 이른바 ‘초록의 공명’이었다.
2005년 9월 돌연 잠적한 지율 스님은 2006년 봄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 산막으로 숨어버렸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닷새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오지로 동생의 부축을 받으며 흘러들었다. 새벽 3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아침 해 뜰 때까지 앉아 있다가 어르신들 농사일하는 데 가서 일 배우고 품앗이도 해드렸다. 바느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사진을 찍으며 일기도 썼다.
오랜 시간 변해가는 자연을 기록해온 지율 스님은 이 마을에서도 관찰자이자 참여자로서 어르신들의 농사일지를 대신 써내려간다. 책에는 칠순, 팔순을 넘긴 어르신들이 자기가 태어난 혹은 시집 온 집에서 예전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지으며 한 해를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온 마을이 모여 동제를 지내고, 길일을 택해 장을 담그고, 분뇨를 모아 거름을 만들고,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식의 전통적인 농경은 이 땅에 얼마 남지 않은 귀한 풍경이라 여기며 사소한 일화 하나까지 꼼꼼히 수집하듯 적어 넣었다.
도시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라고 하면 옷차림이 달라지는 정도겠지만, 농촌에서는 마을 전체가 앉는 자리가 달라지고 하는 일이 바뀐다. 한 장 한 장 달력을 넘기듯 지율 스님의 일지를 따라가다 보면, 철따라 달라지는 농촌의 풍경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농부의 손과 발이 눈앞에 그려진다. 농촌에 고향을 둔 이들이라면 잠시 향수에 젖을 것이고, 마트의 진열대에서 계절 감각을 잃은 도시인들이라면 식탁 위에 놓인 곡식과 작물들이 어떤 노동을 거쳐 온 것인지 대략적으로나마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열매 하나, 도롱뇽 한 마리가 귀하듯 지율 스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삶이 다 소중했다. 땅에 엎드려 평생을 심고 가꾸고, 낳고 기르고, 거두고 나누어왔지만 삶의 끝자락에 온 지금까지 누구 하나 그들의 삶에 주목하지 않았다. 지율 스님은 자신의 삶에 생기와 온기를 불어 넣어준 마을에 은혜라도 갚듯이 할배의 발, 할매의 한숨, 아재의 손, 젊은이의 상처에 두루 눈길을 주고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완성한 이 책은 곧 마을 어르신들의 작은 일대기이자, 처음으로 기록된 그 마을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부의 사대강 사업 착공 소식을 들은 뒤 2009년 3월 산막의 평화를 박차고 칠보산을 내려온 지율 스님은 강바람을 맞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낙동강 강물을 굽어보면서 산막을 그리워하는 스님은 이렇게 작은 바람을 전한다.
“비록 표현이 어눌하고 매끄럽지는 않지만 산비탈에 엎드려 땅을 일구고 살아가는 분들의 소박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고향 소식으로 전해지면 좋겠고, 고향으로 발걸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